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시간표)
1004병동 6번 방 (입원 둘째 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아내의 모습이 애처롭다. 헐렁한 옷, 초점 잃은 눈동자, 깡마른 몸뚱이는 병원(病院)이란 낱말과 맞춤이다. 13년 전에도 이 병원에서 지금과 비슷한 환자복을 입었었다. 그때도 얼른 벗겨달라고 기도했었다.
아내의 가느다란 팔목을 여러 번 더듬더니 기어이 혈관을 찾아냈다. 당황하던 간호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무래도 수습생 딱지를 뗀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혈압과 체온을 재고, 이런저런 약물 튜브를 달아맨 다음, 조심스럽게 흐름의 속도를 조절하였다. 나는 아내의 혈관으로 들어가는 서너 가지 약물의 효용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질문하지 않았다. 대신 인쇄된 글자를 분별하여 사전을 이용하였다. 어떤 약물은 바쁘게 들어가고, 다른 녀석은 느릿느릿 여유가 있었다.
수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여러 가지 약물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닐 것이다. 아내의 몸 상태를 거부감 없도록 적응시키려는 것이겠지. 약은, 혈관주입으로도 모자란 듯 입으로도 삼키는 종류도 여럿이다. 틈만 나면 혈압과 체온, 눈알에 손전등 불빛까지 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잠드는 횟수를 늘리고 있었다. 이 또한 약물의 작용일 것이다.
오늘의 스케줄은 MRI 촬영과 뇌혈관 조영검사(cerebral angiography)다. MRI나 MRA는 여러 차례 경험이 있다. 그에 비하여, 조영검사는 처음이다. 엠 알 에이는 자기공명 혈관 검사지만, 이번에는 뇌혈관 속에 조영제를 주입하고 X선 촬영을 한다. 그 때문에 환자의 불편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간호사는 ‘금식’이란 카드를 침대 앞에 걸어 놓고, 확인서를 디밀었다. ‘조영검사 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병원은 책임이 없고, 당신들이 감수한다.’ 뭐 그런 내용이다. 되도록 찬찬히 읽어보고 서명을 했다. 간호사의 눈치를 보니 오랫동안 꼼꼼하게 읽으면서 자꾸만 질문하는 내가 마땅치 않은 것 같다.
저녁 6시, 약속대로 아내의 밥은 나오지 않았다. 점심까지만 해도 절반씩 나누어 먹었었다. 저녁은 컵라면만 먹을 수뿐이 없다. 환자 밥은 보험에 해당하여 저렴하다. 하지만 보호자가 신청할 경우 시내 괜찮은 식당 밥값과 맞먹거나 높다. 돈도 돈이지만 병원 밥과 초상집 밥은 아무리 유명한 조리사의 솜씨라 해도 입맛이 안 당긴다. 이 또한 단점 중 하나다. 병원 안에는 식당은 물론 빵집,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혼자는 절대로 안 사서먹는다. 편의점을 둘러보았다. 컵라면 종류가 이처럼 많은 것 또한 처음 알았다. 입맛대로 사서 병원 밥 두어 숟가락 넣으면 당분간은 별미일 것 같다.
1004병동에는 환자 대부분이 머리에 붕대를 감았거나 감마나이프 수술용 철 가면 틀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모두 뇌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다. 약으로 멈출 정도의 통증은 아닌 것 같다. 머릿속에서 암 덩어리가 이리저리 세를 넓히고 다니는데 오죽하겠나. 나는,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병동 한 바퀴를 돌았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숙지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곳은 전자레인지와 정수기 위치다. 하루에 세 번은 병원에서 마련한 간이주방을 이용해야 한다. 밥시간 10분 전에 그곳으로 가야 한다. 늦게 가면 정수기에 뜨거운 물은 바닥이 나고, 전자레인지도 한참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환자와 보호자의 합은(26개 병실 x 2명 = 52명)이다. 정수기와 전자레인지의 수와 비교하면(정수기 1개소, 전자레인지 3개) 차이가 크다. 원무과 측에 조금만 더 환자를 배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웃음을 잃은 남녀 환자와 보호자들이 묵묵히 걷는다.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침묵시위 같다. 더러는 부축을 받거나 휠체어에 앉아서 병동을 한 바퀴를 돈다. 공통적인 것은 주렁주렁 링거주사 병을 매달았다는 것이다. 어쩌다 머리에 붕대만 감고 운동하는 사람과 마주칠 때도 있다. 그들의 발걸음과 표정은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곧 실밥을 뽑고 퇴원한다는 의미다.
친친 붕대를 감은 개두술 환자가 인사를 한다. 6번 방 최고참이시다. 뇌종양 경력 또한, 아내보다 엄청 선배다. 이번이 다섯 번째 개두술 이라며 쓸쓸하게 웃었다. 마흔에 시작한 뇌수술이 올해로 76세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보다도 봄가을을 서너 번 더 맞이했고 배웅한, 인생선배다. 두려움이나 아픔을 억제하는데 이력이 붙어선 지, 겉으로는 당당해 보였다. 하지만 밤에는 달랐다. 그분과 우리의 침대는 커튼 한 장으로 칸을 두었다. 나의 잠자리는 환자의 침대와는 차별이 뚜렷하다. 높이로만 따져도 바닥이다. 그것도 밤과 낮의 역할이 다르다. 의자였다가 침대로 변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아내 곁에 있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공명현상 때문일까? 누워 있으면 6번 방 환자들의 앓는 소리가 더욱더 선명하게 들린다. 공기역학적으로 봐도 입구 쪽으로 소리가 모으는 것 같다. 두 번째 밤을 보내고 있지만 1번에서 6번까지 앓는 소리만으로도 얼굴을 알 수 있다. 병명은 물론 나이까지도 거의 다 파악했다. 물론 그들의 신상은 민감한 개인정보다. 하지만 침대 앞에 붙어있는 명찰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눈길을 잡아당긴다.
