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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열왕기하-01 엘리야의 승천(열왕기하 1장 1-4절)
성경말씀은 열왕기하 1장 1절에서 4절까지 봉독합니다.
[열왕기하 1장]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지난 시간까지 우리 열왕기상서를 정리하고 오늘 열왕기하서로 들어가게 되는데,
열왕기하서 역시 누가 기록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혹 학자들이 예레미야가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지만, 맨 끝에 보면 ‘여호야긴 왕이 포로된지 37년만에 풀려나서 자유하게 되었다’ 그런 얘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부분은 예레미야가 쓸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앞 부분에 그 사건 말고 다른 부분은 유대 말기가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대였는데, 열왕기하서 끝에 아무리 봐도 예레미야 이름도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오히려 예레미야가 쓴 책이 아니냐?
다른 사람이 만약에 그 시대 역사를 기록했다면 예레미야 이야기를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될텐데, 예레미야가 자기가 썼다면 자기 이름을 뺄 수가 있겠죠.
그래서 예레미야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 때문에 예레미야가 쓴 것이 아닌가 하다가 맨 끝에 보면 바벨론 포로잡혀간 여호야긴 왕이 포로된지 37년만에 옥에서 나와서 왕이 일정한 예우를 받는 그런 얘기까지 쓴 것을 보고, 이것이 한꺼번에 누가 다 쓴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쓰다가 중단된 것을 다른 사람이 이어서 쓴 것이 아니냐..
그렇게 보면 열왕기하서 역시도 누가 썼는지 명확하게 다 규명이 안 되는 그런 책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책이 몇권 있습니다.
사무엘상하서도 누가 썼는지 정확하지 않고, 열왕기상하서도 마찬가지이고, 역대상하서도 에스라가 썼지 않겠나 짐작하지만, 확정할 수 없어요.
욥기같은 책도 어떤 분이 썼는지 확정할 수 없죠.
내용은 오늘 본문에,
[열왕기하 1장]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하는 얘기는 아합왕이 살아 있을 때에는 모압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고 그 속주국이 종주국에 대해서 섬기는 예를 다했다는 얘기죠.
그만큼 아합이 일반 정치는 상당히 잘한 사람이예요.
단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 아내 이세벨에게 자꾸 충동당해서 엉뚱한 짓을 해서 그렇지, 정치적으로 경제 외교 안보 이런 부분들은 전혀 흠잡을 수 없이 잘 했던 사람이죠.
그런데 아합이 죽고 나니까 주변에 있는 속주국들이 그런 기회를 타서 이스라엘이 조금 혼란스러울 때, 막강한 왕이 죽고 나자 그런 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다 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고,
2절에 보면,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 중에 그래도 탁월한 인물이라고 해서 왕이 되었을텐데,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난간’이라고 하는 말이, ‘사바크’라고 하는데, 우리가 지금 난간 그러면 대개 스테인레스 봉을 만들어서 이런 것으로 아는데, 그 때는 스테인레스도 없었고, 그 난간이라는 게 격자형으로 칸막이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나무로 하다보니까 약하죠.
그래서 만약에 거기에 기대었다가는 넘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무로 된 격자 이런 것은 창살 같기도 하고 한 벽면 전체를 격자로 되었는데 이것을 난간이라고 사바크라고 하는데, 거기에 기대어서 넘어져서 아래층으로 떨어진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이라는 게 단층이 제일 좋습니다.
떨어질 염려가 없으니까, 자꾸 올라가는 것 썩 좋은 것 아녜요.
그리고 사람은 원래 땅에 흙에 발 붙여서 살게 한 것이지, 공중에 고공에 떠서 있는 게 아니야.
여러 가지가 오르내리기도 힘들고 물건 갖다 나르기도 힘들고 범사에 힘들어요,
미국에 가보면 집들이 거의 2층이야. 2층..
땅이 넓어서 고층 빌딩을 지을 필요도 없을 뿐더러 지진이 자꾸 나니까 거의 2층이야.
1층은 차고와 거실 주방 그런 것 1층이고, 사람 자는 방은 2층으로 그렇게 해 놨어요.
거의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종말에 있는 큰 지진을 감안할 때에 우리 성도들이 어지간하면 고층 아파트는 안 샀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특히 아파트 중에서도 1,2층은 더 안 좋아요.
아파트가 무너지고 주저앉을 때 거의 부러져버리거든요.
그렇다고 높은 곳은 좋으냐? 높은 곳도 안 좋아.
아파트는 별로 살 데가 안돼요.
