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과 시드기야와 스마야는 조기귀환을 예고하여 거짓 희망을 준 사람들로 바벨론 왕과 하나님께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15-19절 바벨론으로 잡혀간 백성 사이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절망과 비참의 자리에서 회개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가리고, 예루살렘으로 조기 귀환할 것이라는 거짓 희망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지금은 예루살렘이 잠시 함락되었고 일부만 포로로 잡혀왔지만, 머지않아 완전히 멸망하고 그 모든 백성이 죽거나 포로가 될 것이다 라고 편지합니다. 예루살렘 백성은 상한 무화과이므로 더 이상 회복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무화과나무에 비유하면, 그늘(하나님의 보호)만 바라고 열매(신실한 삶)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를 계속 보내셨음에도, 참 선지자가 주는 경고를 무시하고 거짓 선지자가 주는 희망만 추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묵상 나눔이 너도나도 말씀대로 살지 못했음을 확인하고 안도하며 열매 없는 삶을 고착화시키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합시다.
20-23절 앞에서는 거짓 예언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리고 뒤에서는 음행을 일삼던 아합과 시드기야는 바벨론 땅에서 처형당할 것입니다. 포로끼리는 심판의 권한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도구인 느부 갓네살왕이 그들을 처단할 것입니다. 이후로 그들의 이름은 저주의 대명사가 될 것입니다.
24-32절 바벨론의 거짓 선지자 스마야가 예루살렘에 편지를 보냅니다. 거짓 선지자를 징계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제사장 스바냐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편지를 보내어 포로들의 희망을 꺾는데, 왜 거짓 선지자 예레미야를 처벌하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하지만 스바냐는 스마야의 요청을 듣기는커녕 편지 내용을 예레미야와 공유하고,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둘째 편지 보내어 스마야에게 임할 심판을 예고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심판의 전언을 막고, 하나님이 보내지 않으신 회복의 말씀을 전한 스마야는, 하나님이 이루실 진정한 회복과 복된 일(30-33장)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인간의 전언이 아닙니다. 쓰고 아프더라도 종국에 진정한 희망과 긍정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매일성경, 2024.07/08, p.34-35, 거짓 선지자들의 최후, 예레미야 29:15-32에서 인용).
① 아합과 시드기야와 스마야는 조기귀환을 예고하여 거짓 희망을 준 사람들로 바벨론 왕과 하나님께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간 백성 사이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절망과 비참의 자리에서 회개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가리고, 예루살렘으로 조기 귀환할 것이라는 거짓 희망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지금은 예루살렘이 잠시 함락되었고 일부만 포로로 잡혀왔지만, 머지않아 완전히 멸망하고 그 모든 백성이 죽거나 포로가 될 것이다 라고 편지합니다. 예루살렘 백성은 상한 무화과이므로 더 이상 회복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무화과나무에 비유하면, 그늘(하나님의 보호)만 바라고 열매(신실한 삶)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를 계속 보내셨음에도, 참 선지자가 주는 경고를 무시하고 거짓 선지자가 주는 희망만 추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묵상 나눔이 너도나도 말씀대로 살지 못했음을 확인하고 안도하며 열매 없는 삶을 고착화시키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합시다.
② 앞에서는 거짓 예언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리고 뒤에서는 음행을 일삼던 아합과 시드기야는 바벨론 땅에서 처형당할 것입니다. 포로끼리는 심판의 권한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도구인 느부 갓네살왕이 그들을 처단할 것입니다. 이후로 그들의 이름은 저주의 대명사가 될 것입니다.
③ 바벨론의 거짓 선지자 스마야가 예루살렘에 편지를 보냅니다. 거짓 선지자를 징계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제사장 스바냐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편지를 보내어 포로들의 희망을 꺾는데, 왜 거짓 선지자 예레미야를 처벌하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하지만 스바냐는 스마야의 요청을 듣기는커녕 편지 내용을 예레미야와 공유하고,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둘째 편지 보내어 스마야에게 임할 심판을 예고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심판의 전언을 막고, 하나님이 보내지 않으신 회복의 말씀을 전한 스마야는, 하나님이 이루실 진정한 회복과 복된 일(30-33장)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인간의 전언이 아닙니다. 쓰고 아프더라도 종국에 진정한 희망과 긍정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