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의 토속주 불술[火酒]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강원도 삼척에만 존재하는 불[火]로 빚은 술[酒], 불술[火酒]이다. 불술은 밑술과 덧술로 빚은 이양주이다. 밑술은 왕겨를 피워 발효시킨 후 잘 달이고 걸러서 붉은 빛이 나는 감주를 만들고, 그 감주에다 다시 덧술을 자루에 넣어 삭힌다. 불술은 밑술을 만들 때 왕겨로 불을 피우니 불로 만든 술이기에 불술[火酒]이라 하고, 감주가 된 밑술에 덧술을 또 담갔으니, 그 술맛이 감미롭고 짜릿하며 진황색 고운 빛깔에 눈이 즐겁고 짜릿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불[火]의 기[氣], 술향[酒香]이 좋다. 불술의 시원지 삼척시 노곡면 중마읍리를 찾아 불술 기능계승자로 유일한 이화자 [73] 어르신을 인터뷰 하였다. 글머리에 불술의 엑기스를 싣고, 그다음에 인터뷰 내용을 싣는다.
불술의 시원지는 삼척시 노곡면 중마읍리 안가[安家]네 맏며느리 이화자[73] 어른이다. 이화자 어르신은 19살에 말[말씀]을 떼서 20살에 시집와 시할아버지가 아니고 시할머니로부터 가양주를 전수 받아 빚어온 불술이다. 시할머니는 본인의 시어머니로부터 불술 빚는 것을 배웠다 하니, 그 위는 물어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대대로 가문에서 빚어온 술인 것만은 확실하다. 시집 왔을 때에는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아홉자매와 3대가 한지붕 아래에서 15명 대식구가 살았다. 시할아버지는 장주[長酒] 하였고, 시아버지도 술을 좋아 했고, 남편도 술을 좋아했다. 시할아버지가 장주를 하여서 맨날 술을 걸렀다. 술을 걸으고 3대의 대식구의 셋끼 밥하는것, 그게 하루의 일이였다.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에는 일주일에 2번정도 술을 빚었다. 웃 어른들이 돌아 가신후에는 설날이나 추석 때 그리고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술을 빚어왔다.
이화자 어르신은 가양주 불술은 가족끼리, 더러는 동네분들과 함께 즐기며 마시던 술이라고 했다. 삼척 중마읍리에서 유일했던 비주[秘酒], 불술[火酒]이 어느날 여러사람에게 공판되고, 또 전통주 전문가에 의해 책으로 전국에 그 소문이 퍼지게 된다. 대중 앞에 나타난 불의 술, 불술[火酒]이 대중 앞에 선 보인 해는 1998년 5월이였다. 그 해에 노곡면으로 부임한 이용선 면장은 수려한 고향의 산천이지만 공장 하나 없는 낙후한 산촌 노곡면의 발전을 모색하다가 지역 특산품인 불술을 선정했다. 전승자 이화자 어르신과 MOU를 체결하고, 불술을 상품화 했다. 노곡면복지회관을 '월산쉼터식당'으로 개조하여 개점, 불술 시음장과 불술과 칡요리 전문점으로 명소화 했다. 노곡면 일대 산야에 흐드러진 칡 녹말요리를 특산품으로 개발, 불술 안주로 대 힛트였다. 그렇게 불술은 대중 앞에서 불[火]의 주기[酒氣]를 뻗혔다.
불술, 불[火]의 주기[酒氣]는 뻗혀서 전통주 연구가 박록담[朴碌潭] 선생이 펴낸『명가명주名家銘酒』[효일문화사,1999발행]에 한국의 전통.토속주101선에 선정 되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1998년 11월에 당시 농림부로부터 전통 민속주로 추천을 받았고, 1999년 3월에 불술제조면허 신청서를 제출하여 그해 12월에 중부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주류[불술]제조면허 승인을 받았다.
