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 작가의 한국의 4계
(글 : 사진평론가 장한기)
한국 사진작가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였던 이태영 작가가 네 번째의 전시작품을 작가의 고향인 군위군에 소재한 자택에서 선보이게 된 것은 지역사회에 대한 사진문화의 향기를 고향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뜻이 담겨져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에 전국에서 모여든 참관인들에게는, 작품 속에 스며든 사계의 아름다움과 연의 향기가 바로 작가의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사진 속의 주제와 현실의 환경을 일체화 시켜 그 분위기를 그대로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1995년 이래로 네 번의 전시와 네 권의 작품집을 발간한 이태영 작가는 그 캐리어만큼이나 작품의 스케일은 크고 다양했으나, 작품 속의 소재나 작화기법은 작가자신의 외형에서 풍기는 것과는 달리, 지극히도 잔잔하고 조용하여 작품집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숨소리도 멈출 정도로 내면으로 스며드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작품을 바라보던 필자의 시선은 책속에 있었으나, 상념은 어느덧 현장에서 셔터를 누르는 작가의 촬영 현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뇌리 속의 작가의 모습은 마치 포수가 사냥터의 목표물을 겨냥해 숨죽이며 살금살금 다가가 방아쇠를 당기듯, 셔터 소리조차도 피사체의 깨어남을 막으려는 듯, 미러업 상태로 촬영에 임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렇게 하여 탄생된 작품이 사계의 영상으로 재현된 것이리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봄철이면 제일먼저 반겨주는 진달래가 앙상한 가지사이로 봄을 알리는 장면은 태고의 전설 같은 분위기로 다가왔으며, 새봄의 버들가지에 맺힌 영롱한 이슬은 사슴이 먹으면 용이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 속설이 말해주듯,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새롭게 깨어나는 봄의 맑고 깨끗함을 지나칠 정도로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 되었다. 반면에 여름은 온대지가 무성한 잎과 숲으로 뒤엉켜 온갖 동식물이 생동하는 계절로써, 약육강식의 자연의 순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기임을 감안할 때, 먹이를 찾아 갯벌을 찾는 백로의 출연은 어찌 보면 약육강식의 살벌한 모습을 자연과 순화시켜 미적 감각으로 표현하고자 한 작가의 내면의 심리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작가가 결부시키고자 하는 동물과 식물의 조화는 외적형태로 보면 언밸런스이지만, 백로의 고귀한 이미지와 수초의 잔잔한 분위기를 내면적으로 결부시켜 의식상의 일체감을 조성한 것으로 판단되며, 작가의 동식물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작품 속에 그대로 배어 나온다. 이후 가을과 겨울의 영상은, 꽃잎 위에 떨어진 낙엽과 얼음 속에 묻힌 잎의 대비로 쓸쓸함과 황량한 벌판의 외로움을 더욱 차갑게 표현한 작가의 창작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작가 이태영은 외형적으로 풍기는 강인한 인상과는 달리 내면에 존재하는 의식은 여림과 부드러움이 조화된 지극히도 온화한 분위기로 다가온다.
어쩌면 작가 스스로도 외적인 강직한 이미지를 작품을 통하여 중화시켜 나가려는 노력으로 자신만의 작품 스타일을 개발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면이나 편집상의 한계만 아니라면 더 많은 작품 속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통하여 작가의 내면에 존재한 심성과 사진적 결합을 보여드리고 싶으나,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가의 작품의도를 분석하여 보여주는 것으로 양해를 구한다. 아울러 한국의 사계를 통하여 보여준 이태영 작가의 작품 속에는, 존-섹턴 의 요세미티나 캘리포니아의 울창한 천연림을 방불케 하는 표현 의도가 담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잔잔한 수초의 아름다움은 국내에서도 물 맑고 공기 좋은 특수한 환경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써 우리나라의 사계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