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이 쏜 피스톨(권총)에 범인인 교회지기가 쓰러지자 관중석에서는 벌써 의자 젖혀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나 화면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신부로 분장한 몽고메리 크리프트가 천천히 걸어가서 쓰러진 범인을 받쳐들고 관중의 시야 으로 부쩍부쩍 다가올때는 관중석에는 어시장 그대로의 혼잡이 벌어지고 있다.
됫박속에 메뚜기들처럼 쑤알거리는 이층 한복판에 흡사 입상(立像)이기나 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검은 그림자는 분명 신부다. 신부로 분장한 몽고메리 크리프트의 그 처절한 표정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관중의 눈에는 아직도 '나는 고백한다'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는 어제까지도 교우들의 죄를 사해주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다. 신부가 교해소에 선다는 자체가 벌써 천주의 이름을 대신한다는 뜻인 것이다.
히 고해신부인 박신부가 교우로부터 고명(告明) 받은 사실을 누설하지 않으면 안 될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사건은 아직 늦더위가 채 걷히기 전인 어느날 아침이었다. 노크소리가 나고 낯선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박찬재 씨와 신부님과는 어떻게 되시던가요?"
박찬재라는 이름을 듣자 신부는 곧 이 사람이 경찰임을 깨달았다.
"박찬재, 내 동생인데요? 누구신데 왜 그러시나요?"
지난밤 통금 직전 여당의 중요간부이며 재정 운영에 큰 뒷받침을 해주던 삼일재벌의 주인공 한규덕 씨의 침실에 복면을 한 괴한 한명이 침입, 무조건 피스톨 두 방을 쏘았다는 것이다. 용의자가 밝혀진 것은 그날 오후였다. 신부의 동생인 찬재는 한씨 집에서 약 천오백 미터 근처에서 골목으로 숨다가 체포된 것이었다. 가택 수색을 했지만 뚜렷한 증거는 하나도 없었고 본인도 극구 범행을 부인했다. 한씨는 다행히 생명을 건졌지만 범인이 누군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고 했다. 용의자에게 또 한 가지 불리한 것은 군대 복무시에 사격대회에서 항상 등내에 들었다는 것이며, 거기다 확실한 직업도 없었다.
용의자가 드디어 자백을 했다. 사건 발생 후 삼 주일 만이었다. 박신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사건의 진범이 자기 동생임을 벌써 단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동생의 언행이나 성격으로 보아서도 그랬다. 나이 많은 아이와 싸우다가 넉장이 되게 맞은 날 밤 그 아이의 집에 불을 질렀다. 군대에서도 중위로서 중령을 패고 영창 생활도 했었다. 아우가 자백을 했다는 신문보도를 본 순간 형은 슬프기는 커녕 오히려 기뻤다. 당국의 알선으로 두 번이나 아우를 만나 자백하기를 권했던 것이다. 그러나 형은 자기방에 돌아와 문을 잠그고 목을 놓아 울었다.
다시 열흘이 지났다. 또 열흘이 지났다. 그러나 범인의 배후는 알 수 없었다. 범인이 일체 부인했던 것이다. 이렇게 질질 끌던 어느날 밤 박신부를 찾아온 사람이 있엇다. 바오로라는 교우로 깡패소리를 들으면서도 성실하게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였다. 그는 고해성사를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해를 막 시작하려는 중에 그는 신부가 부르는 소리도 못들은 척 달아나고 말았다. 그러던 중 홀연히 다시 나타난 바오로는 뜻밖에도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피해자의 이름은?"
"신부님. 신부님이 저보다 더 잘 알구 계실 겁니다. 신부님의 아우님께서 혐의를 받고 계신 바루 그 사건입니다."
박신부는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이튿날 새벽미사에 박신부는 바오로만을 위해 기구(祈求)를 올리면서 그가 자수하리라던 약속을 지키길 기대했다. 그러나 석간 신문에도 바오로의 자수 소식은 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온 이틀 후 아침 박신부는 신문을 펼쳐든 순간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조원호라는 거물급 간첩이 체포되었으며 그가 한씨 살해 미수 사건의 배후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이쯤되면 바오로는 간첩이었거나 간첩과 연락이 있던 인물임이 분명했다. 바오로는 악인은 아니다. 그는 내게 고해를 했지 않느냐. 그가 자수를 못 하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고통이 주는 형벌을 받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신부는 역시 안타까웠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신부는 한 시간 전부터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악과 선은 상극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지금 그는 선과 악이 근본적으로 다른 게 무엇인지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우선 내 아우만 해도 그렇지 않느냐. 그는 무서운 증오심으로 방청객을 훑어보고 있었다. 신부를 경멸하고 욕하는 사람들의 말이 들려왔다. 형은 생각했다. 내 아우는 죄인이 아닌다. 잠시 휴식 시간이 지나고 다시 재판이 시작될 때 신부는 그의 눈을 의심했다. 바오로가 나타난 것이다. 바오로는 신부에게 염려 마세요 라고까지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재판관이 막 판결을 내릴 때까지 신부는 바오로가 자수하길 기다리며 그의 입만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재판장은 피고 박찬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 소리르 들은 순간 바오로는 출구 쪽으로 휭 나가고 있었다. 신부는 자기도 모르게 재판장 앞에 다가섰다.
"진범은 저놈입니다."
그러나 벌써 바오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압니다. 나는 압니다. 저놈, 배신자 저놈!"
"박신부, 뭔가, 그게 다 뭔 소리야."
어깨를 잡아 흔드는데 보니 재판장이 아니다. 재판소도 아니다.
난로 앞 의자에 앉은 채였다. 박신부는 벌떡 일어났다. 주교님이었다.
"이 사람, 앉아서 무슨 잠꼬대가 그리 심한가. 좋은 소식 가져왔소. 진범이 자수를 했소 그려."
"네? 자수했습니까? 바오로가?"
박신부는 나가려는 주교님의 발 아래 꿇어 엎드리며 말했다.
"주교님! 고해받아 주십시오. 저는 고해신부로서 고해받은 사실을 누설한 대죄를 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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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발표된 '죄와 벌'은 신성(神聖)을 지키기 위해 인간을 배반해야 하는 성직자의 고통을 심리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고해성사라는 절대적 비밀을 누설한 신부 - 비록 꿈 속에서였다 하더라도 죄악이 된다고 하는 준엄한 깨달음은 신성의 승리라기보다 인간의 허약함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언뜻 관념적이고 평범한 종교 문학이 아닐까 생각되나 신성과 세속 속에서 끝없이 침몰하고 떠오르는 인간의 존재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후기 이무영 문학의 변화를 예고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빛의 자식과 어둠의 자식을 상징하는 신부와 동생은 한 형제라는 점에서 결국 그 근원을 함께 하고 있다. 신의 율법을 수호하려는 신부는 인간의 율법 사이에서 갈등한다. 현실 세계에선 신의 자식이지만 꿈 속에서 - 무의식의 세계에선 여전이 인간의 아들일 수밖에 없는 한계성을 노출하는 이 작품의 결말을 통해서 독자들이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천사와 악마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파스칼의 말을 떠올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