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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붕아래 하늘길 “茶馬古道” (2009. 8. 21 - 31)
1. 서두
차마고도(茶馬古道) !
KBS TV에서 특집으로 방영된 바 있어 많이 알려진 곳이다.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200여년 앞서 만들어진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로 운남성과 사천성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환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운남, 사천에서 시작하여 티벳을 거치고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5,000km가 넘는 장대한 길을 말한다.
몇 년전 기회가 있어 여행해 보았던 중남미, 아프리카, 중국의 실크로드, 모두 힘들다고 하는 여행코스라 하여도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고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더 가보고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데 그보다 더 험난한 곳이라기에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이번 여행을 결심하기에 이른 것이다..
함성호 님의 티베트기행 산문집 “허무의 기록”을 읽으며 고산지대 적응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2007년 8월 중남미 여행 시 페루의 뿌까뿌까 유적지(해발 3,900m), 마츄피츄 유적지(해발 2,400m), 티티카카호수(해발 3,800m)를 보기위하여 고도 3,900m에 위치한 호텔에서도 숙박을 하였고, 꾸스꼬와 프노경계의 4,335m지역을 통과하면서 고도에 대한 경험이 있어 스스로 자신감을 가져 본다.
또한 혜초여행사에서 보내준 이은숙 님의 티벳안내서 “티벳”이 여행코스를 이해하고 여행 물품을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번 여행 코스는 중국의 곤명(昆明)에서 비행기를 타고 티벳의 중전(Shangri-la)까지 가서 그곳부터는 버스와 지프차를 타고 덕흠(德欽), 염정(鹽井), 망캉(芒康), 좌공(左貢), 빠수(八宿), 포미(波密), 빠이(八一), 라사(拉薩, Lasa))까지 옛 차마고도를 따라서 만들어진 신 차마고도 코스 1,600여km를 여행한 뒤 청장열차를 타고 시안(西安, Xi an)에 도착하여 인천으로 돌아오는 10박11일 코스로 처음에는 여러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계획하였던 것인데 너무 힘든 곳이라고 포기하여 우리 부부와 친구 두 사람만 여행을 하기로 하고 혜초여행사의 다른 여행객과 합하여 모두 10명이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2. 티벳의 역사
티벳은 지구상 최대(最大), 최고(最高)의 고원인 티벳 고원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 4,000m가 넘어 파미르고원과 함께 “세계의 지붕”이라 불린다.
현재 중국 시짱(西藏)자치구에 속해 있으며 면적은 120만㎢로 중국전체 면적의 1/8이고 남한면적의 12배가 되는데 인구는 280만명에 불과하다. 남쪽은 인도, 네팔, 부탄, 미얀마와 국경을 이루고 남동쪽은 윈난성(雲南省), 동쪽은 진사강(양쯔강 상류)을 경계로 쓰촨성(四川省), 북쪽은 신지앙(新疆)위구르 자치구에 접해 있으며, 주도(主都) 라사(拉薩)는 중국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우기(6월-9월)와 건기(10월-다음해 5월)의 구별이 확실하며, 우기에는 연간 강수량이 200mm 가량 된다.
티벳 최초의 왕조는 라사에서 120km 떨어진 체탕에서 시작되었는데 7세기 송첸캄포는 모든 티벳족을 통합해 통일국가를 형성하였으며 당나라를 침공할 정도로 강성하여 중국과 네팔의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모택동은 무력을 동원하여 티벳을 점령하고 달라이 라마 14세에게 주요 요직을 주며 회유하기도 하였는데 1959년 티벳의 공산화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나고 120만명에 달하는 티벳인들이 희생되면서 달라이 라마 14세는 인도 맥그로드 간즈로 망명하였고 현재 인도 북부 히말라야 기슭 다람살라에 망명정부가 수립되어 있다.
3. 차마고도로의 여행
2009. 8. 21(금). 모처럼 청명한 날씨이다.
오후 4시 반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혜초여행사에서 나온 가이드 천진희 씨를 만나 출국수속을 하고 같이 여행을 하게 될 일행 10명이 모여 인사를 하였다. 오후 7시05분 이륙을 시작한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비행기 대한항공은 굉장한 추진력을 보여 주며 단숨에 고도를 높여 목적지를 향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300석의 비행기가 빈자리 없이 만석이다.
오른쪽 비행기 창가에 석양이 아름답게 비친다.
중국 곤명(昆明)의 무가바 국제공항에 예정시각보다 30여분 빠른 오후 9시55분 도착하였다.
중국은 시차가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으며, 전국이 같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마다 해 뜨고 지는 시간에 차이가 많다고 한다.
신종 풀루 때문에 검색요원이 비행기 안에 들어와 승객 하나하나의 출발지, 경유지 등을 확인한다.
검역과 입국심사를 하느라고 1시간여를 소요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현지가이드 김명남씨가 꽃목걸이 하나씩을 목에 걸어주며 반긴다. 곤명은 꽃의 도시라고 하며 그 상징으로 꽃을 걸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 공항은 1922년 중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공항이며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공항이라고 하는데 고도가 해발 1,891m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한라산 정상과 비슷한 정도이다.
곤명은 운남성 중 8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는 580만 명이라고 한다
(운남성의 면적은 39.4㎢, 인구 4,235만 명)
호텔까지 이동하는 도로 양쪽에는 가로등이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는데 호텔까지 이동하는 동안 현지가이드 김명남씨의 주의사항에 대한 설명이 무척 빠른 말로 진행된다.
“고산지대에서는 수시로 물을 많이 먹어라, 자외선이 강하니 썬 크림을 많이 발라라, 수질이 좋지 않으니 수돗물을 먹지 말라, 가방 등 소지품에 조심하라” 등.
30여분 이동하여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해항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2009. 8. 22(토) 이른 4시30분 기상.
비행기 출발시간 때문에 일찍 일어나 호텔에서 우리를 위하여 특별히 마련해준 식사를 간단히 하고 어둠속을 이동하여 공항으로 향하였다.
이른 새벽인데도 국내여행객들이 이용하는 국내선 공항은 많은 사람들로 무척 북적인다. 중국은 워낙 크기도 하지만 곤명은 항상 봄 날씨 같이 좋은 기후라고 알려져 있는 좋은 관광지이며 주변에도 좋은 관광지들이 많이 있어 국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게 되는 까닭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해발 3,300m지역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전에 고도가 높은 페루에 갔을 때 머리가 아파 고생한 기억이 있어 고산증 예방약 다이나막스를 한 알 먹었다. 다이나막스는 고상증 예방에 좋은 약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미리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준비해 가지고 갔는데 가이드가 3일분씩을 따로 포장해서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7시 40분에 곤명 무가바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한시간만에 중전 샹그리라(Shangri-la) 공항에 도착하였다. 날씨가 약간 흐리나 공기는 맑고 참으로 깨끗한 느낌이다.
비행기 밖으로 나오니 기온이 싸늘하여 잠바를 꺼내 입고 현지 가이드 김철용씨를 만나 공항을 빠져 나왔다.
여기는 해발 3,380m라고 하니 다소 긴장되기도 하지만 차창밖에 비치는 모습은 전형적인 우리의 농촌처럼 조용한 시골 풍경이다.
중전현은 샹그리라의 수도로서 히말라야 산맥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데 1959년까지는 티벳 땅이었으나 모택동정부가 티벳을 침공하고 나서 운남성에 편입하였으며 12개 소수민족이 모여 살고 있는데 그중 장족인 티벳인이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도로에는 방목하고 있는 돼지, 양, 염소, 소, 야크 등이 차량을 피할 생각도 안하고 느릿느릿 지나다니고 있으며 가끔 너와집같이 지붕에 널빤지를 깔고 그 위에 큰 돌들을 많이 올려놓은 집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 바람이 많은 지역인가 보다.
공항을 출발한지 20여분 만에 송찬림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송찬림사를 구경하였다. 송찬림사는 티벳어로 “세 부처님이 놀다간 지상낙원”이라는 의미라고 하며 1679년 청나라가 오삼계에게 영토의 반을 빼앗겼을 때 티벳 제5대 달라이 라마의 지원으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겔루파의 창시자이며 달라이 라마 1세의 스승인 중카바가 건립하였다. 이절은 겔루파의 사찰로서는 처음 건립된 사찰로서 안에는 높이 18m나 되는 중카바의 동상이 있고 절의 큰 건물 두 개의 지붕은 순금으로 덮여 있어 멀리서도 누런 지붕의 모습을 알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고도가 높은 지역인데 올라가는 계단이 180여개나 되어 올라가기에 힘이 들었다. 우리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중간 중간 쉬다가 천천히 올라갔다.
송찬림사
해발 3,380m 차마고도의 시작점인 중국 운남성 중전 Shangri-ra에 있는 절로서 큰 두개의 지붕은 순금으로 덮여 있다.
구경을 마치고 샹그리라의 중심도로인 중전시내의 장족로를 통과하여 이동하였는데 시가지가 제법 크게 형성되어 있고 도로 양쪽으로는 상가들이 이어져 있으며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곳은 티벳에서 마방들이 들어오는 첫 번째 마을로 차마고도의 시작점이다.
오늘 이동하게 되는 일정에 맞추기 위하여 12시도 안되어 이른 점심을 먹고 버스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오늘은 193km 거리를 6시간에 걸쳐 이동하게 되는데 해발 2,000m까지 내려갔다가 4,300m까지 올라가 산을 넘고 해발 3,480m에 위치한 덕흠에 도착하여 하루 밤을 머무르게 된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량은 꾸불꾸불한 214번 국도를 하염없이 달리고 있는데 이 길은 옛날 차마고도 길을 넓히고 포장한 것으로 도로 양쪽에는 파란초원이 펼쳐지고 있으며 야크와 황소의 잡종이라고 하는 편소가 많이 방목되고 있다.
