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아담과 하와때 에덴동산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보이지 뭐가 안 보여요. 에덴동산이 뭐에요? 하나님 나라에요. 보이죠? 보이는 것을 전부로 본 이것이 문제에요. 우리는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실상이 보여야하는데 실상 때문에 나타난 에덴동산을 하나님의 낙원이라고, 하나님의 나라라고 붙들어 맬 수밖에 없죠. 오전에 계속 말씀 드렸죠. 몰라도 하나님이 이미 은혜로 구원하셨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고, 그 다음에 우리는 뭐했어? 아니 세상 것도 묶는데 하나님 나라 이 맛을 보니까 이게 지금 천지개벽 되도 일어날 일이 아닌데 일어났잖아. 세상에서 이런 걸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네 안에 얼마나 충만하게 체험됐냐. 세상에 썩어질 것도 묶는데 하나님 나라 묶겠어? 안 묶겠어? 그래서 제가 전에도 말씀 드렸죠. 예수님이 3일 만에 부활하셨어. 3일째 무덤에 갔어. 돌이 옮겨져 있네. 시체가 놓여있었는데 시체가 없어졌네. 마리아가 울상이 됐어.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네. 어디 있을까? 그때 예수님이 문득 나타나셨죠. 그 분이 누구에요?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 문득 나타났다고 해서 나타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나타내 보여주셨더니 뭐래? 마리아가 누구로 봤어?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봤지? 동산 지기인줄 알고, 예수님 혼자 다 사랑하는것 처럼,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 하셨어? 네가 어찌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려 하느냐? 이게 지금, 저 마리아만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의 모습, 여러분 믿음이 아니면 여자 혼자, 그 새벽에 돌이 옮겨졌다 할지라도, 여자가 감히 겁도 없이 들어가요. 몰라도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느니라. 그 세계는 두려움이 없거든, 그 세계는 사망의 두려움이 무력화되어지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부활의 능력 속에서 뛰어넘는 것을 마리아를 통해서 보여주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준 있어요? 없어요? 그것이 다면, 예수님이 누웠던 그 돌위에 시체가 없는 것을 보며 말씀이 생각났어야지. 그때는 무슨 말인지 통과 통과 했던 것이 어둠속에서 육신 속에 이해 될수 없고 듣긴 들었는데 통과 통과, 그런데 이게 누구도 다 자기 수준 속에서 복음을 깨달아가는 건데 그때 생각 났어? 안 났어? 심지어는 예수님이 문득 나타내 주셨다니까. 안 나타내주셨어도, 부활 하셨어요? 안 하셨어요? 하나님 나라가 임했어요? 안 임했어요? 그런데 마리아는 하나님 나라요 아니면 지옥이에요? 저게 지옥이야. 얼마나 슬퍼. 갇혀 있는 거야. 이게다 우리 수준이야. 얼마나 예수님이 잘 말씀 하셨습니까? 어찌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려 하느냐? 여러분은 안 그러죠?
그러니까 하나님 만 하실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소망이야. 그 말씀이 저 마리아의 혼돈과 어둠속에 빛을 비춰 주셨어요? 안 주셨어요? 그때서야 눈이 열렸네, 이 눈이 무슨 눈이에요? 시체가 없어. 처다 봤던 눈은 무슨 눈이야? 부활하신 주님이 문득 나타내 주셨는데 동산 지기로 봤던 눈은 뭐고, 이게 우리에요. 눈이 열리니까 그때서야 말씀도 생각났죠. 그때서야 이 분은 죽으신 분이 아니라. 부활 하셨구나. 부활의 주님을 맞이 한것 아닙니까? 한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일을 문득 나타내주신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게 큰거거든요. 당신의 구원의 일을 죽으시고 부활하기 전에도 그 일을 나타내셨고 또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도 또 마리아에게도 변함없이 당신의 구원의 일을 나타내주시는 겁니다. 자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니까. 끝난 거죠? 그 다음에 마리아가 어떻게 하죠? 너무 좋으니까. 내가 가장 원했던 거니까. 가장 사모 했던 거니까. 이게 저 마리아의 모습만이 아니에요. 오늘 예수 믿는 모든 자들에게 있는 과정을 저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 하시는 겁니까? 잡지 마라. 그런데 우리는 잡아야 되요? 잡지 않아야되요? 우리는 이 과정 때문에 해산의 고통을 치르고 있습니다. 못 말리는 사람이라서, 하여튼 은혜 주시면 주시는 대로 골치 아파. 은혜 주신 만큼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의 영광을 축복으로 나타내주셔도 골치 아파. 마리아만 그랬을까요? 여러분,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분명히 부활하신 예수님인데 우리는 묶게 되면 우상이 되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저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출애굽을 구원으로 나타내보여주셨다면, 그 이후에 불과 3개월 만에 아론을 찾아가,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서 저들에게 십계명을 준비 하실 때 그 사이를 못 기다리고, 아론을 찾아가 너는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한 여호와 하나님을 , 만들라! 그래서 제가 가끔 가다 표현하죠. 