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습 도움 게시판 | 백석의 ‘팔원 - 서행시초 3’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는 무슨 의미인가요?
↳ ‘계집아이’가 옛날이야기에 나올 것 같은 진한 초록색의 새 저고리를 입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어요. ‘계집아이’의 처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지요…… ㄱ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중강진 부근의 지명입니다. 한반도의 북쪽 변방 지역이지요. …… ㄴ
↳ ‘내임’이 줄어들면 ‘냄’이 되는데, 이 ‘냄’은 ‘배웅’의 평안도 방언입니다. ‘냄내다’는 ‘배웅하다’라는 말이지요. …… ㄷ
↳여기서 ‘느끼다’는 ‘감각하다’나 ‘깨닫다’가 아닌, ‘흐느끼다’와 비슷한 말입니다. …… ㄹ
↳ ‘내지인’은 일본인을, ‘주재소장’은 오늘날의 파출소장과 비슷한 직책을 가리키던 일제 강점기의 용어입니다. …… ㅁ
① ㄱ으로 볼 때, ‘계집아이’의 거친 손잔등은 새 저고리와 대비가 되어 측은한 느낌을 주는군.
② ㄴ에 따르면 ‘계집아이’는 추운 겨울 아침에 더 추운 곳을 향해 간다는 것이니, 그 여정이 무척 험난하게 느껴지는군.
③ ㄷ으로 볼 때,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오르는 ‘계집아이’의 모습에서 새로운 미래를 향한 화자 자신의 의지를 함께 읽을 수 있군.
④ ㄹ을 보니, ‘운다’의 반복에 ‘느끼며’가 추가됨으로써 울고 있는 ‘계집아이’가 더욱 가련하게 여겨지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
⑤ ㅁ은 ‘계집아이’가 처한 상황을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연관 지어 파악해 볼 수 있게 하는군.
3. <보기>에 따라 (나)에 대해 토의한 내용 중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난’과 ‘미등’의 묘사에는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화자의 의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
② ‘빨갛고 허연 등’은 난과 자동차, 그리고 화자를 비롯한 모든 존재가 지닌 양면성을 의미하는 소재라고 할 수 있을 거야.
③ ‘배터리 닳지 말라’, ‘온기를 잃지 말라’, ‘눈감지 말라’는 주문은 모두 갓 퇴원한 화자가 자기 스스로에게 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거야.
④ ‘치운 세상에 간신히 켜든 불씨’는 어렵사리 지켜 가고 있는 생명의 불씨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거야.
⑤ 마지막 연에서 화자가 ‘난이 점차 뜨거워진다.’라고 한 것은 난과의 교감 속에서 삶에 대한 의지를 느낀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
4. ⓐ~ⓓ 중 <보기>의 밑줄 친 내용과 관련 있는 것끼리 바르게 묶은 것은?
① ⓐ와 ⓑ ② ⓐ와 ⓓ ③ ⓑ와 ⓒ ④ ⓑ와 ⓓ ⑤ ⓒ와 ⓓ
=
(가) 백석,「팔원(八院) - 서행시초(西詩抄) 3」
http://blog.naver.com/ccc192000/40155828778
http://blog.naver.com/kyorai/120065976868
이 시를 쓴 백석은 “시인이란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슬퍼할 줄 아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토록 섬세한 영혼을 가졌던 백석이었기에, 무딘 감성을 지닌 이에겐 별것 아니었을 일상의 풍경도 이처럼 인상 깊게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화자가 관찰한 것과 상상한 것을 파악하면서,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연민의 태도에 주목하여 감상한다.
[해제] 이 시는 백석이 평안북도 영변 근처에 있는 팔원 일대를 여행하는 도중에 승합자동차 안에서 본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옛날이야기에나 나올 듯 아주 진한 초록색 새 저고리를 입은 계집아이가 승합자동차에 오르는데, 그 계집아이의 손등은 진진초록의 새 저고리와 달리, 갖은 고생 때문에 밭고랑처럼 몹시 터져 있다. 일본인 주재소장과 그 집 아이 둘이 배웅을 하는 것으로 보아, 계집아이는 주재소장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계집아이인 것으로 보이는데, 묘향산 어딘가를 거쳐 멀리 자성으로 가서 겪게 될 미래 역시 그리 평탄치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계집아이는 온갖 서러움이 북받쳐 흐느껴 울고, 차 안 한구석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도 눈물을 훔친다. 화자는 계집아이의 고달픈 삶의 한 장면을 엿보면서 연민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나아가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에 우리 민족 전체가 겪는 비극적 현실에 대한 서글픔이 솟아올랐을 것이다. 계집아이가 주재소장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면서 했을 고생에 대한 상상으로 시상이 마무리되고 있다.
