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살에 미군 기밀을 만든 천재 여성… 지구에 선물 주고 떠나다 [홀오브페임]
(1927~2023) 버지니아 노우드 ”나는 랜드샛을 낳았고, 그것을 위해 싸웠다”
박건형 테크부장
입력 2023.04.17. 07:40
업데이트 2023.04.17. 09:42
1949년 미 육군 신호대 연구소의 버지니아 노우드.
1949년 미 육군 신호대 연구소의 버지니아 노우드.
박건형의 홀오브페임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48516
기후 변화, 삼림 벌채 같은 전지구적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관찰할 수 있을까요. 이런 거대한 변화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같은 지역을 촬영한 데이터가 쌓여야 합니다. 이 데이터를 쌓는 주인공이 바로 ‘랜드샛(LandSat)’으로 불리는 위성입니다. 1972년 미항공우주국(NASA)과 지질조사국이 처음 발사한 랜드샛은 초속 438마일(약 704km)의 속도로 99분마다 한차례 지구를 돌고 있습니다. 약간씩 방향을 바꿔가며 촬영을 계속해 16일이면 지구의 전체 이미지를 촬영할 수 있습니다.
랜드샛에 탑재된 스캐너는 빛과 에너지를 여러 대역으로 나눠 정밀한 사진을 만들어냅니다. 이 스캐너의 개발자가 최근 세상을 떠났습니다. 휴즈 에어크래프트 컴퍼니의 버지니아 노우드(Virginia Norwood), 물리학자이자 공학자. 과학기술의 영역에 여성이 거의 없던 시대에 ‘지구를 살피는 눈’을 만들어 지구인에게 지구를 선물한 사람입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지난 12일(현지 시각) “랜드샛의 어머니인 노우드와 작별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향년 96세입니다.
◇여성이 없던 시대의 선구자
1950~60년대 우주 탐사가 막 시작되던 무렵 노우드는 휴즈 에어크래프트 컴퍼니에서 장비 개발자로 일했습니다. 당시 주변인들은 그를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천재적인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죠.
1960년대 후반, NASA는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한 사진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게 됩니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이전에 절대 볼 수 없었던 사진이죠. 당시 미 지질조사국 책임자는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하면 지상의 토지 자원을 관리하는데 편리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NASA에 위성을 우주로 보내 사진을 찍는 미션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당시 휴즈 에어크래프트 컴퍼니의 우주·통신 부서에서 일하고 있던 노우드는 이 미션을 맡은 뒤 농업·기상학·오염 및 지질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과학자들을 조사합니다. 우주에서 어떤 사진을 찍으면 어떤 분야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미리 살핀 것이죠.
1972년 발사된 최초의 랜드샛.
1972년 발사된 최초의 랜드샛.
이를 기반으로 노우드는 다양한 빛과 에너지를 기록하는 스캐너를 개발하기로 합니다. 당시 NASA와 지질조사국은 전자회사인 RCA(라디오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가 설계한 3대의 RBV(Return Beam Vidicon) 카메라를 위성에 탑재할 계획이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전자기 스펙트럼의 녹색·빨간색·근적외선을 촬영하는 3개의 필터를 장착하는 아날로그 텔리비전 방식이었습니다. 위성은 4000파운드(약 1814kg)의 중량을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카메라 3대의 무게가 이와 거의 비슷했습니다.
노우드는 NASA와 협상을 통해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디지털 방식의 다중 스펙트럼 스캐너 시스템(MSS)의 무게가 100파운드 미만이면 탑재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습니다. 이 때문에 당초 계획했던 7개 대역의 스캐너 대신 전자기 스펙트럼 에너지 대역 4개 대역만 기록하도록 설계를 바꿨습니다. 당시 노우드가 개발한 첫 스캐너는 하나의 픽셀이 지구상의 80m를 나타내는 수준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극소수였던 여성이 개발하는 새로운 방식의 스캐너에 대해 NASA와 지질조사국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노우드는 스캐너를 트럭에 싣고 캘리포니아 일대를 돌아다니며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이 당시 스캐너로 촬영한 사진 가운데는 요세미티의 하프돔이 있었는데, 노우드는 이 사진을 평생 자신의 집 벽에 걸어두었다고 합니다.
