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신(謹愼)하는 지조와 확고한 집념[謹愼之操, 牢確之執]
1858년 철종 9년 5월 27일 판부사 이헌구의 졸기
판부사(判府事) 이헌구(李憲球)가 졸(卒)하였다. 하교하기를,
"이 대신(大臣)의 충후(忠厚)한 자질과 근신(謹愼)하는 지조와 확고한 집념[謹愼之操, 牢確之執]은 내가 의지하였던 바이고 조야(朝野)가 상망(想望)하던 바이었다. 근래 병환이 침중하다고는 하였으나 평일의 정력(精力)으로 보아 아직도 믿을 수가 있었는데, 이제 졸서(卒逝)했다는 단자(單子)를 보니 슬픈 마음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졸서한 판부사 이헌구에게 시호를 내리는 법전을 전례에 의거하여 거행하라. 동원 부기(東園副器)1) 1부(部)를 보내어 주고 성복(成服)하는 날 승지를 보내어 치제(致祭)하고 녹봉(祿俸)은 3년 동안 보내어 주도록 하라."하였다.
이헌구는 충민공(忠愍公) 이건명(李健命)의 현손(玄孫)으로 청검(淸儉)함은 세속의 모범이 되기에 넉넉하고 성근(誠勤)함은 일을 주간하기에 충분했는데, 중서(中書)에 있은 시일이 많지 않아서 쌓아온 포부를 끝까지 펴볼 수가 없었다. 나라와 백성의 치란(治亂)에 이르러서는 이를 돌보아 연연하는 마음이 가슴에 서려 있어 왕왕 눈물을 흘릴 때가 있었다. 그의 충근(忠謹)함과 박후(樸厚)함이 그지없이 성실하였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지금까지 칭송(稱頌)하여 중고(中古) 이상의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註 1]동원 부기(東園副器) : 궁궐(宮闕)에서 쓰는 관곽(棺槨)을 만들고 남은 판재(板材).
○辛丑/判府事李憲球卒。 敎曰: "此大臣忠厚之姿, 謹愼之操, 牢確之執, 予所奇毗也, 朝野所想望也。 邇來病患, 雖曰沈綿, 平日精力, 尙有所恃, 今見逝單, 愴畫曷已? 卒判府事李憲球隱卒之典, 依例擧行, 東園副器一部輸送, 成服日, 遣承旨致祭, 祿俸限三年輸送。" 憲球, 忠愍公 健命玄孫, 淸儉足以範俗, 誠勤足以幹事, 而中書之日月不多, 用未能究其底蘊。 至於民國治忽, 眷戀紆結, 往往有泫然時。 蓋其忠謹樸厚, 斷斷無他, 世人之至今誦說者, 若中古以上人。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 국헌(菊軒) 이헌구 선생(李憲球, 1784~1858) *
본관 전주(全州). 자 치서(稚瑞). 호 국헌(菊軒). 시호 충간(忠簡). 1814년(순조 14) 진사가 되고, 181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29년 통정대부에 올랐으며, 1836년(헌종2) 이조참판이 되고 후에 전라도관찰사·병조판서를 지냈다.
1844년 대사헌으로 김유근(金逌根)·김홍근(金弘根)의 추죄(追罪)를 주장하다가 덕원(德源)에 귀양갔다. 그해 풀려나와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조판서를 거쳐 1852년(철종3) 우의정에 오르고 이어 좌의정이 되었다. 이듬해 중추부판사(中樞府判事)에 전직되고 궤장을 하사받았다. 철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완주 봉강서원(鳳岡書院) 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