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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 목사
오늘 본문 말씀은 소리를 내서 한 번만 읽어보아도 큰 감동을 주는 말씀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큰 감동과 함께 우리 마음과 영혼에 파고 들어와서 뿌리를 내린다면 그 말씀의 능력과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실 구원의 은총에 대한 소망과 위로와 확신이 있다면 오늘 본문 11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처럼 영원한 즐거움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행하실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1절과 4절과 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주목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어떤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답하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아, 나를 보아라,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하시면서 친근하게, 그렇지만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벨론 땅에 있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말씀합니다. “하나님 보시옵소서. 우리의 형편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우리를 고향 땅으로 돌려보내주신다고 하여도 이렇게 숫자가 미미하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보잘것없는 규모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가 없어진지 70년이나 되었습니다. 고향 땅은 황폐할 대로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있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1절에 보면,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4절에 보면 “내 백성, 내 나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의를 아는 자들,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보잘것없기에, 그들이 매일 보고 듣는 것이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이기에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과 불평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구하는 너희들아! 내 말에 귀를 귀울여봐라. 내가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다. 지금 너희들이 보고 있는 것은 보잘것없는 것이다. 너희들은 강대한 나라도 아니다. 멸망한 나라의 백성들이다. 숫자도 미미하다. 그러나 내가 누구냐?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느냐? 내가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상태에 있었느냐? 혼자가 아니었느냐? 그의 아내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아니었느냐? 그런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얼마나 크고 놀라운 나라가 되었었느냐? 지금 너희들의 눈에는 보잘것없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하여도,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고향 땅이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졌다고 하여도 내가 너희들을 축복해서 시온을 에덴동산처럼, 사막을 여호와의 동산처럼 만들어주겠다. 그 안에서 너희들은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찬양을 부르게 될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 말씀을 단지 공허한 소리로 듣는다면, 사실은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없는데 단지 말만 그렇게 한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이 말씀은 유다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위로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이방 땅에서 온갖 설움을 받으면서 눈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한심한 처지를 깨치고 나갈 만한 아무런 힘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이라고 믿는 것과 현실과의 차이, 그 차이에서 오는 유대 백성들의 흔들림이 뚜렷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보다 현실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에 두려움에 짓눌려 있는 유다 백성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말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셔서 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황폐한 나라를 에덴 동산처럼 만들어주신다는 말씀을 믿겠습니다. 그러나 보시옵소서 지금 우리들을 향해서 손가락질 하고, 우리를 향해서 비아냥거리는 저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너희를 구원해 주신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언제, 어떻게 구원해 주실까? 그 말을 믿고 있는 너희들은 바보 아니냐? 지금 너희 형편을 보아라. 그리고 너희들을 다스리고 있는 우리 바벨론의 영광을 보아라. 이게 하루 아침에 없어질 영광처럼 보이느냐? 너희들에게 눈이 있으면 똑똑히 보아라. 우리의 군대를 보고, 웅장하게 서 있는 건물들을 보아라. 우리들의 신전의 위용을 보아라. 너희들을 다스리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망할 수 있겠느냐? 그래, 너희 말대로 언젠가는 너희들이 너희들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언제가 될까? 너희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너희들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까? 우리들에게 지배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느냐? 돌아갈 생각을 아예 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말고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주는 떡과 빵을 먹으면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며 사는 것이 너희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해라.”
그것이 속편한 생각일 것이다.
여러분, 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하지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 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12절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하나님께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바벨론의 영광이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다고 하여도 그들은 풀과 같은 존재이다. 잠시 있다가 사라져버릴 존재들이다. 그러나 너희들의 하나님 나 여호와는 누구냐?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영원하다. 나는 하늘과 땅을 창조한 자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들의 눈에 보이는 바벨론의 웅장함만을 보고 너희들의 구원자인 나 여호와는 보지 못하고 있느냐?
여러분, 하나님의 이 말씀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늘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우리들 눈에는 현실이 너무 크게 보입니다. 당장 은행에 돈이 줄어들면 불안합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몸과 마음이 움츠려듭니다. 학교 공부가 힘들고 어려우면 마음에 여유가 사라집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당장 나타나셔서 우리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고, 병도 고쳐주시고, 교회도 부흥시켜 주시면 좋으련만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시는 것 같아서 괴롭습니다. 말씀은 많이 하시는 것같은데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대신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는 너무 자주 듣습니다. 현실이 너무 크게 보입니다. 현실은 우리들 코 앞에 있는데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능력을 갖고 계신 것은 믿지만 하나님께서 언제 구원의 은총을 허락해 주실 것인지 막연합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실지도 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은총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현실이 더욱 크게 보입니다. 현실이 크게 보이면 보일수록 우리의 두려움은 더욱 더 커집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모습이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우리 안에서 끊임 없이 일어나는 갈등과 고민을 풀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 눈 앞에 딱 버티고 서있는 현실이라는 거인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을까요? 우선,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지 아니하면 믿음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 안에서 끊임 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 안에 디폴트 세팅처럼 되어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어려우면, 현실이 조금만 힘들어도 우리들 마음과 영혼의 중심축은 불안과 두려움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있습니다. 누구나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우리의 마음은 흔들리게 되어있습니다. “매일매일”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쉬운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디폴트 세팅처럼 되어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매일매일”거부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자동적으로 불안과 두려움 쪽으로 움직이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매일매일”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우리 안에 없는 기발하고 새로운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 우리 안에 있는 말씀을 “매일매일”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매일매일”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지 말씀을 읽었다. 말씀을 묵상했다. 설교를 들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들은 말씀을 일상의 삶에서 기억해내라는 것입니다. 들은 말씀을 일상의 삶에서 기억해내서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다스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매일”일상의 삶에서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과 동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결과가 무엇입니까?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낙심과 절망입니다.
