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월 2일 목요일
[(백)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바실리오 성인은 3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 지방 카이사리아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은수 생활을 하기도 한 바실리오는 학문과 덕행에서 뛰어났다. 370년 무렵 카이사리아의 주교가 된 그는 특히 이단 아리우스파에 맞서 싸웠다. 바실리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수도 규칙』은 오늘날까지도 동방 교회의 많은 수도자가 참고하며 따르고 있다. 성인은 379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그레고리오 성인 또한 330년 무렵 바실리오 성인과 같은 지역의 나지안조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료 바실리오를 따라 은수 생활을 하다가 381년 무렵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가 되었다. 그레고리오 주교도 바실리오 주교처럼 교리와 설교에 탁월하여 ‘신학자’라고 불렸다. 성인은 390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말씀의 초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며, 처음부터 들은 것을 간직하여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제1독서). 사람들이 요한에게 누구인지 물었을 때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2-28
사랑하는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4,1-7.11-13)와 복음(마태 23,8-12)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대 바실리오 성인과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카파도키아의 교부로, 우정과 신앙 안에서 어려움과 즐거움을 같이한 평생지기입니다. 바실리오는 당대 최고의 교육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아테네에서 공부한 뒤 수사학 교사로 크게 성공합니다. 세상의 명성에 취하였던 그는, 누이 마크리나의 도움으로 깨우침을 얻고 회심하여 금욕적인 이상에 삶을 바칩니다. 그리고 수도승 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주교로 서임되어 사목자로 하느님과 교회에 봉사하게 됩니다. 이때 이미 생전에 ‘대 바실리오’라 불리며 사람들의 존경을 한껏 받습니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는 바실리오의 영향을 받아 한동안 수도 생활에 자신을 바칩니다. 그러다가 나지안조의 주교였던 아버지의 권유에 못 이겨 사제품을 받습니다. 사제품을 받은 뒤 갑자기 몸을 숨겨 버린 그는 뒷날 자신의 저서 「연설」에서 당시의 심경을 밝힙니다. “우리를 위하여 끝까지 자신을 낮추신 겸손하신 그리스도를 참으로 깨닫지 못한 채, 누가 감히 사제직에 오를 수 있단 말입니까? …… 그리스도와 참된 친교를 맺지 못한 채 누가 감히 사제직에 오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레고리오는 사제나 주교로 봉사하기보다는 은수 생활로 돌아가기를 끊임없이 바라던 성인이었습니다.
힘겨웠던 박해 시기가 지나 신자들과 성직자들에게 신앙의 불꽃이 시들고, 수도승들은 극단적 엄격주의와 영적 엘리트주의로 치닫던 시절에 대 바실리오 성인은 이 모든 것 뒤에 ‘하느님 말씀에 대한 복종의 결핍’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성경 말씀이 수도자들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말과 행실의 토대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혜안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김동희 모세 신부)
참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위해 연기처럼 사라지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함!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종종 교우들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듣게 됩니다. 기분 좋은 내용도 참 많습니다. “새로 부임하신 주임 신부님이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의 판박이입니다. 자상하고 편안하며, 늘 격려하고 칭찬하십니다. 강론도 교우들 눈높이에 맞춰 정성껏 준비하시니, 성당 가는 것이 너무나 행복해졌습니다. 쥐구멍에도 해뜰 날이 있다더니, 언제나 상처투성이였던 우리 본당에도 이런 신부님이 오시다니 꿈만 같습니다.” 듣고 있는 제가 다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그런데 걱정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어디 가면 치유나 예언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분이 계신다. 한번 같이 가보시겠느냐? 많은 환자들이 치유되고 은혜를 입는다. 너무 위험한 것 같아, 조금 알아보니, 우리 교회가 가장 경계하고 우려해야 할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은밀히 홍보를 하고, 사람들을 끌어가고, 교묘히 뭔가를 요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거짓 목자, 거짓 예언자들은 마치 독버섯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잘못 빠져들어 갔다가는 독버섯 먹고 즉사하듯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되니, 언제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크게 돋보이는 인물이 있었으니,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당시 그가 벌인 세례 동은 당시 범국민적인 호응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다른 거짓 예언자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시원시원 거침없었으며 쌍날칼보다 더 날카로웠습니다. 때로 그 칼끝이 부패한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할 때면 사람들은 크게 환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뒤가 구린 지도자들과는 달리 세례자 요한은 아무리 뒷조사를 해봐도 티끌 한 점 구린 구석이 없었습니다. 청렴결백했고 그로 인해 당당했으며 부패한 권력자들 앞에서 꿇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혹시나 세례자 요한이 오시기로 한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등장과 세례를 통한 전 국민적인 정화 운동에 겁을 집어 먹은 유다 최고 의회는 세례자 요한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내 세례자 요한을 취조합니다. 취조 과정에서 놀랄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조사관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당신은 그리스도요?”라고 묻지도 않습니다. 