그 후 이화자 어르신이 생산하는 불술은 전량 월산쉼터식당에 독점 공급함으로서 희소가치를 높였고, 면 전역에서 생산되는 칡녹말은 전량 노곡면 개발위원회에서 구매함으로서 주민 소득증대와 식당 고용 창출에 기여 했다. 그러나 불술제조 면허 후 1년 이내에 공사에 착수하여 3년 이내에 불술제조장 기준시설을 갖추어야 하는데 자금사정으로 이를 준수하지 못했고, 또 기능보유자 이화자 어르신이 몸이 아파서 불술을 더 빚을 수 없어 2002년부터 불술생산이 전면 중단 되었다. 다행히 삼척전통주연구회 박병준 회장이 불술을 재현해 불술축제를 열면서, 삼척만의 고유한 토속주 불술은 불[火]의 주기[酒氣]는 뻗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금은 전통주 막걸리 전성시대이다.
삼척불술의 전승주체는 기능보유자 이화자(73) 어르신과 남편 안창용(75) 내외이다. 시할머니에게 술 빚는 법을 배웠는데, 시댁은 안동에서 살다가 시할아버지 대에 삼척시 노곡면 중마읍리로 이사해 정착했다. 삼척불술 내용은 이양주인데 왕겨로 마치 죽력을 만들 듯이 2-3일 훈증하여 내리는 독특한 술이다. 누룩, 엿기름, 멥쌀, 식은 밥, 물, 밤, 대추 등이 들어간다. 쌀은 직접 농사지은 것을 사용하며 누룩은 통밀을 이용해 직접 만들었다. 통밀을 깨끗이 씻은 뒤에 절구나 맷돌로 갈아 밀가루는 빼서 먹고, 밀기울만을 써서 딛었다. 누룩은 방 아랫목에 띄웠다. 항아리, 자루, 시루, 체, 쳇다리 등을 빚는 도구로 사용했다. 이 술은 제조할 때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밑술을 담아 항아리 째 불을 지펴 삭힌다는 점이다. 둘째, 밑술을 담을 때 식은 밥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셋째, 밑술에 담는 덧술용 재료는 자루에 담아 밑술 안에 넣는다는 것이다. 주로 어른들 접대용과 제수용으로 빚었다. 안주는 칡전병과, 고사리 잡채 등이 어울린다.
삼척불술 제조방법은 ①누룩 1되, 엿기름 1되, 식은 밥 6되(맵쌀 3되 분량), 물 5되로 고루 비벼 밑술을 담는다. 밥물 잡듯이 물을 잡는다. ②짚불을 이용하여 발효시킨다. 짚불이 술단지의 목 아래 높이까지 올라오게 불을 놓아 술밥을 삭힌다. ③밥알이 삭아 가라앉고, 붉은 빛이 돌기 시작하여 술이 괴면 불을 그만 떼고 항아리를 식혀 체나 명주자루로 술지게미를 걸러낸다. ④밑술을 왕겨불로 2시간 30분 정도 달이면 충분히 삭는다. ⑤ 밑술이 완성될 즈음에 덧술 빚을 멥쌀 2되 분량의 고두밥을 찐다. ⑥누룩가루 2되, 엿기름 5홉, 차게 식힌 고두밥을 잘 섞어 자루에 담아 밑술이 담긴 술독에 담는다, ⑦술자루에 밤과 대추를 2홉 정도 넣어주면 술맛이 좋아진다. ⑧하루가 지나면 끓기 시작하여 3일째 되면 고두밥이 삭으면서 술자루가 푹 가라앉는다. ⑨술자루만 들어내고 떠 마시면 된다. 옥수수를 이용할 때는 옥수수를 갈아서 되직하게 죽을 쑤어서 사용했다.
