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하다
이승하
할아버지는 천하에 둘도 없는 술고래
일찌감치 세상을 떴으나
할머니의 천하에 둘도 없는 자식사랑
1남 6녀를 잘 키우셨다
합장하는 날 진눈깨비 내린다
포장 밑으로 녹은 눈이 흘러 눈물이 된다
고모님 네 분이 엉엉 우신다
(두 분은 이미, 먼저 돌아가셨다)
시체에서 흘러내린 추깃물이
관 바닥을 시커멓게 물들였다
양수 속에서 10개월 헤엄치다
산전수전, 온갖 물난리 다 겪고
팔과 다리가, 손과 발이, 가슴이
저렇게 되는구나 시커먼 시체덩어리
해골바가지 위의 흰 머리카락
술주정이, 탄환 자국이, 고래고래 고함이
이렇게 합장하면
또 몇 년을 같이 아옹다옹하며 사시려나
같이 살다 따로 돌아가셨는데 왜 구태여
한 무덤 안에서, 저 좁은 관 안에서
이승하/ 1984년 〈중앙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 등. 시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등.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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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시 작품
합장하다 / 이승하
한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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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16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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