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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禪軒 독서일기 2026년 3월 31일 화요일]
《 『환단고기』 [단군세기(檀君世紀)
十一世 檀君 道奚 在位五十七年》 (22)
十一世 檀君 道奚 在位五十七年
(1) 庚寅元年 帝命五加 擇十二名山之最勝處 設國仙蘇塗 多環稙檀樹 擇最大樹 封爲桓雄像而祭之 名雄常
國子師傳有爲子 獻策曰 惟我神市 實自桓雄 開天納衆 以佺設戒而化之 天經神誥 詔述於上 衣冠帶釰 樂效於下 民無犯而同治 野無盜而自安 擧世之人 無疾而自壽 無歉而自裕 登山而歌 迎月而舞 無遠不至 無處不興 德敎加於萬民 頌聲溢於四海 有是請
11세 단군 도해 재위 57년
경인년 원년(B.C.1891) 단제께서 오가에 명하여 열두 명산 중에서 경치가 가장 뛰어난 곳을 골라 나라 신을 모시는 소도를 설치하고 박달나무를 빙 들러 심고는 그중에서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환웅상으로 봉하여 제사를 지내고서 환웅의 신령이 늘 깃드는 웅상(雄常)이라 부르도록 하였다.
국자학당의 사부인 어떤 뜻 있는 이가 대책을 올려 말하기를, “오로지 우리의 신시는 환웅께서 나라를 열어 백성을 거두시고 신령스러운 가르침으로 계율을 세워 백성들을 교화한 데서부터 실로 시작되었습니다. 천부경과 심일신고는 하늘의 가르침이요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다님은 아랫사람들에게 위엄을 보임이니, 이에 백성들은 가르침과 위엄을 범하지 않고 단제의 다스림에 함께 하니 마을에 도적이 없어 저절로 편안하고, 온 세상 사람들이 병이 없어 저절로 오래 살며, 부족함이 없이 저절로 넉넉하니 산에 올라 노래하고 달을 맞아 춤을 춥니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덕화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흥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덕의 가르침이 모든 백성에게 더해지고 칭송의 소리가 사해에 차고 넙칩니다. 이렇게 되도록 청하옵니다”라 하였다.
[논주] ‘國子師傳有爲子’를 이기동은 ‘국자 사부 유위자’로, 임승국은 ‘국자랑의 스승으로 있던 유위자’로 해석하지만 나는 말 그대로 ‘국자학당의 사부인 어떤 뜻 있는 이’로 해석한다. 이 글은 칭송용이 아니라 단제에게 올리는 주청용 헌책(獻策)이다. 내용을 보면 아주 이상적인 정치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도저히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래서 말미에 ‘有是請’의 “제가 올린 이와 같은 말씀대로 되기를 청합니다”라는 말이 붙어 있다. 단제의 덕치를 칭송하기 위한 글이라면 말하는 이의 이름이 있을 것이다. 헌책이기 때문에 실명을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재위가 57년이고 기사가 많으며, 붕어 후에 백성들이 크게 슬퍼한 것을 보면 도해 단군이 정치를 괜찮게 한 것 같다.
(2) 冬十月 命建大始殿 極壯麗 奉天帝桓雄遺象而安之 頭上光彩閃閃 如大日有圓光 照耀宇宙 坐於檀樹之下 桓花之上 如一眞神 有圓心 持天符印 標揭大圓一之圖於樓殿 立號居發桓 三日而戒 七日而講 風動四海
겨울 시월에 명하여 대시전을 세웠는데 매우 웅장하고 화려하였다. 그곳에 천제 환웅의 전해 내려 온 유상을 받들어 모셨는데 머리 위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빛이 마치 큰 해의 둥근 빛이 우주를 밝게 비추는 것 같고, 박달나무 아래 환화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한 분 진짜 신이 원의 중심에 있는 듯했다. 천부인을 나타내는 커다란 원 하나 그림을 대시전 다락 높이 걸어놓고, 환웅을 개국 시조로 거발환이라 정하여 불렀다. 3일 동안 계를 지키고 7일 동안 강론하니 위풍이 온 세상을 감동시켰다.
[논주] 유상(遺象)은 새로 그린 초상화가 아니라 환웅이 세운 배달국 때부터 전해 내려온 초상화이다. 대시전을 세우고 배달국의 시조왕인 환웅의 유상을 모심으로서 단군조선이 배달국을 계승했음을 널리 알렸다.
