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인력 사무소를 빠져나와 5 분 가량 부두길을 따라 내려가면 갯배 선착장이 나온다. 하지만 가는 길은 결코 깨끗하거나 쾌적하지 못했다. 길가에 수백마리의 고기를 바닥에 늘어 놓고 할복을 하는 아줌마들이 있나 하면, 그물을 손질하며 그물에 걸린 잡어를 챙겨 놓는 아줌마들도 있었다. 또한 부두길이라고 주욱 늘어서서 대 놓은 수은등 달린 어선들이 수십척 늘어서 있고, 그 위에서 해적 놀이라도 즐기고 있는 시커먼 땟국이 질질 흐르는 꼬마들도 여럿 보였다.
노학동에서 본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보리 익어가는 풍경에서 순식간에 비린내나는 부둣가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농촌이면서도 어촌, 그러면서도 동시에 설악산이 있는 산촌이며 또한 외지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관광도시이기까지 한 속초였다. 김 순경이야 이러한 모습에 별다른 감흥을 가지지 않았으나 조 순경은 이 특이한 환경이 청호동 사람들에게 이러한 기질을 부여한 게 아닌가 생각하였다. 모든 것이 나누어져 있는 느낌 때문에 청호동 사람들은 더더욱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발 조심 해.”
김 순경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던 조 순경은 김 순경의 경고에 발 밑을 내려다보았는데 누가 토해놓은 구토물이 둥그런 모양이 되어 있었다. 이런 곳에서 고기를 다듬나 생각하니 식욕이 싹 사라지는 터였다.
“뭔 동네가 이렇게 지저분해요?” “바닷가 동네가 다 그렇지 뭐. 범열이 너 어디 출신이랬지?” “저야 태백이죠.” “태백 촌놈이 속초까지 오고 출세했네.” “태백도 시거든요.” “고등학생 노무 새끼들이 맨날 패싸움하는 동네가 무슨… 자고로 미개한 문명에서 폭력적 성향이 두드러지는거 몰라?”
설득력 있는 소린가 싶은 말이었으나 그래도 대학물 먹은 조 순경은 어느 정도 납득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 속에서 대충 몽테스키외의 문명진화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개한 문명에서 폭력이 두드러진다고 하더라도 선진문명에서 폭력이 근절되어 있다는 건 납득할 수 없었다. 더욱 거대한 폭력이 은밀히 내재되어 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차별, 자본 공격 그리고 각종 부조리한 규제들…
그런 것에서 저항해보겠다고 노력했던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힘없는 약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결국 가장 미개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선진 사회에서 약자에게는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 시위, 출판의 자유는 반사회적 행위로 낙인 찍히기 일쑤였고, 그 것마저 빼앗기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 뿐이었다. 데모.... 민주주의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가 어쩌다가 학생폭력시위운동으로 비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요즘같아서는 정치판에 뛰어들기 위한 사회적 통과의례같아 보이기도 하다. 시위를 이끌어나가 여당에 대항하면 둘 중 하나로 비치게 된다. 하나는 빨갱이, 나머지 하나는 민주화 투사.
하지만 정작 민주화가 뭔지도 모르는 노인네들에게 데모하는 학생들은 부모 등골 빨아서 빨갱이 짓 하는 놈들에 지나지 않겠지. 사실이 그러했다. 다중이 되어 힘을 얻게 되면 아무리 순수한 의도로 모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힘에 휘둘리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나만 나쁜 놈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폭력적인 기질이 발동하는 것이다.
조 순경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이 했던 데모들을 떠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학생 운동 중에 자동차 유리를 몇 개나 부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처벌은 받지 않았으나, 그 행위 중에 쾌감을 느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다중이 되면 죄책감조차도 옅어졌기에 무슨 행동을 하든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학생 시절 조순경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사건이 있었다.
동X대학교 사거리에서 집회를 하고 있을 때.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적이 있었다. 그 때 앰뷸런스가 지나가다 시위대에 막혀 진행하지 못하자 앰뷸런스는 사이렌을 울리며 시위대 사이를 파고 들어가려 하였으나, 그 누구도 비켜주지 않았다. 오히려 비켜주지 말라며 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 이 장벽은 ‘우리들의 의지’였기 때문이었다.
앰뷸런스는 여전히 앵앵거렸고, 결국 앰뷸런스는 과격해진 시위대들에게 둘러 싸여 쇠파이프로 이곳 저곳 두들겨 맞았다. 그나마 마지막 인정이 있어서 유리창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기에 겨우 겨우 시위대 사이에서 빠져나온 병원차는 먼길을 돌아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시위대는 그 것을 승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승리감도 다중 안에서 희석되어 사라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조 순경은 그 이후로 데모에 참가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안에 탄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이라는 상상을 하기 시작하면서, 다중의 폭력적 성향에 대해 불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왜 데모에 참가하는지도 모르고, 옆 사람이 하니까 이쁜 여자애가 그 걸 하고 있으니까. 같은 하찮은 이유로 길거리에 나 앉은 학생들 사이에서 그날 집회가 어떠한 이유로 이루어졌는지 듣게 되자 더더욱 한심해졌다. 시위를 해대는 무슨무슨 협회의 회장이 지명수배를 받고 동X대학교로 피신을 왔는데 그 사람을 경찰에게 내어주지 않기 위해 시위를 했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농성을 벌인 거였고, 그래서 죽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의 생명을 위협했던 것이었다.