노우드가 처음 개발한 스캐너로 시험 촬영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하프돔. 노우드는 평생 이 사진을 집에 걸어뒀다.
노우드가 처음 개발한 스캐너로 시험 촬영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하프돔. 노우드는 평생 이 사진을 집에 걸어뒀다.
이 스캐너를 탑재한 최초의 랜드샛은 1972년 7월23일에 발사됐습니다. 이틀 후에 오클라호마의 워시타 산맥을 촬영한 첫 이미지가 지구이 NASA 고더드 우주비행센터로 전송됐습니다. MIT테크놀로지리뷰는 2021년 기사에서 “당시 이미지를 본 한 지질학자는 눈물을 흘렸다”면서 “스캐너에 회의적이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 착오를 인정했다”고 했습니다. 디지털 방식으로 우주에서 전송된 첫 번째 신호였습니다.
◇50년간 지구를 내려다본 랜드샛
NASA와 지질조사국은 당초 RCA 카메라를 메인으로 활용하고, 노우드의 스캐너를 보조용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결과물을 받아본 뒤에는 상황이 역전됐습니다. 랜드샛 프로젝트 담당자였던 스탄 프레든은 NASA 보고서에서 “데이터를 보면 순간 두 장비의 역할이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스캐너가 훨씬 우수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죠. 특히 발사 2주 뒤 RCA 카메라 시스템의 전력 소모가 위성 작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높아지고 한대가 고장까지 일으키자 NASA는 아예 카메라를 모두 꺼버렸습니다.
2020년 랜드샛이 범람한 우즈베키스탄의 저수지를 촬영한 장면.
2020년 랜드샛이 범람한 우즈베키스탄의 저수지를 촬영한 장면.
이후 지금까지 50년간 계속 랜드샛 위성이 발사됐습니다. 노우드는 랜드샛 2·3·4·5까지의 개발을 주도했습니다. 현재 지구를 돌고 있는 랜드샛은 8과 9 버전이고, NASA는 2030년 랜드샛 10을 발사할 계획입니다. 각 세대별로 위성은 점차 더 많은 이미지 기능을 추가했지만 기본적인 틀은 노우드의 개념을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랜드샛 이미지는 초창기 단독 1.25달러에 전세계 누구나 얻을 수 있었고, 2009년부터는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랜드샛이 지금까지 촬영한 사진은 랜드샛 갤러리(https://svs.gsfc.nasa.gov/Gallery/Landsat.html)에서 볼 수 있습니다.
랜드샛은 기후 변화와 인간의 행동으로 인해 지구에 발생한 변화를 추적했습니다. 실제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 있는 아랄해가 점차 축소되는 과정, 유타의 그레이트 솔트레이크가 줄어드는 모습, 미시시피 삼각주의 변화, 터키와 브라질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삼림 벌채와 농지 증가 등이 랜드샛을 통해 입증됐습니다. 1980년 세인트 헬레나산의 화산 분출, 1988년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화재, 빙하의 소멸,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대도시의 급성장 등도 랜드샛이 우리에게 알려준 사실들입니다.
