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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sa - 投稿者自身による作品, CC 表示-継承 3.0, Link
1. 도카이도본선 전철화와 함께 등장한 최초의 특급형 전동차
1956년 도카이도본선 전구간이 전철화 되면서 증기기관차로 견인되던 장거리 특급열차는 EF58과 같은 고속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객열차용 전기기관차가 증기기관차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어서 급격한 일본 경제의 부흥으로 철도도 수직성장을 시작하는 시기에서 좀더 빠르고 쾌적한 열차를 기획하고 도쿄-오사카간을 6시간 30분에 잇는 전동차형 특급열차를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1957년 카르단기어, 발전제동 등 새로운 기술을 부어넣은 101계가 등장, 이를 베이스로 한 국철 최초의 특급형 전동차인 151계를 만들어 냈다(이미 앞서 오다큐 전철이 "로망스카"로 최초의 특급형 전동차를 등장시켰기 때문에 일본 최초는 아니었다). 151계는 1958년 11월 도쿄-오사카간의 특급 "제 1고다마"로 화려하게 데뷔하면서 일본철도의 중흥기를 활짝 열었다.
2. 동차의 전성시대를 장거리 열차까지
동력이 분산되어있는 동차는 애시당초 하부에 있는 전장품에서 발생하는 소음/진동, 각종 기기의 내구성 등의 문제로 장거리 열차로 활용하는데엔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차는 에어스프링으로 승차감을 향상시키고 각종 기기의 내구성이 점차 증가했으며 게다가 카르단 드라이브 같은 신성능 전동차를 통해 동력분산식 차량의 기술발전 속도는 눈에 띄게 상승하게 되었다. 그에비해 기관차는 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선 더욱 무거워져야 했으며 이에 수반되는 선로의 부담은 많은 비용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1067mm 협궤라는 선로환경에서 가벼운 무게와 빠른 속력 두가지를 잡을 수 있는 동차의 우수성이 부각되며 주요 간선의 장거리 열차에도 동력 분산식의 전동차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여객열차의 동차화가 가속화 되면서 동력분산식 차량의 전성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3. 커다란 본넷 만큼이나 포스있는 "고다마"형 차량
본래 모하20계로 등장하여 1959년 차호개정으로 151계의 차호를 부여받은 151계 전동차는 장거리 특급형 전동차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고속운행을 위해 운전사의 시야를 높이고 소음과 진동을 유발하는 객실전원 공급용 전동발전기(MG)와 공기압축기를 격리시키기 위해 선두부는 커다란 본넷 구조로 되어있는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선두부 앞에는 아크릴로 된 열차 애칭판을 달고다녔으며 위에는 커다란 헤드램프를 달아 특급열차로서의 위엄을 한층 더했다. 당시 화제가 되었던 유럽 횡단열차 "TEE"를 본딴 크림색 도색에 붉은 띄를 둘렀다. 기본적인 전장품은 101계에 기초하나 기어비를 다소 깎아 최고속도는 110km/h에 맞췄으며 2차 지지부에 에어스프링을 사용하는 대차를 채용해 승차감을 향상시켰다. 151계의 성능은 10퍼밀에서 103km/h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견인력을 지녔으며 1959년 7월 최고속도 시험에서 163km/h를 기록했다. 초기엔 8량 편성으로 4M4T, 최대 12량(6M6T)로 운용되었으며 실내 설비도 현대화되어 뒤집힌 마름모꼴 형태의 에어컨 박스가 인상적인 냉방장치가 전 차량에 장비되어 있으며 좌석은 2등차가 회전식 크로스시트, 1등차는 리클라이닝 시트를 갖췄으며 융단 카펫을 깔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한편 AM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이어폰 장비나 공중전화 등이 설치되었고 자그마한 컴파트먼트(회의 등 비지니스 용도)도 갖추고 있었으며 뷔페카도 갖추고 있었다.(식당차는 아니고 서서 간단하게 식사 등을 할수 있는)
- 교토 우메코지 철도박물관에 전시된 151계 "고다마"의 선두부. 이 커다란 선두부의 뚜껑을 열면 커다란 객실 전원공급용 전동발전기와 공기압축기가 들어있었다.
- 151계의 운전실은 당시의 운전실 설계가 그렇듯 간단한 운전기기만이 갖춰져 있었다.