그 사건 때문에 조 순경이 경찰이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건 때문에 대학을 그만두고 군대를 오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전경에 차출되어 이렇게 말뚝박고 경찰 생활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 공부만 해서 모르겠네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그 순간을 넘긴 조 순경은 앞으로 김 순경이 무엇을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일단 정리를 하자면 누구 병문안을 간다고 했다. 사안은 한시를 다투고 있는데 느긋하게 병문안을 간다는 건 아무래도 거짓말인 듯 했다.
“형님, 정말 병문안 가는 거 아니죠?” “미쳤냐? 내가 남의 집 여편네까지 챙겨야겠냐?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잖아. 없어진 놈이 범인이라고 찍어놨으니 조사하러가는 거야.” “같은 동네 사람인데도 그래도 돼요?” “원래는 안되는데 말이야. 만약에…. 아주 만약에…. 너희 부모님이 살인을 했으면 넌 어떻게 하겠냐?” “저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인데 어쩌겠습니까? 숨겨드려야지요.” “그렇지? 그래. 그게 맞지. 하지만 부모님이 수십년에 걸쳐서 열명 넘게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할래?” “………….”
조 순경은 대답할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질문이 너무 디테일해서 마치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듯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 때 조 순경의 머릿속에 방금전의 기억이 떠 올랐다. 오늘 낮에 회의장에서 김 순경과 서장과의 말다툼이었다. 지난 10년간 14 명의 아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혹시 설마….” “그래, 내가 왜 경찰질 하는지 모르지?” “그야 말 안해줬으니까요.” “지난 10 년간 사라진 아이가 14 명이라고 서장이 말했잖아? 그럼 20 년동안에는? 30년 동안에는? 상상도 못할 거야. 그리고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 바로 저 너머다.”
김 순경은 어느새 갯배 선착장에 다다라서 손가락으로 폭이 30 미터 가량 되어보이는 강건너 마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청호동이요?” “그래. 근데 한번도, 한번도 잡히지 않았어. 이 사건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어 있는데 말이지.” “어째서죠?” “어째서긴? 저기가 청호동이니까 그렇지, 우리가 청호동 사람이니까….”
그놈의 청호동 타령… 그 말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는 듯 들렸으나 사실 외지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꼭 그런 건 아닐 거예요.” “너도 오래 있다보면 알게 될 거다.”
김 순경은 건너편에서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갯배를 바라보았다. 강이라고는 표현했지만 정확히는 호수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었고, 바다로 갈라진 이 좁다란 물을 건너야 그제서야 청호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는 육지 끝에서 겨우 30미터 떨어진 섬마을인 셈이었다.
이 좁은 물을 건너기 위한 유일한 교통수단이 바로 이 갯배였다. 지붕없이 오직 바닥만 있는 부둥 떠있는 납작한 나무배에서 사람을 위한 장치라고는 물에 빠지지 말라고 둘러쳐놓은 체인과 혹시나 해서 대충 챙겨 놓은 듯한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튜브뿐이었다. 이쪽 뭍에서 저쪽 뭍까지 연결된 와이어를 끌며 다가오는 갯배는 사람 스무명이나 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으나 이 시간에 갯배에 오르는 사람은 김 순경과 조 순경 둘 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김 형사! 충성!” “네 수고하십니다.”
햇빛 아래에서 하루 종일 갯배를 끌고 다니느라 얼굴이 검게 그을린 영감님이 김 순경을 보자 거수 경례를 했다. 비록 머리에 쓴 것은 군모나 경찰모가 아니라 초록색 새마을 모자였으나 그나마 챙이 있는 모자에 경례하는 폼은 잘 어울렸다. 경례인사를 대충 받은 김 순경은 갯배 선장 영감이 열어 준 체인 사이로 뛰어 들어가 갯배 위에 올랐다.
“저 분은 뉘기여?” “저희 경찰서 사람이예요. 얼른 안 오고 뭐해?”
하지만 어서 오라고는 했지만 갯배가 선착장 벽에 한번 쿵 부딪힌 후로는 점점 멀어지고 있어서 뛰어들었다가 입구를 잘 못 찾아들어가거나 발이라도 미끄러지면 바로 바다에 빠질 것만 같았다.
“아니, 멀어지잖아요.” “남자 새끼가 겁이 많아서 어따 쓰겠냐?” “아 잠깐만요.”
