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2.火. 맑음
공주 알밤막걸리와 스님 스님 우리 스님.
오래전에 먹어보았던 아이스크림 중에 바밤바라는 상표가 있는데, 기억記憶 저편에 묻혀있는 바로 그 바밤바 맛을 금세 혀가 추억追憶해냈다. 종이컵에 담긴 진하고 노란 막걸리 한 잔을 벌컥 들이마셨더니 달큰하고 시원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옆에 앉아서 같은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던 아내도 “아아, 고소하고 맛있다!” 라고 처음 마셔보는 막걸리의 첫 소감을 말했다. 한 잔의 알밤막걸리에서 옛날의 맛 바밤바를 상기했다는 일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무릎 앞에 놓여있는 하얀 접시에 가득 담긴 골뱅이 무침을 한 젓가락 집어 들고 역시 입안에 넣어보았다. 새큼하고 달큼한 맛에다 씹으면 쫄깃한 골뱅이 무침이 한 잔 막걸리 풍미風味에 파도치는 긴장감을 더해주었다. 우리는 긴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면서 모처럼 일행들과 둘러앉아 한 잔 막걸리로 노고와 피로를 달래주고 있었다. 서로 잔을 채워주면서 서너 잔을 마실 즈음 아내가 나를 쳐다보더니 물어보았다. “당신 감긴데 이렇게 술을 마셔도 되나요?” 나는 컵에 반쯤 남아있는 노란 막걸리를 입안에 털어 넣으면서 말했다. “글쎄, 어제나 그제 저녁에 이렇게 술을 몇 잔 벌컥 마시고 푹 잤더라면 벌써 감기가 떨어졌을 건데 미처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뭐요.” 뚝딱 뚝딱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동안 번개처럼 차려진 술상은 번개처럼 정리가 되고 일행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연鳶날리기 좋은 날이었던 5월9일이 어느새 까만 밤으로 바뀌어 달력의 하얀 배경 속으로 사라져갔다. 내가 오늘밤 꾸는 꿈속에서 5월9일은 연등축제행렬의 현란한 색깔로 되살아나오겠지.
좁은 방안을 비추는 불빛이 대낮보다 더 밝다고 느꼈다. 따뜻한 술기운이 올라와 이불을 덮고 있지 않아도 몸이 훈훈했다. 가끔 캄캄한 마당에서 밝은 방안으로 틈새를 타고 들려오는 새소리와 함께 낭만이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이 되어 절로 사람이 올 리는 없고 아마 산짐승의 발자국소리에 귀 밝은 낭만이가 반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깐만 누워있다 씻으러 간다던 아내는 벽 쪽을 향해 누워있는데 아마 살풋이 잠에 든 것 같았다. 감기로 한 이틀간 몸이 부대끼다 어제 밤에 잠자리에 늦게 드는 바람에 몸만 펼치면 쉬이 잠이 올 줄 알았는데 막상 누워있으려니 몸은 피곤했으나 정신을 말똥거려왔다. 방구석의 자그마한 책상 위에 두어 해 지난 표지 낡은 해인지海印誌가 한 권 놓여있었다. 책장과 목차부터 차근차근 해인지를 들여다보았다. 앞쪽에 해인사 법전스님의 글이 있었다. 글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글의 감각이 현대적이라 아마도 상좌 중의 누군가가 법전스님의 구술을 듣고 쓴 글이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법전스님께서 성철스님께 인가印可를 받고난 뒤 태백산太白山으로 들어가 보림을 했던 대략 10여 년간 때로는 홀로, 때로는 도반들과 수행을 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들로 엮여있었다. 법전스님께서는 대중생활을 할 때면 언제나 자청해서 부목負木 소임을 맡았다고 했다. 스님의 말을 빌리면 스님께서는 나무와 인연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대중 속에서는 평생 땔나무를 장만해와 창고와 담 밑에 나무 쌓아두는 일을 좋아하고 또 많이 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이 부목소임負木所任을 볼 때는 허접한 나무 동강이만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스님이 절을 떠나고 난 뒤 다음으로 부목소임을 보았던 스님들께서 두고두고 땔나무 걱정 없이 잘 사용했었다는 말을 한 것을 가끔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성철스님과의 일화, 일타스님과의 일화 등 우리로서는 감히 만나 뵙기조차 어려웠던 큰 스님들과의 숨은 이야기들이 사소些少하고 평범平凡한 일상적인 투로 쓰여 있어서 글이 재미가 있었다.
“우리끼리만 이렇게 먹으려니 좀 그렇지요. 누가 가서 스님께 말씀이라도 드리고 오면 어떨까요?”
“며칠 동안이나 연등축제관련해서 몸을 무리한대다가 오늘 하루 내내 행사를 거의 혼자서 뛰어다니며 마무리까지 하셨는데 지금쯤 방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있지 않을까요?”
“그야 그렇기도 하겠는데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여기 모여들 있다고 말씀이라도 드리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것도 그럴 것 같네요. 그런데 누가 스님께 말씀드리러 가지요? 이럴 때는 용감한 길상화보살님이 딱 인데 길상화보살님이 마침 여기 안 계시는군요. 그럼 어때요, 백화白樺보살님께서 스님께 말씀드리러 다녀오시겠어요?”
“그러면 좋겠지만 저는 길상화보살님이 아니잖아요. 길상화보살님께서 이 자리에만 계시다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전혀 없는 문제인데...”
“그렇지요. 어쩐지 감感에 주지스님께서 깊고 곤한 잠에 빠져있을 것 같은 느낌이 팍팍 오는 데 말이지요. 스님의 숙면熟眠을 방해하지 말고 그저 우리끼리 조용히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다 기분 좋게 자리를 끝내도록 하지요. 어때요?”
“거참, 좋은 생각이십니다.”
“매우 훌륭하신 판단입니다.”
“암만요. 방에서 편히 쉬고 계시는 스님 몫까지 우리가 열심히 먹읍시다.”
(- 공주 알밤막걸리와 스님 스님 우리 스님. -)
첫댓글 ㅋㅋ 에고 맛있는 막걸리 ,
스님께 드리기 싫으셨구만요.
그맘 다~ 알아요.
메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