[불술 기능보유자 이화자[73세] 어르신 인터뷰]
막걸리를 만드는 명인·전수자를 찾아서 인터뷰, 자료를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 시대가 지나 가면 그런 역사가 없어지니까요. 예, 작년에 두분이 왔다 갔습니다. 아,예, 어르신이 노곡면 월산쉼터식당에 불술을 댈 때 그것을 추진한 이용선 면장님 하고는 지인인데, 이화자 어르신 얘기를 많이 했어요. 자료를 다 받아가지고 노곡면 특화사업으로 개발하여 몇 년 하다가 어르신이 몸이 아파서 불술을 빚지 못하니 월산쉼터식당에서 불술 판매를 접었지요. 어르신 대에서 불술이 끊어질까봐 그래 가지고 그 자료를 삼척전통주연구회 박병준 회장에게 넘겼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기에서 다시 불술을 만들었습니다. 박병준 회장은 어르신한테서 전수받은 것도 있고, 어르신이 전수해 준 이종사촌 김씨 어르신에게서 한 번 거쳐 간 겁니다. 불술은 실제 이화자 어르신이 시할머니로부터 전수받아 직접 했는거 아닙니까. 이제 삼척불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남기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술을 여기서 만들었는지? 또, 어르신 남편 되시는 어르신은 술을 좋아했는지? 시아버지가, 시할아버지가 좋아 했는지? 술을 빚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 합니다. 부탁을 드립니다.
사실 누구인가는 삼척불술에 대하여 그 술을 빚어온 내력과 빚은 이의 애로와 즐거움 등을 기록을 남기면 앞으로 영원히 불술의 역사로 남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어르신 만남이 절실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는 어르신 남편되시는 어르신이 부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신경을 쓰면 병이 악화될가봐 그 누구도 만남을 차단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작업을 하기 위해서 못만나드라도 마지막으로 한번 잠깐이라도 인터뷰하려 했는데 안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요, 어르신이 몸이 아프지만 많이 아프지 않으면 만나 불술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어서, 그래서 그래도 얘기는 해 보자 하여 시동생되는 안창남 사장한테 얘기를 했더니, 며칠후 마읍학교 총동문회를 하는 데 "형수님 한테 이야기 할께요 와서 만나보세요" 이러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내치지 않고 반갑게 맞아줘셔 고맙습니다.
노곡면에서 우리가 만든 불술을 받아가지고 잘 나갔어요. 여기서 1병에 3천원 가지고 가서 월산쉼터에서는 5천을 받았어요. 술 빚는 작업이라는게 신경을 많이 써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머리가 잘 못 돼가지고 쓰러 졌다고요, 신경 너무 써가지고 스러저서 병원으로 실려가 대수술 받았어요. 노곡면에서 많이 밀어 줬는데 몸이 마음대로 안되니 어떻게 합니까, 너무 미안해서, 또 많이 밀어 줬는데, 불술 그거 우리 한국에서 여기 밖에 없는 전통주 잖아요.
그래 막 못하게 되니까, 불술을 빚는데는 무거운 것도 다 들어야 하잖아요. 힘이 있어야지 한번에 다 내려났어요. 그래 가지고 술빚는 것 그만 뒀어요, 그만두지 않으면 허리 디스크 많이 더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저 실버카를 밀고 이웃집에 다녀오곤 합니다. 그때의 불술병이 하나 있는 데 이따가 보여드릴께요.
"이화자 어르신 고향는 어디세요?" "난 도기[도계] 하고사리 상기라는 산골짝이 개울가가 고향이와" "상기골짝이는 샘물이 아주 좋고 개울에는 뚜구리가 아주 많고, 물이 아주 좋은 곳이야요" "그 안에 들어 가면 굴도 있고. 그 숲속에는 이쁜 산꽃이 많았사요" 거기가 어디인가 하면 무건리 이끼폭포가는 골이 하고사리 상기골이다.
상기가 자란 곳이고 친정이네요, 그러면 불술은 처녀 때는 집에서 안 만들었겠네요? 안만들었어요, 여기와서, 여기 오니까 우리 시할아버지가 장주하시고, 술로 계속 장주하시고, 우리 시할머니가 술 담갔구, 나는 층층시하에 시집 왔지요. 시어니가 둘에다가, 시아버지 하나 또 할머니 할아버지, 식구가 15명이었니까, 네 그래 한집에 살았어요. 그래 맨날 술을 걸렀지, 걸러서 할아버지가 술을 장주하시니까, 그래 시아버지가 술을 잡쉈지, 날마다 술을 거르고, 매일 그게 일이 됐어요. 그때는 불을 뙈서,나무로 불을 피워서 밥을 햇사요.
