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시즌 한화 류현진이 자신의 별명 그대로 '괴물'같은 호투를 이어가고 있다. 구위와 성적 모든 면에서 명실상부한 국내 투수 랭킹 1위라는데 이견이 없다. 한국야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투수를 꼽으라면 선동열(현 삼성 감독)과 박찬호(뉴욕 양키스)가 거론된다.
물론 최동원(전 한화코치)와 선동열 가운데 누가 최고냐라는 야구계의 단골 이슈가 있지만 이번 지면에서는 선동열을 골라 박찬호, 류현진을 입체적으로 분석해본다. 올 시즌 류현진과 이들의 전성기 시절을 비교하는 것은 활동한 시대와 리그가 다르기에 무의미한 일이다. 그럼에도 선동열과 박찬호, 그리고 류현진 중 누가 최고의 투수인지를 논하는 일은 야구 팬들 사이에 좋은 안줏감이 아닐 수 없다.
◇선동열과 박찬호의 라이징 패스트볼
공통적으로 선동열과 박찬호는 당대 최고의 구위를 보유하고 있었다. 류현진도 마찬가지다. 특히 직구의 위력은 모두 출중했다. 선동열은 넓은 스트라이드와 상체를 최대한 앞으로 끌고 나오는 역동적인 투구폼을 가졌다.
소위 말하는 릴리즈 포인트가 앞쪽에 형성돼 끝까지 공에 힘이 유지됐다. 2000년 박찬호는 80년대 선동열보다 2~3㎞ 더 빠른 공을 던졌다.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라이징 패스트볼은 선동열에게서도 볼 수 있었지만, 박찬호의 그것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대단했다. 류현진의 경우 직구 평균구속은 145㎞ 정도로 선동열, 박찬호에 뒤진다.
그러나 높은 팔 각도와 안정적인 중심축을 바탕으로 체중을 충분히 실어던진다. 자연히 공도 묵직하다. 여기에 좌완이라는 이점까지 있다. 좌우 코너워크 구사 능력은 류현진이 박찬호보다는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 선동열을 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뒀던 SBS 박노준 해설위원은 "굳이 따진다면 선동열의 직구가 가장 위력이 있었다. 선동열은 박찬호나 류현진보다 팔 각도가 낮아 공이 아래로 깔려들어온다는 느낌을 준다. 타자들의 눈에는 볼이라고 생각하는데 공이 마지막에 솟구치면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다"고 말했다.
◇체인지업과 완급조절은 류현진이 으뜸
선동열하면 명품 슬라이더다. 선동열 슬라이더의 특징은 구속에 있다. 슬라이더는 보통 직구와 10㎞ 이상의 구속차를 보이지만 선동열의 경우 140㎞대에 이를 정도로 빠른 슬라이더를 던졌다. 요즘 많은 투수들이 던지는 커터와 비슷하지만 떨어지는 각은 더 컸다. 뿐만 아니라 선동열은 일반적인 슬라이더도 구사했는데, 다양한 각도를 형성하는 슬라이더를 번갈아 활용해 상대를 현혹시켰다. 손가락이 짧아 포크볼을 던지지 못했던 선동열은 일본 진출 이후에는 우타자 몸쪽으로 떨어지는 역회전볼을 장착해 상당한 효과를 봤다.
박찬호는 슬라이더 대신 낙차큰 커브를 주무기로 썼다. 그러나 2000년 팔의 각도를 조금 낮춰 기존 커브에 좌우로 휘어지는 변화를 가미했는데 일명 '슬러브'라는 새로운 구종이다. 2000년 박찬호는 130㎞ 중반의 슬러브와 커브의 조합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호령했다. 류현진은 체인지업의 달인이다. 특히 써클체인지업에 소질이 있는데 좌투수이다보니 우타자 바깥쪽으로 살짝 떨어지는 궤적을 보인다.
우타자 몸쪽으로 휘는 커브와 슬라이더 등과 조합을 이룰 경우 그 위력이 더해진다. 박찬호도 타자들과의 타이밍 싸움을 위해 체인지업을 던졌는데 역시 슬러브와 짝을 이룰 때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체인지업을 잘못 던져 홈런을 내주는 등 예리한 맛은 류현진에 비해 떨어졌다. 한편 선동열은 체인지업 세대가 아니다. 박 위원은 "선동열은 슬라이더, 박찬호는 슬러브, 류현진은 체인지업으로 대표되지만 제구력은 선동열, 구속은 박찬호, 완급조절은 류현진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