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田 선생의 「녹명鹿鳴」을 읽고
수필가 우승순
2월은 봄 냄새가 나는 달이다.
창문을 열면 메마른 가지에 물오르는 소리가 가늘게 들리고 들숨에선 달큰한 기운이 희미하게 스민다. 하릴없이 분주했던 연말연시가 지나고 입춘을 맞으며 그동안 미루어왔던 德田 이응철 작가의 『녹명(鹿鳴)』을 읽었다. 이 책은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사슴의 울음이라는 그 뜻도 생소하지만 ‘鹿鳴’의 서체는 한눈에 봐도 신필(神筆)의 경지다. 뛰어난 서예가이시며 동서양의 고전과 철학을 두루 섭렵한 백암(栢巖) 김집중 선생의 글씨다. 과연 명불허전이다. 백암 선생의 고전강의를 오래전부터 수강해 온 저자의 문장에는 언제나 사서삼경과 노장사상이 자연스럽게 접맥해 있다.
책의 내용은 총 6부로 나뉘어져 수필 50편, 단시조 81편, 그림 49편, 수필화 31편으로 엮은 보기 드문 ART에세이집이다. 나는 시조나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니 수필에 대한 감상만 이야기 하려한다. 어떤 책이든 첫 장의 설렘과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의 여운이 있고, 그 감성으로 독후감의 얼개를 짜게 되는데 이 책에서 느끼는 수미일관은 정(情)이었다. 사람은 물론이고 자연과 사물에 대한 정이 작품 곳곳에서 배어나고 젖어든다.
저자의 고향은 춘천시 정족리다. 금병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이곳은 소설가 김유정의 생가와 이웃한 마을이다. 고향에서는 금병산을 진병산이라 부른다. 책을 읽는 내내 김유정 소설 속의 시공간적 배경이나 토속어 들이 연상되어 재미를 더하였다. 김유정마을의 옛 지명과 지리적 형세 등은 수필 ‘시루버덩과 證言’ 그리고 ‘새고개를 어십니까?’에 설명되어 있고, 생활상은 ‘약주 드시러 오세요’란 작품에 함축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그 당시는 생신이나 제사 때면 동네 사람들을 조반에 초대하여 함께 정을 나누었다. 이렇게.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새벽이면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신나게 소리친다.
”약주 드시러 오세요!“
”아침 잡수러 오세요!“
십여 가구가 옹기종기 의지하며 속삭이던 고향 동네엔 그럴 때마다 딱따구리가 목탁소리로 화답하곤 했다. 십여 명의 어른들이 사립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어머니가 담근 술맛과 김치 맛이 최고라고 칭송할 때면 신바람이 났다.
- ’약주 드시러 오세요‘ 중에서 -
그토록 크게 외치고 신바람이 났던 까닭은 따로 있었다. 구남매의 막내였던 저자는 한 살 때 아버님을 여의었고 어머님과 맏형이 꾸렸던 농촌생활은 그리 넉넉지 못했다. 학교에서 납부금을 가져오라하면 이웃집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그 심부름을 할 때면 언제나 목소리가 모깃소리만 했다. 그러다가 모처럼 어른들을 초대할 때면 어깨가 으쓱해지며 큰 소리로 신나게 외쳤던 것이다. 그 상황에선 누구라도 그러했을 소년의 마음에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어 나도 마음속으로 크게 한번 외쳐봤다. ”약주 드시러 오세요!“ 정말 기분 좋다.
저자의 그림에 대한 인연은 일찍부터 시작된 듯하다. 북에서 월남하여 한 동네에 살게 된 목수 아저씨는 끼니때만 되면 온 식구들의 눈총은 아랑곳없이 닁큼 올라와 호박죽을 축내곤 했는데 그 당시는 그 분이 참 싫었다고 술회한다. 그러던 중 행랑채를 짓게 되었고 대패질을 하다가 하얀 속살이 나오면 언제나 막내아들인 저자를 불러 귀한 보물처럼 챙겨 주었다. 운명은 우연을 가장하고 찾아온다고 했던가. 이렇게.
종이가 귀하던 시절, 쉴 참이면 아저씨는 곁에 와서 나무 꼬챙이를 연필처럼 만들어 먹물에 찍어 손수 대팻밥에 그림을 그려 주었다. 사람 얼굴, 새, 박수근 그림 같은 나무들을 그려 주셨다. ..... 행랑채를 짓던 내내 나는 대팻밥을 실컷 가지고 놀았다. 미취학이었던 나는 종일 그려도 재미있었다. 먹물이 옷에 묻어 어머님께 혼쭐도 났지만 참으로 신기했다“
’대팻밥‘ 중에서 -
그 인연으로 대학시절엔 아동화를 했고, 교편을 잡았을 땐 미술반을 운영하며 그림지도를 하였다. 교편생활 중간에 따로 공부를 하여 중등교사 자격을 따고 중고교 사회교사로 교직생활을 퇴임했지만 은퇴 후에는 다시 개인전을 열만큼 그림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지금은 문학과 그림을 겨리로 덕밭(德田)을 일구며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눈다. 그때 잠시 얄미웠던 목수 아저씨는 어린 소년의 재능을 미리 알아봤고 남모르게 예능의 정을 주었던 분 같다.