그래서 단층을 짓되 단층이나 2층 정도로 짓는데, 공간이 좀 넉넉하게 집을 펀퍼진하게 그리고 튼튼하게 견고한 구조로 그렇게 집을 짓기를 권합니다.
믿는지 말든지..
아파트라든지 대형건물들은 여러 가지가 관리비도 많이 나오고..
우리 여기는 많이 쓰지 않은 것 같은데, 관리비만 많이 나오죠.
별로 좋은 건물이 아니야.
그래서 다락 난간에 떨어져서 병들었다는데, 허리가 부러졌는지 목이 부러졌는지 모르지만 어떻든 좀 심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잘 안 나으니까 이 사람이 자기 신하를 보내가지고,
..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그 ‘에그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땅이 아니고, 블레셋 다섯 성읍 중에 한 성읍인데, 거기에 신이 바알세붑이라는 신이 있어요.
파리가 신이라는 거야. 파리.. 똥파리가 신이야.
지금도 똥파리를 신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똥파리에게 기도할 때 보면 ‘윙윙거리는 나의 신이시여..’
큰 파리가 있는데, 큰 똥파리가 신이죠.
그러니 참 인간이라는 게 똑똑하면서도 미련하고 멍청한 거야.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요?
그래서 물으러 보내니까,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사자들이 엘리야를 만나서 호되게 책망 듣고 에그론에 가지도 못하고 왕에게 돌아오니까,
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6 저희가 고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얘들도 참 순진한 것은 좋은데, 그대로 말하면 어떡합니까?
그대로 말했어. 곧이 곧대로..
7 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고한 그 사람의 모양이 어떠하더냐
8 저희가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왕이 가로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인상착의만 듣고도 엘리야를 알아 보잖아요.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에브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어보는 게 아니고, 뻔히 알면서도 이런 짓 하니까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는 거예요.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 고의적이 아니고 부지중에 몰라서 이렇게 한번 실수로 이렇게 지은 죄는 다 하나님께서 용서할 수 있지만, 뻔히 알면서 잘못된 길로 갈 때 고의적이고 계획적이고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이런 죄는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9 이에 오십부장과 그 오십 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저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서 본즉 산꼭대기에 앉았는지라 저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이 자식들이 모셔올려고 하지 않고 올라가기 싫으니까 고함을 냅다 지른거예요.
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 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 인을 살랐더라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 오십 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저가 엘리야에게 일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까 속히 불이 내려와서 또 50명과 50부장을 살라버렸어.
12 엘리야가 저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 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 인을 살랐더라
13 왕이 세번째 오십부장과 그 오십 인을 보낸지라 세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 이르러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 오십 인들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저를 두려워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저와 함께 내려와서 왕에게 이르러
16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없음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그 말을 듣고 왕은 얼마 안 가서 죽게 돼죠.
17 왕이 엘리야의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저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여호람은 아하시야의 동생입니다.
아합의 아들 중에 둘째 아들인지 셋째 아들인지 모르지만, 여호람이 왕이 되었는데,
..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제 이 년이었더라
18 아하시야의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아하시야는 불과 2년동안 있으면서 하나도 바른 일 하지 못하고 죽을 때도 아주 비참하게 그렇게 죽었습니다.
깨닫지 못하고 분별력이 없고 사람이 무슨 자기 사명도 계명도 모르면 도대체 하나님 보실 때 존재 가치가 별로 없는 거예요.
자기 아버지때 엘리야가 하는 것을 다 봤을 것이고,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끝내 깨닫지도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죽음에 내버려 뒀습니다.
2장에는 오늘 제목대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승천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2장입니다.
[열왕기하 2장]
1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4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때로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너는 그만 이만큼만 하고 말아라.’
‘여기서 이만큼 하면 되었다. 그만 따라와 봐라.’ 일부러 그랬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얼마나 진지하게 정말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하는가 하는 것을 볼려고 한번 시험 삼아 떼내어 보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보면 다른 학생도 있죠? 선지자의 생도들..
길갈에 있고 벧엘에 있고 여리고에 있고 요단에 있고 전부 선지자의 생도들 신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인데,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이 학교들 한바퀴 순회하고 올라갈 참인데, 그 학생들은 알기는 압니다. 그렇죠?
알기는 아는데 따르지는 않는 거예요.
이게 문제죠.
알기는 알면서도 지식은 있는데 행동이 없는..
배우기는 배우는데 따라하지는 않는 그런 한 모습 같아요.
그래서 세번 네번씩이나 떼어내어 볼려고 했는데, 엘리사가 기어이 따라붙으니까,
7절입니다.
7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섰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요단강을 건너 갔어요.
