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악의 신존재론나는 음악의 존재론적 형식을
바꾸기를 희망한다 바꿔야만 한다.
보통의 콘서트에서,
소리가 움직이고, 관객은 앉아있다.
나의 액션 뮤직에서는,
소리와 그 밖의 것들은 움직이고, 관객은 나에게 공격당한다.
– 백남준

백남준, <음악의 신존재론>, 1963, 종이에 프린트
2.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이 기계를 이용해 우리는
텔레비전 수상기 캔버스를
레오나르도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느와르처럼 화려하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폴록처럼 격정적으로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백-아베의 비디오합성기는 1,001가지 방법으로 즉석 TV를 제작해서 이를 실현하려는 작은 노력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고도의 정확성을 포기한 대신 고도의 부정확성을 얻었다…
-백남준

백남준, 슈야 아베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 1969/1972, 신디사이저(기계)
3. 자석 TV, 닉슨 TV, 참여 TV어쨌든, 당신이 나의 TV를 보게 된다면, 제발 30분 이상 지켜보기 바란다.
〔…〕
나의 TV에서 기대하지마라: 충격., 표현주의., 낭만주의., 클라이맥스., 놀라움., 기타 등등…..나는 이전 작곡에서 이런 것들을 보여주고 많은 찬사를 받았다.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황소 대가리가 13대의 TV보다 더 큰 센세이션을 낳았다. 사람들이 그 13대 TV 모니터의 각기 다른 “왜곡 현상”(?)의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게 되려면 10년이 필요할지 모른다. 전자음악에서 많은 종류의 “소음”(?)의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게 되기까지 그랬던 것처럼.
참여 TV는 분명히 (창조자, 시청자, 비평가를 일치시키는)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하지 않은가…. 훌륭하지 않은가….
-백남준

백남준, <자석 TV>, 1965/1969, 장치된 TV, 자석
백남준, <닉슨 TV>, 1965/2002, 장치된 TV, 코일, 앰프, 스위처
백남준, <참여 TV>, 1963/1998, 조작된 TV, 마이크
백남준, <왕관 TV>, 1965/1999, 장치된 TV, 오디오 신호발생기, 앰프, 냉각기
4.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나는 관객이(혹은 이 경우에는 대중이) 자유롭게 행동하고 즐기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곡의 연주를 포기했다. 나는 음악을 전시한다. 나는 방에 각종 악기와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물을 전시해서 관객이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게 한다. 나는 이제 요리사(작곡가)가 아니라 ‘식료품 가게 주인’일 뿐이다.
1) 이 악기들을 가지고 나는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 만지고, 불고, 쓰다듬고, 바라보고, 한발 앞으로 내딛고, 걷고, 달리고, 듣고, 두드리고….
2) 이 악기들은 기존의 어떤 악기보다도 더 청명한 소리를 낸다. 그리고 기존의 어떤 연주 홀보다도 더 유동성 있는 공간을 만든다. 음악과 건축 사이에 새로운 범주가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
-백남준

백남준,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 전시 포스터, 1963, 종이에 프린트
5. 굿모닝 미스터 오웰 – 뉴욕 라이브 버전1984년 새해 첫날,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모든 종류의 피드백을 만들어냈다. 케이지와 보이스는 친구이지만 한 번도 작업을 함께 해본 적은 없었다. 보이스와 긴즈버그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았다(적극적인 정치활동, 강한 퍼포먼스의 취향, 반핵을 주장하는 자연주의자, 같은 나이, 낭만주의 성향). 하지만 그들은 이전에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아주 드물게 만나는 지구의 스타들과는 달리 천체들은(화성, 토성, 직녀성, 견우성) 정기적으로 만난다. 보잘 것 없는 우리 삶에서 다른 사람과의 만남으로 얻을 수 있는 신비로움을 생각할 때 위대한 천재들이 서로 만나지 않고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쌍방향 작업은 생방송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TV를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이 전화처럼 서로 묻고 답하는 것이기에 나는 쌍방향 TV방송을 원했다.
-백남준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 뉴욕 라이브 버전>, 1984, 비디오, 57분 20초, 컬러, 사운드
6. 로봇 K-456나는 로봇이 해프닝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나는 로봇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야만 하고 마치 재빠른 샤워 같은 놀라운 일초를 선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로봇의 발을 차서 앞으로 가도록했다. 그것은 거리-음악 작품이었다. 나는 로봇을 1965년 미국으로 데리고 갔고 제 2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이 열린 저드슨 홀에서 처음 소개했다. 이후 나는 로봇을 뉴욕의 57가와 파크 애비뉴, 그리고 화창한 일요일의 워싱턴 스퀘어에 가지고 갔다. 모든 사람들이 로봇이 오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어떤 반쯤 흥분한 흑인이 이렇게 외쳤다. “신이 이 로봇을 만들었다.”라고.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내가 워싱턴 스퀘어에 로봇을 데리고 갔을 때 였다. 그것은 매우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백남준

백남준, <로봇 K-456>, 1964/1996, 전자장치, 금속, 천, 고무, 원격조정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