조 순경은 뒤로 두 세걸음 물러서서 어느 정도 도움닫기를 한 후에 갯배를 향해 뛰었고 간신히 갯배 위에 오르자 김 순경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아주 똥을 싸라 똥을 싸. 저기서 여기 오는데 뭔 생지랄이냐?” “아, 전 배는 처음이라고요.” “갯배가 배냐? 으이구 촌놈….” “승봉이 형. 그거 알아요?” “뭐?”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에 이런 거 있는데가 여기 밖에 없다는 거요.” “그럼 내가 촌놈이라는 거냐?”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어이쿠! 이런 최신식 요트를 마을 사람이 공용으로 쓰네요.”
조 순경의 입에 발린 소리에 갯배 선장 영감은 피식 웃으며 갯배 중앙 폴(pole)대에 걸린 갈고리를 끌러 내려 조 순경에게 주었다.
“배를 끌어야 배가 가지?” “아… 네.”
갯배가 올 때 사람이 끌고 오는 걸 봤으나, 손님이 끄는 것인 줄은 몰랐던 조 순경은 갈고리를 받아들고 선장 영감이 하는 대로 따라하였다. 가고자하는 방향으로 걸어간 다음 갈고리를 와이어에 물린 다음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면 갯배가 가려는 방향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장 영감의 자연스러움에 비하면 조 순경은 와이어에 갈고리가 물리지 않아서 몇 번이고 앞으로 미끄러졌다.
“손잡이 거꾸로 잡았어.” “그냥 후쿠인데 앞 뒤가 어딨어요?”
하지만 다시 보니 손잡이 부분이 조금 휘어져 있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손잡이를 뒤집어 잡았더니 이번에는 와이어에 고리가 꽉 물렸다. 그리고 잡아 당기니 뭔가 당겨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귀찮기도 하지만 의외로 재미도 있던 터라 한 세 번 정도를 왔다갔다 하며 배를 끌어당기던 조 순경은 선장이 ‘고만 혀’라고 말할 때까지 힘 좋게 잡아 당기고 있었다.
“너무 빠르잖아. 젊은 사람들은 힘도 좋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턱이 없는 조 순경은 갈고리를 폴대에 매달아 두고 도착하기를 기다렸는데. 갯배가 건너편에 다다르자 브레이크가 없는 탓에 갯배가 선착장에 쾅하고 부딪혔다. 그 충격에 배가 심하게 흔들렸고, 조 순경은 당황해서 넘어질 뻔한 것을 김 순경이 붙잡아 주었다.
바깥에서 온 사람은 돈을 내라고? 아, 배를 탔으니 배삯을 내라는 것이구나 싶어서 갯배에서 내리면서 주머니를 뒤지던 조 순경은 선장님에게 돈을 주려고 천원짜리 한 장을 꺼냈으나 김 순경이 잡아당겼다.
“거기가 아니야.” “네?”
김순경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자 허름한 노점에 껌같은 것이 앞에 늘어놓여있고 그 앞에는 나무로 만든 돈통이 보였다. 그 옆에는 판자때기에 요금표가 적혀 있었다. 학생 20 원 어른 30 원 자전거 50 원 오토바이 200 원 갯배 위에 오토바이도 올라가는구나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며 천원짜리를 내려던 조 순경은 노점 안 쪽의 작은 방에 사팔뜨기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알아차리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제대로 앉아있는 게 아니라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마치 사지는 뒤틀린 듯 보였다.
“놀라지마. 동만이라는 앤데 벙어리에 지체장애가 있어, 얼마전까지는 몸은 멀쩡했는데 어디서 사고를 쳤는지 팔 다리가 부러졌더라고.” “아….”
조 순경은 돈통에 천원을 넣어두고 거스름돈으로 970원을 가져가려 하였으나 돈통에서 돈세는 소리가 나자 동만이가 갑자기 신음소리같은 소릴 내더니 조 순경의 손을 꽉 붙들었다.
“으읏!”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조 순경은 손을 뒤로 뺐다. 누가 봐도 겁먹은 모양이었지만 김 순경은 그 걸 가지고 놀리지 않았다. 대신 차분하게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너무 대 놓고 놀라지마. 저 돈통은 동만이 꺼니까 아무도 못 건드려.” “하지만 저 거스름돈 받아가야하는데….” “아무도 저 돈통에서 돈을 꺼내 갈 수 없어. 거스름돈은 잊어버려.” “아.... 담배가 두갑인데… 에이.”
조 순경은 마치 손에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것처럼 바지에 손을 닦았으나 김 순경의 눈에는 그 것이 청호동 사람에 대한 경멸로 보이기도 했다. 차별… 차별… 선입관… 지금 김 순경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어쨌든 환영한다. 속초 경찰이 청호동 땅을 밟아줘서.”
그 말이 조 순경에게 의미심장하게 들려왔다. 마치 딴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여기는 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첫댓글 왜, 왜 청호동 아이들이 10년이 넘도록 납치를 당하는지 궁금하군요.
범행동기에 관한 원초적 궁금증이라고나 할까요...
아직까진 아이를 납치할만한 매력이 없어 보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저기 한참 전의 제가 쓴 이방인의 후속편 격인 글입니다 이방인에서 아동유괴건이 마무리 되어있으니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요즘 손놓고 있었는데 다시 쓰고 싶은 의욕이 솟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