건너가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자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실 모양인데, 나를 너에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지 말해봐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갑절’이란 말이 ‘쎄나임’이라는 말인데, 쎄나임이란 말은 두배 갑절이란 말인데, 그냥 그 선생님의 영감의 갑절 하는 건데, 설명한답시고 하는데, ‘꼭 선생님의 갑절이 아니고 장자에게 두 몫이 가는 것처럼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이다.’ 그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을 봤어요.
이른바 주석성경 같은 것 함부로 봐서는 안 됩니다. 맞는 말도 있고 안 맞는 말도 있어요.
그냥 쎄나임은 그냥 갑절이야. 선생님의 영감의 갑절을 원합니다. 그렇게 한 거예요.
그리고 그 뒤에 엘리사 사역을 하는 것을 보면, 엘리야의 정말 갑절이나 되는 것만큼 그렇게 큰 일을 하는 거예요.
엘리야보다 더 크고 더 아름다운 일을 갑절이나 하는 거죠.
..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너의 꿈이 당차구나. 보통이 아니야.’
그러면서,
..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나를 하나님이 네게서 빼앗아 가는 것을 목도하면,
..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격한다’는 것은 떨어지게 한다는 거죠. 간격이 생기게 격하고,
..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이 승천하는 모습, 또 육체가 죽지도 않고 바로 승천하는 그런 모습인데, 이런 모습은 옛날에 창세기에 보면 에녹이 그렇게 하늘로 승천해버린 거죠.
이렇게 승천하는 모습은 마지막, 우리가 계시록에 보면 마지막 나팔과 함께 홀연히 순식간에 변화되어서 휴거될 것의 예표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맛보기로 보여주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낚아채어 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세를 살아갈 때는 항상 납치되어갈 준비를 하고 살아야 돼요.
갑자기 홀연히 순식간에 우리가 변화되어서 올라갈 테니까..
또 어떻게 변화되느냐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한번 변화산에서 잠깐 보여주셨죠?
짠 하는 순간에 예수님이 빛같이, 태양빛 같이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여 주신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때 우리가 두가지죠. 사람이 죽었다가 예수님처럼 부활할 사람, 살았다가 예수님처럼 변화될 사람, 그리고 에녹처럼 엘리야처럼 휴거될 사람..
미리 조금씩 다 맛을 보게 해서 기록을 해 놓은 겁니다.
그래서 얼마나 허무하겠어요?
영감을 갑절을 원했으면 절반을 줘야죠. 최소한도..
그런데 아무 것도 안 준채 갑자기 스승을 낚아채어서 올라가니까,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소리 지를 수 밖에..
..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모르긴 해도 처음에는 싹 올라가다가 그 다음부터 쓩 하고 초음속으로 날아가버린 거야.
빛처럼 사라져 버린 거야.
처음에는 봐야 돼죠. 안 보고 올라가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거야.
싹 올라가는 것 보여주고 올라가다가 쓩하고 나중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거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굉장히 비통한 심정을 그렇게 표현한 거죠.
옷을 잡아 찢었어요.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아무리 화가 나도 옷을 잡아 찢거나 하지 않죠.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통하거나 할 때 수시로 옷을 찢어요.
지금 옷은 잘 안 찢어지죠. 질겨서..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야가 하던 것 아닙니까? 그렇죠?
그런 식으로 요단강이 갈라지는 거야.
여러분 이런 것을 보고 낙동강에 가서 치고 하지 마세요.
왜 나는 안 갈라집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갈라질 이유가 있어야지..
성경에 보면 어떤 사건이 한번 있고, 그 뒤에 반복이 안 된 그런 특별한 사건이 있어요.
한번 기록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믿으면 되지, 날마다 갈라지면 강물도 할 짓이 아니죠.
그러니까 우리가 잘못하면 그런 사람이 생긴다니까..
기도원에 갔다 오다가 물위로 걸어간다고..
그런 참 웃지 못할 일이 있습니다.
15절,
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이런 사람들 보통 구경꾼의 감탄이라고 하죠.
맨날 예수님 따라 말씀 따라 살지는 않고 어디가나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구경만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거예요.
16 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오십 인이 있으니 청컨대 저희로 가서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이게 불안한 믿음이야.
들고 올라갔으면 갔지 들고 올라가다가 던지기는 왜 던져..
하나님 하시는 일을 염려해요. 이 사람들이..
염려컨데 던지셨을까 한다.. 참 이것..
그러니까 하나님을 참 못 믿어하는 거죠.
이상한 믿음이야. 불완전한 믿음이고 안 따라가는 믿음이고 구경이나 하고 감탄하는 믿음..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는..
여러분 이렇게 하면 만사에 피곤합니다.