믿는 자들이 우리가 붙잡을 수밖에 없는 이 세계의 문제를 모르면 하나님의 은혜가 잘못된게 아니다. 은혜 주신 만큼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이 잘못된게 아니다. 나만 속고 있는 것이 뭔지 모른다. 몰라도 저 마리아를 통해서 붙잡는 만큼, 이해가 되세요? 3개월 만에 엄청난 출애굽의 역사를 체험하고, 아론이 무엇을 만들어 냈어요?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다. 만들어낸 여호와 하나님. 이걸 모르면 우리도 은혜 받고, 은혜가 좋은 만큼 우리의 세계관 속에 복음 잘 깨달아야지, 깨닫는 만큼 붙잡아, 언약을 붙잡아, 언약 맞거든요. 우리의 세계관 속에 언약 붙잡으면 우상이라는 것을 몰라요. 그래서 복음은 속일수가 없어. 믿는 자의 인생도 속지 않아.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도 쓰세요. 오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왜 오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몰라도 우리가 한계 속에 고통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주신 만큼 그리스도의 생명의 부활의 능력도 나타난 만큼 역사 일어나. 그것도. 쓰세요. 그러나 쓰임 받고 점점 나는 버림받는 내가 되어요. 이게 뭘까? 그리스도 안에서, 이 비밀을 모르면 내가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에 참여된 만큼 하나님의 나라, 거기에는 내가 없습니다. 그거에는 우리만 있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여 주옵시고, 여러분들이 조금씩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을 죽고 사는 그런 만큼 그리스도 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실상을 실상으로 깨달아온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조금 그 말의 의미가 왜 나의 하나님 아버지 해야 하는데, 나에게 일용할 양식해야 하는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이게 하나님의 나라에요. 그안에서 발견되어져가는 만큼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그런 만큼 점점 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 사도 바울의 고백이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여러분 이것이 소원 갖고 되는 게 아니에요. 기도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왜 그렇습니까?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이 구원하셨을 때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주셨고, 주기도문에서 배웠던 것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우리가 이 진통을 겪는 거예요. 왜 우상 세계 만든 만큼 우상도 좋고 하나님도 좋지? 우상이 깨지는 만큼 그래서 내가 주일날 말씀 드린 것처럼 다니엘서 2장에 저 느부갓네살 왕을 통한 하나님의 환상을 얼마나 잘 보여 주냐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예언이면서 역사적 사실을 통한 구속사의 의미를 너무나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겁니다. 머리, 큰 우상의 머리는 금, 가슴은 은, 그 다음에 동, 그 다음에는 다리, 한쪽은 철, 한쪽은 흙, 어마어마한 우상. 이게 세상이에요. 적게는 선악의 눈이 밝아, 너희가 하나님처럼 살아온 만큼의 세계, 우상 세계라는 거예요.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 시대가 가장 영광 스러운 시대에요. 금시대니까. 그 다음에 메데 와 바사, 그 다음에 헬라, 그 다음에 로마, 로마가 철시대에요. 그래서 강한 나라에요. 여기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의미, 어디서 돌 하나가 날아와요. 이 돌이 뭘까? 성경은 말하죠. 산 돌 되시는 그리스도, 모퉁이 머리돌 되신 그리스도, 돌 하나가 날라와서 뭘 쳐요? 우상을 친다. 우상 치기 싫지? 얼마나 나를 사랑했으면, 얼마나 나 중심에, 하나님 까지 끌어당겨서 금송아지 하나님 만드는지 모른 채, 복음은 속지 않는다니까. 내 인생도 속일수 없다니까. 만약에 징계가 없다면 채찍과 징계가 없다면 사생 자라니까.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면, 그래서 여러분이 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왜? 없었으면 여기 앉아 있을 사람들이 아니거든, 앞으로는 없을까? 없기를 바래야지? 이렇게 은혜를 받아가면서 없기를 바래야지. 나도 그래. 좋은 날만 있으리라. 얼마나 좋아. 그러니까. 저 광야 40년 이스라엘 60만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다 쓰러져 가는 광야 교회 모습을 보니까 저게 교회 모습으로 보이겠습니까? 개판으로 보이지. 그러니 복음 깨닫지 못했다고 말하고 언약 놓쳤다고 말하지. 이게 종교라고 누가 생각 하겠어요. 자기의 종교의 기준 속에서 광야 교회를 형편없는 교회로 만든 거예요. 저도 그랬던 사람이에요. 남이 혼돈하다고 했지, 내가 혼돈한줄 몰랐어. 남이 어둠인줄 알았지, 내가 어둠만 몰랐어. 그런데 하나님이 안 봐주시더라고, 계속 추격하시더라고. 구원을 이루어주신 만큼, 나도 은혜 받은 만큼 살렸어요. 역사가 일어나는데 어떻게 안 살려, 내 배경 만들지 왜 안 만들겠냐고. 그래서 나는 이런 말씀을 듣기 때문에? 바로 깨달아 갈수 있다? 천천만만, 하나님이 속임을 다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 속에 하나님이 속일 수 없는 사실로 드러낼 때라도 깨달아.
신년집회 2강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