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기관지 『내일을 여는 작가』(2022년 하반기, 81호)가 출간되었다.
기획 특집으로는 노동문학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조정환은 「문학적 민주주의를 넘어 문화적 공통주의」를 통해 21세기의 노동문학은 노동의 사회적 산포와 인지화, 전 지구적 주권 구성, 노동계급의 다중화와 불안정화, 인지자본주의적 수탈체제의 등장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 계급 재구성 속에서 문학적 재구성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지식인화되고 지식인이 노동자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양자를 대립시키는 독법보다는 양자의 실제적 공통장을 구축하는 것과, 제도문학이 암흑문학세계에 한층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송경동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버스 운동을 정리했고, 양기창은 자신의 민주노총 활동과 문학 활동과의 영향 관계를 소개했다. 이외에 성희직은 광부로서 피땀 흘린 노동의 역사와 진폐재해자들의 투쟁을, 조선남은 대구 지역에서 전태일 열사의 복원과 계승 운동을, 김채운은 한광호 열사와 유성기업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표성배는 객토문학회의 활동을, 정세훈은 노동문학관의 건립과 운영을, 김형로는 대우조선 파업 현장을, 전비담은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백애송은 플랫폼 노동을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다루었다.
나의 문학론으로는 김준태 원로 시인과 김남숙 젊은 소설가의 단상을 실었다.
신작 시는 김명남, 김문, 김영범, 김준현, 김진희, 마선숙, 문신, 박남원, 박노식, 박재연, 백무산, 신기훈, 유지소, 윤임수, 이면우, 이수진, 이한열, 정완희, 허유미 시인이, 신작 동시는 김영, 박혜선 시인이, 신작 시조는 박희정, 변현상 시인이 발표했다. 신작 소설은 유시연, 채희윤 소설가가, 신작 동화는 강민경 작가가 발표했다. 전국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 및 작가들의 진지함과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호의 부록으로 한국작가회의 회원들 주소록을 수록했다.
2022년 11월 28일 간행.
■ 목차
나의 문학론
생명과 평화와 하나됨을 위하여! 김준태
내가 집에 두고 온 것 김남숙
기획특집
문학적 민주주의를 넘어 문학적 공통주의로 조정환
희망버스 운동에 대한 짧은 소고 송경동
나의 문학과 민주노총 양기창
시로 쓴 광부 이야기 성희직
대구 사람 전태일 조선남
나의 문학과 한광호 김채운
노동문학회(객토문학회)활동 표성배
노동문학관 건립부터 노동예술제 개최까지 정세훈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김형로
네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고, 가보면새로운 세상을 볼 것이다 전비담
시
습관성 의지 중후군 김명남
불면 김문
신 김영범
Black on Grey 김준현
아픈 사람의 부엌 김진희
벼랑이 훤하다 마선숙
뼘 안에서 시 쓰기 문신
천진암 호일(好日) 박남원
젊은 애인과 백석과 아름다운 석인상 박노식
불탄 산 박재연
인류세 백무산
기억의 집 신기훈
융의 서막 유지소
일복 윤임수
북서풍 이면우
천도(天桃) 이수진
너무나 추상적인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이한열
무화과 정완희
제주이다 허유미
동시
그곳에도 김영
눈 박혜선
시조
벗어난 화음 박희정
톱들의 시간 변현상
소설
예당의 밤 유시연
장인표 상사, 공적을 청원하다! 채희윤
동화
슬픔이 기쁨에게 강민경
부록
회원주소록
■ 책 속으로
인류세
백무산
폭염에 마스크를 쓰고 불판 아스팔트를 걸어
쥐약을 사러 갔다
한동안 비워둔 허술한 집이긴 하지만
갑자기 불어나 거실에까지 제집처럼 극성이었다
먹으면 눈이 멀어지고 소화도 시키지 못해
밝은 곳으로 기어 나와서 죽는다는
새로 나온 쥐약이라곤 하지만,
마당엔 개도 있고 너구리도 다니고
꼭 그래야 되나 싶기도 해서
뚜껑도 열지 않은 채 다락에 던져두고
허술한 곳 때우고 손을 보고 더 두고 보자 했는데
어느 날 극성이던 것들이 종적을 감추었는데
쓸데가 없어진 위험한 쥐약 버리려고 찾았더니
봉지가 찢기고 빈 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빨 자국에 뚜껑은 몽땅 뜯겨져 있었고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 지경에 많이 먹겠다고 행패
부린 놈 배불리 먹고 떠났을 테고
못 먹은 몇몇은 어쩌면 자책에 시달리다 다 버리고
떠났을지도 모른다, 쥐가 자책을?
