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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기뻐하는 삶
시편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로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권면하기를
“여호와를 기뻐하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움의 이유로 삼고 하나님을 인하여 행복의 이유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재물을 인하여 기뻐하고 사람을 인하여 기뻐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야망을 성취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 그것으로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들은 상대적입니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갈증을 느낍니다. 사람들의 인기를 얻다보면 더 많은 박수갈채를 받고자 합니다. 돈을 벌면 행복하고 기쁠 것 같지만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만족이 없고 더 많은 돈을 갈망하는 중에 가난할 때에 작은 봉급 가지고 만족하고 행복했던 것과 달리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기름진 음식을 먹는데도 기쁘지 않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상대적으로 정말 좋은 집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 우리가 살던 집은 지금과 너무 달랐습니다. 방 아랫목은 불을 때서 장판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윗목은 냉골이어서 추웠습니다. 불을 땔 때면 구들장들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서 연기들이 방 바닥 여기 저기에서 스멀스멀 올라와서 눈이 맵고 기침을 연신해대곤 했습니다. 부엌에서 지푸라기로 가지고 불을 땐 후에는 아궁이에서 그 재들을 담아 소쿠리 가지고 헛간 한쪽에 재를 버리곤 하니 부엌과 마당은 늘 지저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에 화장실이 방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 푸세식 변소에 가서 대소변을 보고 그 모아둔 것을 가지고 봄이 되면 퍼날라서 논과 밭에다가 거름으로 뿌리곤 했습니다. 문짝이 문풍지로 만들어져 있어서 겨울이면 외풍이 숭숭 들어왔고, 겨울에 밖에서 세수하고 방으로 들어올 때면 문고리에 손바닥이 쩍쩍 들러붙곤 했습니다. 참 사는 것이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열악하기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지금보다 불행하다고 느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객관적으로 지금이 훨씬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좋은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때보다 우리 마음이 더 행복하고 평안하고 기쁜가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러하냐면 하나님께서 만든 우리 인간의 마음이 그러한 세상 것들로 인하여 계속적인 기쁨을 얻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마치 끝없이 강물이 흘러들어가도 채워지지 않는 바다와 같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던 솔로몬 왕이 고백한 전도서를 보면 이르기를,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도서 1:7~10)
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귀도 늘 아름다운 음률이 담은 노래를 듣는다 해도 나중에는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 기름진 음식을 먹고 또 먹어도 나중에는 그 맛의 달콤함을 느끼지 못하고, 눈도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광경을 보아도 나중에는 시들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사람의 지식 역시 그 본질은 여전히 과거에 있던 것이 새롭게 단장한 것일 뿐 결국 진정 새로운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세상에 있는 것들은 진정한 행복과 기쁨의 근원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것들은 아무리 좋더라도 경제학 공식인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서 밝혀준 대로, 결국은 쓰면 쓸수록 행복지수, 만족지수가 점점 떨어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새로 지은 좋은 아파트, 멋지고 비싼 차, 유행하는 옷, 비싼 귀금속 등을 얻는다 해도 그 행복은 얼마 가지 못합니다. 일년, 한달이면 그 만족과 행복은 사라지고 이전보다 더 밑바닥으로 떨어져 이전 상태로 돌아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영원히 샘 솟듯 솟아나는 기쁨과 행복과 만족의 근원이 있을까요? 사도 바울이 말씀한 바대로 “항상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신 명령이 그냥 허울좋은 이상적인 슬로건인가 아니면 실현 가능한 우리의 목표인가요? 오늘 이 저녁에 우리가 한계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간의 육신의 제약을 뛰어넘어 우리로 하여금 끝없이 솟아나는 기쁨과 만족의 근원을 얻는 길을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기쁨의 근원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쁨으로 삼으면 우리 심령은 늘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기쁨의 대상으로 삼으면 실망감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이해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고 한없이 끝없이 나를 용납해주고 감싸주고 자기를 다 희생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님조차도 모든 것을 다 퍼주고 이해해주고 돕고 싶어도 능력이 한계가 있습니다. 가진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사랑한다 해도 언제나 백 퍼센트 마음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정치적 견해가 맞는 것도 아닙니다.