40여분을 달리다 샹그리라 스키장 앞에서 잠시 휴식을 하였다. 높은 산위에서 내려오는 두 개의 스키코스가 보이는데 지금은 눈이 없어 코스의 모습만 보인다.
휴식을 하고 있는 곳이 차량에 물을 채워주는 집인데 어린이가 나와 우리의 차량에 물을 채우고 돈을 받는다. 차량들이 고도가 높은 곳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차량의 뒷바퀴 위 부분에 물통이 달려 있어 이곳에서 물을 채우고 경사를 내려갈 때 조금씩 물을 흘려보내 바퀴의 열을 식힌다고 하는데 이런 영업을 하는 곳이 여러 군데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흐리던 날씨는 개여 기온은 지내기에 적당한 정도로 좋다. 도로에 다니는 차량은 많지 않으나 산길이 워낙 꾸불꾸불하여 차량들이 속도를 내지 못한다.
도로 양쪽으로 이어지는 산에는 작은 나무들만이 자라고 있으며 산 밑으로 조그만 마을과 밭들이 가끔씩 나타난다.
이러한 길을 한 시간 정도 달리자 엄청난 황토색 물결이 흐르는 금사강이 보인다. 총 길이 6,443km나 되는 중국에서 제일 긴 양자강의 상류다. 이 물이 지금은 우기라 황토색을 띄우지만 건기에는 비취색을 띄어 매우 아름답게 보인다고 한다.
이 강을 지나는 화룡교를 건너고 나니 도로 양쪽에는 약간의 풀만 자라고 있는 높은 바위 악산이 이어지고 있다. 다리를 건너기 바로전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사천성이고 우리가 건넌 쪽은 운남성이다.
옛날 차마고도 마방이 있어 차마고도 여행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하였다는 군자란 마을을 지났다. 강가에 위치하고 있어 경관도 좋고 상가도 많이 형성되어 있으며 사람들도 번화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제법 큰 마을로 보인다.
이제 고도가 점점 높아지는가 보다. 해발 3,000m정도 되는 곳에 있는 금사강(金沙江) 제1만 월양만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지금도 한창 공사를 하고 있는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사강의 굽이굽이 모습이 멀리 정답게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고 바쁘다.
월양만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사강(길이 6,443km 양자강의 상류)
오후 4시경 해발 4,292m 백마설산(해발 5,040m) 고개에 도착하였다. 오늘 이동하는 구간에서는 가장 높은 곳으로 많은 여행객들이 표지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기에 바쁜데 가는 안개비가 뿌리고 있어 날씨는 무척 쌀쌀하다. 기념촬영을 한다고 바쁘게 움직였더니 숨이 차다.
잠시 쉬고 한 시간을 달려 영빈대에 도착하였다. 티벳의 영산 메리설산의 조망이 가능한 곳이라 기대가 컸으나 비가 오다 그치다 계속되니 안개가 자욱하여 안타까운 마음이다. 대형 티벳식 탑 13개가 나란히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에서 많은 티벳인들이 메리설산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티벳의 영산 (해발 7,000m)인 메리설산의 조망이 가능한 영빈대의 대형 티벳식 탑
오후 5시45분이 되어서야 오늘의 목적지 덕흠(德欽)의 명주호텔에 도착하였다. 이 호텔은 해발 3,480m에 위치한 덕흠의 페이리쉬라는 조그만 마을에 있는 호텔로 시설은 빈약하나 티벳인들이 매우 신성시 하는 메리설산(해발 7,000m)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라고 한다.
전번까지만 해도 덕흠 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숙박을 하였는데 이번부터 덕흠 시내에서 30여분 떨어져 있는 이곳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방에 들어와 창문을 여니 메리설산의 위용이 나타난다. 정상에는 흰 눈이 조금 보이고 산허리에는 안개가 휘감고 있어 보이지는 않으나 보일 듯 말 듯 한 그 자태가 더욱 감미로움을 느끼게 한다.
안개에 싸인 메리설산의 위용
7시에 식사를 하였는데 식사는 현지식으로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일행 중 두 사람이 고산증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호텔이 있는 곳이 높은 곳이라 계단을 오르려면 조금씩 쉬어가면서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고도에 적응이 안 되어 힘 드는지 저녁 후 모두 일찍 쉬겠다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우리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009. 8. 23(일) 06:30. 모닝콜에 잠을 깨다.
머리가 약간 무겁다. 창문을 열고 메리설산의 자태를 쳐다보니 안개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안타깝다.
식사는 쌀죽과 식빵, 만두, 계란이 전부다.
오늘부터는 길이 좋지 못하여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4인승 지프차로 이동한다고 한다. 우리 일행 10명과 가이드 2명이 3대의 지프차에 교대로 타기로 하였는데 우리부부는 친구 두 사람과 같이 한차에 타게 되었다.
모두 조용하고 아름다운 이 마을을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메리설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찍어보려고 안타깝게 구름의 흐름을 바라보고 있다.
호텔을 출발하려고 하는데 호텔 현관 앞에 직원들이 줄을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호텔에 온 것을 환영하며 여행기간동안 복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각자의 목에 가타(이곳 사람들이 신성시 하는 것으로 흰 명주로 된 긴 스카프)를 걸어준다. 이렇게 환대를 받고 호텔을 출발하여 부근에 있는 메리설산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메리설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큰 탑 모양의 화덕이 있고 사람들이 화덕 안에 기름을 뭍인 생 나뭇가지를 태우며 기도하는 곳이라고 한다. 마침 고위직 관리가 왔는지 앞뒤로 호위하는 경찰차량이 도로를 통제하여 차량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도 불평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일행도 그들과 함께 생나무가지를 태워보기도 하며 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구경하였고 호텔에서 받은 가타를 그들처럼 나뭇가지에 걸어 두었다.
기도 예식이 모두 끝나고 그들이 떠나자 차량통제가 풀리고 우리도 한참을 지체한 후 그곳을 출발하였다.
페이리쉬 마을의 제사 의식을 행하는 탑의 모습
티벳의 영산 메리설산을 향하여 제사 의식을 행하는 탑으로 생나무가지를 기름에 적셔 태우며 기도 한다.
한 시간쯤 달리자 옛날 마방들이 다니던 차마고도가 넓게 보이는 지역에 도착하여 기념촬영을 하였다. 강변 바위 옆을 꼬불꼬불 길을 내서 이용하였던 것이 지금 보기에도 매우 위험스러워 보이는데 지금도 간혹 이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30여분을 달려 여행객 신고소에 여행신고서를 제출하고 통과하여 차는 계속 달리는데 도로는 아스팔트 포장공사 차량 때문에 중간 중간 지체되기도 한다. 도로 아래로는 메콩강 상류인 란창강의 엄청난 황토물이 무서울 만큼 힘차게 흘러가고 건너편 옆으로는 옛날 차마고도의 꾸불꾸불한 산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란창강 옆으로 이어진 차마고도
옛날부터 차마고도로 이용하던 길로서 강가 바위사이에 길을 내었는데 지금도 일 년에 몇 번 씩은 옛날처럼 이용한다고 함.
우리의 지프차가 갑자기 멈춰 선다. 내려 보니 왼쪽 뒷바퀴가 펑크다. 뒤 따라 오던 3호차 차량기사와 둘이서 신속히 교체한다. 차량도 노후하고 도로도 좋지 못하여 운행 중 차량이 고장 나는 경우가 많아 이렇게 수리하는데도 익숙해 있다고 한다.
12시 반경 염정(鹽井)에 있는 식당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였는데 중국 현지식으로 야채볶음, 돼지고기 볶음, 감자, 배추, 버섯볶음 등 간단한 식사다. 식사가 끝나고 소금을 만드는 옛 마을로 들어가기 위하여 5분정도 이동하였는데 도로 확장공사로 길이 막혀 30여분을 지체하여 간신히 통과하였다. 아침에 호텔에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이 구간을 차량이 통과할 수 없어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기로 하였던 것인데 식당에서 관계기관에 조치를 해 주어 어렵게나마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여분 차량으로 이동하니 또 공사구간을 만나게 되었고 여기서 부터는 걸어서 마을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우리는 강에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고 강줄기를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
망캉현에 속하는 이곳은 해발 2,607m의 란창강 변의 골짜기에 있는 작은 마을로 소금물이 담긴 10kg이나 되는 대나무 통을 하루에 100여 통씩 실어 나르며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고 있다. 강가에 50여개의 염정이라고 바닷물이 나오는 샘이 있고 그 옆에는 통나무 기둥위에 황토 흙으로 계단밭을 만들어 그 위에 바닷물을 채우고 햇볕과 바람에 말려서 소금을 만드는 것이다.
란창강 변의 골짜기에 있는 염정마을
바다로부터 수천km이상 떨어진 이곳은 옛날에 바다였는데 지각변동에 의해 인도양판과 아시아판이 충돌하면서 융기하여 히말라야 산맥을 이루었고 함께 융기한 바닷물이 지하에 호수로 존재하기 때문에 지하에 갇힌 바닷물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한창때는 1년에 150만 톤의 소금을 생산하였는데 정부에서 관광용 정도로만 유지하도록 유도하고 있어 쇠퇴하는 듯 곳곳이 부실하게 무너져 관리가 안 되는 곳도 있다. 오늘은 마침 우기라 며칠 동안 비가 많이 와서 염전으로 운영되고 있는 장면은 보지 못하여 아쉬웠다. 마을에는 60여 호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밭에는 주로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는 평화로운 시골마을 그대로의 모습이다.