무슨 일에 차라리 앞장을 서고 총대를 매고 일의 중심에 뛰어들어야 수월하지 변두리에 빙빙돌고 구경이나 하고 눈치나 보면 세상 피곤한 거야.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에 체육선생님이 애들이 어리버리하면 헤쳐모여 하죠.
선생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한발만 오면 돼죠.
그런데 저 멀리 있는 애들은 정신없이 뛰어와. 오자마자 헤쳐모여.
여기 있는 사람은 한발만 오면 되는데, 저 뒤에 있는 애들은 정신없이 쫓아와요. 오면 또 헤쳐모여..
그러니까 언제나 무슨 일을 할 때에 일의 중심에 있어야 안 피곤하지, 맨 그저 요령피우고 변두리에 빙빙돌고 그러면 범사에 피곤한 거야.
교회 일도 마찬가지..
딱 걷어 붙이고 일하는 사람은 피곤한 줄 모르는데, 늘 눈치보고 슬슬 빠지는 사람이 피곤하죠.
범사에 그래요.
.. 엘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17 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쓸데없는 열심이죠. 그 진리를 따라가는 열심은 없고 시체에 열심이 많아.
보통 사람도 그렇죠?
불신자들도 살아있을 때는 별로 안 해놓고 시체는 어떻게 단속을 하면서..
시체에 대한 열심이 많은 거예요. 사람들이..
보내지 말라 해도 저희 무리가 부끄러워 할 정도로 강청을 하니까..
.. 보내라 한지라 저희가 오십 인을 보내었더니 사흘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꽤 열심이야. 사흘 씩이나 온 산을 헤매고 다니면서 찾지 못했다는 거죠.
18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가지 말라면 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19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 오라 하매 곧 가져 온지라
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성서 고고학자들이 이런 것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해석을 해볼려고 이상한 얘기를 하는 것을 제가 들었는데, 사실인지도 모르죠.
여리고에 있는 우물 물 근원쪽에 독소가 내뿜는 그런 달팽이..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런 달팽이가 많이 있었는데, 그 달팽이 독소때문에 사람이 먹으면 몸에 좋지도 않고 그랬다는 거야.
민물에 사는 달팽이이기 때문에 엘리사가 소금을 한 바가지 끼얹었더니 소금이 무거우니까 가라앉잖아요.
가라앉아서 그 달팽이가 소금에 다 죽고 나니까 물이 치료되었다. 그럴 런지도 모르죠.
만약에 그렇지 않고 그냥 물을 고칠것 같으면 그냥 물이 고쳐져라 하고 고칠텐데, 굳이 소금을 넣어서 고쳤냐는 거야.
그런 부분이 가끔 있거든요.
그렇다고 우리 학생들 물이 안 좋은데에 가서 소금 뿌리지 말고..
하여튼 그렇게 물이 고쳐졌는데, 저는 엘리사가 무슨 수질학 달팽이 생물학 이런 것을 공부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안 것도 기적이죠.
딴 사람은 여태까지 몰랐잖아요.
하여간 물이 고쳐져서 오늘까지 그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여러분 성지순례가서 여리고에 가면 여리고 언덕 밑에 엘리사의 샘이라 하면서 물이 지금도 파이프라인이 연결 되어 있는 것 보니까 모터로 그 물을 빼다 쓰는가 봐요.
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 명을 찢었더라
이런 것 참 우리가 납득하기 어려습니다.
그리고 우리 청년들이나 학생들이나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
괜히 누구를 놀리는 것 하지 마세요.
우리도 어릴 때는 누구를 놀리기도 하고, 나는 놀리는 것보다 놀림 많이 당했어요.
놀림 많이 당하게 생겼잖아요. 제가..
기분이 안 좋거든요.
여러분 사람이 어떻든간에 범사에 지극히 작은 일 하나도 남을 기분 나쁘게 하면 안 돼.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남을 기분 나쁘게 할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번에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 가슴아픈 일인데, 그 죽은 사람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아무 죄도 없는 거야.
꼭 자기에게 무슨 기분 나쁘게 한 사람을 쏜 것도 아니고, 그냥 무작위로 줄 세워놓고 쐈다는 건데,
어떻든 우리 사회가 같이 책임을 느껴야 되는 것이, 그 한 사람이 항상 혼자 있다는 거야. 항상 혼자..
여러분 세상에 배가 고파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옷을 못 사서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외롭다는 거예요.
외롭게 고독하게 누구를 따돌리거나 항상 혼자거나 이렇게 사람의 영혼이 고립되면 마귀가 그 고립된 영혼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마귀가 그 사람에게 이상한 생각을 집어넣어가지고 그런 짓 하게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그냥 감정으로 사람을 쐈다고 보지 않습니다. 저는..
