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5장 22-33절
제목 : 부부간에 피차 복종하라
지난주에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 세 번째 시간으로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는 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 시간을 아끼며 살아야 한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 대해 답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주님의 뜻을 이해해야 한다. 주님의 뜻을 이해하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다. 성령충만이란 무엇에 의해 살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지난주에 살펴본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성령 충만한 자의 모습을 19-21절에서 세 가지로 소개했습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피차 복종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내용과 이어집니다. 다같이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도 간에 피차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경외함이란 두려워한다는 뜻인데, 쉽게 이해하면 그 존재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21절을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피차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라. 그것이 성령충만의 증거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피차 복종해야 할 관계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제시합니다. 그중에 첫 번째 관계가 바로 부부관계입니다. 22-24절은 아내가 남편에게 가져야 할 바른 태도, 그리고 25-30절까지는 남편이 아내에게 가져야 할 바른 태도에 대해 말합니다.
먼저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결론부터 언급하겠습니다. 본문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합니까? 22절과 24절을 보시면 ‘복종하라’고 합니다. 반대로 남편은 아내에게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25-30절에서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는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어떻게 됩니까?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 우리 마음에는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왜 내 아내는 나한테 복종을 안하지?', '왜 내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지?', '왜 성경대로 안살지?' 남편들 중에 내 아내는 나에게 항상 복종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반대로 아내들 중에 내 남편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늘 생각하는 분 계십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사회는 오히려 성경과 반대로 가지 않습니까? 나이가 먹을수록 남자가 아내에게 복종하는 게 당연한 게 되고, 아내는 남편의 사랑에 대해 별로 요구하지 않는, 나이가 드실수록 여자들은 남편이 오히려 자신에게 무관심해주길 바라지 않습니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우리가 그만큼 성경과 다르게 살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고 남편들은 기가 살아서 아내들에게 “성경에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왜 당신은 나한테 복종하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그러면 아내들은 “어이구, 성경에 어디 그것만 써있냐? 그 밑에 남편들한테 아내를 사랑하라고 써 있지 않느냐? 그런데 당신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줬냐?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왜 복종을 해야 하냐?” 이렇게 따집니다. 오늘 본문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면, 본문이 진짜로 말하려는 메시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이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3절을 보면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머리됨이란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지,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23절에서 바울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남편과 예수님이 동일한 권한이나 지위를 갖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한자 중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습니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가지고 아버지가 아들한테 ‘나를 임금처럼 섬겨라’라고 말한다면 그건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써 있다고 해서 이걸 무조건 복종하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데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바른 해석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 기준이 바로 21절입니다. 무엇입니까? 피차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종은 아내가 남편에게만 하는 게 아닙니다. 복종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모두 다 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22절은 분명 아내들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사실은 남편들도 아내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같은 의미로 25절에서는 남편에게 아내를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내들도 남편들을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본문을 이렇게 기록해놔서 사람을 헛갈리게 만든 걸까요?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본문을 우리가 다른 차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오늘 본문이 남편과 아내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비교했을 때 누구에게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미국 탈봇 신학교의 학장으로 2011년 복음주의 신학회 회장을 역임한 클린턴 E 아놀드 교수는,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 22-24절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루는 내용은 총 47개의 단어를 사용한 반면, 남편이 아내에게 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는 총 143개의 단어를 사용했다면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초점은 아내가 남편에게 해야 할 의무보다는 남편이 아내에게 해야 할 의무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이 본문이 로마 가정에 만연했던 가부장제를 문화적으로 용인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오히려 이 본문의 중심은 반문화적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내와 남편 둘 다를 위한, 하지만 특히 남편이 가정에서 지도력과 권위를 발휘하는 법을 이해하려 애쓸 때 그 남편을 위한 본보기로 제시한다. 그것은 지도자가 된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보려면 그리스도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존더반 신약주석, p.387)
쉽게 말하면, 오늘 본문의 메시지는 아내와 남편 둘 다에게 하는 말이 분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남편이 가정에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진짜 메시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말했다고 해서 남편들이 이 본문을 가지고 아내에게 “성경에서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으니까 내가 무엇을 시키든 복종해”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25절 이하에 나오는 남편의 의무를 가지고 아내들이 남편에게 “사랑하라”고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그보다는, 남편은 아내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 아내의 그런 모습을 가지고 문제를 삼기 보다는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옳습니다. 아내들도 남편에게 사랑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남편에게 얼마나 복종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오늘 본문을 바르게 대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놀드 교수는 본문 22절이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남편들이 죄 짓는 것을 요구하거나, 불법적인 행동을 하거나, 남편에게 끔찍한 학대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복종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까지 주장합니다. 오히려 그럴 때는 남편의 뜻에 불복종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오늘 본문의 메시지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보다는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이 이야기하려는 진짜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기준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21절 “피차 복종하라” 입니다. 여기서 ‘피차’는 모두 다 그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내용들보다도 그 속에 담겨진 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이 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주께 하듯이 하라”이고, 다른 하나는 “주가 하듯이 하라”입니다. 먼저 22절 읽겠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 본문에서 우리는 그동안 ‘복종’이라는 단어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헬라어 성경에는 22절에 ‘복종’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22절을 헬라어 성경 그대로 해석하면 “아내들이어 자기 남편에서 주께 하듯 하라”라고 해야 옳습니다.
또 25절을 읽겠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 구절도 잘 보시면 우리는 그동안 ‘사랑’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는데 사실은 25절도 가운데를 다 빼고 핵심만 요약하면 “남편들아,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 25절에서 바울이 제시하려는 피차 복종하는 원리는 ‘주가 하듯 하라’는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주께 하듯 하고, 주가 하듯 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하는 것처럼, 남편도 아내를 주님 대하듯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때 마치 주님이 하시는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내들도 남편에게 복종할 때 교회가 주님께 복종하듯이 해야 합니다. “주께 하듯이 하라”, “주가 하듯이 하라” 이 두 가지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 충만함으로 피차 복종하면서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