한 시간 반 정도 염정마을을 구경하고 차량 대기소에 도착하니 기사들이 커피와 과일을 준비해 놓아 맑은 하늘아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나마 여유 있게 담소의 시간을 가졌다.
오후 4시에 다시 출발하여 티벳에서 유일한 천주교 성당을 둘러보았다. 1870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하여 세워진 티벳 유일한 성당으로 신자는 500명 정도인데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티벳의 라마교 사이에서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관리자가 우리 관광객을 위하여 일부러 성당 문을 열고 안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었는데 크지는 않으나 아담하고 단정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티벳 유일의 성당
성당을 출발하여 한 시간 정도를 도로에 방목되고 있는 소, 말 등을 피해가며 조심스럽게 운전하다가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하였다. 길 아래 멀리 마을이 아담하게 보이고 그 옆에 강물이 유유히 흐르며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이 꾸불꾸불 이어지는 포장도로, 그 좌측으로는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보이는 마을과 강물의 모습, 도로 양쪽으로는 깎아지른 듯 위엄 있게 버티고 서있는 산들의 모습, 이 길은 얼마나 끝없이 이어지는 것인지?
또 30여분을 달려 홍라 패스 4,220m고지에 도착하였다. 패스는 고개를 말하는 것으로 오늘 일정중 제일 높은 위치이다. 바람이 싸늘하여 잠바를 꺼내 입고 사진을 한 장 찍고 출발하는데 산길을 돌아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우리가 내려가야 할 도로가 까마득하게 보인다.
30분정도 가다보니 도로 옆에서 송이를 파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KBS특집에서 티벳인들이 송이를 팔러가는 모습을 보았던 생각이 나서 우리는 잠시 차를 멈추고 흥미롭게 구경하였다. 가격은 1kg에 10위안(약 2,000원)정도로 매우 싸기는 하지만 서울에 가지고 갈 수 없으니 살 수도 없고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오후 7시20분에 해발 3,876m에 위치한 망캉(芒康)에 도착하였다. 망캉은 티벳 동남부에 위치하며 티벳어로 “선묘의 땅”이라고 불리는데 “망”은 붉다는 뜻으로 오늘 망캉까지 오는 동안 보았던 산들이 모두 붉은 빛을 띠는 것에서 유래하였고 “캉”은 티벳의 캄 지역을 뜻하는 것으로 동 티벳을 나타내는데 옛날 싸움터에 나가는 전사를 선발할 때는 용맹이 뛰어난 동 티벳 남자만 선발하였다고 한다.
망캉은 조그만 마을로 집은 돌과 흙벽돌로 지어져 있고 날씨가 추운지 사람들은 두꺼운 옷들을 입고 있었으며, 공사 중인 도로에는 방목하고 있는 소, 돼지와 무질서한 사람들로 매우 어수선하다.
공사 중이라고 호텔로 들어가는 도로를 차단하여 30여분 걸려 망캉 호텔에 도착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여관 수준으로 전기가 안 들어와 온수도 안 나오고 방이 썰렁하다. 전기가 안 들어오니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하였다.
밥을 먹고 나서도 전기는 안 들어오니 아무것도 할 것이 없고 거리에도 전기가 없으니 어두운데다가 가랑비까지 내려 썰렁한 분위기이다. 전기는 밤새 들어올 것을 기대하기 어려워 이불을 한 개씩 더 덮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009. 8. 24(월) 06시 일찍 기상
아직 밖은 어둡다. 전기는 밤새 안 들어왔는지 비상등만 겨우 켜진 어두운 상태에서 출발 준비를 하려니 많이 불편하다.
식사는 쌀죽과 식빵, 만두, 계란이 전부다.
8시 지프차 3대에 나누어 타고 출발하였다. 구름은 있으나 날씨는 맑고 상쾌하다.
45분을 달리니 해발 4,388m의 망캉라 패스다. 잠시 휴식하기 위하여 차에서 내리니 기온은 차가운데 주변은 푸른 초원의 푸르름이 가득하다.
30분을 더 달리니 수많은 양떼와 소, 야크 등을 방목하고 있는 목장이 나온다. 산에는 낮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넓게 펼쳐진 초원의 모습이 시원스럽다.
10시에 검문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여 여행신고를 하였다.
주변의 경치는 빼어나게 아름답고 별장처럼 아름답게 지어진 집들이 계곡주변으로 그림처럼 이어져 있는데 계곡 옆 한쪽에 나무로 된 공동화장실이 있다. 남여로 나누어진 화장실은 나무 널빤지에 구멍을 몇 개씩 뚫어 변기처럼 사용하게 되어 있는데 무너지지 않을까 무서운 정도이고, 오물은 계곡으로 직접 떨어지게 되어있어 깨끗한 계곡이 오염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우리의 차는 다시 출발하여 계곡 길을 힘차게 달리는데 깊은 산계곡과 산비탈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지는 산길 도로, 왼쪽의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드높은 산들이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계곡 길을 30여분 올라가니 계곡 전망대가 있다. 천길만길 낭떠러지 아래로 굽이굽이 물길이 이어지고 첩첩 산들이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웅대한 산의 모습들, 과연 이런 자연의 웅장한 모습을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을까?
한동안 감격에 겨워 바라보다가 다시 출발하니 차는 점점 높이 올라가고 우리가 지나온 길이 그림같이 한눈에 들어온다. 과연 우리가 저 길을 왔단 말인가? 차량이 통과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산허리에 감기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산길, 그 아래로는 천 길 낭떠러지가 있고 주변 산의 모습들은 그 규모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가슴이 시리도록 웅장한 대자연의 모습에 감탄하며 이곳을 또다시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에 지나온 길을 끝없이 바라본다.
아쉬운 마음에 결국 모퉁이를 돌아 조망이 좋은 곳에서 차를 세우고 다시 한번 웅장한 대자연의 모습을 관망하며 사진을 찍고서야 이곳을 통과하였다.
산비탈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지는 산길 도로
왼쪽 도로는 조금 전 지나온 길로 오른쪽은 천길 낭떠러지인데 이곳에 포장을 하여 신 차마고도가 생긴 것이다.
고개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어 해발 4,100m에 위치한 조칼라 패스를 통과하여 12시 조금 지나 둥다라산 패스에 도착하였다. 해발 5,088m로 오늘 이동 코스 중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주변의 산은 온통 자갈로 덮여 있는 황량한 모습 뿐이다. 기온은 몹시 차가웁고 고도가 높아 바쁘게 움직이면 숨이 찬다. 티벳 어디나 좀 높은 곳에는 라마교의 종교적인 모습대로 큰 깃대를 세우고 그 위에 빨강(불. Fire), 노랑(땅. Earth), 파랑(하늘. Sky), 녹색(물. Water), 흰색(구름. Cloud)의 타르초(무명천)들을 수없이 걸어 놓는데 이곳도 무척 많은 타르초들을 걸어 놓은 모습이 보인다. 이런 곳에는 타르초를 파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관광객들은 그것을 사서 깃대에 걸어 놓으며 소망을 기원한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모여서 단체사진을 찍고 출발하였다.
해발 5,088m 둥다라산 패스
1시간 반 정도 진행하니 거대한 암벽 산이 나타난다. 장동 제1신산(藏東第1神山)이라고 하는데 뾰족뾰족한 바위산의 모습이 매우 웅장하고 아름다워 모두 감탄하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장동 제1신산
해발 3,893m 좌공이라는 마을 입구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
2시가 거의 되어서 해발 3,893m 좌공(左貢)에 도착하였다.
좌공은 티벳어로 “야크의 잔등”을 의미하는데 상가가 도로 양편에 이어져 있고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활발한 모습이 보이는 제법 큰 마을이다.
늦은 점심식사이지만 매일 같은 중국 현지식을 먹다보니 진한 향 때문에 식욕이 거의 없어 가이드가 준비한 김치와 깻잎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게 된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출발하였다. 도로변에는 야생화들이 형형색색으로 피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지금이 우기라 많은 꽃들이 피는 시기인가보다.
한참 진행하다보니 멀리 설산(雪山)의 위용이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넓고 넓은 바위덩어리 산 정상에 하얀 눈이 덮여 있는 그림 같은 모습은 거대한 대륙의 고고한 산의 자태 바로 그 모습이다.
오후 5시가 지나 해발 4,090m 본다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제법 큰 마을로 보인다. 포장된 도로 위를 50여 마리의 야크에 짐을 가득 실은 한 무리가 지나간다. 건장한 남자가 말을 타고 그 무리를 이끌고 있는데 차마고도 특집에서 보았던 것처럼 티벳인들이 차마고도를 이용하여 많은 짐을 싣고 가던 모습 그대로여서 매우 흥미로웠다.
야크의 행렬
해발 4,090m 본다마을에서 야크에 짐을 싣고 이동하는 모습으로 옛날 차마고도를 이용하던 모습 그대로이다.
반시간 정도 지나니 해발 4,658m 차캄밀라 패스다.
