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에서 사약을 억질러뿌러가꼬 상전에 목숨을 쪼깐 더 연장시킨 야기
진도 관련 설화에 ‘사약을 억질러뿌러가꼬 상전에 목숨을 쪼깐 더 연장시킨 야기’가 있어서 전해봉구만이라.
조태채(趙泰采, 1660~1722년)는 조선 후기(현종 숙종 경종 시대)에 삶시로 노론4대신 중에 한 명이로 좌의정까장 지냈제만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진도로 유배되아가꼬 결국은 사약형(賜藥刑)을 받고 진도에서 죽게 되는 과정 가운데 일어났던 일화가 유재건(劉在建, 1793~1880년)이 쓴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1800년 중반)에 기록되아 있어가꼬 전해지넌 야담(野談)이여람짜.
그 조태채는 본시 노수신(盧守愼)을 주벽으로 해가꼬 칠현(七賢)을 모셨든 진도 유일의 서원인 봉암서원(鳳巖書院)에다가 훗날 조태채를 추배해 모셔가꼬 팔현이 되았다가 낭중엔 십현(什賢)까지 되았지람짜.
이 조태채는 대한항공 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의 7대조이기도 함시로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지람짜.
조선 제20대 왕 경종(景宗)은 장희빈(張禧嬪)이 낳은 아들로 병약해서 즉위 원년(1721)부터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 사이에 타툼이 컸넌데, 노론 사대신(四大臣)의 주장으로, 왕의 동생 연잉군(延礽君, 훗날의 영조)을 세제(世弟)로 책봉하고 정무를 대신하게 하자, 소론이 불가함을 상소했고, 이들 사대신이 역모를 꾀한다고 무고해가꼬 사대신이 극형에 처해지게 된 이러트믄 신임사화(辛壬士禍)란 사건이 요거여람짜.
이 신임사화로 조태채는 진도로 위리안치 귀양길에 올랐고 계속된 경종의 왕권 견제 땜시로 채 1년도 못 되고 사약형(賜藥刑)에 처해지게 되았어람짜. 그랑께 조태채의 아들 조관빈(趙觀彬. 1691~1757년)은 사약이 내렸다는 소식에 부친의 유배지인 진도로 서둘러 출발했제만 금부도사가 그보담 몬차 도착해뿌렀당구만이라.
그때 조태채의 충직한 집사 홍동석이 금부도사의 앞을 가로막고 부자간에 마지막 상봉을 하거끄럼 째깐만 지달레달라고 사정을 했제만 금부도사는 이를 무시했다고 하요. 안?
이에 홍동석은 시간을 벌라고 기냥 사약이 든 항아리럴 통째로 억찔러뿌는 사고를 저질렀넌데 모도덜 잘 아시데끼 사약(賜藥)은 죽을 사(死) 자가 아니고 임금께서 직접 내린다는 하사(下賜)의 약(藥)이로 줄 사(賜)를 써서 임금이 직접 내린 약을 억찔러부렀으므는 그 죄가 대역죄에 속하는 무쟈게 큰죄럴 저질러뿌렀지람짜. 으따 오매 찰로 큰일 저질른 거였지람짜.
그란데 금부도사도 역시 어명을 지대로 실행 못한 큰 죄럴 면하기 에럽게 되다봉께 생각도 못한 큰 사고에 완전 꼭지가 돌아가꼬 걍 홍동석이럴 양씬 뚜둘개 패는판에
조태채가 금부도사한테 ‘그케 뚜둘개 팬다고 당신 죄가 없어질 것은 아닝께 진도가 절해고도라 배를 타고 오는 길에 파도가 심해가꼬 사약 항아리가 바다에 빠졌다고 보고 하시게나’ 라고 설득해가꼬 그케 쉬쉬함시로 덮어뿌는 걸로 누이좋고 매부좋게 무마되았다고 그라요. 안?
그래가꼬 사약이 다시 진도까장 도착할 동안 부자상봉할 시간이 주어졌다지라.
이에 조태채는 아들 관빈한테 ‘홍동석이하고 성지간같일로 지내라’고 유언 해가꼬 사형이 집행된 대미 조관빈은 아버지의 유언을 충실히 지킴시로 홍동석을 무척 아껴줬다고 하요. 안?
그라고 병약한 경종이 일찍 죽고 곧바로 영조에 등극이로 시상이 바까징께 조관빈은 곧 호조참의로 조정에 복귀해 승승장구하고 판돈녕부사, 공조판서, 형조판서에 판중추부사, 대제학, 좌빈객과 지중추부사등에 요직을 지냄시로 홍동석한테도 존 직책을 줘가꼬 그 집안을 흥성하게 해줬고 조태채의 제사에도 참석시키는 등 확실한 의리를 보여주었다고 전한답디다.
또 기록에 보자므는
“조태채의 집사인 홍동석은 선혜청의 서리로 있을 때 죄인 하나를 유배 보낸다는 조서를 쓰라는 명을 받고 보니 그 죄인이 바로 자신의 상전인 조태채라서 그는 자신의 상전을 배신할 조서는 절대로 쓸 수 없다고 붓을 던지고 버티다가 두들겨 맞고 그날로 서리직에서 쫓겨났다.
그러고도 홍동석은 조태채가 진도로 유배가는 길에 끝까지 스스로 따라나서서 진도에서도 근 1년간 조태채의 유배생활을 돌본 충직한 집사였다.”
이케 되았다고 항께라.
홍동석은 조태채한테 내나 찰로 충직한 집사였고
진도서 사약얼 억질러뿐 대역죄인이었어도 의리있게 마무리도 잘 되았고
조태채 후손덜도 대한항공 한진그룹얼 일굴만침 잘 되았잉께 모도 잘 되았구만이람짜.
※ 참고로 정사 기록은 아닌 야사 기록이고, 사건이 있은 뒤 100여 년 뒤에 기록된 거라서
확실한 진위는 지가 책음 못 지넌 야담이여람짜.
-진도사투리사전 저자 조병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