그렇죠, 시집 와서 할머니가 술 담그는 걸 보고, 시어머니는 술빚는데 관심이 없어서 보지도 않아사요. 술은 할머니가 다 하시더라고요. 할머니한테 시할머니로부터 불술을 만드는 걸 배웠죠. 그래 가지고 금방 밥을 해가지고 또 시부 줘가지고 밤에 식혀서 그 이튿날에 또 술 담아요. 그러니까 계속 먹을라니까 계속 담가요. 술단지 하나 비움 또 하나 담그고, 하나 비움 하나 담그고 그랬사요.그래 지금은 뭐 세월이 좋아져서, 전기로 가스로 밥도 하고 술도 하니까 쉬운 데, 그때는 다 불 뙈야하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는 좀 어려웠지요, 시집와서 고생도 많이 했어요. 화수[火水] 만나가지고 고생 많았사요, 대홍수에 또 불이 나가지고 집이 다 타버렷사요, 그런데다 또 대홍수가 나가지고 집이 없어 고생 고생 했지요. 집을 짓느라고 고생 했지, 지금 살고 있는 집 지은지는 10년 되고요, 집 탄터는 이 집 옆이야요. 저기 옛날 집에서 시할아버지랑 열다섯 식구가 거기서 사셨네요? 그럼요 거기서 사시다가 거기서 다 돌아가셨사요.
그럼 시할아버지는 몇 대 언제부터 여기 와서 터 잡고 살았어요? 내가 시집 오니까 여기 이사온지 15년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15년이니까네 내가 지금 칠십 넘었잖아요 그러니까 70여 년이 되요.
어르신은 몇 살에 결혼 하셨어요? 19살 집안간에 말[말씀]을 떼가지고 20살 정월달에 시집 왔어요. 50년이 됐네요, 그렇지요, 50년이 좀 넘었지요, 산다는 게 뭐 매련없었사요. 말 하자면 부엌떼기, 그때는 맨날 저 큰 고랑에서 물을 날랐사요. 지금은 다리를 놓아 가지고 좀 가깝지만 그전에는 다리가 없었어요. 나무 다리 있잖아요 똑다리 그런 거 있었사요.
그러면 할아버지 하고는 어떻게 결혼 했어요? 옆에 계시는 남편 어르신네하고요? 중매를 했어요. 중매를 했어요? 예 그전에는 어른들이 또 뭐 선보고 이런게 없었잖아요. 우리들은 그냥 만났지 뭐야. 우리 친정 어머니가 거기도 물이 있고, 여기도 물이 있고, 그래도 개울가에서 나고 자라고 또 개울가로 시집가니 물 걱정은 없겠다 하였어요. 그래 뭐 친정에서 자랄 때에는 정작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 가지고, 내가 6살 먹어서 돌아가셨는데 군대가서 전사 하셨어요, 이렇게 됐지 뭐.
그러면은 도계 상기골에 살적에 형제자매는 몇이 었어요? 세 오누인데 이제 다 죽고 내 혼자 남았어요. 그러면 세 오누이의 맏딸요? 딸 둘 아들 하나인데, 아들 하나는 오빠였어요? 아 내가 맏이, 남 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 아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진짜 고생하셨겠다 어르신요? 어머니도 고생하시고요,,, 어머니가 많이 고생하셧지요, 어머니는 26살에 혼자됐지 뭐, 아이고 그래 가지고 시집 못가고 우리 셋 키웠어요. 어머니도 그새 돌아가셨어요. 지금 나 하나 만 남았어요.