주변에 있는 산들은 모두 봉우리마다 하얀 눈이 덮여 절경을 이루고 있고 너무나 깊은 계곡은 표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작품을 보는 듯 감격적이다. 오늘 하루 내내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에 넋을 잃은 듯,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 자연의 모습을 어떻게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해발 4,658m 차캄밀라 패스(고개)에서 바라본 설산의 위용
10여분을 지나 도착한 곳은 해발 3,910m 감마라 99고개다. 계곡 아래로는 게몽구츄 협곡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고 우리가 내려가야 할 99구비의 꾸불꾸불한 고갯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얼마나 깊고 깊은 계곡이고 이 얼마나 험난한 여행길인가? 그러나 이 꾸불꾸불한 고갯길의 모습이 이렇게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여행의 기대가 그만큼 큰 때문이리라.
감마라 99고개에서 바라본 고갯길
해발 3,910m 감마라 고개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우리가 내려가야 할 길이 굽이굽이 보인다.
계곡 아래 장엄한 게몽구츄 협곡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차는 계곡 길을 굽이굽이 내려가는데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몇 채의 가옥이 보이고 그 옆 계단밭에는 메밀, 야채, 옥수수, 수수 등 작물을 잘도 심어 놓았다. 경사진 도로는 계속 이어지고 계곡의 깊음을 느끼며 감탄하며 이제 70구비를 지났느니 80구비를 지났느니 하며 지루한 줄 모르고 떠들다 보니 한 시간여 만에 협곡의 밑바닥에 도달한다.
아! 이제는 사방 어디를 보아도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준봉들의 위용이 우리를 압도하고 계곡 아래로는 누쟝(怒江)의 힘찬 물줄기가 굉장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누쟝(怒江)은 청장고원의 탕고라산맥 남단에서 발원하여 6-7m/초의 속도로 흘러 운남성, 미얀마, 인도를 지나 인도양으로 흘러가는데 그 파도 소리가 웅장하여 노한 강이라는 이름이 지어 졌다고 한다.
산등성이에 마을을 이루고 사는 몇 채의 집들과 푸르름이 눈에 들어 온다. 온통 무섭도록 솟아오른 바위산과 깊은 계곡만이 보여 지는 이곳에서 가끔 푸르른 밭의 모습만이 사람들이 사는 곳임을 구별하게 해 준다. 이들은 이 험한 산골 바위 등성이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일까? 아마도 아무 욕심 없이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참을 가니 계곡의 아름다운 경치 속에 다리가 나타난다. 누쟝 대교로 계곡에 있는 큰 바위를 뚫어 도로를 만들고 그 앞에 다리를 만들었는데 군사요충지역이라 군인들이 양쪽에서 차량을 통제하며 통과시키고 있다.
한 시간 가까이 산과 산사이로 난 도로를 달리는데 그 옆에는 누쟝의 강물이 끝없이 이어지고 산의 색깔은 검정, 적색, 초록, 잿빛 등이 층층으로 이어진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오후 8시가 거의 되어 어두워지는 시간에 해발 3,358m에 위치한 빠수(八宿)에 도착하였다. 학교가 있고 마을이 꽤 큰 모양이다. 호텔은 3층인데 여관정도의 규모이고 화장실은 보기 드물게 좌변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으나 다행히 수세식으로는 되어 있으며 샤워는 물이 겨우 나오는 정도라 언제 온수가 그칠지 몰라 조심스럽게 샤워를 하였다.
2009. 8. 25(화) 06:30기상
날씨는 맑고 시원하다. 일어나 도로가에 나가보니 시골에서 사과나 야채를 싣고 와서 파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사과 15개에 5위안(악 1,000원)이라고 하여 사서 하나씩 먹어보니 조그마하고 맛도 별로 없으나 싱싱하기는 하다. 위도가 높은 곳이라 과일도 별로 없고 크게 자라지도 않는가 보다.
중국 현지식 아침을 먹고 8시 반에 출발하였다.
수확의 계절이라 보리를 수확하여 소의 등에 매달아 이동하고 있는데 소들은 줄을 매지 않았는데도 주인의 의도대로 말을 잘 듣는다.
이곳의 집들은 모두 2층으로 지어져 있는데 1층에는 사람들이 살고 2층은 건초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수확한 보리를 걸어놓고 말리고 있다.
보리를 수확하고 있는 소
한 시간쯤 지나 전통마을(森格宗 마을)에 도착, 이들의 살고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부농인 듯 보이는 집에 들어가 보았다.
집안에는 큰 방안에 정교하게 장식된 가구가 한쪽에 있고 가장자리로 잠을 잘 수 있게 만들어 놓았으며 가운데에 식탁이 있고 그 옆에 부엌이 있어 하나의 방안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가구 등 모든 것이 큰 나무를 깎아서 만들었고 방바닥도 널빤지를 깔아 깨끗한 모습이며 TV도 있고 방안에 시계도 두 개씩 걸어놓은 것으로 보아 비교적 부유한 집인 모양이다.
야크버터와 보이차, 소금을 믹서기로 갈아 만든 수유차를 한잔씩 먹어 보고 동동주 같은 보리로 만든 “창”이라는 이들의 전통술도 한잔씩 먹어 보았다. 이곳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수유차는 비타민 C가 풍부하고 고소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곳같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나 유목민들에게는 아직까지도 형제가 한 부인과 같이 살면서 아이는 모두 제일 위 형의 자식으로 올리고 동생들은 모두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낮에 일하러 나가는 시간 등을 이용하여 원만하게 부부생활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전통마을 가옥의 실내모습
전통마을 방문을 마치고 한 시간쯤 달려 해발 4,475m 룽라 패스에 도착하였다. 보이는 것은 적갈색의 민둥산 뿐, 작은 나무와 풀들이 바닥에 붙어 있는 듯 나 있고 한쪽에 작은 호수가 있다.
오체투지례(五體投地禮)를 하는 순례자들이 찬바람 속에 걸어가고 있다. 오체투지례는 불교신자가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불, 법, 승 삼보(三寶)에게 최대한 존경을 표하는 방법으로 양쪽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다섯 부분을 땅에 닿게 하는 것인데, 중생이 빠지기 쉬운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예절이다. 이들은 양손에 나무신발 같은 것을 끼고 길바닥에 완전히 엎드렸다가 일어나 걸어가기를 반복하는데 그 옆에는 이들이 여행하면서 필요한 음식과 물건을 실은 마차가 따라간다. 동 티벳에서 라사까지 순례길을 간다고 하는데 1년 혹은 몇 달 걸리기도 한다고 한다. 이들은 우리가 차로 가는 길을 걸어서 가고 있으니 아직도 얼마나 많은 날들을 걸어야 할까?
순례자들의 오체투지례(五體投地禮) 모습
11시 조금 넘어 해발 3,927m 로후 마을에 도착하였다. 마을 한가운데에 부대가 주둔하고 있고 도로 양쪽에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주로 식당이 많다. 구멍가게도 몇 군데 있는데 누가 이용하는지 영업이 되는 것 같지 않다.
오늘은 점심식사가 취사식으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에서처럼 계곡이나 물가에서 밥을 해 먹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결국은 이곳 식당에서 가이드와 기사들이 라면을 끓이고 요리를 몇 가지 만드는 형식이다. 어제 산 송이로 송이볶음 요리도 하고 식단이 푸짐하다.
식사 후 로후 호숫가에 차를 세우고 잠시 휴식하였다. 호수 주변 산의 기묘한 바위와 우거진 침엽수림들, 그리고 멀리 바라보이는 구름에 덮인 아름다운 설산의 모습 등 티벳의 스위스라고 불리우는 아름다운 모습인데 황토색의 호수물빛이 아쉬운 마음이다.
차가 출발하여 조금 진행하니 호수가 끝나고 강 따라 계곡 길로 들어간다. 도로 양쪽은 병풍을 치듯 높은 산군(山群)들이 이어지고 비포장도로를 터덜대며 올라가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강물은 방향을 바꾸어 우리의 진행방향을 따라 굉음을 내며 맹렬한 속도로 내려간다.
오후 2시 되어 마퇴 빙하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멀리 빙하의 전경이 보이고 넓게 조성된 주차장에는 관광객이 타고 온 차량들이 많이 주차해 있다. 우리는 말을 타고 30여분 걸려 해발 4,200m에 위치한 빙하 앞 조그만 호수까지 들어갔다. 호수 건너편으로 거대한 빙하의 모습이 가까운데 정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빙하까지 가려면 3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마퇴 빙하와 그 앞의 호수
또다시 첩첩산길 비포장도로를 달리는데 500m도 넘음직한 높이에서 거대한 폭포가 흘러내린다. 나무도 거의 없는 저 바위산에서 무슨 물이 저토록 쏟아질 수 있는지?
바위산 위의 거대한 폭포
조금 더 진행하니 이번에는 도로 옆과 앞으로 엄청난 높이의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까지 바위 민둥산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울창한 침엽수림이 이어지고 높은 산허리에는 구름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걸쳐 있는 모습이다. 날씨는 햇빛이 나다가도 갑자기 구름이 끼고 비가 뿌리기도 하여 정말 예측 불가능이다.
6시경 티벳 7대 성산중 하나인 남자바와르 설산의 모습이 앞에 다가선다. 웅장한 설산의 모습과 주변에는 거대하고 훌륭한 자연의 작품을 진열하여 놓은 것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모두 동심의 세계에 들어간 듯 황홀한 모습이다.
작품같이 웅장한 설산의 모습
8시가 조금 넘어 포미(波密)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고도가 2,787m로 조금 낮아 마음이 가볍다.
제법 큰 도시로 도로 양쪽으로는 상가들이 즐비하고 핸드폰 판매장도 여럿 있는데 삼성핸드폰이 제일 앞에 진열되어 있으며 현대자동차도 간혹 보인다.