사랑이야기는 늘 가슴이 설렌다. 1969년 춘천교대를 졸업하고 약관 20세에 첫 발령을 받은 곳은 강원도 최북단의 고성군 대진이었다. 저자는 떡 장사로 힘겹게 막내아들을 키워낸 어머님을 모시고 바닷가 마을에 월세방을 얻어 첫 교편생활을 시작하였다. 총각선생님이 첫 발령지에 어머님을 모시고 가다니.......참으로 효심이 지극하다. 당시 춘천에서 새벽 버스를 타면 저녁때나 대진에 도착할 만큼 교통이 불편했었는데 그 시골 학교엔 서울서 부임한 강사가 있었다. 그 여선생이 德田 선생을 사모했던 것 같은데...... 그러나 글을 통해서는 사랑의 결말이 아리송할 뿐 확인할 수는 없었다.
서울서 부임한 강사 선생도 오빠가 만화가라며 그림을 좋아했다. 화진포에서 이젤을 세우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청보리가 필 때면 낭만을 즐기던 그 여선생은 바다를 유난히 좋아했다. 방학을 해 고향인 서울로 갔다가 개학하면 늘 수채화 같은 멋진 넥타이를 사다가 메어주던 여선생이 생각난다. 동양화 사군자도 칠 줄 알지만 그녀의 방엔 내 그림으로 온통 도배를 할 정도로 선호했다. 지금은 어디서 행복할까.
‘내 마음의 풍금‘을 시청하고’ 중에서 -
바닷가 허름한 월세방에서 아랫목에 주발을 묻어놓고 객지의 파도소리 들으며 막내아들을 기다리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면 연애는 언감생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풍금’이란 영화 내용이 그렇듯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여선생의 사랑도 어쩌면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는지 모른다. 두 분의 마음은 두 분만이 알겠지(兩人心事兩人知).
이 외에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같은 선생님을 꿈꿨던 저자는 양구 Y고교에 있을 때 질문과 대답을 유도하며 창조적인 수업을 진행했던 ‘존 키팅 선생과 양구’라는 작품도 있다. 고족제자(高足弟子) K가 미술학도의 꿈을 이루고 교사로 재직하다가 정신적인 시련을 겪는 안타까운 이야기 ‘말(馬)이 되겠습니다’와 비온 다음 날 소양3교 근처에서 떼죽음을 당한 지렁이를 보고 환경을 생각하는 ‘지룡(地龍)이의 죽음’ 등도 기억에 남는다. 저자 자신도 다양한 폐품을 재활용하여 수필화를 그리고 춘천시내 30여 곳에 전시하는 등 환경보호를 몸소 실천하는 분이다.
가장 가슴을 울렸던 작품은 따로 있었다. 아버지는 유괴범과 연루되어 교도소에 갔고 엄마는 가출했던 조손가정의 소녀가 미술대회에서 은상을 받고 밝은 희망을 찾게 되었는데.... 아뿔싸! 단장의 아픔이 전해지는 ‘어린이 날이면 떠오르는 소녀’에 얽힌 그 이야기는 차마 전하지 못하겠다.
德田 선생은 은퇴 후 인생 2막을 글과 그림으로 살찌운다. 겨리로 써레질을 하는 농부처럼 문학과 그림으로 덕밭(德田)을 일구며 많은 지인들과 함께 나눈다. 책을 읽노라면 제목이 왜 ’녹명(鹿鳴)‘인지 깨닫게 된다. 정(情)이다. 햇쑥을 발견하면 동료를 불러 함께 먹기를 즐겨한다는 사슴의 울음이 그렇다.
작품 소재는 책에서 메모한 것을 비롯해 언론, 상식, 건강, 고전, 지혜 등의 내용을 시나 단수필로 꾸민다. 작품 의도는 우선 내 머릿속에 완전히 저장하려는 이기심의 발로가 첫 번째 목표지만 사슴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 마음의 양식으로 퍼마시게 함이 더 큰 뜻이 숨어있으리라. 사슴은 유(呦)-유(呦)하고 동료를 부르는데 비해 나는 작은 핸드폰에 담아 지인들에게 소리쳐 보내면 온 종일 보약을 잘 마셨다고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사슴처럼 울고 싶다’ 중에서
문생어정(文生於情)! 德田 선생께서는 문학도 사람의 정에서 나온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고향과 어머님, 큰 형님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고 무엇보다 인간관계의 정을 소중히 여긴다. 나에겐 문학의 대 선배이시고 인생의 또 다른 스승이시다.
봄이 오는 길목에 달큰한 옛정이 그립거든 찬찬히 일독해 보시길 권한다.
2023.2.4. 입춘 날에 우승순 배상
첫댓글 멋진 독후감입니다.
독후감의 대가이십니다. 오늘도 어디서 사슴이 친구들을 불러모우는 듯한 멋진 독후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직 덕전작가님의책 녹명을 대하지 못했는데 잘 정리해서 올린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