1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매일매일”우리에게 주신,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가 들었던 말씀을 기억해내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 말씀을 “매일매일”끄집어내어서 그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미래의 구원을 말씀하실 때 그냥 미래에 벌어질 사건만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과거에 이미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근거로 미래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아브라함과 사라를 끄집어내셨습니다. 천지창조를 이야기하셨습니다. 15절-16절 말씀은 출애굽 사건과 홍해 사건 그리고 광야 생활을 연상케 하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미래 언제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임할지 그 시와 그 때를 정확하게 알수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볼 때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이 결국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져서 하나님께 담대하게 외치는 믿음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신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매일매일” 깨어 있다는 것은, “매일매일” 말씀을 기억해낸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사건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디폴트 세팅처럼 되어 있는 불안과 두려움, 우리 앞에 떡 버티고 서있는 거인과도 같은 현실의 벽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매일매일”하나님을 향해서 담대하게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십니까?
한 두 번 들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진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십니까? “매일매일”이라는 단어가 그리 쉬운 말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참된 진리는 진부한 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매일 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우리 안에 디폴트 세팅처럼 되어 있는 자기 중심성, 게으름, 편한 쪽으로 쉽게 몸을 움직이는 것, 자기 생각과 틀리면 언제든지 거부하는 것, 이런 것들을 깨뜨리지 아니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살기 시작하면 자기를 숭배하게 됩니다. 무의식적으로 살기 시작하면 현실에 몸을 담고, 현실 속에 파묻혀 살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의 살아가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나를 거부하고, 현실을 뛰어 넘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자유가 있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포노나 대학교 교수였던 데이빗 포레스트 왈라스라는 사람이 2005년도 케넌 컬리지라는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 자유는 너무도 진귀해서 바깥 세상, 이기는 것, 성취하는 것, 보이는 것이 다인 저 바깥세상에서는 그다지 입도마에 오르지 않는 주제이다. 정말 중요한 이 자유에는 몇 가지 필수 속성이 있다. 주의 기울이기. 깨어 있기. 하기 싫어도 하는 엄격함. 노력. 진정으로 남을 위하기. 진정으로 남을 위해 희생하기. 이 모든 것을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매일, 사소한 방식으로, ‘쿨’하지 않은 방식으로 계속 하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다. 이러한 자유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무의식적 삶이다. ‘디폴트 셋팅’에 의해 돌아가는 삶이다. ‘다람쥐 쳇바퀴’의 삶이다.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뭔가 가졌었는데 이제는 잃어버린 영원한 무엇에 대한 갈망이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현실을 거부하고, 디폴트 세팅으로 돌아가는 삶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깨어 있어야 합니다. “매일매일”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담대하게 부르짖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이 없는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하여도, 이 진부한 이야기를 진리로 붙잡고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늘 깨어 있도록 힘쓰고, 하기 싫어도 하는 엄격함, 노력, 이것을 지속적으로 매일, 사소한 방식으로, 쿨하지 않은 방식으로 계속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끊임 없이 일어나는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이여 깨소서, 깨소서. 홍해를 가르시고, 사막에서 생수를 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셨던 하나님,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혈혈단신이었던 아브라함과 사라를 부르셔서 강대한 나라를 만드셨던 하나님이여! 비록 우리가 작고, 보잘것없고, 불안할 수밖에 없고, 어두움이 짙게 깔려 있는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는 어두움과 밝음이 일반이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날, 우리는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아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슬픔과 탄식이 모두 달아날 것입니다.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을 믿겠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되어주십시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구원의 은총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있게 나타날 수 있도록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로 흉용케 하는 자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이 말씀을 “매일매일” 끄집어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이 말씀이 지배하도록 하십시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저와 여러분들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것이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안에 디폴트 세팅처럼 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버리고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깨어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기 싫어도 노력하는 엄격함, 지속적으로, 조금씩, 사소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담대하게 부르짖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구원의 영광을 허락해 주실 날이 반드시 우리에게 도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