대체로 사람이 고립되면 악령이 가만 두지 않아요.
고립 따돌리는 것도 사실은 그 성령이 하지 않거든요.
성령은 하나되게 하고 연합되게 하는 분인데, 따돌리는 자체가 마귀가 하는 것이고, 그리고 따돌려 나왔을 때에 그 한 영이 고립될 때 반드시 마귀가 온갖 생각을 계속 집어넣고 죽으라 죽으라 한다든지 죽여라 죽여라 한다든지..
마귀가 하는 것은 도둑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그게 일이니까..
그래서 우리 사실은 우리 사회가 댓가를 지불하는 거예요.
다 사람을 품고 연합되고 챙기고 이렇게 안 하고, 막 따돌려버리고 세상 사람이나 교회에서..
우리 교회에서는 한 사람의 영혼이 외롭지 않게 고립되지 않게 항상 챙기고 돌아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구역이 있는 거예요. 구역이..
또 여전도회나 남전도회 청년회 학생회는 거기에서 굉장한 사업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이 고립되지 않게 여러 장치가 있잖아요.
구역으로 챙길 수 있고, 부서별로 챙길 수 있고, 자체별로 챙길 수 있고.. 어떻든 여러 겹으로 사람이 고립되지 않게끔..
서로 챙기는 일을 잘해야 돼요.
여기 조롱하고 이래하다보면 한 사람이 따돌림을 당하는 건데, 옛날부터 예언자는 다 외로웠습니다.
따돌림 당하는 것은 기본이죠.
그래서 여기,
24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 명을 찢었더라
이 암콤이 잡아먹었다는 게 아니죠. 찢어버렸어요.
그리고 우리가 어지간하면 저주는 조심해야 돼요.
저주한 저주가 저주받을만하면 저주받기도 하지만, 저주받을만 안 하면 저주한 그 사람에게 돌아오는 수가 있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신약시대에 사는 성도로서는 거의 다 저주는 잘 하지 않습니다.
어떻든 말을 막말을 한다든지 말을 너무 독하게 한다든지 이런 것은 좋지 않아요.
항상 말을 너무 지나지 않게 사도바울이 한 말을 보면, 소금으로 고르게 함 같이 소금이 너무 넣으면 짜서 먹지 못하고 너무 없으면 싱겁죠.
소금으로 고르게 함 같이 하라..
너무 싱거우면 안 되고 너무 독하게 하면 안 되고.. 말을 부드럽게..
서울 사람들이나 강원도 사람들 충청북도 사람들은 말이 부드럽습니다.
그런데 경상도 사람은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어. 말이 너무 진하죠.
25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다음부터는 우리가 엘리사의 사역을 쭉 보게 될텐데, ‘엘리사’ 하는 말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 이런 뜻이죠.
어떻게 구원하느냐?
‘엘리야’ 하는 말은 ‘여호와가 하나님이다.’ 하는 것이고, 또 이어서 엘리사는 하나님은 구원이시다. 그런 두 사람의 사역이 쭉 연결되어 있는데,
오므리 왕조, 아합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이죠.
충분히 하나님을 믿을 만하게 자기들 바알신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본 것도 들은 것도 얻은 것도 없는데,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충분한 증거를 보여주시는 거예요.
여호와가 하나님인 증거도 보여주시고, 그 하나님이 얼마든지 구원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주는 이야기가 3장부터 7장까지 쭉 나오는데, 문제는 그렇게 보여줘도 깨닫지 못한다는 거죠.
여러분 어떤 기적만 보면 깨달을 것 같지만 그 말씀을 말로 해서 못 깨닫는 사람은 기적을 봐도 별로 못 깨달아요.
그래서 우리가 제일 좋은 믿음이 무슨 꼭 기적이나 보겠다는 믿음보다도 인격적으로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 진리와 함께 즐거워하며 순종하는 그런 삶이 아름다운 삶인 줄 믿습니다.
3장은 다음시간에 보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자기 남은 사명을 다하고 승천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 살다가 주님께서 오시는 날 우리가 살아있다면 엘리야처럼 홀연히 순식간에 변화되면서 휴거될 것과, 또 세상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어디에서 구원이 나는지 알지 못하고, 결국은 허우적거리면서 기껏해야 구경이나 하는 정도에서 머물고 맙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항상 겉돌거나 또 따돌림을 당하거나 따돌리거나 하지 아니하고 모두가 함께 주님의 뜻을 위해서 연합해서 선을 이루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