아내는 약의 작용 때문인지 오후 10시도 안 돼서 잠들었다. 숨소리가 안정적이다. 오늘도 나는 잠들기는 글렀다. 책을 펴들었지만, 활자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어제 우리보다 한발 늦게 도착한 환자의 신음소리가 나의 뇌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는 나도 뇌 환자가 되는 게 아냐? 혼자서 걱정하다가 담당 교수와의 상담 내용이 떠올랐다. “암 덩어리가 세 곳에 있습니다. 두 곳도 만만치 않지만, 나머지 한 곳이 문제입니다. ‘신피질’이란 곳인데요. 그곳에서는 논리적, 사고력, 판단, 언어 등 지적 활동을 담당하는 부위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즐거움은 물론 슬픔도 인지하거나 표현조차 못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암이 신경 쪽으로 뿌리를 뻗쳤다면, 건드리지 않고 향후 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 아,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나도 저들의 신음에 코러스가 되어 밤의 적막을 깨트렸다.
앓는 소리가 스테레오로 들렸다. 어떤 분은 뼈를 깎아내는 통증이고 다른 분은 생살을 인두로 지지는 아픔인 것 같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던지 창가 쪽 두개수술 환자의 침대에서 비상벨을 누른 것 같다. 부스럭, 부스럭, 간호사의 손놀림이 조심스럽다. 진통제와 수면제를 링거액에 희석하는 것 같다. 조금 있으면 아픔을 잊고 잠들 것이다. 하지만 신음은 릴레이로 침대와 침대로 빠르게 전염될 것이다.
아, 내일모레면 아내도 수술을 받는다. 살면서 달콤한 기다림은 있었지만, 고통의 기다림은 흔하지 않았었다. 수술 결과를 기다리는 보호자의 심정은 함부로 글로 표현하기 싫다. 13년 전 1차 수술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그 기다림은 참으로 비참하도록 절박했기 때문이다. 이제 곧 그런 기다림은 전보다 덩치를 부풀려서 나에게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태연한 척, 담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곧 아내를 안심시키는 것이니까.
오늘도 나는 노트북을 열고 이런 문장을 담는다. ‘삶이란, 내가 희망하는 상수(常數) 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변수(變數)의 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
첫댓글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으로 읽었습니다. 누구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병상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합니다. 경황 없는 가운데도 꼼꼼히 병원 전반의 풍경을 묘사하다니 대단한 정신력입니다. 훗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되기를 빌며 두 분 가정에 행복이 함께 하기를 응원합니다.
삶과 죽음이란 명제 앞에서 인간은 어떤 태도로 현재에 대처하는 지 단면보다 더욱더 넓은
조감도를 보는 듯 매일 긴장감 속에서 아내를 포함한 모즌 환자와 함께 호흡하려 노력했습니다. 무엇보다 성찰의 시간을 갖을 수 있어 '유익'했다.라고 엉뚱한 말을 합니다.
경황 중에 글로써 위안을 삼고 의지를 북돋고 계심에 위로를 드립니다.
그저 힘내시고, 용기 가지시라는 말씀 드립니다.
사모님의 의지, 해헌님의 간절함, 의료진의 의술과 정성은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만리포 앞바다의 푸른 물결을 그려보시며 거듭 용기 내시라는 말씀 드립니다.
쾌유, 쾌유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만약 제가 문학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내와 함께한 병동생활은
그저 무색으로 남았을 겁니다. 어차피 건너야 할 강가에서 삽다리라도 만날 수 있어
여생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격려에 힘입어 열심히 살겠습니다.
역시 이선생님 꼼꼼 하세요.
생각지도 못한 사진들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병원에 있다 보면 시간은 안 가고 답답은 하고 그렇지요.
그래도 노트북에 일기를 쓰면서 하루하루 보내시다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코로나까지 겹친 병동생활은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또 다른 삶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를 다 털어 놓을 수 없는 참으로 뜨거운 일기였습니다.
간호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글로 객관화시키는 열정에 감탄하며 이태호 선생님 부부의 앞날에는 건강과 평안만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한 인간의 마음 속에 인색한 마음과 웅대함,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 이렇게 반대되는 것이 나란히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는 어떤 작가의 글귀가 떠오릅니다. 도저히 치유 불가능하다는(수술 할 수 없습니다.)의사의 말에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환자가 있는 반면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맏기겠다는 환자도 있었습니다. 이 또한 믿음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푹푹 찜니다. 에어컨은 환자의 몸에 안 좋다하여 모든 문을 열어 놓고 선풍기로 공기를 순환시키고 있습니다.
바다가 코 앞에서 유혹하지만 종일 방안에서 아내와 함께할 수 있음도 또다른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날로 회복의 힘에 가속이 붙습니다. 격려와 용기를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