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6장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경건 생활과 일상의 삶
(찬송 19장)
2023-12-5, 화
맥락과 의미
산상수훈 5장에서 예수님은 살인, 간음, 거짓 증언 등을 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참 뜻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뿐 아니라 마음의 동기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가르침입니다.
6장은 첫째, 당시 유대인들이 경건을 실천한 세 가지 방식인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대해 올바로 가르치십니다(1-18절). 그들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위선적인 경건의 행동을 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행할 때 하나님의 보상이 있음을 가르칩니다(1-18절).
둘째, 물질에 대한 탐욕에 빠지지 말고 근심에 빠지지 말며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19-34절).
1. 너희 의를 행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라(1절)
2. 하나님 앞에서 하는 구제(2-4절)
3.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5-15절)
4. 하나님 앞에서 하는 금식(16-18절)
5. 탐욕과 염려를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19-34절)
1. 너희 의를 행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라(1절)
6장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1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33절). 6장의 맨 앞과 뒤에 “의”라는 말을 사용하여 참된 의로운 삶이 무엇인가를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십니다.
우리도 사람의 생각과 기준으로 사는 삶을 의라고 말하면서 사람들끼리 서로 인정받으려 하지 맙시다. 자기의 의를 쌓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구하라’ 하십니다. 사람들과 비교하여 의를 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의는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7:7).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고 순종하는 의를 말합니다.
첫째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믿고 죄인이지만 의롭다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와 같은 죄인들에게 의로운 삶에 대해 가르치기 전에 먼저 은혜로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불러서 교회로, 하나님의 의로운 집 안으로 들여보내 주셨습니다.
둘째로,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주신 높은 수준의 의를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의롭다고 인정받고 의로운 삶을 실천하는 것도 다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은혜 때문에 가능합니다.
둘 다 우리의 믿음과 순종의 행동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의롭다 인정받아 의의 나라에 들어왔으므로 의를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의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2. 하나님 앞에서 하는 구제(2-4절)
구제할 때는 자기를 나타내는 야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구제받는 사람을 돕는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2절).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남을 도와 이 세상에서 인정을 받는다면 더 이상 하나님께는 받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운 나라의 백성으로서 구제를 합니다. 따라서 “은밀하게”(4절)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과 갖는 관계 속에서 구제를 합니다. 선행을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필요하면 인정받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세에서, 천국에서 썩지 않는 보상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5-15절)
1) 기도의 대상(5-8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도할 때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외식적으로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이미 칭찬을 받은 그들은 하나님의 상을 받지 못합니다.
둘째, 이방인들과 같이 “중언부언”(한 말을 또 하고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하고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7절). 이방인들은 자기들의 기도를 들을 수도 없는 돌과 나무 앞에서 기도합니다. 기도해도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말을 계속 많이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항상 짧게 하는 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의도는 아닙니다. 심한 괴로움이 있을 때 같은 말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 가운데 길게 기도하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기도할 때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이방인은 자기 자신에게 말합니다. 심리 치료는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고 많이 말을 하려고 하면 사람이 허무해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길게 기도할 때나 짧게 기도할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말합니다. 우리의 심정과 필요를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시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인격적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8절). 기도는 하나님이 모르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 목적입니다.
2)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9-13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기꺼이 후하게 주십니다. 이러한 굳은 확신으로 기도합니다.
(1) 하나님에 대한 기도 세 가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원어에는 “이름”, “나라”, “뜻”에 “당신의”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잘 될 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공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2) 우리를 위한 기도 세 가지
이어서 우리의 필요를 위한 기도를 합니다. 먹을 양식과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영적 필요, 곧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악은 ‘그 악’, 곧 사탄을 말합니다.
3) 용서해주실 것을 간구하며 용서하는 사람으로 변화(14-15절)
12절의 “죄”는 빚이라는 뜻입니다. 14절의 “잘못”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죄를 말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서 하나님께 우리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용서하는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4. 하나님 앞에서 하는 금식(16-18절)
18절, 금식할 때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으십니다. “은밀한 중에”라는 말은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계신 그분께서 보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 죄에 대한 슬픔과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기 위해 금식하며 하는 기도는 큰 유익이 있습니다.