◇여성이어서 당한 설움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노우드는 1927년 1월8일 뉴욕주 포트 토튼에서 존 보글러와 엘레노어 타워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노우드의 어머니는 주부이자 9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학자였고, 아버지는 피츠버그의 카네기텍(현 카네기멜론)에서 물리학 석사 학위를 받은 육군 대령이었습니다.모는 노우드에게 수학과 물리학을 집중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군인 가족이었기 때문에 자주 이사를 했는데 파나마, 오클라호마, 버뮤다에 살았고 고등학교만 다섯 곳을 옮겼습니다. 당시 적성 검사 결과에서 노우드는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수학과 물리학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진학담당 선생님은 노우드에게 대학 사서를 권했습니다. 여성이 이공계에서 활약할 수 없다는 당시의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우드는 자신을 능력을 믿고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 지원했습니다. 당시 MIT의 여성 신입생은 12명에 불과했습니다. 노우드의 입학사정 담당자는 “이전에 여성을 인터뷰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MIT에는 여성 기숙사가 없었기 때문에 외부 아파트에 거주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학교 식당에서도 여학생은 남학생의 손님 자격으로만 식사가 가능했습니다. 노우드가 나중에 만난 동창 가운데에는 MIT가 남녀공학이라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졸업 이후 노우드는 당시 사회에 만연한 편견에 부딪혔다”고 했습니다. 코네티컷에 있는 시코스키 에어크래프트 면접에서 노우드는 “하급 공무원 수준의 급여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거절했습니다. 또 식품 연구소 면접에서는 “임신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라”는 말을 들었고, 총기 제조업체인 레밍턴에서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도 남자를 고용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절망한 노우드는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있는 백화점에서 여성용 블라우스를 파는 일을 하다가, 뉴저지 포트몬머스에 있는 미 육군 신호대 연구소에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MIT 재학 시절의 노우드.
MIT 재학 시절의 노우드.
◇ “나는 랜드샛을 낳았고, 그것을 위해 싸웠다”
관련 기사
아마존과 베이조스의 ‘드론왕국’은 왜 만신창이가 됐나 [박건형의 홀리테크]
이틀간 물 안주니 “뽁뽁”… 식물도 운다, 당신이 몰랐을 뿐
애플이 드디어 참전한다...가상·증강 현실이 아이폰의 미래?[박건형의 홀리테크]
머스크, 9년째 “완전 자율주행” 거짓말... 고집불통에 속고 있다 [박건형의 홀리테크]
美전역 뒤흔든 ‘마약왕’의 탄생… 그 시작엔 구글이 있었다
낭중지추. 노우드는 다른 연구원들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우드는 “앉아서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 잠시 뒤에 해결책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기상 레이더 부대에 배치된 노우드는 이전에는 추적할 수 없었던 10만피트 상공의 바람을 감지하는 기상 기구용 레이더 반사경을 설계했습니다. 당시 노우드의 나이는 고작 22살이었습니다. 이후 안테나 그룹으로 이동해 마이크로파를 사용하는 안테나를 만들었는데, 이 안테나의 디자인은 아직까지 미군의 기밀로 남아 있습니다. 노우드가 개발한 장비와 기술 대부분이 미군 연구소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밀이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노우드의 달통신장치 설계도.
노우드의 달통신장치 설계도.
1954년 노우드는 휴즈 에어크래프트의 연구 개발 부서에 고용됐는데 당시 2700명의 연구원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습니다. MIT테크놀로지리뷰에 따르면 “당시 노우드가 마이크로파 그룹 책임자가 되자 한 남성은 여성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며 사표를 냈다”면서 “몇 년 뒤 그가 다시 취업을 원할 때 노우드는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노우드는 스캐너 이외에 세계 최초의 통신 위성용 송신기와 수신기를 설계한 업적도 갖고 있습니다. 노우드의 통신 위성 시스템은 몇 년 뒤 NASA의 달 착륙선 ‘서베이어(Surveyor)’에 탑재됐습니다. 이 성과는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서베이어의 핵심 미션은 유인 우주선이 착륙할 지점에 대한 사전 정보를 모아 지구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우주 통신이 가해지면서 안전하게 상황을 공유하고 돌발사태에 대비할 수 있게 되 것이죠.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나이지리아 총리간에 이뤄진 최초의 양방향 위성 통화, 1964년 도쿄 올림픽의 위성 중계 역시 노우드와 그의 팀이 이뤄낸 성과입니다.
노우드는 ‘랜드샛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마음에 들고 적절한 별명이다. 나는 그것을 창조했고, 낳았으며, 그것을 위해 싸웠다”고 했습니다.