동생들도 일찍 돌아가셨네요? 뭐, 지금은 암이라지만 그 전에는 암을 몰라가지고 암을 키워가지고 둘이다 그랬어요. 또 혈압도 높으고 나도 괜찮았는디 작년부터 허리가 그래요. 이 앞에 땅 농사 짓고 먹고 이랬는데 어느 한 날 허리가 무너져가지고, 일하는 아줌마가 고마 이래 댔잖아요. 그래도 많이 좋아지셨네요. 많이 좋아졌어요. 강릉아산병원에 가서 두달 있었는데요. 수술은 안하시고? 머리 수술 안하시고? 머리 수술은 안된대요. 아이들 다 키워 놓고 편할라 하니 이렇게 됐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걸을수 있으니 많이 좋아요.
어르신 남편 형제분은요? 형제가 9남매, 아 그렇구나, 그럼 남편 분이 맏이 입니까? 9남매이고, 그러면 또 어르신네 자녀분은 몇이에요? 5남매, 딸 하나 아들 넷, 4남 1녀네요, 보기 많으십니다. 그럼 처음에 시집 와 가지고 시할머니가 불술 담그는 거를 보면서 시할머니가 못 하실 때는 어르신이 다 했겠네요? 그럼요, 내가 다 만지고 이러니까 또 할머니가 그때 할아버지가 술 좋아하고, 애들 아버지가 술 좋아하고, 그럼 뭐 두 분이 다 술을 좋아했기에 일주일에 한 두 서너번 술을 담가야 했나요? 두번 하때도 있고 세 번 담갔아요. 그러니까 하나는 술이 내일 모레 떨어질 때 되면 미리 담가 가지고 내놨어요. 예전에 어른들 계실 적에 말이 아니죠, 힘 들었사요. 이웃집들도 와서 먹을 때도 있잖아요. 술이 있는 줄 알고, 어떤 분은 오면 약주 잡숴 놓으면 안가시잖아요, 시골에 집이 뜨문 뜨문 있으니까 그렇게 살았지요.
어르신이 불술 하는 거 어느 책에 보니까요, 전통주 전문가 박록담 선생이 책을 낸걸 봤어요, 그때 삼척에 중마읍리에 불술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전국 어디에도 없고 삼척에만 있다는 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불술은 마읍리에서 여러집이 술을 담갔습니까? 마읍리에서 어르신네 말고 다른집에서도 불술을 빚은 것 같은데요? 불술은 우리집에서만 했어요, 우리 외사촌 언니가 상마읍에 있었는데, 그래 내가 아파 가지고 못한다 하니까 그 언니가 불술 담그는 것을 가르처 달라해서 가르처 줬는데, 또 그러 오래가지는 못해 돌아가셨어요.
노곡면에서 월산쉼터식당을 운영할 때 거기서 친구들과 그 불술을 먹고 술이 취해가지고 삼척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술이 완전히 독하더라고요, 그때 그 술은 이화자 어르신이 정식으로 빚은 술이 잖아요, 독하지요, 막걸리처럼 잡수면 금방 취해요, 도수가 막걸리 보다 2~3배 높아요, 근데 그거 잡숩고도 골이 안 아프다 이래 가지고 많이 받아 가더라고요. 그 술이 하여튼 맛이 좋았습니다.
술맛이 그전하고 요즘하고 맛이 틀려요, 그건 설 때렸지요, 잘 때려가지고 잘 식혀가지고 술을 담가야 싱겁지도 안하고 맛나요. 오늘 저녁에 걸러 놓으면 낼 아침이면 감자 가루처럼 금방 가라 앉아요. 가라앉은 찌거기는 안들어가요. 식은 밥을 넣는다는 것은 양이 한정 돼 있는데 식힌 꼬두밥이지요. 여기는 뭐 농사가 잘 되니까, 불술은 입쌀로, 보리쌀로? 보리쌀하고 입쌀을 섞어서 하고요, 가을철은 옥수수가 나잖아요, 찰옥수수로 담궈요. 찰옥수수가 찰기가 많아가지고 아주 끈이 좋아요. 보리쌀 하고 입쌀 하고 섞어서 그럴 때도 있고, 쌀이 없으니까 가을이되면 옥수수술을 해요. 옥수수수 싹을 내어가지고 옥수수 쌀을 만들어서 쪄가지고 술을 해 놓으면 카랑카랑 맑은기가 좋아요, 밑에 불순물은 깔아앉고 위에 맑은 것만 하루 밤 재워 놓으면 맛이 또 틀려요.