제 독서 기억이 맞다면 영국의 유명한 청교도 목회자 사무엘 러더포드 목사님은 경건한 아내가 있었는데, 당시 그의 아내와 당시 국왕의 정치 문제를 가지고 의견 다툼으로 자기 주장을 꺾지 않고 서로 의견이 달라서 한참 동안 친정에 가서 안 왔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그런 상황이 적지 않게 있을 것입니다.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들끼리 의견이 다를 수 있고, 가정에서 부부 간에도, 부자간에도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기쁨의 근원으로 삼는 사람은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행복의 울타리가 될 것이라고 여기고 결혼했으나 결혼 지옥으로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적지 않는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쁨의 근원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십니다. 그는 항상 정의롭고 긍휼이 많고 한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자기 아들을 악한 우리를 대신하여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내어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는 능력이 한이 없으시기에 우리를 돕는 일에 한계가 없습니다. 지혜가 한이 없으시기에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가장 멋지게 풀기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라는 존재가 지성도 있고 의지도 있지만 감성도 있는 존재잖아요? 이러한 감성적 필요를 알아주고 채우실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가 우리를 만드신 분이요 우리의 부모님들에게 그 자식들을 향한 한없는 사랑과 긍휼과 안타까움을 영원히 샘솟듯 부어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심지어 짐승과 미물들에게도 그 부모의 사랑을 본능적으로 주셔서 그들이 자식들을 낳고 기르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조차, 자신의 몸조차도 아낌없이 내어주도록 빚으셨기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마음의 감정적 필요들을 누구보다 더 깊이 이해하시고 공감하시고 함께 아파하시고 그 감정적 필요도 다 채워주시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해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 우리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 밖 우물가에서 만난 마음의 상처가 많았던 한 여인을 능히 치유해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과거의 여러번에 걸쳐 당한 실패의 쓰라린 경험에서 우러나온 고통 때문에 늘 마음이 괴롭고 눌려 있어서 사람들과 교제를 피하여 홀로 지내던 사람입니다. 떳떳하지 못한 과거와 현재의 생활 가운데서 여인의 마음은 눌려 있고 신경은 늘 날카롭고 스스로를 학대하며 지냈던 여인은 예수님과 우물가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결국 그 마음의 상처들이 치유되고 회복되고 쓴 물만 내던 그 입술에서 긍정과 믿음과 자유와 기쁨의 언어들이 다시 흘러나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만 바라보며 기쁨을 얻으려 하면 안됩니다. 한계가 있고 도리어 더 실망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만족의 근원으로 삼고 그를 즐거워할진대 절대로 실망할 일 없고 도리어 기쁨과 평안과 치유와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 말씀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권면하기를 하나님을 기뻐하라고 주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곤 합니다. 하나님을 기쁨의 근원으로 삼으라고 권면하곤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시편 37:4 말씀에서 이르기를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라고 하였고, 시편 32:1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라고 외쳤습니다. 시편 33:1 말씀에서도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니라”
고 격려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그런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빌립보서 3: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고 하였고, 고린도전서 1:31 말씀에서도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 자랑하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씀들은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기억하며 그 헌신과 희생으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해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그를 기뻐하며 행복해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감사하며 만족과 자랑의 꺼리로 삼으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성경이 이렇게 가르쳐주신 바대로 사람과 재물과 어떤 우리 자신의 성공과 상대적인 우리의 어떤 성공과 행운과 소유를 기쁨의 이유와 원인으로 삼지 말고, 우리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즐거움의 이유와 만족의 이유로 삼읍시다. 하나님을 인하여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행복해합시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다 해도 우리 영혼을 저 영원한 지옥불에서 건져낼 수 있기에 부족합니다. 그 어떤 것을 다 가진다 해도 우리의 심령과 삶의 영원히 지속될 행복을 갖다 주기에는 부족합니다. 때로는 세상 축복과 행운이 도리어 우리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빼앗고 망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경이 제시해주신 바 하나님으로 우리의 기쁨의 원인으로 삼읍시다. 하나님을 우리의 만족의 대상으로 삼읍시다. 하나님만으로 우리 구주 예수님을 가진 것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하고 기뻐합시다.