5. 탐욕과 염려를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19-34절)
1)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겨라(19-24절)
19절부터는 물질과 이 세상의 삶에 대해 가르칩니다. 재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합니다. 하늘에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물질을 하나님께 종속시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땅에만 쌓아두면 좀 같은 것이 “해합니다”(19, 20절). 금식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슬픈 기색”(16절)을 보이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사람의 인정도, 이 세상 물질도 그냥 다 썩어 없어집니다. 남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삶의 기준으로 물질을 사용하면 하늘에 물질을 쌓아두는 셈이 됩니다. 우리는 탐욕을 따라 물질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2) 물질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25-34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것에 대하여 탐욕을 갖는 사람은 욕심을 부리는 그 대상이 없어질까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탐욕과 염려의 뿌리는 하나님보다 이 세상 어떤 것을 높이는 우상숭배의 마음입니다. 거기로부터 욕심과 걱정이 나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탐욕과 염려는 우리 영혼이 말씀에 반응하지 못하도록 “목 조른다”고 합니다(마 13:22). 탐욕에 빠진 자는 영적으로 사단에 목 졸려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위로 하늘에 있는 새도 하나님께서 먹이십니다. 아래로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십니다(30절).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 생각의 감옥에서 걱정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늘을 올려다보고 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아궁이에 “던져진다”, 손이 범죄하면 “내버리라”(5:29, 30), 화해하지 않으면 감옥에 “던져진다”(5:25)는 같은 단어입니다. 심판을 이야기하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그냥 불에 던져지는 들풀도 먹이시고 심판의 불에 던져질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은 햇빛을 비춰주십니다(5:45). 물질적인 풍요도 주십니다.
하물며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선택받아 믿은)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나”(롬 8:3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무엇을 가져야 할 것인지 아십니다(32절). 이것을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물질 생활을 할 때도 “내 아버지는 내 필요를 아신다”라는 생각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부모와 많은 대화를 한 자녀는 부모의 마음을 압니다. 또 아버지가 자녀의 필요를 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기도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친교의 기쁨을 더해갑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33절). 주기도문의 내용을 반복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목표로 기도하고 살아갑니다.
거기에 필요한 자원은 보너스로 더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보너스를 위해서 힘쓰지 말고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동시에 자기의 의를 쌓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불신자들은 이 세상밖에 모르기 때문에 세상의 풍요와 행복만을 기도하고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알기 때문에 그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30절). 그리스도의 사랑의 목소리입니다. 책망하며 우리를 쫓아보내지 않고 사랑으로 품으시는 책망입니다. 믿음이 없는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우리는 염려하지 맙시다. 지금도 그리스도는 믿음이 작은 우리를 성령님 안에서 계속 가르치고 순종하도록 인도하십니다.
34절에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하신 말씀에서 “족하다”는 말은 자족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탐욕과 염려를 버리고 자족해야 합니다. 욕심과 걱정을 버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직분과 삶을 충실하게 살면서 자족합시다.
믿고 복종할 일
이 모든 말씀의 핵심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섭리 가운데 우리를 지키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다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은밀히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땅에서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또 다음 세상에서, 천국에서 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보상하십니다. 우리의 초조함이나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그분 앞에서 선행을 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그분의 보호를 신뢰하며 열매를 맺읍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가르침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는 표현을 5, 6장에서 반복해서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와 구약의 예언자들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으로서 “내가 곧 여호와로서 너희에게 말한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백성에게 구약이라는 언약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몸소 십자가를 통해 완성할 언약의 토대 위에서 더 명료하고 풍요롭게 그 뜻을 가르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사도들이 “내가 말한다”(고전 7:10, 12)라는 표현을 쓰면서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전 7:40)라고 말합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특별한 감동과 계시를 받은 자”로서 이방 교회의 확장에 필요한 시대적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약과 다른 새로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말씀과 일관성 있게 발전되어 가는 풍요로운 말씀을 전달합니다.
<참고>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의 말씀은 법으로서 새로운 질서를 만듦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질서를 두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약의 언약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은 신구약 교회, 곧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one holy catholic apostolic church)를 창조해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질서로서 그 위에 교회가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법칙이라서, 그에 따라 교회가 계속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완전히 망가지고 멸망해가던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으로 살려냅니다. 개인으로서 또한 교회의 지체로서 우리가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