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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바로 그런 곳이지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임시 휴관을 거듭하며 한동안 관람이 어렵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은 사전예약제를 도입해 운영 중인데요. 시간마다 인원을 제한해 이시국에도 안전하게 관람이 가능합니다. 언택트 여행을 즐기기에도 좋은 국립중앙박물관, 오늘은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의미있는 전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지난 11월 24일부터 열리고 있는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입니다. 조선시대 '세한'과 '평안'을 대표하는 19세기 두 그림 국보 제180호 '세한도'와 '평안감사향연도'를 전시해 한겨울 추위인 세한을 함께 견디면 곧 따뜻한 봄날 같은 평안을 되찾게 될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시입니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기획된 특별한 전시인데요. 원래는 2월에 종료될 예정이었던 전시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돼 중단되면서 4월 4일까지 기간을 연장하게 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이 전시의 경우도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시간마다 정해진 인원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관람이 가능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전은 상설전시관 왼쪽 특별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데요. 티켓을 수령하고 전시관으로 가는 입구에 방탄소년단의 영상이 나와서 한참을 구경했답니다. 지난해 방탄소년단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촬영했던 영상을 본 적 있는데 여기서 월드스타를 만나니 더욱 반갑더라고요.
국립중앙박물관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은 1부 '세한歲寒-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과 2부 '평안平安-어느 봄날의 기억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부 전시는 세한도와 세한도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포인트가 많이 있어요. 전시의 시작은 프랑스의 미디어아트 작가 장 줄리앙 푸스의 '세한의 시간'이란 영상으로 시작됩니다.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제주의 겨울 그때의 하늘과 구름, 바람, 비 등으로 연출한 풍경들이에요. 제주로 유배를 떠나 시련을 겪던 추사 김정희가 보냈던 그 시간을 이 영상을 통해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세한도 두루마리 시작 부분
이번 전시가 의미 있는 건 국보 제180호 '세한도'의 전모가 오랜만에 온전히 공개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소나무와 측백나무 그리고 작은 집 하나가 그려진 세한도가 익숙한 분들은 계시겠지만 진짜 세한도를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사실 세한도는 전체 길이 14m에 달하는 두루마리 작품이에요. 두루마리의 첫 부분부터 끝까지 모두가 공개되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입니다.
국보 제180호 세한도
세한도는 제주도로 유배를 간 추사 김정희가 자신의 제자 이상적을 위해 쓴 그림과 글입니다. 정쟁에 휘말려 바다 건너 섬에 유배된 스승을 위해 역관이었던 이상적은 몇번이나 청나라에서 어렵게 구한 책을 보내줍니다. 아무런 계산 없이 스승을 위하는 제자를 보며 김정희는 한겨울에도 푸른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흰 종이 위에 그려넣었습니다.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사계절 내내 푸르지만 사람들은 한겨울이 되고서야 그 푸르름을 알아채곤 하지요. 추사 김정희가 유배자의 처지가 되고 보니 소나무와 측백나무 같은 사람을 볼 수 있게 된 거지요. 그 고마움을 담아 세한도를 전했는데 이상적은 이 작품을 청나라에 가져가 당대에 유명한 학자들에게 보여줬고 그 학자들이 써내려간 감상문이 세한도 옆에 붙으면서 서 길이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오세창, 정인보 등 우리나라 문인들의 감상문이 추가되며 길이 14m의 긴 두루마리 작품이 됐습니다.