그럼 오늘 술을 담궈가지고 며칠 만에 술을 먹는 거예요? 하루 묵으면 돼요, 아, 그렇게 빨리 먹네요. 왜냐 하면 그 술은 오래 놔두면 엿질금이 들어가지고 시과저요. 아 그렇구나, 엿질금이 들어 가서,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었잖아요. 그런데 빨리 잡숩지 않아도 대요. 만드는 과정에서 오래 놔두면 쉬어 진다 이거지요. 걸쭉해지는게 오래두면 끓어 가지고 그러니까요. 엿질금이 많이 들어 가요. 밥 한 되하면 엿지금이 반되 들어요.
그래 가지고 빨리 술이 되네요. 엿질금이 많이 들어가니 술이 맑아요. 또 보리술 할 때는 엿질금을 조금 더 넣어야 해요, 엿질금을 보리쌀 1되면 엿질금을 반되 더 넣어야 해요. 왜냐 하면 쌀이 아니고, 보리 밥도 해놓고 그 이튿날 보면 씨꺼멓잖아요, 그래서 그래요. 네 맞아요, 똑같아요, 엿질금이 들어 가면 달고 맛있겠어요. 맛있어요, 그게 좀 쌀로 해 놓으면 술이요 반짝 반짝해요, 이뻐요, 윤기가 나는 거니까 이뻐요, 아 그러면 술 못 먹던 사람도 먹어보자 하고 그랬어요. 난 술 못마셔요, 술은 담그시면서 술을 못마셔요? 네 못마셔요.하하하.
여기 집터가 아주 좋네요, 앞이 텃밭이고, 그 옆이 마읍천 강이고 그 건너편 들 옆에 앞 산이 아주 좋네요,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아주 환상적일 것 같아요, 그래 참 좋습니다. 이 넓은 텃밭에 저 많은 배추는 어르신네 밭이에요? 우리 밭인데 아프니까 농사를 못해요, 3,300평인데 배추장사에게 임대를 줬어요, 임대료 평당 1,000원이니 300만원 받는데 이 양반들이 두 번 먹으니까 괜 찮지요. 그 전에는 옥수수 잘돼요. 밭이 좋아서 농사가 잘 되는데, 옥수수 맛있다고 택배로 부치라고, 난리지 뭐, 하루에 50박스 100박스 이래 붙였어요. 그런데 고마 허리가 아파서 딱 누우니까, 일 하던 사람이 일을 못하니 힘들어요. 자꾸만 곡식이나 술 빚는 것 만지고 싶고 또 하고 싶은데, 마음은 훤 한데 몸이 말을 안따라 주잖아요.
몸이 안그랬으면 벌써 저 밭에 불술공장이 들어 있었을 거예요. 그때 막 삼척시에서 여기다가 그 불술공장을 지으려 했아요. 몸이 안 좋아 가지고, 병원에서 살다 보니까 건강이 제일이더라고요, 몸이 건강 해야 하니까요. 그렇습니다. 옛말에 천금 있음 뭐 하겠습니까? 몸이 건강하셔야 합니다. 많이 좋아 지셨으니, 앞으로 더 건강하시겠지요.
여기서 뭐, 우리 할아버지가 술을 너무 잡숴가지고 고생 많이 했어요. 뭐 시아버지 하고 저기 시할아버지가 잡순 술이 쌀로 치면 1년에 참 많지요. 열가마 되겠네요.하하하. 옆에서 이화자 어른의 남편 안창용 어르신이 말을 거든다. 나도 아버지 닮아 가지고 술을 원칸 좋아해가 지고 나도참 많이 먹었지요. 뭐 그래도 치아는 좋았는데, 이가 한개도 벌레 안먹고 그래요. 술은 많이 먹으면 탈 난다니까요. 탈 안 나는게 잘 못이지 뭘, 그럼 쌀, 보리 쌀로 계산하면 일년에 한 5~6 가마 되겠습니다. 이틀에 그니까 3일에 한 번 정도 술 담가야 하잖아요.