[주제] 식모살이를 했던 어느 계집아이의 고달픈 삶에 대한 연민
1~3행: 겨울 아침에 텅 빈 승합자동차에 오르는 계집아이
4~8행: 계집아이의 외양과 사연
9~12행: 일본인 가족의 배웅과 차 안의 풍경
13~16행: 계집아이의 고달픈 식모살이에 대한 상상
(나) 황동규,「퇴원날 저녁」
http://blog.naver.com/ccc192000/40155905169
http://blog.naver.com/korehan3/130143175002
황동규 시인이 60세였던 1997년, 귀에 큰 병을 앓아 수술을 받고 퇴원했는데, 수술이 잘못되어 재입원을 했다가 다시 퇴원한 날 지은 시라고 한다. 육신의 노쇠함에서 비롯된 자기 연민을 외부 세계에 투영한 작품으로서, 시인 자신의 애송시이기도 하다.
화자 자신과 소재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미지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작품을 감상한다.
[해제] 화자가 퇴원한 날 저녁에 본 풍경을 통해,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삶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확인하고 있는 작품이다. 자신이 입원해 있는 동안 오래 방치되어 있었던 까닭에 죽어가는 난초를 어루만지며 내다보는 창밖으로는 주차장에 미등이 켜진 채 서 있는 자동차가 보인다. 병을 앓고 난 끝인 화자는 아마도 흑반이 낀 난초처럼 검버섯이 끼어 있기도 할 것이고, 등 껍질이 깨진 자동차 미등처럼 건강에 이상이 있을 것이며, 닳아가는 자동차 배터리처럼 생명의 쇠잔함을 느끼고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난을 어루만지며 어떻게든 살려 내려는 안간힘과 자동차 배터리가 닳아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자기 자신의 꺼져가는 생명력에 대한 안타까움과 절묘하게 겹쳐 있는 것이다. 결국 ‘배터리 닳지 말라’, ‘온기를 잃지 말라’, ‘눈 감지 말라’, ‘치운 세상에 간신히 켜든 불씨를 아주 끄지 말라’는 주문은 ‘이 세상에 함께 살아 있는 그 무엇’으로서 보내는 응원임과 동시에, 스스로를 향한 바람과 다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2연에서 난이 점차 뜨거워짐을 느끼는 것 역시 자신의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상황에 대응되는 시적 대상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는 화자의 정서가 전체적으로 일관된 이미지 속에 절묘하게 형상화된 작품이다.
[주제] 쇠잔한 생명에 대한 연민과 다시 확인하는 삶에 대한 의지
1연 1~9행: 흑반이 끼어 죽어가는 난과 미등이 켜진 자동차
1연 10~18행: 꺼져가는 생명에 대한 연민과 응원의 심정
2연: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의 확인
(다) 황지우,「거룩한 식사」
http://blog.naver.com/ccc192000/40156328874
http://blog.naver.com/kyorai/120056699212
http://m.blog.naver.com/blue11xx/70132593992
1980년대의 대표 시인 중 한 사람이었던 황지우가 오랜 침묵 끝에 1998년에 발표한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 수록된 작품이다. 한 문학 평론가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는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대했을 때처럼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평범한 일상 속에 잠복해 있는 축복과 비극의 공존을 확인할 때 우리는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란 시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화자가 관찰한 장면을 자신의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 보고, 그 광경을 바탕으로 하여 ‘갑자기 목메’고 ‘눈물겨운’ 화자의 정서를 이해해 본다.
[해제] 밥을 먹는 행위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으로부터 거룩한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 작품이다. 1연에서 그리고 있는 분식집 풍경, 즉 ‘나이 든 남자’의 식사 장면은, ‘그’라는 3인칭 속에 숨어 있지만 실은 화자 자신에 대한 진술일 가능성이 높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식은 밥을 두고 동생과 숟갈 싸움을 하던 배고픔의 기억이 갑자기 북받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 연민은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에 대한 것으로 그 대상이 한층 확장되고, ‘먹는 일의 거룩함’을 새삼 느끼게도 해준다. 국밥을 먹는 노인을 보며 느끼는 눈물겨움 역시 그와 같은 연민과 깨달음의 바탕 위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일차적으로 가난의 기억에 관한 시이며, 나아가 사소한 일상이 실은 얼마나 거룩한 절차인지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제] 쓸쓸한 식사에 대한 연민과 먹는 일의 거룩함에 대한 인식
1연: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목이 메는 나이든 남자의 식사
2연: 혼자서 국밥을 먹는 노인을 보며 느끼는 연민
01 작품 간의 공통점 파악 ③
(가)~(다)는 전체적으로 현재 시제를 활용하여 진술하고 있는데, 이는 각 작품의 시적 상황을 현장감 있게 그려 내는 효과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① (다)의 ‘~ 거룩함이여’, ‘~ 목숨이여’ 등은 영탄법을 구사한 부분으로서, 먹는 일의 거룩함을 드러내고자 한 이 작품의 주제 의식과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와 (나)에서는 영탄법이 사용된 부분을 찾을 수 없다.