도시 중심지역에 있는 넓은 운동장에 큰 TV를 설치하여 음악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체조를 하고 있다.
이곳을 여행하면서 정말 부럽게 생각되는 것은 그토록 험하고 깊은 산골 어디에서도 핸드폰이 잘 터진다. 우리나라의 깊은 산중에서도 핸드폰을 시원스럽게 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2009. 8. 26(수) 07:00 모처럼 여유 있게 기상하였다.
창문을 여니 멀리 설산(雪山)이 나를 반긴다. 구름이 정상을 가리고 있어 아쉽지만 그 위용은 대단하다.
호텔에는 식당이 없어 옆에 있는 조그만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였다. 만두 2개, 꽈배기 튀김 1개, 계란 1개, 녹두죽(너무 묽어 우리는 이를 녹두국이라고 하였다)이 식사의 전부다.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주한데 차량은 많지 않고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 사람들로 붐빈다. 여기에서도 승용차나 오토바이, 심지어는 자전거로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켜 주는 부모가 꽤나 있는 것 같다.
오전 9시반경 룽다 지역에 도착하였다. 강가 언덕에 깃발을 많이 꽂아 놓은 곳인데 깃발이 바람에 한번 나부낄 때마다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런 깃발을 꽂아 놓은 곳은 이곳 외에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얼마나 많은 경전을 읽게 되는 것인지?
룽다지역의 깃발들
왼쪽은 강, 오른쪽은 높고 높은 산에 울창한 삼림이 우거진 밀림지대의 잘 포장된 도로를 상쾌한 기분으로 달려 10시경 바캄 절에 도착하였다.
이절은 1,500년의 역사를 가진 절로 달라이라마의 환상이라고 할 정도의 큰 스님이 만들었다고 하며 티벳 불교 4대파 중 제일먼저 생긴 닝마파에 속한다고 한다. 7세기 모든 티벳족을 통일해 통일국가를 형성한 제5대 송첸캄포의 부인인 중국 당태종의 딸 문성공주가 데리러 간 신하와의 사이에 러브스토리가 있어 아기가 태어났는데 발각될까 두려워 그 아이를 죽이고 사리를 이 절 아래 숨겨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고 한다.
바캄 절
도로는 산사태로 곳곳에 계곡물이 넘쳐 조심스럽고 비포장인 깊은 계곡 산길을 지프차는 덜컹덜컹 힘들게 달린다. 숲은 정말 울창하게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는데 많은 비에 도로가 패이고 진흙 반죽이 산에서 계속 흘러내리고 있다.
길가에 한 무리의 여인들이 작은 풍로에 불을 때며 음식을 만들고 있고, 해가 비치는 도로가에 비닐을 깔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보인다. 오체투지례를 행하는 순례 중 식사를 하기 위하여 계곡물이 흐르는 이곳에서 휴식 중이라고 한다. 과연 저들은 이 깊은 산길을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 것이며 그들의 삶의 의미는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12시 조금 지나 인도의 부라마프트라강으로 흐르는 유궁창포강의 다리에 다달았다. 아취형으로 다리를 아름답게 만들었는데 다리가 작아 군인들이 양쪽에서 차량을 한 대씩 통과시키고 있다. 곧 이어 비포장도로가 이어지고 덜컹거리는 도로 아래로는 아찔한 절벽이 우리를 긴장시키는데 그래도 차량은 교행하고 우리의 지프차는 다른 앞차를 추월하고 한다. 길은 진흙탕길이고 길이 좁아 오가는 차량으로 길이 막혀 한참씩 지체되기도 한다.
포장도로가 되어 있는 곳도 산허리를 깎아 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산모퉁이를 돌때는 급회전을 하여 반대편 차량과 충돌할까봐 긴장의 연속이다.
오후 2시 루낭 마을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였다.
비는 수시로 뿌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데 갑자기 식당에 버섯, 나물을 파는 사람들이 몰려온다. 벌써 이곳도 도시화되어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오후 세시반경 해발 4,500m 세킴라 패스에 도착하였다.
멀리 7,000m의 성산 남자바와르 정상이 조망되는 곳이라는데 오늘은 구름이 많아 아쉬움만 크다. 멀리 높고 낮은 산들이 열병식 하듯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우리는 티벳 라마교의 방식대로 각자의 띠에 맞는 색깔의 타르초(천조각)에 이름을 써서 기둥에 매다는 행사를 했다. 기사들이 타르초를 매단 끈을 언덕 위 높이 세워 놓은 깃대에 힘들게 매달고 우리는 손벽을 치며 즐거운 모습으로 다시 출발하였다.
4,500m 세킴라 패스에서의 타르초(천조각) 매다는 행사
30여분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티벳 자치구의 링트리 지구에 속하는 마을이 저 아래 멀리 보인다. 가옥의 지붕이 모두 빨간색으로 되어 있어 독특한 느낌이 들었다.
오후 5시가 넘어서 빠이(八一)에 있는 빠이 산수호텔에 도착하였다.
어제까지와는 다르게 제법 깨끗한 호텔이다. 빠이는 중국이 이곳에 처음 군대가 들어온 날자인 8월1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군사도시로 중앙 번화가 로타리를 비롯하여 시내에 큰 도로를 반듯하게 만들고 도로 양쪽에 상가를 조성하여 큰 도시를 세워 놓았는데 공안국, 세무서 등 관공서 외에는 큰 건물이 없다. 기온도 적당하고 나무도 많이 우거져서 살기 좋은 환경인데 한족들을 많이 이주시켜 한족들이 많다고 한다.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사천요리에 가까운 해물 샤브샤브 식사를 하게 되어 모처럼 맛있고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2009. 8. 27(목) 07시 여유 있게 기상
9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시골길을 달린다. 계곡물도 건너고 밭과 초목을 지나 힘차게 달리는데 방목되고 있는 돼지, 양, 소 들이 가끔 길을 막곤 한다. 가옥은 모두 빨간 지붕으로 단정하게 채색되어 있어 평화로운 느낌이다.
누가 시찰 나왔는지 공안차를 선두로 10여대의 차량이 맹렬한 속도로 우리를 추월해 간다.
두 시간쯤 가다보니 길가에 불그레하게 익어가는 개 복송아 들이 많이 보인다. 어릴 때 시골에서 먹던 생각이 나서 차를 잠시 세우고 몇 개씩 따서 먹어보니 조그마하고 맛도 별로 없다.
12시 조금 지나 해발 3,390m 공부강달에 도착하였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마을로 한곳에 상가들이 모여 있으며 마을 가운데로는 큰 강이 흐르고 있다.
우리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하여 강을 따라 나 있는 포장도로를 상쾌한 기분으로 달린다. 마을의 주택은 하늘색 함석지붕으로 단정한 모습이고 산에는 키가 작은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기후 조건이 또 달라지는가 보다.
라사까지 가는 길이 순례코스라 오체투지례를 하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오후 1시반경 갑자기 자동차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해발 3,600m되는 지역인데 무섭게 흐르는 강물 한복판에 매우 큰 바위하나가 있고 그 위에 나무도 자라고 있는데 중국 사람들은 이 돌을 기이한 돌이라고 하여 관광지처럼 많이 찾는다고 한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자동차와 엉켜 매우 복잡하다.
관광지로 알려진 해발 3,600m 강물 한복판에 있는 큰 바위
반시간쯤 달리다가 초원지대에서 차를 세우고 커피한잔하며 담소하다. 푸른 초원 위 따스한 햇볕아래에서 커피와 수박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낭만에 젖어 보았다. 주변에 보이는 주택은 연녹색, 하늘색, 분홍색의 함석지붕이 구획별로 단정하게 그림처럼 지어져 있는데 주변에 농토도 전혀 없는 깊은 산골에서 어떻게 깨끗하게 집을 단장하며 살 수 있는지 궁금하다.
초원지대 시골마을의 모습
야크목장에 도착하였다. 해발 4,400m정도 되는 지역인데 푸른 초원위에 털이 무성하게 나고 매우 크게 자란 육중한 야크들이 말과 섞여 방목되어 지고 있다. 갑자기 팥알만한 우박이 떨어진다. 고도가 높은 곳이라 일기가 급변하여 해가 뜨겁게 내려 쪼이다가 구름이 잠시 끼는가 싶으면 비가 오고 우박까지 내리는 것이다.
오후 4시 지나 해발 5,013m 발라 패스에 도착하였다. 오늘 이동하는 코스중 제일 높은 곳으로 곳곳에 타르초가 무척 많이 걸려 있고 타르초를 파는 아이들과 야크버터와 야크우유를 파는 부인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일행은 모두 모여 기념촬영을 하였다.
해발 5,013m 발라 패스에서의 기념촬영
반시간쯤 가니 유목민 마을이 나왔다. 이곳도 해발 4,495m나 되는 높은 지역인데 넓은 초원에 유목민들이 천막을 치고 무리지어 살고 있었다. 천막 안에 들어가 보니 천장에는 구멍을 뚫어 햇빛이 들어오게 만들어 놓았으며 침구 위치나 불을 때는 화덕 등 가구의 위치는 전에 보았던 전통마을 가옥안의 형태와 비슷하다.
천막은 야크털로 만든 것으로 구멍이 있는 것처럼 하늘이 비쳐 보이는데 방수가 잘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여름에는 시원하다고 한다.
즉석에서 야크버터와 소금과 보이차를 섞어서 수유차를 만들어 주어 한잔씩 먹어보니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감돈다.