※참조
NASA : https://landsat.gsfc.nasa.gov/article/virginia-t-norwood-the-mother-of-landsat/
랜드샛 갤러리 : https://svs.gsfc.nasa.gov/Gallery/Landsat.html
미지질조사국 : https://www.usgs.gov/landsat-missions/news/bidding-farewell-virginia-t-norwood-mother-landsat
뉴욕타임스 : https://www.nytimes.com/2023/04/12/science/space/virginia-norwood-dead.html
MIT테크놀로지리뷰 : https://www.technologyreview.com/2021/06/29/1025732/the-woman-who-brought-us-the-world/
박건형의 홀오브페임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48
#홀오브페임#뉴스레터
앱설치
많이 본 뉴스
22살에 미군 기밀을 만든 천재 여성… 지구에 선물 주고 떠나다 [홀오브페임]
22살에 미군 기밀을 만든 천재 여성… 지구에 선물 주고 떠나다 [홀오브페임]
국민 3분의 2 반대에도 원전 다 끈 독일… 러에 휘둘리는 나라 됐다
국민 3분의 2 반대에도 원전 다 끈 독일… 러에 휘둘리는 나라 됐다
삼성 갤럭시 기본 검색엔진, 구글 대신 MS 빙으로 갈아타나… “구글은 패닉”
삼성 갤럭시 기본 검색엔진, 구글 대신 MS 빙으로 갈아타나… “구글은 패닉”
100자평3
도움말삭제기준
100자평을 입력해주세요.
찬성순반대순관심순최신순
사상마련
2023.04.17 09:52:24
주역의 첫문장이 음양은 서로 평하다. 오천년전 글귀보다 못했군. 음양은 높고 낮음이 없이 평하고 남녀도 생물학적 차이가 있을뿐 그 본질은 같은 것이다. 이게 주역이다.
답글작성
4
0
정원지기
2023.04.17 10:23:33
기사가 참 좋다. 여성은 나의 어머니, 누나, 여동생이다. 조선시대에 인구의 반이 되는 훌륭한 인재들을 썩힌 걸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허난설헌, 사임당, 황진이를 비롯 무수한 여성 인재들과 서얼과 노비 등등이 재능도 못피고 사라졌다. 미친 이념, 미친 편견이다. 아직도 세계에 바보같은 사상이 지배하는 곳도 있다. 요즘 한국은 역차별이 염려될 정도이나 형식적 평등 아닌 실질적 평등으로 재능이 발휘되었으면 좋겠다.
답글작성
1
0
나라고
2023.04.17 10:25:20
이런 기사 너무 좋아요.
답글작성
0
0
많이 본 뉴스
1
누워서 인사하는 7급 高卒 공무원에 장차관·도지사가 줄 선다
2
“수억도 아닌 고작 300만원인데”… 野, 바닥 없는 도덕불감증
3
22살에 미군 기밀을 만든 천재 여성… 지구에 선물 주고 떠나다 [홀오브페임]
4
국민 3분의 2 반대에도 원전 다 끈 독일… 러에 휘둘리는 나라 됐다
5
이재명, ‘돈봉투’ 의혹에 “깊이 사과…송영길 조기귀국 요청”
6
삼성 갤럭시 기본 검색엔진, 구글 대신 MS 빙으로 갈아타나… “구글은 패닉”
7
[단독] ‘경기동부연합’ 진성 멤버들, 강성희 보좌관으로 국회 입성
8
[기자수첩] 대통령 부인에 악플 세례… 순직 경찰관 아내의 세번째 눈물
9
꽃가루 알레르기, 꽃 탓이 아니다? 주범은 바로 이 나무
10
서초 3000세대 아파트, 상가 40% 미분양...불황·배달·금리 ‘3각 파도’
오피니언
정치
국제
사회
경제
스포츠
연예
문화·
라이프
조선
멤버스
DB조선
조선일보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개인정보처리방침
앱설치(aos)
사이트맵
Copy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