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수상자 발표
좋은 어린이책을 쓰고 출판하는 풍토를 가꾸고 동화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워주기 위해 창비에서 마련한 제11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수상자가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1000만원과 함께 2007년 4월 이딸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국제아동도서전 참관과 유럽문화기행 혜택을 드립니다.
그동안 이 공모를 통해, 창작부문에서 채인선(전봇대 아저씨), 이가을(가끔씩 비 오는 날), 박기범(문제아), 이미옥(가만 있어도 웃는 눈), 김중미(괭이부리말 아이들), 안미란(씨앗을 지키는 사람들), 고은명(후박나무 우리 집), 김기정(해를 삼킨 아이들), 김남중(기찻길 옆 동네), 문선이(지엠오 아이), 이현(짜장면 불어요!), 배유안(초정리 편지) 등의 작가가 등단하거나 새로이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또한 기획부문에서도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조은수), 『동무 동무 씨동무/가자 가자 감나무』(편해문), 『어진이의 농장 일기』(신혜원), 『과학자와 놀자!』(김성화 • 권수진), 『요리조리 맛있는 세계 여행』(최향랑), 『발명, 신화를 만나다』(유다정), 『썩었다고? 아냐! 아냐!』(기획집단 벼릿줄) 등 참신한 교양서를 발굴해 펴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시상식은 2007년 2월 9일(금) 오후 4시 30분 프레스센터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어린이 독후감 공모’ 시상식과 함께 열립니다.
제11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
창작 부문: 김소연 장편동화 『명혜』
기획 부문: 김경화 『레디, 액션! 우리 같이 영화 찍자!』
김소연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수료했다. 2004년 샘터문학상 동화부문에 당선했고, 2005년 어린이동산 중편동화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한겨레 아동문학작가학교 19기 및 동창모 7기 졸업했고, 현재 ‘아이말꽃샘’ 동인에서 동화쓰기를 공부하고 있다 .
김경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아동학과를 졸업했고,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학과(연출 전공)에 들어가 졸업했으며, 그동안 단편영화 「침대」 「그해 아폴로11호는 달에 갔을까?」 「우리 기차 타러 간다」 「말을 걸다」 「배달」 등을 만들었다. 문화선교연구원 애니메이션 제작 공모에 2005년에 「홀라당 거북이」 「엄지손가락」 이, 2006년에 「랄랄라」가 당선되어 씨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또 어린이책 기획∙집필 모임 ‘청동말굽’에서 일하며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 『재주 많은 집, 머리 좋은 빌딩』 『바퀴에서 우주선까지, 연기에서 인터넷까지』 『하멜 아저씨 따라 조선 구경하기』 같은 책을 펴냈다.
심사위원
창작 부문_본심: 윤태규(동화작가), 원종찬(아동문학평론가)
창작 부문_예심: 김은영(동시인), 김제곤(아동문학평론가), 박숙경(아동문학평론가), 안미란(동화작가)
기획 부문_본심: 윤구병(출판기획자, 변산공동체 대표), 엄혜숙(어린이책 기획자)
창작 부문 심사평
올해 창작 부문에는 모두 56분의 원고가 들어왔다. 마감일을 한 달 앞으로 당겨서 그런지 작년보다는 조금 줄어든 편수라 하겠다. 9분이 동시를, 나머지 47분이 동화 또는 아동소설을 보냈다. 예심위원(김은영, 김제곤, 박숙경, 안미란)을 거쳐 6편의 원고가 본심에 올랐다.
동시 모음 「‘분꽃 씨앗을 밟으며’ 외」는 한 권 분량의 작품들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뜻밖의 일을 겪게 된 식구들의 상실감과 그리움을 기교나 멋을 부리지 않고 어린이의 눈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것으로 시인의 실제 체험에서 우러나왔으리라 짐작되는 진솔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렇듯 한 권 분량의 동시가 모두 죽음을 전제로 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가라앉음의 정조’를 어린이 독자가 감당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실제로는 아내이자 어머니의 처지에서 겪은 슬픔일 테지만 줄곧 어린 딸의 목소리를 ‘대행’하는 형식이다 보니 작품의 색채가 단조로우면서도 감정과 시점의 뒤섞임이 언뜻언뜻 비친다.
장편동화 「방상씨의 탈」은 '전통 탈(假面)'과 관련된 조금은 색다른 소재를 가지고 현실과 환상을 교차시켜 이야기를 풀어간 판타지다. 시도는 좋았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자주 앞으로 튀어나오는 탓에 작위적인 대목들이 더러 눈에 띈다. 판타지공간에서 주인공 소년이 관찰자에 머무는 것도 결함이다.