거발환을 모신 대시전은 단군조선의 성전이다. 옛날에는 어느 민족이나 시조신을 모시는 성전이 있었다. 박달나무가 위이고 환화는 아래인 걸 보면 환화는 박달나무보다 키가 작은 꽃이다. ‘桓花之上’이라 하여 환웅 유상이 환화를 깔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약간 언덕진 곳에 큰 박달나무 아래 앉아 있고 그 아래 둘레에 환화가 둥글게 피어있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환화는 박달나무는 본래 아니고 키가 큰 함박꽃나무와 무궁화가 아닌 키 작은 꽃이다. 그런데 대시전을 세운 달이 겨울 10월이다. 이때에 피는 꽃은 들국화 종류뿐이다. 나무든 풀이든 꽃은 들국화뿐이다. 들국화는 둥글고 환하다. 특히 오상고절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들국화는 곱고 생명력이 강하면서 동북아 지역 어디에서나 곱게 핀다. 환국(桓國)의 환 자는 ‘환하다’의 음차이다. 그래서 환화(桓花)는 나무 목(木) 부이지만 꽃나무가 아니라 다년초인 구절초나 쑥부쟁이를 나타내는 ‘환한 꽃’의 음차이다.
또한 ‘持天符印 標揭大圓一之圖‘에서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사상이 천부인으로 나타나고, 그 천부인은 원(圓)의 형상임을 알 수 있다. 원(圓)은 곧 지구 우주를 상징하고, 자연과 인간 세상의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커다란 원, 중간 원, 작은 원들이 서로 얽혀서 빙글빙글 잘 돌아가는 상태가 정상이다. 그런데 그 중의 하나가 궤도를 이탈하거나 부러지면 온 세상이 그만 헝클어진다. 그러나 세상은 그 헝클어진 상태로 정지하지 않고 잠시 멈춘 다음에 다시 이탈하거나 부러진 원을 밖으로 밀어내고 빙글빙글 회전을 한다. 수명이 다한 별이 초신성이 되었다가 마침내 폭발하면 우주 전체가 헝클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주의 암흑물질에서 나오는 암흑에너지에서 발사된 중력이 폭발한 별의 빈자리를 다시 시공으로 채운다.
우주는 커다란 원, 중간 원, 작은 원들이 서로 얽혀서 빙글빙글 잘 돌아가는 평면 우주가 아니라, 우주는 입체로서 한 점 우주의 중심에서 동서남북 상하측방 등 모든 방향으로 커다란 원, 중간 원, 작은 원들로 형성된 평면 우주들이 시공을 서로 겹치거나 관통하면서 빽뺵하게 전개된 입체 우주가 아닐까 한다. 자연계의 모습도 그러하고, 인간계의 모습도 그러하며, 우주의 모습이 그러기 때문이다.
현대문명으로 보는 고대인들은 미개하다. 그러나 인간과 우주의 원리는 고대나 현대나 똑같다. 현대는 그 원리를 더 깊이 정밀하게 들여다보지만, 고대인들은 전체를 대략 직관으로 파악했다. 고대나 현대나 우주, 자연, 인간의 관계는 똑같다.
(3) 其念標之文曰 天以玄黙爲大 其道也普圓 其事也眞一 地以蓄藏爲大 其道也效圓 其事也勤一 人以知能爲大 其道也擇圓 其事也協一 故 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 仍刻之于石
그 마음의 우듬지로 삼는 글인 <염표문>에서 이르기를, “하늘은 그윽하고 고요하여 크고도 커서 하늘의 도는 널리 두루 고르고 하늘의 일은 거짓이 없고 참됨 하나이다. 땅은 모으고 품어 넓고도 넓어 땅의 도는 두루 고르게 좋은 보람이고 땅의 일은 부지런히 일하여 힘씀 하나이다. 사람은 두뇌가 우수하여 크고도 커서 사람의 도는 고르게 가리고 고름이며 사람의 일은 서로 마음과 힘을 합함 하나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정신이 내려와 마음 속에 깃들어 본성이 광명으로 통하면 살아가는 세상이 이치에 따르므로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느니라.”라 하였다. 이에 그 글을 돌에 새겼다.
