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6.日. 맑고 따습다가 흐리고 쌀쌀해짐
11월06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아침에는 따스한 햇살에 습도 높은 기온이더니 당진 성당사에 법당 마당에 모여 전 천장사 주지스님, 선일스님, 무구스님, 선광스님 모시고 일요법회 도반님들과 함께 아쉬운 가을을 즐기고 있는데, 하늘에 숨어있던 음흉한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면서 쌀쌀한 기운이 내 등줄기로 슬슬 파고들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집에서 나설 때 겨울 파카와 가을 점퍼를 양손에 들고 한 5초가량 고민을 하다가 오늘은 낮 온도가 20도까지 오른다고 했으니 얼굴도, 종아리도, 양 어깨의 각도도 예쁜 여자 일기예보 리포터 말을 믿어봐야지 하고는 은회색 가을 점퍼를 들고 나왔는데 결과적으로는 아내의 말대로 겨울 파카를 입고 나올 걸 그랬다고 후회를 했습니다. 면역력이 잠시 떨어진 몸이라 그런지 충격이나 추위에도 더 민감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천장암 일요법회에 참석을 못하고 오후에 있는 성당사 모임시간에 맞추어 서울에서 바로 당진으로 내려갔습니다. 지난 주말 지리산 사찰순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주초부터 한 사흘 동안 얼굴과 몸이 붓고 사방 삭신이 조금 아팠습니다. 한 보름 전에 일어난 교통사고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주간 열심히 물리치료를 받은 덕분에 부기는 많이 가라앉았으나 몸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민감해져있는 상태인 듯합니다. 한 보름 전에 정지선 앞에 멈춰 서서 고개를 보조석의 아내 쪽으로 돌린 채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달려오던 차가 추돌사고追突事故을 일으켰습니다. 그 충격으로 운전석에 앉아있던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돌린 상태로 순간 뒤로 젖혀졌고, 아내는 머리 뒤통수를 좌석 머리받이에 쿵 박았습니다. 일단 비상깜빡이를 켜고 차에서 내렸는데, 추돌한 뒤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나를 보자마자 정말 죄송하게 되었다고 고개를 숙여 꾸벅꾸벅 절을 하면서 밀린 납품 때문에 어제 밤에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하고 오늘 일을 나왔는데 순간 졸면서 운전을 하다가 앞차를 들이박은 것은 순전히 자신의 잘못이라면서 몇 차례 사과의 말을 거듭했습니다. 이토록 자신의 과실을 순순히 인정하면서 사과를 하는데 이 상황에서 오히려 내가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일단 보험회사에 연락을 해놓고 인도 가장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독일에 사는 용한 점쟁이 아닌 다음에야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그 일을 해결하고 수습하는 데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일에 대한 결과가 사뭇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냉철한 이성理性과 따뜻한 감성感性이 조화로운 사람이 되도록 교육敎育을 받고, 단련鍛鍊을 하고, 세상을 품 넓게 받아들이는 안목眼目을 키우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보름 동안 그런 정도의 추돌追突 충격으로 몸이 크게 반응을 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답답하고 화랄까 분노랄까 하는 짜증이 내 자신에게 났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유도선수였던 나는 몸으로 부딪치고 뚝심으로 맞서는 일에는 남다른 자신감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자부심은 다 옛날의 추억일 뿐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지만 인정을 하기는 못내 싫었던 모양입니다. 어쩌다가 뜬금없이 당하는 부상이나 사고가 지금 현재의 몸 상태를 알려주지만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돌도 씹어서 삭히는 십대, 이십 대가 아니라 세상의 부탁과 요청을 받아들일 줄도 협력을 구할 줄도 아는 온유하고 지혜로운 나이임을 몸과 마음으로 자각自覺해가는 중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태어나서 거의 일 년가량은 엄마가 보에 받쳐 업고 날마다 병원에 드나들어야 할 만큼 나는 몸이 약했다고 합니다. 장흥에서 살았던 국민학교 3학년 때는 뇌막염에 걸려 한 삼 개월가량을 장흥병원에 입원을 해서 엄마와 아빠의 속을 태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뇌막염이란 병은 무서운 병이어서 비슷한 시기에 입원을 했던 옆 병실 아이는 입원해서 얼마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뇌막염 증상을 살펴보는 일은 간단해서 척추에서 척수를 빼보면 금방 나타납니다. 건강한 사람은 척수가 투명하고 맑은 색깔인데 반해 뇌막염에 걸린 사람은 척수가 쌀뜨물처럼 뿌옇게 변해있습니다. 그런데 척추에서 척수를 빼는 일이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어서 척수를 한 번씩 빼낼 때마다 끔찍하고 두려운 과정을 겪어야했습니다. 퇴원을 하고나서도 병원에 통원치료를 하면서 학교에 다녔는데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오금이나 발뒤축이 아파 와서 장흥교를 건너 오거리 부근 한 구석에 앉아 울고 있으면 엄마나 아빠나 선주임님이 데리러 왔습니다. 그러던 내가 그런 고비를 넘기고 나자 국민학교 6학년 때는 씨름선수를 했고, 중학교 올라가서는 유도선수를 할 만큼 튼튼한 몸을 갖게 되었습니다. 몸이 건강해지고 친구들보다 힘이 훨씬 세진 것은 아마 국민학교 4학년 겨울방학 전후부터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부터 밥이 맛있고 키가 쑥쑥 크기 시작했었거든요. 지금도 키 178cm에 몸무게 82Kg이니 훈련을 해서 근육을 조금만 더 불리면 현역 프로씨름 한라급으로도 뛸만한 체격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설명이 조금 길어졌지만 그런 저런 사정으로 해서 오늘 아침 천장암 일요법회에 참석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참석한 일요법회 도반님들이 주지스님을 모시고 사시마지 기도와 경전독송을 잘 마쳤다고 합니다. 일요법회 도반님들은 오후에 성당사에서 모두 만나 저녁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성당사에 일착으로 도착을 했더니 선광스님께서 법당 앞마당 탁자에 다기와 과일과 분위기 돋아나는 가을빛 예쁜 커피 잔까지 갖추어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투명하고 둥근 수반에는 가을 나뭇잎과 꽃봉오리도 띄워놓았습니다. 갑자기 흐리고 쌀쌀해진 날씨에 따뜻하게 갈아 내린 원두커피가 좋았습니다. 뒤이어 내린 자스민 차도 향과 맛이 강해서 그 향과 맛으로 몸이 좋아했습니다. 이상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앵커맨 밸라거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