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6] 이정수(李貞壽) - 내 모든 것 하늘에 맡기고 3. 무주 고을에 내린 시련과 은사 - 2
12 어려운 시련을 넘기고 난 식구들은 선생님께서 무주 교회에 순회 오셔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정성을 알으셨는지 선생님께서는 1958년 9월 10일에 이요한 목사님을 대동하시고 친히 무주 교회를 찾아주셨다.
13 선생님을 맞은 식구들은 마치 수십 년 동안 헤어져 쓰라린 고아의 길을 걷던 자식이 꿈에 그리던 부모의 품에 안긴 것처럼 감격과 기쁨에 북받쳐 성전 마룻바닥을 눈물로 적셨다.
14 우리들이 철없이 울기만 하는 것을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마음도 아프셨던지 “울지 말라”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당일 상경하셨다. 그 후 2개월 만인 12월 3일 원리 강사들을 동반하시고 무주에 다시 오셔서 하룻밤을 주무시니 이것이 처음으로 선생님을 모신 하루였다.
15 무주 교회는 아직 사택도 없던 터라 홍련 씨 친정집 방을 세로 빌려서 모셨는데 편히 주무셨다고 기뻐하셨으며, 4일에는 야외 예배로 은사를 베푸시니 옛날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니시던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의 즐거움이 이만큼이나 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무주를 떠나신 선생님께서는 20일 후인 27일에도 잠깐 들리시어 격려의 말씀을 주시고 가셨다.
16 선생님이 다녀가신 후에는 알맹이와 쭉정이를 가르는 심판적인 역사가 일어났다. 그렇게 많던 식구들이 성전 건축 때 시련을 겪고 많이 떨어져 나갔고 선생님의 순회 시 큰 은사를 받자 원리적 기반 위에 서 있던 식구는 더욱 신앙이 성장했으나, 순간적 감정에 의한 생활을 했던 식구는 고통과 사정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져 버렸다.
17 나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되자 원리 실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깨달았다. 원리를 알고 중심이 잡힌 식구는 그만큼 확고한 뜻길을 걸을 수 있었고 또 많은 사람을 감화시켜 뜻 앞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18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갈파하신 이유도 신앙의 본격적인 출발은 진리를 아는 데서부터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야 그 진리의 반석 위에 세워진 신앙도 영원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9 그래서 나는 정성을 다하여 원리 시험에 응시하기로 결심하고 금식 기도, 철야 기도를 계속하면서 원리 공부를 했다. 그 외에 밥 짓는 시간, 전도하는 시간 등 심지어는 변소에 가는 시간까지도 원리공부를 했으나 협회 시험에 무려 7번이나 낙방하고 나서
20 우선 지구 시험이라도 합격하기로 하고 더욱 노력한 결과 1959년 9월 27일 지구 원리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최종 관문인 협회 원리 시험에는 아직껏 합격하지 못했으니 내 생전에 그 꿈이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21 1959년 12월 20일 선생님께서 초창기 식구는 전원 협회 수련회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내리셨다. 나는 남편과 의논 끝에 직장에 다니는 남편보다는 내가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고 연로하신 친정아버지와 2남 2녀의 전 가족을 남편에게 맡기고 역사적인 제3차 협회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22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시작된 수련회는 두 끼의 식사와 다섯 강좌의 강의로 10시간 이상을 강의를 들어야 했으나 조금도 지치거나 싫증이 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시간마다 보화 같은 말씀을 주셨다. 두려움이 있다면 ‘부족하고 어린 내가 그 말씀의 실체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