[논주] 염표문(念標之文)은 마음에 새긴 글이다. ’표(標)‘는 ’우듬지, 끝, 나타내다 밝히다‘의 뜻을 갖는데, ’마음을 밝히는 글, 마음을 나타내는 글‘이라고 보통 읽힌다. 그런데 ’우듬지‘로 풀면 ’마음의 우듬지 글‘이 된다. 마음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 자라기도 하고 줄기도 하며,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에 물체가 아니라 생물이다. 마음을 나무에 비유하면, 나무는 우듬지가 자라서 줄기가 된다. 마음은 우듬지 역할을 하는 정신의 미세한 지각으로 환경과 조건을 탐색하며 대처하고 적응한다. 이 마음의 우듬지가 바르고 깨끗해야 정신과 마음 전체가 바르고 깨끗하다. 그러므로 천지인(天地人)의 근본과 도리(道理), 사리(事理)를 나타내는 이 글은 염표문(念標文), ’마음의 우듬지 글‘이다.
이 염표문의 구조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天以玄黙爲大 其道也普圓 其事也眞一
地以蓄藏爲大 其道也效圓 其事也勤一
人以知能爲大 其道也擇圓 其事也協一
세 문장의 틀은 같은데 끼인 말이 玄黙-蓄藏-知能과 普-效-擇 그리고 眞-勤-協으로 다르다. 생략된 단어를 확대하면 다음과 같다.
天以玄黙爲大 其道也普通圓滿 其事也眞實一
地以蓄藏爲大 其道也效驗圓滿 其事也勤勉一
人以知能爲大 其道也擇善圓滿 其事也協同一
이렇게 하면 해석하기가 훨씬 쉽다. 물론 普-效-擇과 眞-勤-協에 다른 말을 붙이면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하늘은 그윽하고 고요하여 크고도 커서 하늘의 도는 널리 두루 고르고 하늘의 일은 거짓이 없고 참됨 하나이다.
땅은 모으고 품어 넓고도 넓어 땅의 도는 두루 고르게 좋은 보람이고 땅의 일은 부지런히 일하여 힘씀 하나이다.
사람은 두뇌가 우수하여 크고도 커서 사람의 도는 고르게 가리고 고름이며 사람의 일은 서로 마음과 힘을 합함 하나이다
하늘은 꾸밈이나 거짓이 없다. 사실 그대로 존재하고 사실 그대로 표현한다. 땅과 인간이 아무리 졸라도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이 때에 맞게 내려 주고 때에 맞게 거두어들인다. 하늘은 선악이 없다. 춘하추동과 원형이정의 원리대로 한결같이 움직인다.
이 천관(天觀)에는 환인-환웅시대를 거쳐 단군시대까지 우리 조상들이 하늘을 왜, 어떻게 숭배, 존경, 애호했는가를 알 수 있는 생각이 들어있다. 수렵채집과 원시 농경사회에서 하늘은 인간과 집단의 삶을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였다. 두려움의 대상이면서도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도 했다. 조상들은 오랜 경험과 관찰을 통해 하늘의 도와 일은 결코 편파적이지 않고 만인에게 골고루 영향을 끼침을 알았다. 그래서 알아낸 것이 ’진일(眞一)‘이다. 욕심이 과하면 무너지고, 난폭하면 추방되며, 무리하면 터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상들은 하늘의 평범한 가르침에 따라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은 땅이 베풀어 주는 은혜를 받으며 살아간다. 땅은 물과 공기뿐 아니라 온갖 식물과 동물, 광물 등을 저장하고 있는 보물창고이다. 인간은 이 보물창고 덕분에 생명을 유지한다. 땅은 인간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는 인간들에게는 풍요로움을 안겨 준다. 반대로 게으른 자에게는 흡족한 먹이를 주지 않는다. 땅이 베풀어 주는 은혜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고 미래형이다. 산업이 아무리 발달해도 땅이 병들면 인간이 병든다. 인간의 삶을 있도록 해주는 땅의 고마움을 깊이 느끼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누구나 쉽게 하며 스스로 영장임을 자랑한다. 다른 동물들보다 진화를 훨씬 빨리한 덕분에 지금은 지구의 지배종족이 됐다. 수많은 인종과 민족이 지구 위에 살며 저마다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한 민족 내에서도 우열을 다투지만 지구 전체적으로 민족들간에 우열 경쟁이 치열하다. 드디어 핵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배치해놓고서 침략과 방어 두 가지를 함께 설계하고 있다. 핵전쟁이 발발하면 인류는 전멸이라는 사실을 지구 위에 사는 인간 누구나 머리로는 알지만 감정으로는 자가 나라가 핵무기를 많이 가진 것을 안심한다. .
