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아시아와 북미 지역을 포함한 이른바 ‘축구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유럽에서의 축구가 ‘프로페셔널’이라며 부러워하는건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문화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보기에 잉글랜드 축구계는 매우 프로페셔널한 선수와 감독, 에이전트와 행정가들이 한데 모인 ‘약속의 땅’처럼 보일거란 생각 말이다.
물론 유럽과 남미의 여타 축구계와 비교할 때에도 잉글랜드 축구는 많은 축구단과 리그, 특히 프리미어리그를 통해 매우 프로페셔널한 관리를 받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때로는 잉글랜드에서 축구가 얼마나 아마추어틱한 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등장하곤 한다.
아마도 <엠파스 토탈사커> 독자 여러분이라면 최근 영국을 뒤흔든 잉글랜드 대표팀의 스벤 요란 에릭손 감독에 관한 ‘빅 스토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잉글랜드 대표팀을 독일 월드컵 본선으로 이끈 에릭손 감독은 한 타블로이드 신문의 ‘사기 취재’에 화를 당했다. 부유한 아랍 재벌로 위장한 신문기자가 에릭손 감독에게 “프리미어리그 클럽 아스톤 빌라를 매입하고 월드컵이 끝나면 당신을 감독에 앉히고 싶다”고 접근한 뒤 두바이의 별 7개짜리 호텔로 유인한 것이다. 에릭손은 지인 몇 명을 데리고 두바이에 등장했고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직 계약이 2008년에 만료됨에도 불구하고) “2006년 월드컵이 끝난 뒤 새로운 자리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함께 그는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들에 대해 매우 솔직한 견해를 들려줬다. (“리오 퍼디낸드는 조금 게으르죠…”라는 둥)
에릭손 감독이 독일 월드컵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든 잉글랜드 대표팀 자리를 떠날 것이라는 건 모두들 짐작하고 있는 바다. 그리고 그가 선수들을 품평한 내용 역시 별로 놀랄만한 얘기거리를 담고 있는 게 아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를 속이는 일이 너무도 쉽게 진행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아랍 부자’ 속임수는 다른 축구 스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이미 똑같이 사용된 바 있다. 이번에 이 속임수에 가담한 기자는 이미 “가짜 아랍 부호”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몇 년 전에도 그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프레디 세퍼드 구단주를 속인 적이 있다. (당시 세퍼드 구단주는 자신의 고향인 뉴캐슬 여성들을 ‘개X들(dogs)’이라고 불러 망신을 당했다. 하지만 에릭손과 그의 지인들은 마치 꿈꾸는 어린아이처럼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물에 걸려들었다. 누구도 이날 자신들이 만나기로 한 아랍 부호의 배경이나 정체를 몰랐고 이들을 만나러 비행기로 4,000 마일을 날아가면서도 상대에 관한 정보를 한번도 조사하지 않았다. 이 ‘가짜 아랍 부호’가 한 일이라곤 전화 몇 통 건 것과 에릭손의 지인들을 처음 만나는 날에 쓰기 위해 런던 부자 동네에 가짜 사무실 하루 빌린 것이 전부였다.
바라건대, 이번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잉글랜드가 경기할 때는 에릭손이 상대국 사람들에게 속임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