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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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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삼손과 들릴라(삿16:1-31)
노베 추천 3 조회 255 24.09.04 08:12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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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9.04 08:21

    첫댓글 삼손은 예정과 부르심이 있던 분입니다. 실수와 허물이 많았지만 끝내는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주님의 성역에 사용된 믿음의 용사입니다.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좋은 예입니다.

  • 작성자 24.09.04 08:29

    맞이요. 좋은 분별에 공감합니다.

  • 24.09.04 08:23

    <호크마 주석>, 삿16:22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 '시작하다'라는 단어는 이미 13:5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본절에서도 본서 기자는 이 단어를 통하여 삼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그리고 또 육의 눈을 잃고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는 중에 삼손이 서서히 영의 눈을 뜨기 시작하였음도 암시해 주고 있다.

  • 작성자 24.09.04 08:31

    영의 눈이 뜨기 시작한다는 것을 회개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 24.09.04 08:24

    <호크마 주석>, 삿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 삼손은 '엔학고레'(15:19)에서의 기억을 되살려 그때의 심정으로 다시한번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본절에 기록된 삼손의 기도는 그가 사용한 하나님의 명칭 세 가지와 더불어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1) 주(* , 아도나이):이것은 삼손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주장하시는 분은 곧 주 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슬로 맨 블레셋이 주(主)가 될 수없으며 자신의 영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만이 '주'이심을 보여 준다. (2) 여호와(* ,예호와):이것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신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뿐이심을 말하는 삼손의 고백을 발견할 수 있다. (3) 하나님(* , 하엘로힘) : 여기서 관사 '하'(* )가 붙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모든 신들 중의 신임을 나타낸다. 이로 볼때 삼손은 이 싸움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열방의 신들과의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숭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나를 생각하옵소서 - 여기서 '생각하다'에 해당하는

  • 24.09.04 08:25

    '자카르'(* )는 '기억해내기 위해 표를 해두다'는 뜻이다. 즉 삼손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종'으로 구별해 주신 것(13:2-5) 에 의거, 다시금 자기를 권념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의 장중(掌中)에 다시한번 사로잡히기를 소원하는 삼손의 심경을잘 나타내 준다.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 이러한 삼손의 기도는 마치 자신을 불구로 만든 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븍수심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일삼손이 정말로 그러한 마음으로 기도했다면 그것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롬12:19 ; 히 10:20)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여기서의 강조점은 '원수'인 블레셋에게 있다. 즉 삼손의 기도는 자신의 두 눈을 위해서 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고통을 준 원수들인 블레셋족에 대하여원수를 갚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위대한 삼손의 민족적 정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작성자 24.09.04 08:37

    @장코뱅 부르짖고 기억하는 것은 처절하게 회개기도를 하고 이어 실제적인 회개도 살천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귀와 죄악은 하나님의 원수이며 동시에 우리의 원수가 되며 투쟁의 대상이 됨을 알려줍니다.

  • 24.09.04 09:48

    @장코뱅 삼손이 하나님을 호칭할 때, 아도나이, 여호와, 엘로힘으로 각각 달리한 것에 대한 설명이 좋네요. 잘 알겠습니다.

  • 24.09.05 09:20

    @코람데오 공감합니다.

  • 24.09.04 08:26

    <호크마 주석>, 삿16:30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 자기 한 몸을 던져 이스라엘을 구원코자 하는 이러한 삼손의 살 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은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라고 말한 에스더의 정신과 연결이 된다. 그리고 또 이러한 죽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모형이 된다. 한편 이와 관련 우리는 삼손의 죽음을 자살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종의 전사(戰死)였다. 즉 삼손은 최후의 장렬한 죽음으로써 블레셋의 신 다곤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 것이다(Keil).

  • 작성자 24.09.04 08:40

    육체의 죽음으로 영화의 시작에 이른다는 것은 성도의 구원의 서정을 연상시키는 것 같습니다.

  • 24.09.04 09:45

    삼손의 이야기는 살신성인으로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사사들의 활동을 통해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예표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입다의 이야기도 가장 사랑하는 딸을 바쳐야 했던 사건을 통해서 메시아의 구속 계획을 예표하고 있는 것 처럼요.
    사사들 중에서도 삼손의 죽음이 가장 장렬한데 항상 큰 감동을 줍니다. 삼손의 죽음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마귀를 멸하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 작성자 24.09.04 09:57

    네, 좋은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 24.09.04 16:01

    공감합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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