- 151계의 2등차 좌석은 쭈욱 누울 수 있을 정도의 여유있는 리클라이닝 시트였다. 당시 풍습은 신발을 벗고 좌석위에 양반다리로 여행하는 스타일이었나 보다.
- 보통차는 그 당시의 좌석이 그렇듯 리클라이닝이 없는 회전식 박스시트로 되어있었다.
4. 일본 철도사의 신선한 충격 151계
그렇게 1958년 11월 1일 "제 1고다마"(다이이치 고다마)로 세상에 처음 선보인 151계는 최고속도 110km/h로 도쿄-오사카간의 559.3km를 6시간 50분에 연결했다. 당시에 이 열차는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열차를 타보려고는 했지만 당시의 엄청난 운임(지금의 현금가치로 따지면 4만엔 정도, 현재 도쿄-오사카간의 신간선 운임은 약 1만엔 정도)으로 포기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며 초기 승차율은 87%정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당시에만 해도 열차를 이용한 장거리 여행은 대중적이지 못했고 철도 취미도 부유층에서 많이 이루어졌으니 그럴만도 했으며 주로 직장인들이 출장할 때 이용하는 비지니스 특급의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의 수준을 뛰어넘는 뛰어난 거주성으로 호평을 받은 151계는 1959년 2회 블루리본상을 수상하고(1회는 오다큐의 초대 "로망스카") 이어서 1960년 기존 EF58형으로 운용되던 도카이도본선의 특급열차들로도 이어져 "츠바메"와 "하토"에도 151계가 증비되기에 이른다. 이들은 12량 편성으로 도입되어 4량이 1등차(그린샤)에 식당차 2량, VIP를 위한 개별실(방탄 유리까지 갖췄다!)이나 한량 정원이 18명 밖에 안되는 1+1열 좌석의 호화객실, 공중전화등 지금 시점에서 보아도 상당히 호화로운 설비를 더했다.
- 1960년 국철 소개 팜플렛에 실린 151계 "고다마" 분명 60년 초반 일본의 급격한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차량임에는 틀림없었다.
- 당시 151계 "다이이치 고다마"의 개통식. 오사카나 도쿄로 출장가는 부장님들이나 이용할만한 열차였지만 표를 사려는 사람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많았다.
By 国鉄 - 国鉄1960年発行パンフレットより、『鉄道ファン』No.371 1992年3月号付録, 日本国著作権消滅/米国フェアユース, Link
- 151계 "츠바메" 가 자랑하던 1+1의 전망좌석. 실내엔 라디오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설비는 물론 공중전화와 같은 편의설비가 충실하게 갖춰져 있었다.
5. 산으로도 올라가는 특급 161계의 등장
151계의 성공에 이어 신슈지역으로도 특급열차를 운행하기 시작했는데, 1962년 신에츠본선 나가오카-니가타간의 전철화와 함께 죠에츠선을 경유 니가타로 향하는 특급열차도 새롭게 투입되었는데 151계로 죠에츠선을 시운전 해본 결과 이 151계로 20퍼밀이 넘는 연속구배를 올라가려니 견인전동기가 과열되어버려 결국 도아이 구간의 또아리굴을 올라가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따라서 151계의 MT비를 늘리고 저항기의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강제송풍기를 적용하고 억속제동, 내설대응을 추가한 161계가 새롭게 제작되어 특급 "토키"로도 투입되었다.
http://www.jnr-photo.com/161/kuha161/kuha161.htm
- 특급 "토키" 161계와 키하 80계 특급 "하츠카리"의 모습. 당시 간판특급이 얼굴을 마주쳤다.
6. 신간선의 개통으로 수직추락한 호화 특급
여객철도란 아무리 좋은 설비를 갖췄다 하더라도 빠른 속도앞에선 무용지물이 되는것이 일반적이다. 1964년 최고속도 200km/h를 넘는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 신간선이 개통되면서 그 동안 운행되었던 특급열차 "제 1고다마"도 폐지, 최고급 특급열차 151계의 위상은 수직으로 추락하게 된다. 하지만 151계를 원하는 노선은 많았고 다른 노선으로의 전출로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된다.