물론 하나님을 즐거움으로 삼는 것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출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즐거움으로 삼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즐거움으로 삼는 것을 다르게 표현된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을 즐거워하는 모습입니다. 주일을 큰 기쁨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사야 58:13,14 말씀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으로 올리고 네 조상의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구약 시대의 안식일, 신약 시대의 주일은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바 구원자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날이기 때문에, 안식일과 주일을 모든 날 중에서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기다리며 예배를 가장 큰 특권으로 알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을기뻐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시고 높여주시고 풍성한 은택으로 길러주시고 공급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전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 역시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입니다.
시편 122:1 이하에 이르기를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곳이며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이스라엘의 왕이 거하는 왕궁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집이 있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며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기뻐하는 사람은 곧 여호와를 기뻐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을 사랑하며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그의 가정에 복을 주시고 평안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 역시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입니다.
시편 119:14 이하에 이르기를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시편 119:14~16)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를 기록한 성경을 즐거워하여 늘 조용히 읽고 묵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힘을 얻습니다. 생명의 능력이 있습니다. 마음에 찾아오는 죄악의 유혹을 떨쳐낼 힘이 있습니다. 시편 119:11 말씀에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라고 다윗이 고백한 대로 주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지켜서 악한 시험이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게 합니다. 마음의 눌린 마음을 주님의 말씀이 회복시켜 줍니다. 다 죽어가던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세미한 중에 들린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회복되어 그의 남은 사역을 힘차게 달려가서 승리하여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영광스럽게 승천하였듯이, 낙심되고 침체된 영혼이 힘을 얻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백성을 즐거워하여 성도의 교제를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을 먹는 음식보다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던 우리 구주 예수님처럼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 곧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그를 인하여 만족하는 사람에게는 세상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큰 은혜가 주어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 시편 37:4 말씀에서도 약속된 축복이 있지 않습니까? 함께 읽어봅시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움의 이유로 삼고 그를 즐거워할진대,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즐겁게 할 것들을 찾으시고 즐거움을 주시려고 우리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느헤미야 8:10 말씀에 이르기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놀라운 새 힘이 생겨납니다. 고난과 맞설 용기가 생겨납니다. 현실의 슬픔을 극복할 위로의 힘을 얻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실적으로는 기뻐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 같을 때 우리에게는 기뻐할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고 만족하며 기뻐 뛸 대상이 분명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라가 무너지는 위기 속에서 선지자 하박국이 성령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나서 노래한 이 노래 구절처럼 우리 모두 평생에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기뻐합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하박국 3:17~19)
한평생, 다윗의 고백처럼,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모든 것이 부족한 것 없는 것 뿐일지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가 우리를 구원해주셨으며 나를 사랑해주셨으며 나의 많은 죄를 다 사해주셨고 나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며 여전히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심을 기억하면서 하나님만으로, 우리 주 예수님만으로 넘치게 기뻐하며 감사하며 자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 가운데 사람으로 실망한 마음 있습니까? 여전히 많은 것을 갖고 있어도 허전한 마음 있습니까? 받은 상처로 인하여 괴로움의 쓴 물이 깊이 고여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기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치유책이요 믿음의 선배들이 경험했던 치유책을 받아들입시다. 오직 하나님만으로,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만족합시다. 그리하여 놀라운 치유와 회복과 만족과 힘을 얻읍시다.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