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언어와 철학 언어, 그 팽팽한 대결>/박준상 (철학자
자크라캉
2007. 10. 17. 16:10
<문학 언어와 철학 언어, 그 팽팽한 대결>
박준상 (철학자)
제1강 플라톤의 문학에 대한 비판: 『이온』을 중심으로
▲ 플라톤의 문학 비평
플라톤 : 문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해 최초로 체계적인 고찰을 보여준 철학가
플라톤의 개인사적인 측면과 당시의 시대사적 배경을 통해 그의 문학 비평에 접근할 수 있다.
① 개인적인 배경-소크라테스를 만나 철학으로 전향하기 전까지 플라톤은 문학지망생이었다. 그에게 있어 문학과 철학의 관계를 살펴보는 일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② 시대적 배경-플라톤이 살았던 B.C.5~4C 경에 국가에서는 문학 작품, 즉 극작품을 장려함. 플라톤은 문학을 비호하는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함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Platon, BC 429?~BC 347]
“문학은 쓸데없는 정념을 불러 일으킨다”
→ 플라톤은 문학이 시민으로 하여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충실한 인간이 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질적인 도구를 생산하는 지식과 관련이 없는 문학은 일종의 허무주의적인 감정만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문학뿐만 아니라 회화를 포함한 예술 전반에 대해 플라톤은 같은 입장을 보였는데 “예술은 반경제적이기 때문”이었다.
▲ 플라톤의 유기체론
경제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플라톤의 국가 개념
→ 플라톤은 국가를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룬 유기체’로 간주함.
즉 부분이 원활히 돌아갈 때에야 완전한 유기체를 이룰 수 있음.
따라서 국가를 하나의 몸에 비유하였으며 각 신체의 부분에 위계를 주어 설명했다.
① 머리-최고 통치계급을 일컫는다. 즉 정치가를 말하는데 플라톤은 철학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함. 국가를 조화롭게 다스리고 윤리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
②가슴-군인계급을 말한다. 이들은 용병술, 무기, 전술 등에 통달해 있어야 한다.
③기타 신체 부위(팔, 다리)-생산자 계급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각자 종사하는 분야에 탁월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 결국 각 부위에 속하는 시민들이 맡은 분야에서 지식을 쌓고 경제적인 활동을 해야 국가의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 때문에 경제적이라는 말은 사물에 대한 탁월하고 유용한 지식을 지니고 있음을 뜻하며 정치에 종속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보았을 때 문학은 경제적 관점에서 유용하지도 않을뿐더러 정치적으로 잘못 쓰이면 국가에 해악을 끼치고 무질서를 불러올 수 있다.
플라톤의 문학관은 후에 헤겔의 독일낭만주의 비판과 합류함. 즉 문학작품이 정치적 질서를 망가뜨린다는 것.
▲ 플라톤의 예술 비판
플라톤은 예술 특히 문학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예술에 대한 플라톤의 시각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플라톤의 『국가』의 일부를 살펴볼 것이다.
『국가』에는 세 가지 생산방식을 설명하기 위한 침대의 비유가 나온다. 침대를 생산하는 데에는 세 단계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① 최상의 단계-신적인 생산 방식. 즉 침대의 이데아를 생산하는 것이다. 침대 이데아란 침대의 지성적 원리, 즉 모든 침대에 공통되는 원형이자 원리를 뜻한다.
② 두번째-목수에 의한 현실적이고 실재적인 침대의 생산이 이에 속한다. 목수는 침대의 이데아(구성 원리)에 관여하며, 이데아에 바탕해서 침대를 생산하게 된다.
③ 세번째-화가에 의한 침대 그림의 생산이 이에 속한다. 즉 예술적인 생산 방식이다. 화가는 침대의 겉모양만을 모방할 뿐이다. 두 번째 생산이 첫 번째 생산을 모방한 것이라면 화가에 의한 세 번째 생산은 두 번째 생산을 모방하는 것이기에 “모방의 모방”을 하는 것이 된다.
→ 플라톤의 이론에 따르면 회화적 이미지의 생산은 최하위의 것으로서 생산 원리로서의 이데아 원형으로부터 가장 멀고, 실직적이거나 유용한 것도 아니다. 화가가 침대를 그릴 때 화가는 침대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어도 상관없다. 지식과 무관하게 단지 겉모습만 복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문학 역시 회화와 같은 맥락에서 비판함.
「“그러니까 비극 작가도 그런 자인 걸세. 진정 그가 모방자라고 한다면 말일세. 그는 본성상 진리로부터 세 번째인 자이며 다른 모든 모방자들도 그러하네.”」(플라톤,『국가』597e, )
→즉 비극 작가는 화가와 다르지 않다. 둘은 모방의 모방을 추구하고, 본질과 상관없는 껍데기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메로스를 비롯해서 모든 작가들은 사람으로서의 덕성이라든가 또 그밖에 그들의 작품의 주제가 되는 것들의 허깨비를 모방하는 자들로서 참다운 것 그 자체에는 결코 접하지 않고 있다고 우린 주장하도록 할까? 오히려 그건 앞서 우리가 말하고 있었듯이, 화가는 실제로 신기료장수라고 생각되는 것을 창작하지만, 스스로 신 만들기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보는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만 색이나 형태를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이라네.”」(플라톤, 『국가』600e~a)
→화가가 색채나 선, 형태로 모방한다면 시인은 낱말과 구문으로 모방하는 것일 뿐
같은 책에서 플라톤은 문학과 회화는 동료이고 친구라고 말한다. (603a~b)
사물의 이데아는 경제적인 것으로 사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접근할 수 있다.
