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은 어디 있을까
얼마 전 경상북도 상주 어느 민가에 불이 나 목조건물이 소실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화재가 아니었다.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배모 씨의 집이 불에 탄 것이다. 언론을 통해 세인의 주목을 끌었던 귀중한 문화재 상주본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배 씨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불에 탔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대답을 피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은 일종의 해설서다. 조선 학자가 한글 창제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기 쉽게 주석을 달아놓았다. 이것 때문에 국보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 간송본’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오성제자고五聲制字攷란 표제가 붙은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8년 7월이었다. 골동품 수집상 배 씨가 상주의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샀다며 이를 공개했다. 학자들의 감정 결과 국보급 문화재라는 평을 받으면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골동품상 조 아무개 씨는 배 씨를 절도죄로 고소하여 송사가 일어났다. 배 씨가 고서적을 사가면서 해례본을 훔쳐갔다는 주장이었다. 배 씨의 절도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판결이 내려졌으나, 민사재판에서는 원래 소유자인 조 씨에게 해례본을 반환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문화재청이 나서서 문화재를 감정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원본을 제출하라고 요청했지만, 배 씨는 이를 거절했다. 문화재청은 그를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하여 검찰이 구속했고, 조 씨는 자신이 갖고 있지 않는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배 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명예가 회복된다면 상주본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했으나,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이를 지키지 않았다. 그 뒤 조 씨는 세상을 떠났고, 기다렸다는 듯이 배 씨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국보급 고서로, 서체가 깨끗하여 가격을 정할 수 없다는데, 300억 원 가량 되지 않을까 감정하는 사람이 있다. 훈민정음 목판본 중에서도 초간본에 가깝기 때문에 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이다. 목활자는 수명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선 초기의 경우 100부 이상의 판본을 찍지 않았다고 한다. 훈민정음의 자본字本이 당시 서체와 일치하며, 지질이나 형태로 판단할 때 복각의 가능성은 없다고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경북대학교 N교수는 ‘직지심제요철의 경우 8천억 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은 1조 원 가까운 상징적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고문시간에 이낙교 선생님은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국지어음國之語音이 이호중국以乎中國 하야]’하시며 훈민정음을 정성껏 가르쳐주셨다. 이 문장은 훈민정음 ‘예의’의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例儀와 해례解例로 나누어져 있다.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 ‘예의’라면, ‘해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서문을 포함한 ‘예의’ 부분은 ≪세종실록≫과 ≪월인석보≫ 등에 실려 전해왔지만, ‘해례’는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 민족 최고의 발명품인 한글, 그 창제 원리를 알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40년 이전만 해도 일본 학자들은 한글이 고대 글자의 모방,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화장실 창살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는 등의 가설을 내놓았다. 이런 가설들이 엉터리로 밝혀진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덕이었다.
훈민정음 해례 간송본은 안동 이한결 가문에 소장되어 왔었다. 그의 선조 이천 장군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이 하사했다고 전한다. 이한결이 생활고로, 당시 서울 기와집 한 채 값인 1천원에 해례본을 내놓았다. 이 소식을 들은 전형필은 비싸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개한 이에게 1천원, 해례본 값으로는 1만원을 쳐주고 구했다. 이런 보물은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그는 말했다. 간송은 6․25때 이 책 한 권을 오동나무 상자에 넣고 피란을 떠났으며, 잠을 잘 때도 베개 삼아 잠을 잤다고 한다. 이 해례본을 간송본이라 하는데,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간송본이 발견되면서 한글의 원리가 비로소 밝혀졌다. 한글의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 모음은 천지인天地人을 본 따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집필자들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강희안, 이선로, 이개, 최항 등 집현전의 8학자이다.
상주본은 어디에 보존되었다가 나타났을까? 검찰은 문화재 도굴 1인자로 알려진 서 아무개를 지목했다. 서 씨의 진술에 따르면 안동 광흥사 대웅전의 나한상 등에 들어있던 수십 권의 고서를 절취했을 때 그 속에 상주본이 있었고, 이를 조 씨에게 팔았다고 했다.
상주본을 감정한 문화재청 학예사들은 깜짝 놀랬다. 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간송본에 없는 표기, 소리 등에 대한 당시 연구자의 주석은 달고 있어 한글 창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줄 소중한 자산이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배 씨에게 적당한 보상을 해서라도 국가가 사들여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이 이렇게 높은 가치가 있다는데 훈민정음, 곧 한글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수백조 원, 아니 경京 단위일까? 아닐 것이다. 숫자로 잴 수 없는 무한한 가치가 있다. 이런 것을 무無값이라고 해야 할지.
지난 상주 민가 화재로 상주본이 소실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 배 씨가 은밀한 곳에 숨기지 않았을까 짐작이 간다. 법으로만 윽박질러도 쉽게 내놓을 성싶지 않다. 국보 1호 남대문처럼 어이없이 사라져선 안 된다. 배 씨를 잘 달래고 보상책을 강구하여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이 하루속히 세상에 드러나 오래오래 안전하게 보존되기를 바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할아버지께서는 안방 벽에 한글 자모와 ‘가나다라’를 적은 커다란 벽지를 붙여놓고 내게 글을 가르쳐주셨다. 훈민정음과 처음 만난 것인데, 지금까지 60년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한글이 있으므로 해서 나는 수필을 쓸 수 있다. 이 좋은 글자를 아름답게 가꾸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수필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다. 조상들의 지혜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2015. 5. 7.)
첫댓글 좋은 글 잘 쓰셨습니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