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는 아들에 집착했다. 아들을 낳고 싶어 여섯 번이나 장가를 들었다.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 재혼한 두 번째 결혼이 특히 유명하다. 이 때문에 교황청과 갈라섰다는 속설이 있는데, 그렇게 단순히 볼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당시 잉글랜드 사람들은 자주적인 종교개혁을 바랐고, 첫 번째 부인 캐서린은 강대국 스페인과 로마 교황청 등 외세를 등에 업은 인물이었다.
사연이 어찌 됐건, 두 번째 부인 앤 불린도 아들을 낳지 못했다. 헨리는 없는 죄를 만들어 앤 불린의 목을 치고, 곧바로 제인 시모어Jane Seymour(1509~1537)를 아내로 맞았다. 한때 첫 번째 부인과 두 번째 부인의 시중을 들기도 했던 여인이다. 앤 불린이 처형된 날이 1536년 5월 19일, 제인 시모어와 결혼한 날이 열하루 만인 5월 30일이었으니, 좀 너무했다.
이듬해 10월 12일, 제인 시모어는 사흘에 걸친 난산 끝에 아들을 낳았으나, 쇠약해진 산모는 10월 24일에 숨을 거둔다. 십 년 후 헨리가 죽고 제인 시모어의 아들이 임금이 되지만(에드워드 6세), 그도 얼마 못 가 세상을 뜬다. 남자가 없다고 왕실이 무너졌을까? 그렇지 않다. 헨리의 딸들이 왕위에 올랐다.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 1세 시절에 잉글랜드는 전성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