② (가)~(다) 모두 반어적 표현을 통해 대상에 대한 태도를 드러낸 작품이 아니다. 반어는 진술의 표면적 의미와 이면적 의미가 정반대인 표현법인데, 이 세 작품에는 그런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
④ (가)와 (나)는 겨울이라는 계절감을 드러내는 소재들을 활용하고 있지만, (다)는 계절적 배경과 무관하다. 따라서 이는 세 작품 모두에 해당하는 공통점으로 볼 수 없다.
⑤ (다)에서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라는 시구는 설의적 표현을 활용한 것이며, 이는 화자가 느끼는 연민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가)와 (나)에서는 설의적 표현을 찾을 수 없다.
02 감상의 적절성 평가 ③
(가)의 화자는 계집아이가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오르는 장면을 지켜보는 관찰자이다. 관찰하는 화자의 시선에서 계집아이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지만, 화자가 자신이나 계집아이의 미래와 관련하여 어떤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시적 상황 속에서 계집아이를 배웅하는 것은 ‘내지인 주재소장’인데, ‘내지인 주재소장’이라고 하면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던 우리 민족에게는 압제의 공포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이 시의 장면 속 주재소장은 몇 년 동안 얼마큼은 정도 들었을 계집아이를 직접 배웅하는, 비교적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로 그려지고 있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새로운 미래를 향한 화자의 의지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① 고달픈 식모살이를 하느라 부르트고 갈라진 초라한 손잔등은 옛날이야기에 나올 것 같은 진한 초록색의 새 저고리와 대비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대비는 연민의 정서를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② 화자가 계집아이에게 느끼는 연민은 ‘이렇게 추운 아침’이라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자동차 유리창이 얼 정도로 추운 겨울날 아침에 계집아이가 향하는 행선지가 하필이면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이라는 사실은 계집아이의 여정이 무척 험난할 것 같다는 안타까운 느낌을 갖게 한다.
④ ‘계집아이는 운다’에 이어 ‘느끼며’를 추가한 뒤 ‘운다’를 반복했는데, <보기>에서 밝혀진 ‘느끼며’의 뜻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반복은 ‘계집아이’의 가련한 처지를 더욱 부각하는 효과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⑤ ‘내지인 주재소장’은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적 상황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는 말이다. 아마 그 당시에 팔원과 같은 평안도 산간 마을에서는 ‘내지인 주재소장’정도만이 식모를 두고 생활할 수 있었을 것인데, ‘지배 권력’을 상징하는 ‘내지인 주재소장’이란 시어는 계집아이가 처한 상황을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03 작품의 종합적 감상 ②
‘빨갛고 허연 등’은 자동차 미등이다. 이는 (나)의 시구에 드러나 있듯이 ‘오른쪽 등 껍질이 깨졌는지 두 등 색이 다르’게 됐기 때문에 ‘빨갛고 허연 등’이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시구가 모든 존재의 양면성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근거가 없는 해석이다.
① 이 시에서 ‘난’은 흑반이 잔뜩 끼어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미등’은 등 껍질이 깨져 서로 색이 다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미지의 일관성이란 측면을 고려할 때, 이는 갓 퇴원한 화자가 노쇠한 자신의 건강 상태와 관련하여 가졌을 법한 의식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흑반이 낀다거나 껍질이 깨진 모습은 모두 건강하지 못한 신체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들이기 때문이다.
③ 화자는 늙고 병든 자신과 유사한 대상들을 간절히 응원하고 있으므로, 이를 갓 퇴원한 화자 자신에게 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타당한 의견이다.
④ 표면적으로 볼 때 ‘치운 세상에 간신히 켜든 불씨’는 추운 겨울날 닳아가는 배터리로 겨우 켜 놓은 자동차 미등을 가리키지만, 이는 결국 화자가 ‘이 세상에 함께 살아 있는 그 무엇’으로서 ‘아주 끄지 말라’고 응원하게 되는 생명의 불씨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⑤ 화자가 난에 대해 느끼는 동병상련의 감정을 생각해 볼 때, 죽어가는 난에게서 뜨거움을 느끼는 것은 난과 교감하면서 자신도, 그리고 난도 생의 의지가 뜨거워짐을 느낀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04 시적 화자의 태도 및 정서 추리 ②
ⓐ~ⓓ 중, 화자가 연민을 느끼는 대상을 고르면 ⓐ와 ⓓ이다. (가)의 화자는 식모살이로 고달픈 삶을 사는 ‘계집아이(ⓐ)’에 대해 연민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고, (다)의 화자 역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는 ‘노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라고 말함으로써 연민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의 ‘삼촌(ⓑ)’은 계집아이가 지금 이 승합자동차를 타고 만나러 가는 대상으로서 그에 대한 화자의 태도는 딱히 드러나 있지 않다. 또한 (나)의 ‘주인(ⓒ)’은 실수로 미등을 켜 놓음으로써 화자가 닳아가는 자동차 배터리에 연민을 느끼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 사람일 뿐, 그 자체가 화자의 연민의 대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