사물을 다루고 사용할 줄 아는 기술, 능력(테크네techne)가 필요한 것이다.
반면 시인은 군인의 일-용병술이나 무기, 전략에 관해-에 대해 아는 게 없으면서도 군인의 외모나 옷차림만 이야기하고, 화가는 그들의 모습을 그리기만 할 뿐이다.
▲ 예술과 정치의 관계-플라톤의『이온』을 중심으로
『이온』은 소크라테스와 이온이라는 음창시인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이온은 호메로스의 작품 낭송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돌아왔다. 이온의 문제는 호메로스의 작품만을 훌륭하게 낭송할 수 있을 뿐, 다른 작가의 작품은 그만큼 잘 낭송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온은 다른 작가의 작품보다 유독 호메로스의 작품만 잘 낭송할 수 있었을까?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목수는 모든 종류의 침대를 만들 수 있는데, 이는 침대의 이데아에 대한 지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온은 보편적 지식을 지니지 않은 상태에서 테크네(기술)로써가 아니라 신적인 힘(광기)에 의해 낭송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적인 힘을 자력(磁力), 혹은 마그네티즘magnetism이라 부른다.
플라톤에 의하면 문학의 소통은 이와 같은 자력, 마그네티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온』(533d~e)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Muse- 시인(예: 호메로스)- 음창시인(예: 이온)- 관객
이들의 관계는 자기적인 사슬로 엮인 것이다. 호메로스는 시의 신 Muse에게 정신을 뺏겨 자신이 아닌 상태에서 글을 쓴 것이며-이온은 호메로스에세 홀려 광기상태에서 낭송한 것이며-이온의 낭송을 들은 관객들은 이온에게 홀려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에 빠진 것이다.
이들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관여methexis라 부르는데, 타인에 대한 모방, 끌림을 의미한다.
→ 문학의 소통은 테크네와 관련이 없으며, 자력에 의해 사로잡히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사물을 파악하고 설명하는 지적이며 능동적 능력이 전자라면, 운명의 농락에 의해 비탄에 빠진 이들과의 공감을 유도하는 광적이며 수동적인 정념이 후자에 속한다.
▲ 플라톤이 문학을 비판한 근본적인 이유
플라톤의 문학 비판에는 사물에 관한 유용한 지식을 다루지 않는다는 경제적인 관점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었다. 문학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methexis 과정이 그것이다.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던 이들이 문학작품의 등장인물들에게 빠짐으로 인해 수동적 정념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 이는 정치적인 혼란, 무질서를 야기할 수 있다.
메테시스methexis가 과연 문학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이온이 호메로스에게 methexis 되었다는 것, 즉 이온이 호메로스를 모방하였다는 플라톤의 주장은 철학자들간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예> 니체-쇼펜하우어, 칸트-흄, 독일낭만주의자-루소 : 이들의 경우를 보아도 철학사 전체가 타인에 대한 모방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플라톤-소크라테스의 경우에서도 같은 관계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에게 받은 것은 단지 테크네(사물에 관한 유용한 지식)이나 선에 관한 이데아뿐만이 아니다. 플라톤 역시 소크라테스를 모방한 것.
▲ 소크라테스의 죽음
스승인 소크라테스에 대한 플라톤의 모방은 당시 국가 위정자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methexis 과정을 들어 문학을 비판했던 플라톤 자신 역시 소크라테스에 대해 같은 관계에 묶여 있었다면, 국가의 질서를 수호하는 사람들에게 다르게 보였을 리 없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청년을 그릇된 길로 이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국가가 신봉하는 신들을 신봉하지 않고 다이몬이라는 색다른 것을 신봉하기 때문에 죄인이다」(플라톤,『변명』24b~c)
소크라테스의 고소장에 적힌 죄명에서 소크라테스 역시 다이몬이라는 신에게 methexis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Muse-호메로스-이온의 관계는 그대로 다이몬-소크라테스-플라톤의 관계와 등가를 이룬다.
→ 문학의 소통 과정과 철학의 소통과정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이 시인을 비난하듯 소크라테스 역시 자신의 철학으로 젊은이들을 타락, 부패의 길로 이끈다는 비난을 받았다.
▲ 플라톤의 ‘시인추방론’
플라톤은 경제적으로 생업에 잘 종사하는 시민들에게 쓸데없는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시인들을 국가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시인들은 추방되지 않았고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말대로 시인과 철학자, 즉 문학과 철학은 다른 것일까?
타인에 대한 끌림과 모방을 의미하는 methexis를 문학소(文學素)라 정의한다면, 이러한 문학소는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에도 역시 존재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수업의 최종적인 과제: 문학과 철학에 내재하는 문학소를 살펴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