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목소리.
겨울 밤 창문 틈을 할퀴며 들어오는 바람 소리. 실톱이 쇠 위에서 소리치고 유리창이 갈라지는 소리. 당신의 목소리.
나는 더듬더듬 배로 기어가 다시 당신의 다리를 안았습니다. 정말 몰랐습니까.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광기로 당신이 나무토막을 집어 내 얼굴을 쳤을 때, 내가 즉시 기절했을 때, 델 것 같은 눈물이 내 눈에서 흐르고 있었던 것을 당신은 보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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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구절들에 닿는 순간, 오른쪽 팔목이 시큰거렸다.
아, 이거, 이거, 뭐였더라…. 이거, 뭐였더라…..
한참을 생각 한 끝에 알아냈다. 이 증상은 ‘슬픔’이라는 것을.
알아차림과 함께, 봇물 터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몇몇 고백들과 그 고백들 앞에서 말 그대로 미친 사람이 되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어떤 고백 앞에서는 분노와 함께 도망을 하였고, 어떤 고백 앞에서는 잔인하게 저항하며 맞섰고, 어떤 고백 앞에서는 내려쳐진 유리처럼 수습할 수 없을 지경으로 무너져버렸다. 왜 모든 고백들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것일까. 왜 모든 고백들이 다 미친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정말 몰랐습니까.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도망치는 다리를 붙잡고, 사정없이 머리를 내려치는 나무토막에 정신을 잃으면서도, 사랑한다고 중얼거리며 흑점의 온도로 눈물을 쏟아 내던 그 모든 고백들이, 우리 사이에 광기처럼 등장한 그 무엇, 그러니까, 사랑에 관한 최선의 표현이었음을 아프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모든 고백들에게 광기로 일관하였던 나의 어리석음 또한, 그 사랑에 대한 최선의 고백이었음을, 거칠게 도망치고 잔인하게 저항하고 속절없이 산산조각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 또한 그 사랑에 간절하였음을 뒤늦게 발견한다.
“정말 몰랐습니까.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최선 앞에서조차 어긋났을 뿐이었다. 아니, 최선이었기에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었다. 그땐, 그걸 몰랐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걸 모른 채 우리는 만날 수밖에, 그러므로 어긋날 수밖에 없는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