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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志鬼)는 신라 경주의 활리역(活里驛) 사람인데, 하루는 서라벌에 나왔다가 삼국시대 우리나라의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이 행차하시는 걸 보았는데. 그런데 여왕이, 그 미모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는 단번에 한눈에 반해 여왕을 사모하게 되었는데,그 그리움이 상사병이되고 고게 그 도가 너무 지나쳐 고만 미쳐버리고 말았다는 겁니다.
"MBC 선덕여왕역을 맡은 고현정에서 옮긴 사진"
선덕여왕은 지귀(志鬼)가 자기를 흠모하다 병이 나서 미쳐버렸다는 그 얘기를 듣고, 영묘사(靈廟寺)로 행차 하기로 한 날, 하도 보기에 딱하고 가슴이 아프고 가엾어서 그래서 너무나 불쌍해... 그를 위로나 해주려고 절로 불공드리로 가는 날에, 절 탑앞에서 만나 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랫드니 이 말을 들은 지귀는 너무 좋아서 꼭두 새벽부터 영묘사에 가서 왕을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리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었어 버렸는데, 이때 왕이 절에 도착 불공을 드리려 들어가다 탑으로 가서 지귀를 보았으나,
"지귀를 보고 그냥 가는 선덕 여왕"
깊이 잠든 지귀의 그 단잠을 차마 깨울수가없어서 그냥 절로 들어가 불공이 끝나자, 돌아가면서 다시 둘러보니 여전히 깊이 잠든 지귀를 보고 그 담잠이 너무 깊이들어서 또 깨울수가 없어서 가슴 위에 차고 있던 팔찌를 왔다 갔다는 정표로 얹어놓고 환궁해 버렸습니다.
여왕이 떠나고 난 후에야, 잠에서 깬 지귀는 왕이 다녀간 것을 알고 슬픔이 북받쳐 화가 나자, 가슴속의 불〔心火〕이 울화가 되어 치솟아 그 탑을 돌고 돌다가, 그 울화가 가슴을 다 태우고는 결국은 위 처럼 울화통이 한이 되어 터지자, 그 불이 불귀신〔火鬼〕이 되어버렸고 그 불길이 그가 들어가는 집들은 모두가 다~아! 그가 들어가기만 하면,들어간 그집은 고만 불타버리고 마는 거였습니다.
그러자 선덕여왕은 술사를 시켜 불귀신을 멀리 쫓는 주문을 다음과 같이 지었습니다. “지귀의 마음속 불이, 자신을 태우고는 불귀신이 되었구나. 멀리 바다 밖에 옮겨가서, 보이지도 말고 서로 친근하지도 말지어다.” 이 주문은 선덕여왕의 염원이 스며서인지?이 주문이 붙은 곳은 희안하게도 지귀(志鬼)가 그 집앞에는 나타나지 않아서 그후 세속에는 이 주문을 아래와 같이 쓰서,
志鬼心中火 - 지귀가 마음에 불이 나
燒身變火神 - 몸을 태워 화신이 되었네.
流移滄海外 - 마땅히 창해 밖에 내쫓아
不見不相親 - 다시는 돌보지 않겠노라.
붙여 집집마다 화재를 막는 데에 사용했드니 이 주문이 붙은 곳은 화재가 일어나지 않아서... 그래서 이 주문 처방은 지금도 화재가 잘 이르나는 곳에는 붙쳐진다고, 합니다.
이 귀신(鬼神)형전설 설화는 삼국 시대 부터 영남 지역에서 전해오는 설화로 대동운부군옥 (권20)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지귀주사(志鬼呪辭))한국민속문화사전등에 있는 글 내용을 참고해서 재편집 포스팅한 글입니다.
"주문을 보고 도망가는지귀(志鬼)"
위의 전설 얘기의 지귀(志鬼)는 불귀신으로 둔갑되어 신라와 조선을 거치면서 오늘날 까지 이어오면서 이 설화의 소재인 불이 현대 문학에서는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에서는 "사랑의 성취로,그리고 최서해의 "홍염 소설"에서는 저항의 의미로 쓰이고 김동인의 소설 "광염소나타"에서는 불을 보고 광란하게 응용됐고 현진건의 "불"은 복수와 자유의 갈망을 의미하도록 묘사 되게 인용되어 현대 문학에서도 그 맥을 이어져 오며 변해져 전해지고 있다고 합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