나머지 4편은 생활을 그린 것이든 역사를 그린 것이든 이야기를 엮어내는 솜씨가 돋보이는 장편들이다. 「똥 치우는 아이」는 집안 형편 때문에 똥오줌도 못 가리는 여동생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 4학년짜리 남자아이의 일상을 매끄럽게 그려나갔다. 별다른 사건 없이도 독자를 붙잡아두는 작가의 역량이 생생한 대화체에서 빛을 발한다. 그렇지만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않는다고 할까? 작가의 눈길은 나이 어린 1인칭 주인공만을 뒤쫓고 있어서 장편에 걸맞은 문제적인 서사를 창조하지 못했다. 반면에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망태 아저씨는 어디에 있을까?」와 중국의 조선족 새엄마를 가족으로 맞아들이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을 그린 「눈마을에서 온 새엄마」는 시대의 문제와 연관된 굵직한 서사를 따라가는 긴장감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광주 이야기는 이미 나온 작품을 넘어서는 개척지가 아쉬웠으며, 조선족 새엄마 이야기는 이런 소재의 작품들이 빠져들기 쉬운 인물의 상투적 설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당선작의 명예를 놓고 가장 나중까지 숙의한 작품은 「명혜」였다. 이 작품은 근대 여명기를 배경으로 신학문에 목마른 한 소녀가 구세대의 인습과 맞서면서 자기 꿈에 한 발짝씩 다가서는 이야기다.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여성이라는 이중의 굴레를 이겨내는 과정이 꼼꼼하게 그려졌다. 여성주의 시각으로 우리 근대사를 꿰뚫어보고자 하는 작품인데, 자칫 신식교육과 외국유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열망으로 비쳐질 우려도 없지 않아서 근대의 모순에 대한 작가의 시각 문제를 두고 여러 차례 논의하였다. 선구적 인물의 전기(傳記)처럼 주인공의 행적을 굵은 선으로 그려내면서도 그를 둘러싼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역사적 사건과 추이에 녹아드는 모습을 단순도식이 아닌 매우 건강한 시각으로 통찰하고 있는 점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주인공이 속한 양반집의 습속이 어린이문학에서 이만큼 충실하게 그려진 전례도 찾기 힘들거니와 일제에 대한 부자(父子)간의 상반된 태도, 민족문제와는 또 다른 층위로 존재하는 여성문제 등이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 실감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작품의 줄거리가 조금도 복잡하지 않음에도 풍부한 생각거리를 던지는 문제작임이 확인되었다. 이에 두 심사위원은 「명혜」를 당선작으로 뽑자는 데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작가의 정진을 빈다. (윤태규, 원종찬)
기획 부문 심사평
올해 기획부문 본심에 올라온 원고는 「괴물 섬」 「우리 땅의 바위와 화석을 찾아서」 「이수네 벼룩 가게로 오세요」 「레디, 액션! 우리 같이 영화 찍자!」 4편이었다. 본심에 올라온만큼 내용이나 구성 면에서 모두 책으로 출간해도 좋을 정도로 경중을 따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기획의 참신성, 구성의 완결성, 대상 독자에 대한 의식(소통성) 등을 기준으로 하여 어느 때보다 엄밀하게 심사를 진행했다.
「괴물 섬」은 잠옷공주, 공부벌레, 호빵맨, 단발머리로 불리는 열살짜리 남녀 어린이 네 명이 괴물의 초대를 받아 미지의 괴물 섬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전통문화에 등장하는 존재들을 차례차례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어, 도깨비, 달두꺼비, 삼족오, 봉황과 주작, 현무, 기린, 천마, 용, 백호, 해태, 인면조, 삼시충, 불가사리, 동자삼 등 여러 신기한 존재와의 만남을 보여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기획의 참신성과 구성의 완결성이란 면에서는 미흡했다. 같은 소재나 주제라 할지라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엮어내는가’가 기획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 땅의 바위와 화석을 찾아서」는 구체적인 지명과 그 지역 지층에 대해 상세한 고증을 담고 있어서 대중적인 지질학의 새로운 문을 여는 안내서라 할 만한 원고였다. 제대로 된 그림, 화석 및 광물의 사진, 도표 등을 곁들이면 이 분야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읽을거리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글 수준이 중고등학생 및 성인이 읽기에 적당한 것이라 ‘좋은 어린이책’ 기획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기획의 참신성 및 구성의 완결성에서는 높이 평가했으나, 대상 독자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다. 커뮤니케이션의 발신자인 필자는 수신자인 독자를 늘 의식해야 할 것이다.
「이수네 벼룩 가게로 오세요」는 벼룩시장을 소재로 생활 속의 환경문제를 다룬 글이다. 초등학교 2학년인 강이수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수가 재활용쎈터와 벼룩시장을 직접 체험하면서 헌 물건에 대한 생각, 재활용에 대한 생각이 차츰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 독자인 어린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 환경문제에 더 넓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끔 ‘벼룩이의 정보 이야기’를 덤으로 붙인 것도 구성 면에서 알찼다. 그러나 기획의 참신성이란 면에서 보면 평이했고, 어디에선가 비슷한 책을 본 듯한 느낌을 주어 아쉬웠다. 같은 소재, 같은 주제여도 새로운 관점으로 보여주어 처음 본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뛰어난 기획의 포인트일 것이다.
「레디, 액션! 우리 같이 영화 찍자!」는 영화의 역사를 들려주는 부분과 영화를 직접 만들어보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간략하게 영화의 역사를 소개하고, 영화에 관심 있는 어린이가 직접 영화를 찍어볼 수 있게 안내하는 영화입문서인 것이다. 영화를 만들려면 촬영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전에 많은 기획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촬영한 다음에도 편집과 녹음 등 여러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 실제적이고 쓸모있는 가이드북 역할도 할 수 있겠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매체인 영화에 어린이들이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하고, 직접 만들어보게끔 유도한다는 점에서 참신했고, 이를 높이 평가하여 당선작으로 뽑았다. (윤구병, 엄혜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