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읽지 않는다면 꿈은 어떻게 꾸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3.06.14
인도 소년 ‘파이’의 모험을 그린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의 저자 얀 마텔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하기 위해 첫 내한했다. [뉴시스]
“인공지능 시대에도 문학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특히 국가를 이끄는 사람이나 기업 총수처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문학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배워야 합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파이 이야기』(영어 원제 라이프 오브 파이)의 저자 얀 마텔(60)은 13일 서울 중구 캐나다 대사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1년 캐나다에서 첫 출간된 『파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50개국에서 1200만부가 팔렸다.
인도 소년 ‘파이 파텔’과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태평양 표류기다. 캐나다 작가인 마텔은 2002년 『파이 이야기』가 부커상을 받고,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2013년 크게 흥행하면서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다.
14일 개막하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초청돼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그는 “인도 여행을 하며 힌두교를 접했다. 유일신 신앙인 기독교와 달리 수천, 수만의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힌두교에서 소설의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힌두교 신화에는 많은 동물이 등장한다. 어쩌면 인간은 신과 동물 사이에 있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파이 이야기』는 결국 종교와 동물을 바탕으로 신이라는 존재를 상상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파이 이야기』 특별 합본판
마텔은 내년 초 새 장편 『선 오브 노바디(son of nobody)』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고대 파피루스를 연구하는 한 젊은 고고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마텔은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고 영감을 받아 쓰게 된 책”이라며 “어리석음과 탐욕 때문에 전쟁에 휘말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현대인에게도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리아드』에서는 왕족이나 귀족만 발언하는데 내 책은 평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4일 도서전 개막식에 참석해 강연한다. 18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올해 도서전의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다. 인공지능(AI)을 주제로 하는 강연과 북 콘서트 등 170여 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마텔의 강연 주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시 인간 본질을 되돌아보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텔은 스티븐 하퍼 캐나다 전 총리와 관련된 일화로도 유명하다. 2007년 한 문화 행사에 참석했다가 당시 총리였던 하퍼가 무관심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총리에게 4년간 문학 작품을 추천하는 편지 101통을 보냈다고 한다. 이 편지는 『얀 마텔 101통의 문학 편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마텔은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픽션을 통해 상상력과 공감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캐나다의 지배계층인 중년 백인 남자들은 20대 이후로 문학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문학을 읽지 않는다면 비전과 꿈을 어디에서 얻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