유목민 마을 유목민 천막 내부의 모습
송첸캄포(松贊干布) 출생지에 도착하였다. 크게 아치를 세워놓고 7세기 최초로 티벳을 통일한 송첸캄포의 출생지임을 표시하여 놓았으나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잠시 휴식만 하고 출발한다. 2-3년에 걸쳐 대대적인 공사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최초로 티벳을 통일한 송첸캄포의 출생지 입구
넓고 길게 뻗은 하사강이 우리의 진행방향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제법 넓은 농토에는 보리 등 밭작물이 풍성한데 논농사는 못하는 것 같다.
오후 7시경 라사 교외지역에 도착하였다. 낡은 집들이 이어지고 아직 길은 좁고 사람들로 붐비는데 길가 밭에는 비닐하우스가 많이 지어져 있는 것이 마치 서울 변두리 지역을 연상케 한다. 주변의 산들은 모두 돌산으로 나무가 거의 없고 멀리 하얀 설산(雪山)의 봉우리만이 아련히 보인다.
얄룽장푸강(雅魯藏布江)의 지류인 키추강(라사강)의 넘실거리는 강물만 시원스러운데 멀리 포탈라 궁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이는 것을 보니 라사에 가까이 왔나보다. 강물을 건너는 긴 다리를 건너니 정돈된 도시의 모습이 나타난다.
오후 7시반경 라사에 있는 야크호텔에 도착하였다. 드디어 아침부터 420km를 달려 해발 3,650m에 있는 라사에 도착한 것이다.
라사(拉薩, Lasa)는 티벳의 옛 수도이며 현재 서장자치구의 구도(區都)이다.
인구는 84만명의 도시로 왕복 6차선의 도로 양쪽으로 상가가 이어져 있는데 주로 3층 건물이고 간혹 5층 건물이 보이는 정도이다. 차량은 별로 없고 자전거가와 오토바이가 많으며 자전거에 리야카를 끌고 다니며 택시 역할을 하는 릭샤가 많이 다닌다.
저녁은 모처럼 아리랑이라는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중국 현지식의 진한 향이 들어간 음식으로 고생하다가 삼겹살, 김치찌개, 된장찌개, 콩나물무침, 상추 등 한국식 음식에 모두들 즐겁고 맛있는 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지프차량 기사들과 이별의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였다. 5일 동안 머나먼 길을 같이 움직이며 운전해주고 식사 때 마다 같이 식사를 도와주며 호텔에 와서는 방까지 짐을 날라 주고 모든 심부름까지 성심껏 우리를 도와주어 우리가 여행을 하는데 큰 힘이 되었던 기사들이다. 그들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또 많은 여행객들의 손과 발이 되어 줄 것이다. 모두의 행운을 빈다.
2009. 8. 28(금) 06시 이른 기상.
밖은 어두운데 비가 내리고 있다. 그동안 우기 중에도 비를 만나지 않아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오늘 많이 기대하고 있었던 포탈라 궁을 관광하는 날에 비가 오니 조금 걱정이 된다.
8시경 포탈라 궁에 도착하였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포탈라 궁에 들어가는데 이른 시간임에도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예약시간에 맞추어 입장한다. 시간별로 예약을 하기 때문에 많이 붐비지는 않아서 좋다.
포탈라 궁
포탈라는 티벳어로 “깨끗한 땅”, 즉 성지라는 뜻으로 7세기경 티벳을 최초로 통일한 송첸캄포가 당나라의 문성공주와 네팔의 브리쿠티 공주를 맞이하면서 건립하였고 17세기 제5대 달라이 라마가 확장한 것으로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실제로 거주하였던 겨울 궁전이다.
동서 400m, 남북 300m, 높이 13층에 115.703m 규모로 아래층에 있는 백궁은 정치활동 장소로, 위층에 있는 홍궁은 종교 활동을 하는 곳으로 구분되어 있다.
잘 꾸며진 정원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이 지역이 해발 3,650m로 높은 지역인데다가 계단을 올라가려니 숨이 차서 쉬어가며 올라간다.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는 담을 쌓아 놓았다. 그 담의 재료는 해발 4,000m 이상에서만 자라는 대나무 가지를 잘라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방수가 잘되고 통풍이 잘되며 가벼워 큰 건물을 짓는데 적합하다고 한다.
12층에 도착하니 홀 한가운데에 5대 달라이 라마의 손자국이 전시되어 있다. 공개되는 곳은 홍궁에 해당하는 최상층 4개 층이다.
13층 최상층에는 13대, 14대 달라이 라마의 옥좌가 있고, 그 옆에는 조그마하고 아담하게 꾸며진 달라이 라마의 외빈 접견실이 있다. 우리는 시계도는 방향으로 돌아가며 이어져 있는 방실을 둘러보았다.
그 옆방에는 달라이 라마가 명상을 하던 1.5평 정도의 공부방이 있고, 그 옆에 있는 달라이 라마의 공부방에는 스승 석과 달라이 라마석이 있으며 그 옆에 침실 문이 보이는데 이곳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옆 만달라 방에는 모든 진리의 근원이 이 안에 있다고 하는 입체 만달라 상이 있는데 모래알에 색깔을 입혀 평면 만달라 상을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옆방에는 7대 달라이 라마가 중국 왕에게서 선물 받은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고 달라이 라마의 장수를 기원하는 불상과 티벳 불교 4개 종파의 모습을 나타낸 불상과 7세 달라이 라마의 옥좌가 전시되어 있다.
옆방에는 6대부터 13대 달라이 라마의 옥좌가 있고 1,000개 이상 되는 작은 불상이 전시되어 있으며, 다음 방에는 쫑카파에서부터 겔룩파의 창시자와 6대부터 12대까지 달라이 라마의 옥좌 및 4개종파의 작은 불상들이 섞여 있다.
다음 방에는 7대 달라이 라마의 초르텐(불탑) 사리탑이 있고 그 다음 방에는 달라이 라마의 화신상인 관세음보살상이 있는데 이것은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불상이라고 하며 옆에는 정치지도자 판첸라마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옆방에는 8대 달라이 라마의 동상과 초르텐이 있고 그 옆방에는 13세에 사망한 9대 달라이 라마의 동상과 초르텐이 있다.
한층 아래로 좁고 경사가 심한 계단을 조심해 내려갔다.
첫 번째 방에 8대에서 14대까지 달라이 라마의 옥좌와 불교 경전 및 석가모니 불상과 제자 8명의 불상이 전시되어 있고, 그 옆방에는 7대에서 14대 달라이 라마의 옥좌와 아미타유라고 하는 불상과 하얀타라 여신상 및 푸른타라 여신상이 전시되어 있다.
옆방에는 부처님 생전의 생활상이 조각 전시되어 있고, 그 옆 공간에 동굴이 있는데 이 굴은 포탈라 궁을 짓기 전 산위에 있던 동굴을 보존한 것으로 7세기 송첸캄포가 명상을 하던 동굴이라 가장 중요시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네팔, 중국의 공주상이 전시되어 있다.
옆방에는 석가모니 불상, 작은 사리탑, 작은 불상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1994년 인도로부터 선물 받은 것들이라고 한다.
또 한 층을 내려갔다.
넓은 홀이 나타나는데 이는 대법정으로 승들이 모여 공부하던 방이라고 하며 송첸캄포와 5대 달라이 라마의 불상이 전시되어 있다.
그 옆 넓고 길게 되어 있는 방에는 티벳 불교 전파자인 파드마 삼바바의 모양을 8가지로 매우 크게 만들어 전시되어 있다. 모두 금칠이 되어 있고 티벳에서만 생산되는 고가의 터키석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지금도 살아 있는 화신으로 숭상되고 있다고 한다. 그 옆에 관세음보살상과 파드마 삼바바의 악을 물리치는 험악한 표정을 한 불상이 특이하다.
옆방은 포탈라 궁에서 가장 큰 홀로 역대 달라이 라마의 초르텐과 12대 달라이 라마의 사리탑이 있는데 그 규모가 굉장히 웅장하고 크다. 5대 달라이 라마의 초르텐은 가로 14m 규모로 보석과 금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데 순금 3,700kg이 들어갔다고 한다.
옆방은 11대 달라이 라마의 불상과 석가모니의 과거, 현재, 미래 불상 및 8개의 약사여래 불상이 전시되어 있고, 라마교의 방식대로 왕관이 씌여진 석가모니 불상 옆에 5대 달라이 라마의 불상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은 이때부터 정치, 종교를 모두 장악한 실권자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옆방에는 제1대부터 4대까지 달라이 라마의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고, 출구 쪽 우측 벽에는 불교 경전이 빽빽이 전시되어 있다
방도 많고 전시물도 많아 정신없이 따라다니다 보니 벌써 출구가 나왔다.
오전 10시가 넘어 포탈라 궁의 출구로 나왔다. 비는 그쳤고 라사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시내를 구경하면서 출구 길을 따라 30여분 만에 아침에 들어갔던 정문에 도착하였다.
정문 앞에는 각지에서 순례 온 순례자들과 관광객들로 복잡하고, 둥그런 원통 안에 경전이 들어 있어 시계방향으로 한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같다고 하는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우리는 포탈라 궁의 정면에 있는 광장에 가서 포탈라 궁의 전경을 배경삼아 기념촬영을 하고 광장 반대편에 중국이 티벳을 점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 놓은 서장해방독립기념비 앞에서도 기념촬영을 하였다.