’其道也擇圓‘은 한 인간에게도 필요하고 한 국가에게도 필요한 개념이다. 인간은 일상생활의 순간순간마다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일상의 작은 선택도 있지만 인생 전체를 뒤흔들거나 결정할 수 있는 큰 선택의 순간이 있다. 이때 필요한 개념이 ’擇善圓滿‘이다. ’가장 좋은 방향을 선택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뒤에 ’圓滿‘이 붙어 ’나에게도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원만한 선택을 해야 한다‘가 된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사고와 선택을 한다. 그러나 자기만의 이기와 자존만을 추구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사회에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럴 때는 자기 이익과 자기 생각을 접는 것이 바른 선택, 택선(擇善)이 된다.
국가는 인간들의 집단으로 인간에 의해 움직인다. 국가의 선택은 곧 지도자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其道也擇圓‘은 지도자 한 사람의 선택이 자기 나라 혼자만 좋아서는 안 되고 이웃 나라들과 나아가 온 세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나라만 좋은 것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이웃 나라와 사단이 난다. 자기 나라도 좋고 이웃 나라도 좋은 공통분모를 찾고, 여의치 않으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줄이면서 타협하는 방법이 최선의 선택이다. 곧 에너지 자원의 고갈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온 세계의 강대국들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혈안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강대국이 에너지 자원이 많이 매장된 약소국들을 폭력으로 점령하는 정글의 약육강식 법칙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풍요하게 살려고 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그러한 인간들의 최대 집단인 국가는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속성을 갖는다. 그러한 집단과 국가의 힘 앞에서 ’其道也擇圓‘ 교과서에 적힌 문구일 뿐이다. ’택선(擇善)‘을 자기 나라 혼자만의 이익으로 해석한 고금동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일으킨 수많은 세계 전쟁사에 더하여 제1차, 제2차 세계대전과 6.25 한국세계전쟁과 베트남전쟁은 참혹한 피해를 남겼다. 멀잖은 미래 언젠가 제3차 세계대전이 터지면 수천 기의 핵무기 공방으로 인류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이렇게 온 세계의 인간들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주장하며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을 불사한다. 그러나 우리 백의민족의 조상들은 오랜 경험과 사색을 통해 비록 헛소리 또는 이상적인 구호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其道也擇圓‘이란 말을 역사에 남겼다.
이러한 ’其道也擇圓‘은 곧 ’其事也協一‘로 이어진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무리동물이다. 무리의 기본 단위로는 가족이 있고, 다음으로 친척, 이웃, 사회, 국가, 세계로 이어진다. 개인의 이익과 고집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과 생각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집단의 협동심이 단단하고 협동력이 강하다. 고대나 현대나 집단의 결속력이 강할수록 좋은 결과를 거둔다.
이러한 천지인 삼신일체의 사상은 우리 민족정신의 근본이다. 천에 대한 존경으로 ’천신(天神)이란 말을 썼지만, 이 말은 인격신이 아니라 자연신이다. 이 자연신은 있는 그대로의 우주와 지구, 자연환경으로서의 하늘을 상징하는 개념으로서 서양 기독교의 하나님 개념의 인신적 존재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부처와는 절대적 인격을 목표로 하는 불교와 하나님 여호와라는 절대적 천신을 목표로 하는 기독교가 수입되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삼신일체 사상의 으뜸인 천신 개념이 왜소해지면서 왜곡되고 말았다. 삼신일체 사상은 하늘만이 아니라 이어지는 땅과 인간의 연결까지 함께 봐야 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불교가 깨달은 인간을 목표로 삼고, 기독교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목표로 하는 일원적 구조라면, 삼신일체 사상은 하늘-땅-인간의 삼원을 함께 포괄하는 대원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삼신일체 사상의 핵심은 인간이다. 하늘의 절대적 능력에 복종하는 것도 아니요 땅의 무한한 은혜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스스로 하늘과 땅의 고마움을 알고 그 의미를 잘 새겨 부지런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느 종교들처럼 하늘과 땅을 신으로 모셔 무조건 복종하고 숭배하는 게 아니다. 삼신일체에 대한 이러한 생각이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故 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정신이 내려와 마음속에 깃들어 본성이 광명으로 통하면 살아가는 세상이 이치에 따르므로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느니라”.
