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8:12-18] 베드로의 부인
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새해가 되어지고 첫 날 다짐을 해봅니다.
한 달이 시작되는 첫 날을 맞이하며 또한 각오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다짐과 각오와 결단은 어디로 갔는지 다시금 제자리를 걷고 있을 때까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설사 각오와 결단으로 버틴다 하여도 하나의 상황과 사건 앞에 비참히 무너져 버리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찬양 중에 '주는 완전합니다.'라는 가사입니다.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우린 우린 연약합니다
주여 우린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수합니다
주의 긍휼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우린 주만 바라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내 목숨까지도 버리겠다는 결단과 각오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과는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고의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자기 목숨을 버려서라도 주님을 따를 것을 각오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변론할 생각은 없지만 베드로처럼 인간은 위기를 만났을 때 자기보호본능이 작동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각오와 결단도 막상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주는 상황을 만났을 때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읽으면서 수시로 결단과 각오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마음 먹은대로 되던가요?
그렇다면 믿음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부인은 우리의 연약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따라서 믿는 자는 매일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제자인 베드로를 통해 버림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버림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육신의 유익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 유익을 오셨지만 사람은 자신을 육신의 유익을 위해 살다보니 예수님을 부인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결단과 각오로 살 수 있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롬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그렇다고 우리는 연약하다는 핑계로 악을 행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한다하여도 또 죄를 짓는 것이 인간이며 한계이며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결국 신자가 죄에서 벗어나는 것은 육신을 벗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기 전까지 죄에 대한 문제는 해결이 안되니까 포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육신은 숨을 쉬고 있으되 죽은 자로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갈 5: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죽음입니다.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육체가 죽으면 그 정욕과 탐심이 함께 죽습니다.
결국 육체가 살아있으니 그 정욕과 탐심이 끊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육체를 어떻게 하는 것이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까?
육체가 죽었다는 것은 욕심이 사라짐을 의미합니다.
욕심이란 육체에 대한 소망이며 욕망입니다.
따라서 육체가 죽었다는 것은 육체에 대한 소망이 사라짐을 뜻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육체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육체가 잘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뛰어난 육체가 되어지기를 소원하며 살아갑니다. ㅡ 높아짐과 자랑
이러한 육체의 소망이 끊어지는 것이 곧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신자는 육체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이란 내 힘으로 뭔가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깊이 깨닫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강한 마음 그것을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이 내 자신을 붙들어서 행할 바를 가르치고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결단으로는 주님을 절대 따를 수 없습니다.
내 의지와 생각은 늘 내 편입니다.
원하지 않지만 결국 악으로 이끌어 가고 사망에 이르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에 이 사망에서 건질 자는 예수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 늘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감사함이 우리를 하나님께 붙들어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버리셔야 합니다.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고 되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에 대한 감사함부터 회복하십시오.
감사함은 여러분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자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