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함을 받은 사람만이 진정 용서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다 탕진하여, 거지가 된 탕자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거지가 된 아들은 결국 다시 아버지의 품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집 나갔던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그 아들을 맞아, 아들을 다시 품에 안으시고, 아들의 모든 죄와 잘못을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심지어 돌아온 아들을 위해 소를 잡아, 잔치를 베풀어 맞아 주십니다. 이 광경을 본 큰 아들은 아버지에게 항변합니다. 큰 아들은 어떤 아들입니까? 자신을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최선을 다해 아버지를 위해 일했는데 자신을 위해서는 염소새끼 한 마리도 잡아, 친구들과 즐기게 하지 않았다고 불평합니다. 큰 아들의 말이 분명히 옳습니다. 자신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고,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버지에게 큰 아들이야말로 칭찬받고, 아버지의 사랑을 흠뻑 받아야 옳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음만이 옳고, 의롭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하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관점에서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은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큰 아들의 모습 속에서 제 2의 탕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는 옳고, 집을 나간 동생의 삶을 정죄하며, 불의로 여기는 것입니다. 제 2의 탕자의 모습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예수님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경험한 여인이 예수님 발 앞에 무릎을 끊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장 귀한 향유 옥합을 깨드려, 예수님의 발에 부어 자신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함을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용서함을 받은 사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진정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사람입니다. 죽음의 죄에서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용서함을 받아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용서받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다른 사람의 죄들을 정죄하면서 자산만이 의롭고, 옳다고 하는 삶을 버려야 합니다. 겸손하게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받음에 감사하며, 감격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더 많은 은혜를 입은 자 만이 더 많이 하나님과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석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