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5장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2)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3)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설교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성도들에게 보낸 설교문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13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이 이미 있음을 알게 하려고 쓴 편지가 요한일서입니다. 요한복음의 목적은 달랐죠. 요한복음 20장 31절에서, “이것을 기록함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요한복음을 읽고,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얻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요한서신에서 강조하듯이, 이미 생명, 영생이 있음을 계속 확신하면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확신을 가지면, 무엇이 좋은가? 14절에서 요한은 ‘담대함’을 말합니다. 영생이 있음을 확신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담대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하는 것을 주실 것을 또한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말하는 기도는, 그냥 소원을 비는 정도가 아닙니다. 14절에 보시면, “그의 뜻대로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응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요한은 요한일서 3장 22절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고, 순종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욕심을 따라 기도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을 잘 살피고 구할 때, 참으로 기도에 응답이 주어질 것입니다.
요한은 또 다른 기도를 말합니다. 16절 보시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고 합니다. 영생을 확신하는 자는 자기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는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16절에서 사도가 말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죠.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지만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 사람이 어떤 죄를 지어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을 가르쳐주시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믿게 하시는 것이죠.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끝까지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용서받는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를 믿지 않으면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구하라 하지 않고,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범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 무슨 말이겠습니까? 믿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그들을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도록 기도해야지 예수님 없이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요한이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형제 자매들의 죄를 위해 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18절부터 21절에서 요한은 마지막으로 세 가지 권면을 전합니다. 18절에 번역이 잘 안 되었는데, 중간에 있는 “우리가 아노라”를 맨 앞으로 빼서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18절, 19절, 20절 맨 앞에 “우리가 아노라”가 나옵니다. 편지의 마무리입니다.
첫 번째로,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않는 줄을 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을 말하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악한 자를 막아 주시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문법적으로, “계속해서”라는 말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겁니다. 점점 변화되고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두 번째로, 요한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지만,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을 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속했는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악한 자 안에 처했다’고 합니다. 여기 ‘처했다’는 말이 재밌습니다. 악한 자, 사탄의 다스림 아래 누워 있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어떻게 힘도 못 쓰고, 대항하지도 못 하고, 그냥 묶여서 누워있는 모습입니다. 처참하죠. 그러니, 빛과 기쁨과 자유와 평화의 나라로 오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지각을 주셔서 모든 것을 알게 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신앙의 중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때로 신앙에서 ‘지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에서 ‘지식’도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 그분이 보내신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말씀에서 배워 ‘지식’으로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 분이신 하나님을 알고, 우상을 버려 멀리 해야 한다고 편지를 마무리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서신을 지금까지 살펴봤습니다. 요한사도는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확신시켜주려고 이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확신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버림받지 않을 것이고, 결코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탄의 다스림 아래에서 무력하게 누워있는 것처럼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늘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주신 확신과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늘 기도하며, 다른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서로 사랑하며,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고, 확신과 담대함으로 사는 것이라고 사도가 가르칩니다. 이런 확신과 담대함, 기도와 순종이 저와 성도님들께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