국보 제180호 세한도
세한도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부터 세한도의 감상문 전체를 천천히 읽을 수 있습니다. 초고화질 카메라로 촬영해 세한도를 저 세밀하게 볼 수 있는 영상물도 재생되고 있어요. 세한도를 평소 관심 있어했다면 다시 없을 기회. 세한도의 의미와 사제간의 끈끈한 유대, 문인들이 남긴 감상까지 여태 몰랐던 세한도를 더욱 깊이 알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없을 기회일 것 같아서 더 집중해서 글자 하나하나, 세한도를 구석구석 들여다봤어요. 작품과 작품 뒤의 이야기를 보고 느끼며 문화재의 의미를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정희의 불이선란도
이번 전시는 세한도의 국가 기증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김정희가 이상적에게 선물한 세한도는 한때 일본인에 의해 일본으로 전해졌다 국내로 다시 돌아왔는데 개성 출신 실업가인 손세기 선생이 수집해 보관해 왔고 그의 아들 손창근 선생이 지난해 세한도를 국가에 완전히 기증했습니다. 세한도 이전에도 김정희의 불이선란도를 비롯해 수백점의 문화재를 국가에 기증한 바 있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소중한 문화재를 국가에 기증해 더 많이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세한도를 기증한 손창근 선생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금관문화훈장을 받고 청와대에 초청되기도 했었지요. 숭고한 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덕분에 이런 좋은 작품을 볼 수 있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를 중심으로 한 전시는 2부에서 평안감사향연도를 테마로 한 전시로 이어집니다. 같은 19세기에 그려진 작품이지만 세한도가 시련을 견디는 겨울을 보여줬다면 평안감사향연도는 겨울을 지나 만난 봄을 만나는 느낌입니다. 평양의 유명한 랜드마크에서 열리는 평양감사의 연회는 화려하면서도 다양한 풍경과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봄의 생동과 평안함이 전해지는 기분이었어요. 특히나 미디어아트로 더 자세히, 쉽게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세한도의 가치와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 특별전은 4월 4일까지 진행됩니다. 어쩌면 코로나로 지친 마음에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미리 예약해서 꼭 다녀오시길 추천드립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 특별전을 예약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관람도 함께 예약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하루 종일 봐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문화재가 모여 있는데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찾던 곳인데 코로나 이후 한적해진 박물관 내부를 보니 낯설기도 하지만 오히려 차분하고 여유롭게 관람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좋기도 하더라고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중에서도 저는 도자기가 있는 공예 파트를 좋아하는데 분청사기, 백자실이 개편됐다는 소식을 들어서 이 공간을 집중해서 돌아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고려시대 청자에서 발전해 조선시대 분청사기, 백자로 발전하는데요.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데서 나아가 유물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가미한 듯했어요.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물과 영상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간을 재편했어요. 공간 자체도 직관적이고 아름다웠고요. 유물을 그냥 보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앉아서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좌석을 같이 배치한 것도 새로웠던 것 같아요.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기를 만드는 가마터를 발굴조사한 보고서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터치식 영상 미디어로 만든 것도 새로운 변화였습니다. 역사와 문화재, 특히 도자기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라면 반가운 변화일 것 같아요.
국립중앙박물관
전체적으로 공간을 어둡게 연출해서 순백의 백자를 더욱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만든 것도 저는 맘에 들더라고요. 백자를 더 편하고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도록 좌석도 길게 배치했고요.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이 더 친절하고 동시에 분위기도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었어요. 청자관을 지나 분청사기, 백자실까지 왔지만 바뀐 분청사기, 백자실을 보니 예전 모습은 전혀 생각이 안 날 정도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달항아리는 이번 분청사기, 백자실 개편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유물인데요. 백자 달항아리를 영상과 함께 연출하니 느낌이 정말 새로웠어요. 달항아리 자체도 너무 멋지지만 달과 관련된 영상물과 음악이 더해지니 마치 달항아리에서 생동감과 감성이 느껴지더라고요.
국립중앙박물관
달항아리 한 점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전시, 연출하니 느낌이 확 달라지더라고요. 누구나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밖에 없는 비주얼과 느낌. 바로 앞에는 설치된 1인 좌석은 달항아리를 마주보고 감상할 수 있는 전용 좌석입니다. 아무도 없는 전시실에서 이 자리에 앉아 달항아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순백의 달항아리의 매력이 온전히 와닿기도 했고요. 이 공간이 인기가 있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디지털실감영상관
시대별로, 분류별로 전시된 유물을 천천히 둘러보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새로 생겼다는 디지털실감영상관에도 들렀어요. 예전에 이 공간에서 특별전이 주로 열리곤 했던 것 같은데 싹 바뀌어있더라고요. 요즘 워낙에 미디어아트가 대세이기도 하고 누구나 쉽게 문화재를 접할 수 있도록 기획한 공간인 것 같았습니다. 규모도 정말 크더라고요.
디지털실감영상관
입구에 들어서면 3개의 벽이 곡면형 스크린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바닥도 스크린 삼아 영상이 플레이되고 있었어요. 평면으로만 보던 서화 작품 속 구름, 동물, 꽃이 하나하나 살아나 움직이고 음악과 함께 드라마틱하게 연출되니 정말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디지털실감영상관
요즘 박물관은 다르구나, 변화하고 있구나가 정말 제대로 느껴지는 공간이었어요. 문화재를 좋아하지 않거나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이제는 편하게 재밌게 박물관을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몸으로 문화재를 경험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의 장, 디지털실감영상관도 빠지지 말고 들러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이번 주말, 봄날의 박물관 산책 어떠세요.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