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왕대)Japanese Timber Bamboo , 孟宗竹 , マダケ真竹
분류학명
벼과 |
Phyllostachys bambusoides |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그리 시켰으며 속은 어이하여 비어 있는가?
저리하고도 사계절 늘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윤선도의 〈오우가〉 중 ‘죽(竹)’에 실린 노래다. 대나무가 풀인지 아니면 나무인지는 글 읽기에 이골이 난 4백여 년 전의 대학자나 지금의 우리나 여전히 헷갈리게 만든다.
대나무는 종류에 따라 짧게는 3년, 길게는 120년 만에 꽃이 핀다. 더욱이 일제히 피었다가 열매를 맺고 나면 벼나 보리처럼 말라 죽어버린다. 보통의 나무가 매년 꽃을 피우는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나무 꽃이 피면 ‘개화병(開花病)’이 들었다고 한다. 세상에 꽃을 피우고 병들었다는 소리를 듣는 나무는 대나무 말고는 없을 것이다. 또 부름켜가 없어서 지름이 굵어지지 않고 속이 비었으며, 죽순에서 한 번 키가 커지고 나면 다시는 자라지 않는다. 이런 특성으로 보아서는 틀림없는 풀이다.
한편 매년 지상부가 죽어버리는 풀과는 달리 대나무는 수십 년을 살아 있으며, 높이 자라고 단단한 목질부를 가지고 있어서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나무의 특성과 일치한다. 따라서 식물학적인 기준으로 보면 대나무는 풀이고, 베어서 이용하는 측면으로 보면 나무다.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가 실려 있다. 신라 31대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 바다 가까이에 감은사(感恩寺)란 절을 지었다. 신문왕 2년(682)에 해관(海官)이 달려와 동해 가운데 있던 작은 섬 하나가 감은사 쪽으로 떠내려오는 이상한 일이 있다고 아뢴다. 놀란 왕은 일관(日官)으로 하여금 점을 쳐보게 하니, 바다용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보배를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에 왕은 기뻐하며 이견대(利見臺)에 가서 그 섬을 살펴보게 하였더니, 섬의 모양이 거북의 머리처럼 생겼고, 그 위에 대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이 대나무는 낮에는 둘로 나뉘어 있으나,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면서 천지가 진동하고 이레 동안 비바람이 몰아쳤다. 바다가 잔잔해진 다음 왕은 배를 타고 그 섬에 들어가 보니 커다란 용이 검은 옥대를 받치면서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고 했다. 궁궐로 돌아온 왕은 용이 준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 천존고(天尊庫)에 보관해두었다. 왜구가 침입하거나 가뭄이나 홍수로 나라에 근심이 있을 때마다 이 피리를 불면 모두가 평온해졌으므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삼국유사》에는 ‘미추왕과 죽엽군(竹葉軍)’, ‘죽죽(竹竹)장군 이야기’ 등 대나무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훨씬 이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도 빠질 수 없는 재료로서 먼 옛날부터 함께한 나무가 바로 대나무다.
죽순대(맹종죽)는 대나무 중에서 가장 굵게 자라며, 1898년 일본에서 가져다 처음 심기 시작했다. 왕대와 솜대는 약간의 논란이 있으나 삼국시대 이전에 중국을 통하여 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죽순대의 마디는 테가 하나밖에 없으며, 왕대와 솜대는 테가 두 개다. 그 외에 줄기가 까만 오죽(烏竹)은 관상용으로 흔히 심는다.
대나무의 일생은 보통 나무와는 아주 다르다. 땅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뿌리줄기에서 죽순이 나와 한 달에서 두 달이면 키 자람을 끝내버린다. 한 시간에 2~3센티미터씩 자라는 경우도 있다 하니 자람이 그대로 눈에 보일 정도다. 그러나 대나무가 단단해지는 데는 리그닌(lignin)이라는 물질이 세포벽 속에 쌓이는 시간이 있어야 하므로 1~2년은 기다려야 한다. 단단해지는데 조금 더 시간을 주어 대체로 대나무는 2~4년마다 베어서 쓴다.
대나무는 언제나 변함없이 푸른 잎이 달려 있고, 줄기는 곧 바르게 자라므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또 세로로 쪼개 보면 깔끔하게 쪼개진다. 그래서 ‘대쪽 같은 사람’은 불의나 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군자의 행실을 비유한 말이다. 사군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는 얄미운 영국인들을 골탕 먹이기 위하여 대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빵빵하고 터지는 소리를 ‘밤푸’로 들은 그들은 대나무를 두고 ‘밤부(bamboo)’라는 영어 이름을 만들었다. 우리의 세시풍속에도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대나무를 태우면 큰 소리에 놀라 귀신들이 도망갔다고 한다.
죽(竹)을 중국 남부지방에서는 ‘택(tek)’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ㄱ이 탈락하고 변하여 ‘대’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