그저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는데, 세례자 요한은 펄쩍 뛰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메시아가 아닐까, 의혹은 품는 것조차 송구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도 꺼내기 전에, 비교 자체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기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라며 서둘러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그리스도, 다시 말해서 자신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향한 종으로서의 충실함과 충직함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을 누구요?”라는 거듭된 질문에 세례자 요한은 겸손하게 자신의 신원을 밝힙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너무나 겸손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 뒤에 오실 메시아의 위엄과 영광에 비하면 자신은 정녕 아무것도 아니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만왕의 왕,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할 때 나란 존재는 그저 허공을 맴돌다 사라지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벌써 모든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다하기 시작합니다. 무대의 진정한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좀 더 각광받고 구세사의 무대 위에 완전히 자리 잡도록 철저하게도 자신을 감춥니다.
선구자로서, 예언자로서, 종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너무나 잘 수행하고 있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거칠지만 소박하고 꾸밈없고 거짓 없는 세례자 요한의 삶 앞에 갖은 겉꾸밈으로 요란한 우리들의 모습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참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위해 연기처럼 사라지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함 앞에 어떻게 해서든 한번 드러내 보이려고, 있어 보이려고 애를 쓰는 우리들의 가식적인 삶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지난 대림 특강 때 예수님의 탄생을, 구약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강사 신부님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이야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신약은 구약 속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 속에서 드러난다.(Novum Testamentum in Vetere latet, Vetus in Novo patet)" 구약과 신약은 서로 독립된 책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중심으로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임을 강조합니다. 아담은 인류의 첫 번째 사람이며, 원죄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아담으로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원죄를 가져온 아담과 구원을 가져오신 예수님의 대조를 통해 하느님이 사랑이 드러납니다. 노아의 방주는 홍수를 통해 악에서 구원받는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세례 성사는 물로 죄를 씻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성사입니다. 방주는 구원을 위한 예표이며, 세례는 그 예표가 성취된 사건임을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르단강에서 세례받으셨습니다. 이때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면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길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에게 높은 자리를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겸손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았고, 그 일을 충실하게 하였습니다.
오늘 독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성서는 우리는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극진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으로 보내셨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톨스토이는 3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이라고 합니다. 지나간 과거 때문에 상처받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잡은 핸들이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듯이, 사람의 몸은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누군가를 위한 삶을, 본인의 영적인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깊이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미워했던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면 좋겠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불평하기보다는 멈추면 비로소 볼 수 있는 것들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영광과 찬미는 하느님께 돌리면 좋겠습니다. 수고와 노력은 나의 몫으로 알면 좋겠습니다. 오늘 나의 말과 행동이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2025년에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면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아닌 이와 더불어>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요한 1,25)
오직 빛만
비추는 것 아니니
빛 스민 이
비록 빛은 아니어도
담은 빛
홀로 가두지 않으며
모든 이에게 아낌없이
건네기 때문입니다
오직 샘만
솟구치는 것 아니니
샘 깃든 이
비록 샘은 아니어도
머금은 샘
홀로 들이키지 않으며
모든 이에게 남김없이
나누기 때문입니다
오직 길만
이끄는 것 아니니
길 부른 이
비록 길은 아니어도
따르는 길
홀로 걷지 않으며
모든 이에게 두렴없이
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그레고리오(Gregory)
신분 : 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지역 : 나지안주스(Nazianzus)
활동연도 : 329/330-389/390년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주교로 45년간 봉직했던 성 그레고리우스(1월 1일)와 성녀 논나(Nonna, 8월 5일)의 아들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나지안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공부하던 중에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를 만났고, 그 후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 수사학교를 다녔으며, 아테네(Athenae)에서도 10여 년을 성 바실리우스(Basilius)와 미래의 황제 율리아누스 배교자와 함께 공부하였다.
