#사순절 #아침_미사_풍경 - 3월 1일 삼일절 성 데이빗 축일, 춘계재 수요일 (사순 7일)
주낙현 요셉 신부 (성공회 영등포 성당)
오늘은 사계재(四季齋: Ember Days)라 불리는 교회절기 가운데 춘계재 첫 날입니다. 사계재는 사계절에 각각 3일을 정해 참회하는 마음으로 절제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날들을 가리킵니다. 봄에는 춘계재, 여름에는 하계재, 가을에는 추계재, 겨울에는 동계재라 해서 수, 금, 토, 3일 동안 지킵니다.
우리는 이미 사순절기라는 절제와 회개의 시간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순절 안에 그 안에 이런 날들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의문입니다. 사계재와 사순절은 비슷한 시기에 발전했으리라 추측하지만, 아마도 지역과 문화가 다른 교회에서 따라 발전하다가 전례력 안에 통합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사순절의 절제와 회개의 시간이 이미 마련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사계재를 지내는 의미를 조금 바꿨습니다. 사계재는 하느님의 백성이 받은 거룩한 부르심을 생각하고 되새기는 절기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에는 성직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금요일에는 성직후보자와 수도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모든 신자가 받은 거룩한 소명을 다시금 되새기며 기도하는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이 사순절기에 여러분은 자신과 더불어, 가족, 그리고 친지와 친구를 위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오셨겠지요? 그런데 춘계재 동안은 많은 우리의 기도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한다는 점을 되새겨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과 부르심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날로 삼아 주셨으면 합니다.
춘계재 수요일 우리는 성직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금요일에 우리는 성직후보자와 수도자를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토요일에 우리는 우리의 동료 신자를 생각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춘계재라는 3일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기도는 ‘나’의 요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을 위한 것입니다.
많은 종교가 그렇듯이 우리 신앙도 종종 ‘자신’의 복과 ‘자신의 웰빙’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어가기 쉽습니다. 바쁘고 쉼 없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바깥 세상과 여기에 있는 우리는 별 차이가 없을는지 모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매번 ‘나’를 중심으로 한 삶에서, 다른 사람, 다른 존재를 향한 삶으로 시선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시선을 통해서라야 우리는 오늘 구약 민수기의 사건, 사도 바울로의 권고, 그리고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탈출했던 사람들은 과거의 고생은 금세 잊고 고기 맛을 못 본 지 오래됐다고 불평하며 모세를 괴롭혔습니다. 이 불평을 무마하고 다스리려고 하느님은 모세를 시켜서 칠십 인의 원로를 뽑아 하느님의 영을 받게 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부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의 영이 내렸습니다. 젊고 혈기왕성한 어떤 이는 명령을 거부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영을 받은 것을 질투하고 시기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대답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의 영을 받아 예언자가 되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희망이다.”
모자라고 거절하려는 사람인데도 불러서 성직자를 세우신 하느님의 뜻을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성직자가 바로 서야 교회도 바로 섭니다. 성직자로 부름받은 사람의 모자람을 애틋하게 여겨주시고, 인간적인 모자람에 시선을 머물지 마시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생각하여 성직자를 격려하고 응원해 주십시오. 때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생각하여 성직자와 대화하고 사랑 깊은 충고를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성직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내려주시려는 하느님의 영을 깊이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로는 분파로 나뉘어 싸우는 교회를 보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신앙의 체험이 깊으면, 배움이 깊으면, 연륜이 깊으면, 지위가 높으면 그만큼 주장도 강해지는 법입니다. 그 주장은 원래 시작했던 원대했던 꿈과는 달리, 종종 ‘자기’를 세우는 일로 미끄러집니다. 이런 강한 ‘자기’ 주장으로 자신의 성을 쌓는 일이 빈번합니다. 결국에는 자신을 외롭게 만듭니다. 게다가 자신을 왜소하게 만들곤 합니다. 자신이 쌓아올린 성에 갇혀 매우 속좁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를 외롭지 않고 더욱 넓고 풍성하게 만드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여럿이 함께 기초를 두는 길입니다. 그렇게 함께 사귀고 배우고 대화하며 나눌 때 우리는 풍요로워집니다. 우리 자신의 개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기초한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엇을 잡수시라’는 권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이다.” 예수님 역시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뜻,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일”에 삶의 중심과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사순절기와 춘계재는 우리 삶에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공간을 열고, 우리의 뜻을 하느님의 뜻과 조율하는 시간입니다. 함께 모여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함께 나누어 거룩한 시간을 축하하는 절기입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배우고 격려하고, 우리 삶의 방향과 부르심을 ‘나’ 자신에게서 돌려 하느님을 향하는 시간입니다.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면서, 성직자들이 지닌 소명을 기억하면서, 그리고 그 소명에 따라 낯선 곳을 여행하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성인의 삶을 되새기면서, 이 아침 시간, 이 춘계재의 시간, 이 사순절기의 시간, 그리고 우리의 삶은 거룩한 시간과 공간으로 변화합니다. 이곳은 낯선 하느님과 낯선 다른 사람을 초대할 만큼 따뜻하고 느슨하고 넉넉합니다.
모자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봉사자로 세우신 성직자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나라를 이뤄 나가자고 다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힘을 주시려고 주님께서 새로운 양식을 주시는 이 아침 식사의 자리, 성찬례의 자리에 모였습니다. 여기는 성체와 보혈을 우리 삶과 신앙의 양식으로 먹고 함께 나누는 거룩한 시공간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