점심에는 야크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소고기 스테이크와 비슷하고 맛도 비슷한 것 같다.
오후에는 조캉 사원을 관람하였다. 조캉이란 티벳어로 석가모니상이 모셔진 불당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식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라사 구시가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647년 창건된 티벳 최초의 목조 건축물로 4층 건물의 지붕은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 사원은 티벳인들이 가장 신성한 사원으로 여기는 최고의 성지로서 본전에는 문성공주가 시집올 때 가져온 석가모니 불상과 송첸캄포와 그 부인인 중국의 문성공주, 네팔의 브리쿠티 공주의 상이 모셔져 있다.
조캉 사원
정문 앞에는 많은 티벳인들이 오체투지례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고향에서부터 오체투지례를 하며 몇 달 혹은 몇 년을 걸려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라고 한다. 많은 순례자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따로 줄을 서서 들어가며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입구 좌우에 사천왕상이 서 있는 정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중정으로 이어지고 중정 입구에는 큰 벽화가 그려져 있다. 큰 호수였던 이곳에 이 절을 짓게 된 전설의 내용이 그려져 있으며 오른쪽 입구에는 이 호수를 지키던 물의 여신상을 세워 놓았다.
중정의 좌측에 있는 돌 의자는 달라이 라마의 옥좌이고 중앙과 우측에는 수많은 버터램프가 정렬된 단이 놓여 져 있고 중앙의 버터 램프 뒤쪽 문으로 들어가면 죠캉의 본전이 나오는데 이곳은 넓은 법당으로 스님들이 공부도 하고 기도하는 곳으로 중앙에는 거대한 미래불과 인도에서 불교를 전파하였던 파드마 삼바바의 상과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왼쪽에 있는 방에는 쵸르텐이 있는데 이것은 송첸캄포가 이 사원을 세우기 위해 부지를 고를 때 가지고 있던 반지를 네팔의 브리쿠티 공주에게 주어 공주가 매직파워(Magic Power)를 이용하여 그 반지를 하늘에 던졌더니 그 반지가 호수로 들어가고 호수에서 이 하얀 탑이 나와 이곳에 사원을 세우게 되었다고 하며 원본은 파괴되어 다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다음 방에는 벽에 많은 불상들을 모셔 놓았고 방과 방 사이에는 굴을 만들어 그 안에 넓은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도 많은 불상들을 전시하여 놓았다.
다음 방에는 고통으로부터 모든 생명체를 구제하기 위해 천개의 눈과 팔을 가지게 되었다는 천수천안관음상(千手千眼觀音殿)이 있고, 다음 방에는 9-10세기 다리를 만드는 아이디어의 창시자 흰색 모자불상이 있으며, 다음 방에는 송첸캄포와 왼쪽에는 네팔부인, 오른쪽에는 중국인 부인, 그리고 티벳 부인의 불상이 있는데 그 앞에 서 있는 큰 기둥은 희귀한 나무인 백단향나무라고 한다.
네팔의 사원은 거의 다 백단향나무를 쓰는 목조건물 형태이고, 티벳사원은 백단향 나무를 쓰는 불교건축 사원이 없는데 이곳에 백단향 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네팔 브리쿠티공주의 영향으로 네팔의 건축양식을 혼합하여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안쪽 중앙에는 이 사원의 주 실인 석가모니전이 있고 문성공주가 시집올 때 장안에서 모셔온 석가모니 12세등신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이는 인도의 “비시바카르마”가 석가모니를 직접 보고 만들었다고 하여 조캉 사원 내에서 제일 성스런 장소로 여기며 중요한 행사들은 여기에서 열린다.
옆에는 옛날 호수였을 때 호수 한가운데에 있던 기둥 표석이 서 있는데 두드리면 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두들겨 보았다.
곳곳에 야크 기름에 불을 피워 놓아 공기가 매우 탁하다.
옆방에는 염소상이 있는 방이라고 하여 들여다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실제로 염소상은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옆방에는 7세기 포탈라 궁 건립 후 파티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마지막 방에는 송첸캄포와 네팔공주, 문성공주가 돌아 가셨을 때 사라진 방이라고 하는데 기둥만 보이고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3층으로 올라가니 전망 층으로 따가운 햇볕이 내려 비치는 가운데 멀리 포탈라 궁의 전경이 보인다. 기념품 가게가 있고 한쪽에 의자가 놓여 있어 사진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한 시간 걸려 관람을 마치고 정문으로 나오니 문 앞에는 오체투지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 우리 일행 중 몇 사람이 오체투지례를 경험한다고 사원 앞에서 순례자들과 섞여 직접 오체투지례를 하였다.
조캉 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례를 하고 있는 모습
오후는 자유시간이다.
사원 앞에는 바코르(八角街)라고 하는 넓은 광장이 있는데 이는 중심광장이자 시장이며 조캉 사원을 중심으로 열려 있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이 광장 주변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조캉 사원을 중심으로 상가가 이어져 있는데 의류, 생활필수품, 수공예품, 골동품, 불교용품 등이 많이 진열되어 있어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순례자들로 북적댄다.
바코르를 한 바퀴 돌아보고 그 안에 있는 시장도 돌아보았는데 작년 티벳 사태의 영향인지 도로 곳곳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어 조심스러운 분위기이다.
저녁에는 메드 야크(Mad Yak)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뷔폐식인데 중국식과 티벳식의 두 가지 식단이 준비되어 있고 식사를 하는 동안 티벳 전통무용을 공연하였다. 의미는 알지 못하지만 경쾌하고 흥겨운 가락이다.
밤거리에 나와 보니 거리는 어둡고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산하다. 거리 곳곳에는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어 라사의 밤거리를 더욱 어둡게 보이게 하는가 보다.
2009. 8. 29(토) 05:00 이른 기상이다.
청장열차 시간 때문에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에 일찍 호텔을 출발하였다. 포탈라 궁 앞을 지나는데 군인들이 포탈라 궁 앞을 일렬로 서서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 24시간 비상근무를 하는 모양이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입구에도 군인들이 경비를 서며 승객들을 통제하고 있는데, 짐 점검과 탑승장 입장확인까지 군인들이 관리한다.
청장열차는 2006년에 개통되었으며 청해성 꺼얼무와 티벳 라사를 잇는 총 길이 1,142km의 철도로서 전 구간 중 해발 4,000m이상의 구간이 960km에 이르며 티벳인들이 신의 영역으로 여기던 지역을 통과해 만들어졌기에 일명 하늘 길(天路)이라고 불리는데 4인실 침대칸 열차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역사는 넓고 크게 잘 지어져 있고 청결하게 관리도 잘 되고 있다.
열차 칸은 4인 침대칸, 6인 침대칸, 좌석 칸으로 구분되는데 4인실 침대칸은 2칸뿐이므로 열차표 구하기가 어려워 우리 일행도 다른 칸에 좌석이 떨어져 있는 표를 구입하였는데 우리는 4인 침대칸에 우리 부부와 친구 두 사람을 같이 배정해 주어 다행이었다.
열차 안은 복도가 좁아서 짐을 옮기기에는 다소 불편하나 침대칸 안에는 넓이가 넓어 한쪽에 짐을 올려놓고도 누울 만큼 길이가 길어 편하다.
침대칸은 1층과 2층에 침대와 TV가 두 개씩 있고, 충전이 가능한 전기 소켓과 개인별 산소호흡기가 있으며 창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밖을 조망하기에 좋게 되어 있다. 객실별 전담 승무원이 있어 외부인을 통제 하고, 수시로 쓰레기를 비워주며, 항상 뜨거운 온수를 제공해 주고 있다. 옆에 있는 식당 칸에는 몇 가지의 음식이 준비되어 언제든 식사를 할 수 있어 그런대로 편리하다.
오전 8시 반 열차는 정시에 미끄러지듯 소리 없이 출발한다.
창밖은 삭막한 바위산과 누렇게 익은 보리밭, 초원이 펼쳐지는 시골풍경 그대로이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나니 기차는 넓은 평원을 달린다. 흰 눈을 머리에 인 듯 아름다운 산봉우리들의 모습이 아스라이 보이는데 넓은 초원에는 야크와 양들이 방목되어 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투명한 보석같이 푸르디 푸른 코발트빛의 드높은 창공, 해발 4,000m 고원에 끝없이 이어지는 기차의 행로, 이따금씩 보여 지는 순박한 티벳인들의 조그만 가옥과 그들의 보물 같은 야크와 양떼의 무리들, 평화로운 이곳의 풍광을 바라보는 가슴가득 시원한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청장열차에서 즐기는 설산의 모습
티벳 라사와 청해성 꺼얼무를 연결하는 길이 1,142km중 해발 4,000m이상이 960km나 되는 지역을 운행하는
청장열차를 타고 평화로움속에 바라보이는 흰봉우리들의 모습이다.
오전 11시 반경 세 시간을 달려 처음으로 해발 4,578m Tuo Ru 역에 도착하였다. 승객이 내리고 타는 역은 아닌데 철로가 단선이므로 열차교행을 위하여 임시로 정차하는 것이다. 잠시 후 화물열차가 통과하고 나서 출발한다.
우리의 열차는 넓고 푸른 티벳 고원을 끝없이 달린다. 창밖에 펼쳐지는 이 아름다운 초원의 모습, 그냥 그림같이 아름다운 푸른 초원이라고 할 수 밖에………
이 아름다운 초원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잘 선택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12시 반경 나곡(Na Qu, 那曲)역 도착, 해발 4,513m에 위치하는데 기차가 출발하여 4시간 만에 처음으로 승객이 타고 내리는 역이다. 높은 고도 탓 인지 날씨가 서늘하다. 기차는 30여분을 정차하고 다시 출발한다.
