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제비와 달팽이와 두더지
새벽 네시 반 새 소리에 깨었다.
하루 서울 다녀와 까망이에게 밥을 주고 화단에 물을 주는데 두더지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10센티미터는 되는 성체였다. 그리고 아침에 텃밭 잡초 정리를 하는데 다시 두더지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풀을 뽑을 때도 앵두를 따 먹을 때도 땅 여기저기 살찐 달팽이가 눈에 띄었다. 개구리들이 아직 뛰어다니고 있으니 꽃뱀도 나오지 않았다.
씨 뿌리고 나무를 심어도 두더지 때문에 죽는 게 생겼는데 여기저기 두더지 굴로 불룩불룩했는데 까망이 덕에 두더지는 터전을 잃었다. 요즘 퇴근할 때면 텃밭에 앉아 해바라기 하다가 어슬렁 걸어오던 까망이가 한 짓으로 여겨진다. 까망이가 먹지도 않을 두더지를 잡는 것을 보며 본능의 힘을 다시 느낀다. 인생도 그런 게 있다.
지난 겨울 폭설로 고양이가 창고에 힘들어 할 때 먹이를 준 것이 계기가 되어 까망이 밥을 챙겨주는 게 버릇이 되었다. 가급적 야생동물에 관여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렇게 관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제비가 찾아오지 않았다. 처마에 달랑 매달린 빈집을 보며 행여 작년 제비새끼들이 길고양이들에게 봉변을 당한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올해는 왜 이리 달팽이들이 많을까? 발 디딜 때마다 달팽이들이 눈에 띈다. 다알리아 잎을 알뜰히도 갉아먹어 다알리아는 몸살을 하고 있다. 두더지는 땅속 굼벵이와 지렁이가 부족했을까 지천인 달팽이를 주워먹으러 나왔다가 봉변을 당한 것일까? 퇴비더미에 호박을 심으려다 엄지손가락만한 굼벵이가 나와 도로 덮어주고 옆에 심었다. 작년 텃밭에는 고구마를 심었다가 굼벵이가 갉아먹어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었다.
유난이 잎이 큰 뽕나무에는 왜 기다리고 기다리는 오디가 열리지 않고, 작은 뽕나무에 오디가 열릴까? 뽕나무가 아닐까?
꽃양귀비와 마가렛이 절정인 아침 정원에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