30세 때에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즉시 바실리우스와 함께 이리스 강변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 2년 후부터 부친을 돕던 중, 362년에 사제로 서품되고, 372년경에는 사시마의 주교로 임명받았다.
이 교구는 아리우스(Arius) 지역이었으므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교로 축성은 되었으나 부임하지는 못하였다. 발렌스 황제가 죽고 정통교회에 대한 박해가 수그러들게 될 때, 일단의 주교들이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초청하여 아리우스파(Arianism) 지역에서 정통교회의 활성화를 도모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아나스타시아(Anastasia)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하여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이때 그는 아리우스파인 막시무스(Maximus)와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고, 388년에는 새로 입교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의 가르침을 정통교리로 인정하고 아리우스파 지도자를 축출하는 칙서를 발표케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의 임명은 굉장한 파문을 일으켜 381년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까지 열려 문제가 심상치 않게 발전하므로, 그는 교회 내의 평화를 위하여 주교직을 사임하였다. 그는 엄격한 은수생활을 하다가 고향 땅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정통교회의 수호에 큰 공적을 남겼고, 또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선언문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동방교회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성 바실리오(대)(Basil the Great)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또는 바실리오)는 부유하고 이름 있는 그리스도교 집안 출신으로, 교회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문 중의 하나이다.
그의 할머니는 마크리나(Macrina, 1월 14일), 그의 부친은 바실리우스(5월 30일), 그의 모친은 엠멜리아(Emmelia, 5월 30일), 그의 큰 누이는 마크리나(7월 19일), 그리고 두 동생은 니사(Nyssa)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와 세바스테(Sebaste)의 베드로(Petrus, 1월 9일)인데, 모두가 성인품에 오른 분들이다.
그는 카이사레아(Caesarea),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아테네의 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이곳에서 나지안주스(Nazianzus)의 그레고리우스와 깊은 우정을 맺었다.
357년경에 그는 동방의 주요 수도원들을 방문하였으며, 35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의 이리스(Iris) 강변의 안네시에서 은수자로 정착하였다.
바실리우스는 불과 5년 동안을 그의 공동체와 생활했을 뿐인데도 동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와는 달리 법 제정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영향은 정교회 수도생활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주요한 원리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사제로 서품된 후 성 바실리우스는 365년부터 카이사레아(Caesarea) 교구를 위하여 일했고, 370년에는 그곳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는 또 아리우스파(Arianism) 황제인 발렌스(Valens)가 정통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용감히 맞서 싸웠다.
이 때문에 그는 지방 총독 앞에 끌려가서 자신을 변명하여야 했다.
바실리우스의 태도가 너무나 당당하였기 때문에 총독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당신 같은 주교는 일찍이 본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를 보더라도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으며, 그의 강직성 때문에 교황 성 다마수스(Damasus)와 서방 교회간의 관계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병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고, 요양원을 짓거나 혹은 대대적으로 진료사업을 펼쳤으며 설교가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와의 투쟁을 계속하면서 동방 정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발렌스 황제가 전투에서 사망한 지 불과 한 달 만인 1월 1일 카이사레아에서 사망하였다.
바실리우스는 초대 교회의 큰 거인이었다.
비잔틴 제국에서 아리우스파를 몰아낸 것이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Council of Constantinople)에서 아리우스파를 단죄한 배경에는 바실리우스의 영향력이 대단히 컸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가 네오카이사레아에서 제정한 규칙과 조직이 동방 수도생활의 기초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온다.
또한 바실리우스는 성직매매를 완강히 거절하였으며, 가뭄과 한발의 희생자를 대대적으로 원조하였으며, 보다 훌륭한 성직자 양성을 도모하였고, 엄격한 성직자 법규를 주장하고, 과감하게 악습을 끊어버리면서, 카파도키아(Cappadocia)에서 만연된 매춘행위 관계자들을 파문하였다.
그는 유식하고 정치력도 있는 사람이면서 성덕이 뛰어났으며, 그리스도교회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해박한 저서들과 4백여 통의 편지들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성령에 관한 저서와 에우노미우스를 반박하는 세 권의 저서 그리고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와 함께 편집한 “필로칼리아”가 그 중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교회학자이며 동방 수도자의 아버지로 큰 공경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