매주 3~4일에 술을 뭐 보리술이던 오수수술이던 담그니까요. 그러면 술을 담가야 하는 데, 쌀이 떨어 지잖아요. 어떻게 우리 시어머니가 보리 시퍼러운 걸 베가지고, 옛날에 뭐 그거 가지고 술을 담궜어요.한 번 담굴 적에 보리 쌀로 치면 한 되 정도 담궈요? 두 되, 보리쌀 두 되에 다가 일절 안 사잖아요. 보리쌀 두 되면 누룩 한되를 넣어야 겠네요?
맞아요, 보리쌀 한 되에 누룩 반 되라니까요. 고다음 엿질금을 넣어야 하잖아요? 엿질금은 보리 많이 하니까, 두 되면 한 되 조금 더 넣고, 누룩 반 되 넣고, 하이고 그렇게 잡곡일 수록 저게 뭐나 누룩이나 엿질금이 더 들어 가지요. 쌀 보다는 보리쌀 삶아 가지고 싹 씻어야 해요, 씨쳐서 아주 깨끗하게 씻어 가지고 찐득찐득한게 호호로 하게 해가지고 그래야 술이 맑지요. 그대로 담가 놓으면 걸쭉하니, 지금도 뭐 술을 백번 백번씩 씻는다고 하잖아요. 잘 씻을 수록 좋다는 소리예요, 그래요.
삼척전통주연구회 박병준 회장이 불술을 만들어 가지고 도계 심포리 하이원추추파크에서 1년에 한번식 불술축제를 해요. 불술은 시음만 하고, 박병준술이야기 가게에서는 귀리술과 토속 메밀전을 팝니다. 어떠하던 이화자 어른이 전승해 오던 불술이 몸이 아파 빚을수 없어 사라질 번한 것을 박병준 회장이 전승하니 고맙지요.
불술 있잖아요. 도구 넣고 가스에 이런 드럼통 넣고, 그 다음에 짚, 쌀겨를 넣고, 그런 식으로 이제 그게 어렵지 않아요. 이 쪽 뭐 그 전에 보니까네 우리 시아버지가 뭐 한 4포대 5포대 가지고 쌀겨,왕겨를 가지고 그게 뭐 삭히는 술이 금방 된다고? 금방은 안되지요.
박병준 회장이 기록 해 놓은 거 보니까 아까 말한 어르신이 불술을 전수한 김씨 언니가 그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그 사람 이 술을 좋아하고, 그 다음에 저 언덕 앞에 오가피집 공장 그 사람이 자기 혼자서 해가지고, 어떻게 뭐 알려지진 않았어요. 자기 혼자서 어디 배워 가지고 했겠죠. 사진이 잘 나왔습니다. 나 원래 사진이 잘 안 나와요.요이화자 어르신이 빚던 전통주 불술은 안가네 가문의 술이고, 삼척 고유의 전통술로 한국의 독특한 토속주이니까 대단한 것 입니다.
첫댓글 민속 가양주 내용 모두 옥석이지만 깊게 접하는 구절이 읽음을 가끔 멈추게 하여 인간의 자취를 돌아보게 합니다. 1회 땐 위안부의 효시가 된 '처녀공출' 이야기. 그리고 2회 땐 물 흔한 곳이라 시집왔다는 할머니 말씀입니다. 모든 생활물자가 궁핍했던 시절. 남자는 너른 땅과 땔감이 풍족한 임산지를 선호했고, 물 묻은 손이 마르지 않는 여성들은 물 흔항 곳을 선호했지요. 잘 읽었습니다.
정독 고맙습니다. 나중에 소가 짚신 신고 가는 긴 행열이 나옵니다.
오늘 저녁 345회 두타시낭송과 행담 스님 2시집 *성자의 메타포* 出記가 삼척관광호텔에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