이 문장에서 ‘일신(一神)’을 잘못 읽으면 ‘한 분 신’이 되어 기독교의 하나님처럼 절대권을 가진 인격신이 되기 쉽다. 그러나 삼신일체 사상의 전후 맥락을 보면 그런 인격신이 아니라 하늘과 땅, 인간의 도리와 연결을 환하게 안 정신, 즉 ’올바른 정신‘을 의미한다. 선불교에서처럼 오랜 수행을 통해 해탈을 이룬 각자(覺者)가 아니라 일상생활을 통해 하늘과 땅의 원리와 은혜를 알고 고마워하며 순종하는 평범한 인간이 가진 올바른 정신을 의미한다.
하늘과 땅의 원리와 고마움을 아는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은 성정 역시 올바르기 때문에 언행이 밝고 깨끗하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 일한다. 인간생물의 원리대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사회는 밝고 깨끗하고, 그러한 사회가 많은 세상은 이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평화롭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모두가 서로서로 이롭다.
(4) 丁巳二十八年 設所而聚方物 以閱珍奇 天下之民爭獻 陳設如山
丁卯三十八年 徵民丁 皆爲兵 送選士二十人于夏都 始傳國訓 以示威聲
정사년(B.C.1864) 28년에 장소를 마련하여 사방의 물건들을 모아서 진귀한 것들을 전시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다투어 바쳐서 진열한 물건들이 산과 같았다.
정묘년(B.C.1854) 38년에 백성에서 장정들을 병사로 삼았다. 뽑은 선비 20명을 하나라 서울로 보내 처음으로 나라의 가르침을 전수하여 위엄과 명성을 보였다.
[논주] 夏(하, 기원전 2070년경〜기원전 1600년경)는 상나라 이전 중국에 수백 년간 존재했다고 기록된 반전설적인 나라이다.
이런 하나라가 우리 민족의 고대사 기록에 나와 있다. 이때에는 동이족의 세력이 화이족보다 강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수렵채집인 주요 산업인 동이족보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화이족의 인구 증가가 커서 인구가 많아졌다.
(5) 乙亥四十六年 設作廳于松花江岸 舟楫器物 大行于世 三月 祭三神于山南 供酒備膳 致詞而醮之 是夜 特賜宣醞與國人環飮 觀百戱罷 仍登樓殿 論經演誥 顧謂五加曰 自今以後 禁殺放生 釋獄飯丐 竝除死刑 內外聞之 大悅
丙戊五十七年 帝崩 萬姓慟之如考妣喪 三年憂 四海停聲樂 牛加阿漢立
을해년(B.C.1846) 46년 송화강 기슭에 관청을 세우고 베와 노, 기물을 만드니 세상에 크게 퍼져나갔다. 3월에 산 남쪽 기슭에서 삼신께 제사를 지냈다. 술과 음식을 바친 후 제문을 읊고 제단에 절했다. 그날 밤 특별히 술을 내려 백성들과 함께 둘러앉아 나누어 마셨다. 백 가지 재주놀이를 보고 파한 후에 루대의 전각에 올라 천부경을 말씀하고 삼일신고를 강연하였다. 이어 오가를 둘러보고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는 살생을 금하고 잡은 것을 놓아주며 죄인을 풀어주고 거지를 먹여주어라. 아울러 사형을 폐지한다”라 하였다. 나라 안팎의 사람들이 이를 듣고 모두 좋아하였다.
병술년(B.C.1835) 57년에 단제께서 붕어하시니 만백성이 자기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피 통곡하엿다. 3년 동안 슬퍼하며 온 세상에 노래와 악기가 멈췄다. 우가 출신 아한(阿漢)이 즉위했다.
[논주] 태자가 없었는지 몰라도 우가 중에서 다른 인물이 단군을 승계했다. 이후에도 몇 세 동안 태자가 아닌 우가 출신의 다른 인물이 단군을 승계하여 700년 동안 우가 독점이 계속된다. 450년 만에 우가(牛加) 부족이 왕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2026년 3월 31일 안동 열락연재에서
개산팔경 박 희 용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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