우에노-니가타간의 특급 "토키"는 물론, 우스이고개를 오르는 특급 "아사마"에도 투입되었으며 오사카 - 시모노세키/우노(시코쿠 방면)/하카타 방면의 산요본선, 가고시마본선 열차로도 활약했다. 그럼 이때 큐슈로 들어가면 교류구간인데 어떻게 하카타까지 운행되었을까? 이때는 기관차(EF30, ED73)와 함께 전차선에서 교류전원을 받아 대형 전동발전기를 돌려 객차에 전원을 공급하는 전원차(사야 420형 - 원래 421계 차량의 객실에 전원기기만 실어놓은-)를 연결하고 151계는 그대로 팬터그래프를 접고 하카타까지 견인되어 운행할 수 있었다.
한편 151/161계는 101계의 전장품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성능에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1965년 이들을 모두 모아 103계에 사용되는 120kW급 MT54전동기, 억속제동등을 추가해 120km/h의 성능을 내는 181계로 통합했다. 따라서 151계, 161계가 형식소멸되고 181계만이 남게 되었다. 151/161계의 개조 뿐만 아니라 일부는 신조되거나 485계에서도 개조되어 총 230량이 제작되었다.
http://9680himeichi.dreamlog.jp/archives/51426649.html
- 181계 전동차와 전원차 사야420형을 붙인 형태. 여기에 기관차를 붙여서 칸몬터널을 넘어 모지코역 부근의 절연구간을 손쉽게 넘을 수 있었다.
7. 화려한 등장에 어울리지 않았던 초라한 결말
그렇게 주요간선 특급열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181계는 1970년대 이후로 점차 그 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1972년 산요신간선의 개통으로 "하토","시오지"등은 구간이 잘리거나 운행횟수가 줄었으며 그나마 이듬해인 1973년 485계로 교체되고 신에츠, 츄오본선 지역으로 집중되게 되었다. "토키","아사마","아즈사" 등 신에츠 지역의 다양한 열차로 투입되었지만 운용년수가 15년이 되어가는 151계 초기형 출신의 차량들의 노후화가 시작되었으며 급기야 1973년 크리스마스 폭설한파가 덮쳐 181계의 고장 사고가 다발해 국회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되기도 하는 등의 문젯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제어기기에 강제송풍기를 사용하는 특성이 컸다. 송풍기를 통해 눈이 그대로 빨려들어가 고장으로 이어지기 때문) 이 문제는 아오모리나 카나자와에 남는 485계를 빌려와 운용하기도 했으며 이후 내한내설장비를 강화한 183계 1000번대를 투입하면서 문제를 해결했지만 181계는 그대로 운용되어 오다가 노후화로 퇴역의 길을 걷게 된다 1975년 우스이고개의 "아사마"가 189계로 교체되는 한편 다른쪽도 183계로 교체되는 차량이 늘어났고 1982년 드디어 죠에츠 신간선이 개통, 기존선 특급인 "토키"가 폐지되면서 181계도 전 차량이 퇴역하게 된다. 하지만 일부 부수차는 살아남아 485계 등에 편입되었으며 이들은 1993년까지 운용되었다.
- 말년의 181계 전동차. 머리 위의 헤드라이트도 떼어버렸다.
8. 일본 철도의 중흥기의 중심에 선 열차
151계는 일본의 전후 철도의 본격적인 중흥기를 연 장본인이다. 높은 경제성장으로 철도의 수요는 크게 증가했고 서비스 수준도 빠르게 늘어나 새로운 서비스를 원하던 시기를 대표하고 있다. 비록 고속철도를 비롯한 본격적인 속도경쟁이 시작되어 아주 짧은 기간 과도기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국철 최초의 특급 전동차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지금은 박물관이나 정태보존 되어있는 차량만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시대를 상징한 커다란 본넷형 선두부는 일본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이 형식의 차량은 시제차였던 26계 1호차(쿠하151-1, 제원표 위의 사진)가 효고현 카와사키중공업 공장 구내에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어 전시되어 있으며 오오미야 철도박물관에 한량, 그리고 교토우메코지 철도박물관에 선두부가 전시되어 있다.
- 추억의 열차로도 운행한적이 있는 181계. 이렇게 구 국철 시대의 열차를 운행할 수 있을 정도로만 유지하고 추억의 열차로 운용하기도 했다.
글 : 송승학(부운영자, 787-ARIAKE)
사진 : 위키피디아, Onpuch.uk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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