오후 2시, 아름다운 취나호 호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도 4,650m에 위치하며 400㎢나 되는 큰 호수인데 청장열차가 지나가며 볼 수 있는 유일한 호수로 아름다운 풍경의 호수를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볼 수 있다. 호수는 기차 길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으며 기차가 무려 14분을 달리고 나서 호수가 끝났다. 주변의 산은 온통 민둥산인데 넓은 초원에는 푸르름이 가득하고 양떼의 무리가 한가로운 모습이다.
취나호 호수가의 양떼들
50여분 후 고도 4,891m 탁거(托居, Tuo Ju)역에 도착, 열차를 교행하고 출발하여 한 시간을 더 달리자 탕구라산(5,231m)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탕구라산은 칭하이성과 티벳자치구의 경계선에 위치하는데 탕구라는 티벳어로 고원위의 산이라는 뜻으로 기온은 거의 영하에 머물기 때문에 동토의 땅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온통 백두의 모습이 그림같이 보이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찍느라고 분주하다.
탕구라산(5,231m)의 모습
한 시간 반을 더 달려 해발 4,756m에 위치한 개심령(介心岭, Kai Xin Ling)역에 정차하여 열차를 교행하고 다시 출발하여 오후 6시경 해발 4,533m에 위치한 퉈퉈허강을 통과한다. 강물은 별로 많지 않고 황토빛을 띠고 있는데 외부기온이 14℃를 가리키고 있다.
7시경 식사를 하였다. 집에서 준비해 가지고 간 누룽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누룽지탕을 만들고 깻잎, 김치, 김, 파래자반 등으로 훌륭한 식단이 되었다.
8시가 지나자 석양이 지고 있다. 긴 하루 먼 길을 달려 왔는데 이제 그 하루를 마감하려는 것이다. 30여분 지나니 이제 땅거미가 내린다. 어스름 하늘에는 먼 산의 모습인지 희미한 산의 모습처럼 보이는 구름이 두어 조각 떠 있고 마지막 석양의 어둠이 이 넓은 초원을 휘감아 돈다.
아! 거룩하고 광활한 대지 티벳의 땅이여!
이따금씩 나타나는 원주민의 조그만 불빛만이 이 넓은 대지를 지키는 수문장인양 이 넓고 푸른 초원은 모두 어둠에 잠기고 밤하늘에는 선명한 북두칠성의 모습과 보석같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별빛이 황홀하고 찬란하다.
윤동주 시인의 “별헤는 밤”이 생각난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중략)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로 마감하는 내용에서 창씨 개명을 강요하는 일제 식민지 시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청춘의 방황, 그리고 희망의 약속이 묻어나는 이 시를 쓴 작가의 마음이 현재 독립을 갈구하고 있는 티벳인들의 마음이라고나 할는지………
하늘에는 반달이 나타났다. 기차의 진행방향에 따라 간간이 창밖에 비치다가 사라지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달빛은 더욱 밝은 빛을 발하며 달리고 있는 기차주변의 산하를 밝게 비추고 있다.
10시가 되자 기차가 조용해졌다. 하루의 열차여행에 피곤도 할 것이다. 이렇게 조용한 밤, 창밖의 달빛을 벗 삼아 조용한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것도 큰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정적 속에 기차의 달림은 계속되고 티벳 고원의 밤은 조용히 깊어간다.
반시간 후 감융(甘隆)역에서 기차를 교행하고 다시 출발한다. 해발 3,164m, 외부온도 13℃를 가리키고 있다.
밤 11시반경 꺼얼무(格欠木) 역에 도착하였다. 해발 2,829m에 있는 청장열차의 기착점으로 라사에서 1,142km를 하루 종일 달려 도착한 것이다. 꺼얼무 내 탕구라향은 중국의 향단위중 제일 큰 도시이나 인구는 1,200명으로 1㎢에 한명 꼴도 안 된다. 세계에서 가장 크면서도 인구밀도는 가장 낮은 도시이다.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내리고 탄다. 열차는 25분을 쉬고서야 출발하였다. 이제부터는 고도가 서서히 낮아지는가 보다.
2009. 8. 30(일) 기차는 계속 달리고 있다.
새벽 2시 반 잠시 눈을 떠보니 창밖에 보이는 하늘에는 별만이 총총하다. 달도 지고 어둠속의 별빛은 참으로 영롱하다.
7시에 잠을 깨보니 벌써 맑은 날씨가 밝은지 오래 되었나 보다. 기차는 계속 달리고 있는데 고도가 많이 낮아졌는지 푸른 초원을 조성하고 있는 풀들의 키가 많이 커 보인다.
반시간정도 지나 Ke Tu역이다. 고도 2,300m로 외부온도 5℃를 가리키고 있다. 호수가 있고 가옥들이 몇 채 있는 마을의 모습이 보이고 초지를 조성한 밭의 모습들이 나타난다.
햇반과 해물탕면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조용한 열차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창밖의 경치를 감상하며 식사를 할 수 있어 우리는 행복한가 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큰 마을이 보이고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기후조건이 되는지 보리, 밀, 채소 등을 경작하는 밭이 이어지고 나무들의 크게 자란 모습도 보인다.
10시 좀 넘어 시닝(Xi Ning, 西寧)에 도착하였다. 해발 2,213m로 고도가 많이 낮아졌다. 제법 큰 도시로 고층 아파트의 모습이 많이 보이고 신축중인 아파트의 모습도 많이 보이는데 아파트 외에는 고층건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철길 변을 따라 7-8층 규모의 아파트가 길게 이어져 있으며 도로공사를 하는 사람들과 주변이 산만하니 기차가 서행하여 기차가 역에 도착하는데 20여분이 소요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타느라고 부산하다.
해발 2,213m에 위치한 시닝(Xi Ning) 기차역
두 시간을 달리니 란주(Lan Ju)역이다. 꺼얼무에서 1,009km거리를 밤새 달려왔고 이제 우리 기차의 도착지 시안까지 700km 남았다.
평화로운 농촌마을이 이어진다. 이제는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는 평범하고 지루한 기차여행이 시작되는가 보다. 푸른 초원의 아름다움에 취해 행복한 시간의 연속이었던 어제 하루의 여행과 비교된다.
저녁 8시50분 시안(Xi An, 西安)에 도착하였다.
승객들이 매우 많이 내린다. 시내에는 큰 빌딩들이 즐비하고 무척 번화한 큰 도시이다. 시안은 BC 202년경 전한의 도읍지 장안성으로 그 후 수 당의 수도가 되었고 중국 10대 도시 중 6번째 큰 도시이며 직선 50km, 남북 35km가 되는 북경과 상해 다음으로 큰 정치 교육의 중심도시이다.
명나라 때에 10년 동안 연인원 72만 명을 동원하여 완공하였다는 성벽이 14km에 이어져 있다. 현재 지하철 공사 중인데 2010년에 1, 2호 지하철이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대학교가 150개이고 유학생이 15만 명인데 한국학생이 1,500명이라고 하며 경주와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한다.
시안(Xi An, 西安) 성문
오후 9시 서안 동방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정리하고 내일 출발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에 거리를 한 바퀴 산보하였는데 저녁시간이라 거리는 한가하고 차량도 별로 많지 않다.
2009. 8. 31(월) 06시 30분 기상
아침은 호텔 20층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호텔을 출발하여 골동품 시장으로 유명한 회족거리를 한 시간 가량 둘러보았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으나 인형, 귀걸이, 장식품, 팔찌, 벼루, 붓 등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고 대추, 호두, 곶감, 석류 등 과일을 팔고 있는데 대추가 탁구공만큼 크고, 석류는 색깔도 좋고 무척 탐스럽다.
시안(Xi An)의 회족거리
이곳에서는 골동품, 구 화폐, 과일 등을 파는 가게가 양쪽에 늘어서 있다.
황하강의 지류인 위하강 다리를 지나 시안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하고 12시반경 이륙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신종 풀루 영향으로 여행객이 감소한 때문인지 비행기의 승객이 반도 안 된다.
오후 2시 반(한국시간 3시 반) 멀리 우리 인천공항의 모습이 보인다. 10여일 만에 보는 우리의 푸른 산하의 모습이 정겹다.
아! 이제 가슴 부풀었던 10일간의 여행이 끝났구나.
4. 글을 마치며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이제는 홀가분한 느낌이다.
자주 가는 산행이지만 높은 산행이 있는 날이면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새로운 산을 정복한다는 기대 속에 산행을 하게 되고 무사히 산행을 마친 후 드디어 잘 해 냈다는 기쁨과 안도의 기분을 느끼곤 하였는데 이번 여행은 높은 고도와 음식, 숙박지 등 열악한 환경 때문에 다소 긴장하였던 것이 사실이나 이제 모든 것을 무사히 잘 견디어 낸 것이다.
이번 여행을 위하여 여행코스, 숙박지 선정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혜초여행사와 현지식에 적응하기 어려운 우리 일행을 위하여 김치, 고추장, 김, 깻잎 등 밑반찬을 많이 준비하여 여행 첫날부터 청장열차를 타기 전까지 7일간 매 식사 때마다 충분하게 공급해준 가이드 천진희 씨에게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표현력이 부족하고 여행기간 보았던 것을 많이 전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 지루하게도 느낄 수 있는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차마고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에게 다소나마 보탬이 되는 자료가 되기를 기대하며 이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