인간 전유물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자책을 모르는 생명이 여태 멸종 않고 살아남을 수는 없잖는가?
가시에 찔리면 눈에 불이 나듯 자책도 반사신경의 일종일 것
그러니 너무 자책할 것 없어, 너희들이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테니까
그런 일쯤이야 이곳에는 너무 흔하고 흔해빠진 일이야
머리 위에 저 거대한 뚜껑 찢어발긴 것 좀 보아
저곳에서 폭우와 폭염만 쏟아지겠어?
저 뜯긴 하늘에서 창세기가 열릴지라도
(191~192쪽)
【소설】
장인표 상사, 공적을 청원하다!
채희윤
1.
좋습니다. 일이 기왕 요라고 어긋난다면, 나도 신속히 작전 변경헙니다, 17계 도멸괵(假道滅虢). 낙하훈련, 천리행군을 밥 묵듯 헌 대한민국 공수부대 상사로 제대한 남자가 나, 장인표요. 힘들게 만들어 버젓이 키워 논 아들이 아버지 대망을 막겠단 말 아니요? 결국 지 아버지를 폐급으로 본다는 말과 진배읎는 거제.
인생 세 번째 마지막 기회를 위해 수년 계획헌 거사를 막는 것, 요것보다 더 나쁜 불효가 어딨다고. 성질대로 허자면 원산폭격으로 정신교육 좀 시키고 잡은디, 솔가해 자식 거느리고, 병원장이란 사회적 지위까정 있는 놈을 그렇게는 못 헐 노릇이고. 지금 내 속은 곽란 난 듯 오장은 뒤틀리고 육부가 꼬이는 열기로 귀코헐 것 없이 구멍마다 연기가 솟아난께, 내가 화상 입은 도깨비 꼴이요 시방.
물론 이번 일은 내 실숩니다. ‘귀신처럼 접근하여 번개처럼 타격하고 연기처럼 사라져라’는 공수단 구호를 각인시킨 내가 어쩌다가, 의사니 교수니 하는 사람 앞에 붙은 상표에 혹해서 좀체 안 허던 경솔한 판단을 했은께. 며느리가 네 번째 남아를 포태허고, 장인과 합쳐서 만든 병원이 전국에서 몇 개 안 읎다든 종합병원 원장이 된 아들에, 마누라 수술까지 잘 끝나 퇴원하니, 식솔들이 얼씨구 좋아 난리치는 바람에, 나까지 살짝 부화뇌동헌 댓가지라. 변명 쪼까허자믄, 가장이란 사람이 중병 든 마누라 퇴원해, 가시나들 밖에 없던 집에 손자 생겼는데, 빌려 온 고양이 같이 무덤덤헐 수가 있것소?
오늘처럼 속이 뒤집힐 때는, 마당에 나가서 광주를 봅니다. 좀 보세요, 그야말로 광주 시내가 거의 한 눈 안으로 옴싹 들어오제라? 장인표 집이 을매나 당당허게 높이 서 있는지 알 것지라? 마당에 나설 것도 읎이 거실 대청에 서서 팔만 벌리면 광주 전체가 내 품속에 있고, 무등산마저도 두 팔 안에 가둘 수 있단 말이요. 한 번 더 보쇼, 거리며 건물들이 모두 다 내 발밑에 있는 것을. 눈높이에 있는 것허고 눈 아래 있는 것허곤, 같은 것도 천양지차 달리 뵈는 법이지라, 암요. 눈 아래 있고 팔 아래 있는 것은 만만하게 보여서, 싸워볼 만허고. (236∼237쪽)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