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통한 심리학 이해 : 같음과 다름
예쁜 아줌마 멋진 아저씨
윤희경
“ 요즘 젊은 친구들은 무얼 먹고 커서 그런지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어요. 제가 자랄 때는 무슨 옷을 입을까 염려 하는 것이 아니라, 계절에 맞는 옷이라도 입을 것이 있었으면 하던 시절이였거든요. 당연히 위에서 입던옷을 물려 받아 크든 작던지 몸이 옷을 맞추어서 입고 다녔고 저는 위로 오빠들만 둘이라 여자 옷이라고는 입어본 기억이 없어요. 모두 남자들 옷을 물려 입어 그런지 지금도 여자들이 입는 옷은 샀다가도 입지 못하고 장에 박아 놓는답니다. 저랑 어울리지를 않는 것 같고 낯설어서요. ”
그저 보고만 있어도 예쁜 나이가 있다.
그 나이에 아이들은 미처 모르는 예쁨과 순수한 멋스러움. 우리들도 모두 그런 시절을 보내고 지금을 살고 있으련만 자신에게는 그런 시절이 없었던 양, 젊은이들의 풋풋함이 좋아 보이는 때가 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시절을 보내고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각자의 나이에 어울리는 무언가를 느끼며 사는가. 얼마전 20대 시절의 사랑과 성장을 그려가던 드라마가 끝나고, 30대 후반부터 4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 내용을 보면서 문득 나의 20대와 3, 40대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사실 당시에는 그러한 감정의 섬세함을 살피고 고민하고 느끼는 것 자체가 안되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당시에는 그랬구나 싶은 일들로 후기 수기를 적듯이 다시 살아보게 된다. 당시에는 왜 그리도 무지하고 몰랐으며 사는 것에 대해서 어찌그리 무지했을까 싶은 마음에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러는 것이 최선이였을 것이라 이해 해본다.
우리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들에 대해 삶의 무게를 느끼며 버겁고 힘들다고 하지만 실체를 잘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반복되는 일상이 곧 삶의 파노라마인데 우리는 하루를 너무 가볍게 보내는 것 같다. 20년이 들면서 밀레니엄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가 우리삶으로 다가올 것 같았지만 막상 22년 우리들의 일상은 외부적인 환경빼고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알아차림을 ‘너자신을 알라’ 라는 신전 문구로 강조하였으나 우리는 지금도 자기자신에 대해 다 알며 살아가기는 부족한 삶을 살아간다.
질문과 사유로 답을 얻으려는 인간의 노고를 중세, 근대 ,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는 학자들이 고민하고 인간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를 내리려고 애써왔다. 그 가운데 많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마지막에 내리는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정의는 더불어 함께 공동체적인 삶을 이야기한다. 예수님도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고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집필한 톨스토이도 자신의 소작농들과 함께 대지로 돌아가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면 나누는 삶이 행복이라고 하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쓴 니체도 역시 더불어 함께 함으로 얻어지는 인간다움의 진리를 적었다.
우리는 살면서 가장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이러한 우리의 고민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변하지 않음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안에서 존재적 가치를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상담을 하다보면 어떤 이는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과 향수로 오늘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반면에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오늘을 지나치게 희생 시키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미래의 안락함을 위해 오늘 우리가 해야 할일이 분명히 있겠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가이다. 무조건적인 오늘의 희생이 결코 내일이 온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지혜로와야 한다. 즉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지에 대한 분별심이 있어 더함과 덜함에 대한 균형을 맞추는 선택이 필요하다.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느끼고 의미를 알며 살아감이 자신을 자유롭게한다. 우리는 지금 예쁜 아줌마 멋진 아저씨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