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 긍정과 기술의 힘으로 다시 날다《2007년 삼보컴퓨터의 회생이 불투명하다는 소식을 들은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가 직접 영상편지를 찍어 이 회사에 보냈다. 박찬호는 삼보컴퓨터와 1998년 광고모델로 인연을 맺었다. 박찬호는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방출돼 재기를 다지던 시기. “나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테니 삼보도 재기해 달라”는 박찬호의 당부에 회사 강당은 울음바다가 됐다.》
힘들 때일수록 AS 더욱 강화
탄탄한 기술로 시장 되찾아
법정관리 2년만에 졸업 성공
내비게이션에까지 영토 확장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9년 3월 25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삼보컴퓨터 생산라인은 ‘활기찬 소음’에 휩싸여 있었다. 부품을 조립하거나 제품을 포장하느라 바삐 움직이는 근로자들의 표정에서 2년 전 울음바다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많은 기업의 생산라인이 놀고 있지만 삼보컴퓨터의 5개 생산라인은 ‘풀(full) 가동’ 중이었다.
김재호 TG코리아(삼보컴퓨터의 PC브랜드) 생산라인 관리자는 “아무리 어려울 때도 자부심과 희망만은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면서 “이런 노력이 활력을 되찾은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 위기를 이겨낸 낙관의 힘
한국 최초의 PC 제조업체이자 벤처의 상징이었던 삼보컴퓨터는 2005년 초 갑작스럽게 무너졌다. 1980년 자본금 1000만 원으로 설립해 20년 만인 2000년 매출 4조 원 규모가 되기까지 승승장구하며 숨 가쁘게 성장한 벤처신화의 허탈한 종결이었다.
이 사건은 삼보컴퓨터 임직원들에게 ‘5·18’로 회자된다. 그해 5월 18일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름처럼 가혹한 시기였다. 1000여 명의 직원 중 4분의 3인 750여 명이 5, 6개월 만에 회사를 떠나 널찍한 사무실이 휑뎅그렁해졌다.
하지만 남은 직원들은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나마 되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법정관리로 업무 환경이 팍팍해졌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영업사원들은 불안해하는 고객을 매일같이 찾아가 안심시켰다. 직원들의 표정이 밝고 활기차다 보니 “곧 부도나는 삼보 물건을 불안해서 쓰겠느냐”는 경쟁업체의 흑색선전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위기였지만 지역의 재활시설을 찾는 사회공헌활동을 오히려 늘렸다.
이런 낙관의 힘은 ‘우리가 한국 최초의 PC 제조업체’라는 자긍심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2007년 10월 삼보컴퓨터를 인수한 벤처기업 셀런도 직원들의 이런 자존심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기존의 직원은 물론 임원들도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삼보컴퓨터 사람들은 인지도가 낮은 업체에 인수당했다는 좌절감을 가질 수 있었지만 서로 존중한다는 경영방침이 잘 지켜지자 오히려 두 벤처기업의 시너지 효과가 생기기 시작했다.
김영민 삼보컴퓨터 부회장(사진)은 “기존 멤버들과의 신뢰를 쌓아 인적인 역량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며 “제품 개발 속도를 두 배로 늘리는 등 어려운 목표에 몇 차례 도전해 성공하면서 삼보 특유의 자신감과 역량이 완전히 살아나 회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명성을 지켜낸 기본의 힘
삼보컴퓨터는 회사가 어려워도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고집은 버리지 않았다. 매출액이 수직 하락했지만 저가(
低價) PC를 앞세워 눈앞의 위기만 돌파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법정관리 승인 직후인 2006년 초미니 PC인 ‘리틀루온’을 내놓아 삼보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2006년 이 제품을 개선한 PC ‘리틀루온 플러스’는 대한민국 기술대상 특별상을 받았다. 이 제품은 두께가 4.4cm에 불과했고 당시에는 가장 얇은 PC였다. 2007년 하반기(7∼12월)엔 노트북 수준으로 소음을 줄인 데스크톱 PC ‘루온 크리스털’로 인텔이 주최한 세계 차세대 PC 공모전 대상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법정관리신청 직후 45명까지 줄었던 연구개발(R&D)센터 연구원을 82명으로 늘렸다. 10명 남짓 했던 디자인실도 별도 조직으로 분리해 20명 규모로 키웠다.
삼보컴퓨터는 사후관리 서비스도 강화했다. 고가(
高價)의 제품을 사는 고객들이 원하는 것은 완벽한 서비스라는 생각에서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2005년 2위에서 2007년 4위까지 떨어진 PC시장 순위가 지난해 3위로 올라갔다. 시장점유율은 2007년 2분기 9%대에서 작년 4분기 12.5%로 상승했다. 영업이익도 2005년 2597억 원 적자에서 지난해 44억 원 적자로 크게 줄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초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올해 들어서도 2월 3년 만에 월 기준 최고기록인 46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일본과 80억 원어치의 내비게이션 수출 계약을 하는 등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말엔 5100억 원 매출에 24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2003년 이후 6년 만의 영업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