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이터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2017.06.27
제 6회 KOFIC 글로벌 포럼 : ‘ICT 시대, 영상콘텐츠 기획․제작․마케팅 방식의 혁신’ 세션 지상중계
세계 미디어 업계의 현황을 파악하고 한국 영화계와의 접점을 찾고자 마련된 영화진흥위원회 주최 ‘KOFIC 글로벌 포럼’이 6회를 맞아 지난 20일과 2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올해 가장 주목받은 이슈는 첫째 날 세션 2에서 다룬 ‘ICT 시대의 영상콘텐츠 기획, 제작, 마케팅 방식의 혁신’이었다. 그 중에서도 ‘ICT 시대 콘텐츠 제작자’를 대표하는 아마존 스튜디오 제작부문 테드 호프 대표는 올해 가장 조명받는 게스트였다.
넷플릭스와 더불어 세계 OTT 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아마존 스튜디오는 2015년 1월부터 테드 호프의 진두지휘 아래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세일즈맨>을 시작으로 토드 헤인즈,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신작을 확보하며 할리우드에서 확실한 입지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관객을 움직이게 하는가?
그러나 무대 위에 등장한 테드 호프는 의외의 말로 발제를 시작했다. “처음 아마존에서 대표직을 제안 받았을 때, 나는 그들에게 데이터를 기준으로 영화를 고를 것인지를 물었다. 그러나 아마존은 알고리즘이 아닌 사람이 직접 선택하는 방식을 택했고, 그것이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된 이유이자 경쟁사(넷플릭스)와의 확연한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 스튜디오가 왜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신발을 팔기 위해 존재한다고 답했다. 아마존은 영화 플랫폼일 뿐 아니라 거대 온라인 쇼핑몰이고 영화는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면서 “스튜디오의 궁극적 목표는 관객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고객의 신뢰는 플랫폼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때문이다. 퀄리티는 바이러스와 같아서 고객 사이에서 빠르게 전파된다.”고 말했다.
또 “ICT 시대의 관객들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오히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영화에 대한 필요와 만족을 점점 느끼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더욱 더 필터가 필요하고 그 필터는 결국 극장”이라면서 “아마존이 단 한 가지 종교처럼 맹신하는 룰이 있다면 그것은 극장 개봉작만 만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아마존은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IMDB’를 소유하고 있어 홍보 및 마케팅 예산도 거의 필요치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테드 호프는 마지막으로 아마존 스튜디오가 선택하는 영화의 기준에 대해 “누가 만들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영화, 열정적인 토론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동시에 보편적 감성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 영화여야 하며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고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반면 미국의 빅 데이터 기반 마케팅 회사인 모비오(MOVIO)의 수석부사장 매튜 리브만은 ‘숫자로 보는 극장관객’을 주제로 내세우며 “박스오피스만 분석할게 아니라 극장에 가는 관객이 어떤 패턴으로 움직이는지를 360도 관점에서 분석해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면 매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흥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장르인데, 특정 장르를 선호하는 관객의 성별, 나이, 극장 방문 시기와 빈도 등을 기본으로 관객을 분석하고 또 영화 내부적 요소(스토리, 배우의 나이 등)의 변화가 생겼을 때 관객 반응을 분석한다.”고 자사의 데이터 분석 방식을 설명했다. 또 “데이터를 통해 현재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관객이 한 번이라도 더 극장에 가도록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면 한정된 예산과 시간 속에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고,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어 정확한 타깃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면서 “앞으로 영화산업에서 빅 데이터 활용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국내 상황은 어떨까? 토론에 나선 쇼박스의 정근욱 운영총괄 본부장은 “데이터에 대한 내부적 고민이 많다”고 운을 뗐다. 그는 “투자배급사 관점에서 영화 상품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데이터에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매번 블라인드 시사를 열어 사전기대도와 사후만족도 조사를 한다.”면서 “쇼박스의 경우 2014년에 서울대 연구소와 함께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해 현재 2.0 버전까지 발전시켰지만 문제는 결국 주관적 판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한국의 경우 영화 흥행이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다 경쟁작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어 결국 자의적 선택으로 데이터를 읽고 분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영화를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서 모든 데이터와 박스오피스의 관련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개봉하는 주 토요일 관객 수와 SNS 선호도가 흥행 연관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더불어 “1년에 300편 이상의 시나리오를 보면서 8~9편을 솎아내는 결정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데이터는 충분히 있을 수 있으며, 데이터 해석 능력 역량이 올라갈 때 각 단계에서 보다 더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지금은 개봉 6주 전부터 데이터를 수집하지만 마케팅에서는 12주 전으로 업그레이드하고, 궁극적으로는 기획, 투자부터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데이터는 만능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형 OTT 사이트인 ‘옥수수’의 SK 브로드밴드 이상진 모바일콘텐츠 팀장 역시 빅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콘텐츠 기획, 개발에 대해 자사의 사례를 중심으로 발제에 나셨다. 옥수수는 2016년 1월 서비스를 시작하여 <1%의 어떤 것>, <마녀를 부탁해>를 비롯한 오리지널 콘텐츠 14편을 제작한 바 있으며 2017년에도 20편의 타이틀 제작을 진행 중이다. 이상진 팀장은 “최근에는 감독과 프로듀서들도 개인적으로 데이터를 많이 참고하는 추세다. 사용자의 이용 행태와 반복적인 패턴 분석을 통해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하는 OTT 사업자도 예외가 될 순 없다”고 말하면서 “옥수수 역시 기본적으로 시청자의 성별, 나이, 관심사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편성에 있어서도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의 조건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ICT 시대라는 새로운 환경이 불러온 변화 속에서 영화가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다. 테드 호프 대표는 “영화를 제작, 배급하는 과정에서 예측이 빗나가는 일은 다반사이며 언제나 직면해야 할 문제다. 우리는 뭔가 잘못됐을 때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데 데이터 맹신에 허점이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전체 영 산업은 계속해서 변화하기 마련이고 새로운 회사가 등장해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일쑤다. 중요한 것은 관객과 직접 관계를 맺고 일정한 퀄리티의 영화를 제공해 신뢰를 얻는 것”이라면서 “관객의 취향은 어느 때보다 급속도로 바뀌고 있지만 월정액 시스템이 새로움에 대한 리스크를 줄여주고 새로운 영화에 대한 수용도 키우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쇼박스 정근욱 본부장은 “한국은 할리우드와 달리 공포, 스릴러, 코미디 등 장르영화 기반이 탄탄하지 않다. 그래서 더욱 트렌드를 볼 수밖에 없고 플랫폼에 대한 변화의 크기도 아직 적은 편”이라고 한국과 미국 시장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옥수수의 이상진 팀장은 “OTT의 성장은 시의성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성장한다.”고 말하면서 “요즘 10대는 TV를 보지 않는다. 20~30대와 50~60대 관객의 관심사도 확연히 다르다. 앞으로는 과거처럼 100~200억 규모 영화를 만들기보다 세세하게 타깃팅한 콘텐츠를 만드는 편이 성공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이 날 토론의 결과는 “데이터는 영화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열쇠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영화산업에서 적절한 데이터를 활용해 방향을 가늠해나가는 것은 이제 피해갈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됐다는 사실만은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