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4(월)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참다운 격려
2015. 4. 19 한성동우회 8명의 멤버들은 백령도 흑룡부대 신부님과 법사님으로부터 귀한 격려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뜻대로 되지 않아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가장 소중한 도움은 깊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누군가의 격려다.
그 격려는 사람의 암울한 정신에 깊은 용기를 던져주고,
오랜 세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주는 기둥이 되어준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가 오랜 해외 순회공연을 마치고
귀국하여 독창회를 열기로 했다.
많은 팬들은 그의 금의환향을 반가워하며 소문으로만 듣던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사회자가
사색이 되어 뛰어나왔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객석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청중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여러분들이 기다리는 가수가 비행기가 연착되어
좀 늦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잠시 우리나라에서 촉망받는
신인 가수 한 분이 나와 노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청중들은 매우 실망했다.
고대하던 가수가 어쩌면 아주 못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장내는 아쉬움과 배신감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잠시 후 사회자가 소개한 신인 가수가 무대에 나타났다.
그는 예절 바르게 인사를 했지만 청중들은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이렇듯 냉랭한 분위기였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노래가 끝난 후에도 박수를 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극장의 2층 출입구에서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빠, 정말 최고였어요!"
이 소리를 들은 신인 가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조명에 비친 그의 눈에는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반짝였다.
몇 초가 지났을까.
얼음처럼 차가웠던 청중들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곧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오랫동안
극장 안에 울려 퍼졌다.
그가 바로 루치아노 파바로티이다.
- 좋은 글 中에서 -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년 10월 12일~ 2007년 9월 6일)는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성악가임. 세계 3대 테너중에 한사람. 테너의 음역으로 낼 수 있는 최고의 음을 훌륭하게 구사한다.
1955년 모데나의 사범학교를 졸업했고, 2년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만토바를 중심으로 개인적으로 오페라 음악을 공부했으며, 성악경연대회인 콘코르소 인테르나티오날레에서 우승한 후 1961년 이탈리아의 레조 에밀리아에서 오페라 데뷔를 했다. 1968년 뉴욕 시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 데뷔했으며, 1971년부터 그곳에 정규적으로 역을 맡았다. 오페라 청중 이외에도 연주회·음반·텔레비전 등을 통한 폭넓은 청중을 가졌고, 왕성한 활동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당대 최고의 벨칸토 오페라 가수이며 최고 음역에서도 맑은 음색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3대 테너로 불리는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와 함께한 '3테너' 공연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공연을 벌였다. 잘 알려진 오페라 역으로는 주세페 베르디의 〈리골레토 Rigoletto〉에서 만토바 공작 역과 도니체티의 〈연대의 딸 La Fille du Régiment〉에서 토니오 역(특히 이 역은 일련의 높은 C음을 요구하는 어려운 역임), 벨리니의 〈청교도 I Puritani〉에서 아르투로 역, 베르디의 〈아이다 Aida〉에서 라다메스 역 등을 꼽을 수 있다. 파바로티는 윌리엄 라이트와 함께 〈파바로티: 나의 이야기〉(1981), 〈파바로티: 나의 세상〉(1995)을 썼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
5월 3일 아침 6시 30분, 강릉에서 장모님을 모시고 서울에 도착하였고, 눈을 잠시 붙인후 오전 성당 교중미사에 참석한 후, 파주 아울렛과 금촌의 샤브애 식당 등 멋진 여행을 했습니다. 편찮으셨던 장모님의 핏기없었던 하얀 얼굴이 점차 빨갛게 변해 마음이 놓였습니다. 어느때 보다 감사한 기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