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문산 어느 식당 앞에 도착한 어떤 손님들의 눈물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는 도시철도 2호선 기점으로서 대구 시민들과 이웃 성주, 칠곡 주민들도 많이 이용하는 교통요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양리는 먹거리가 많고 마천산이 인접하고 있으며, 인접한 남쪽 문산리는 낙동강을 끼고 있어 경관이 좋아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2026년 10월 16일 화창한 가을, 대구행정동우회 봉사단 일행이 연례행사로 계획된 단합행사 겸 자연정화 활동을 문양역 일대에서 마치고 사전 예약한 문산리 어느 식당을 찾았다. 주위에는 식당이 많은 편이고, 낙동강변 쪽에는 카페들도 많이 있다.
우리들은 식당에서 제공해 준 봉고차로 내린 식당 앞에는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개인 차량으로도 얼마든지 이용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예약한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때 주위가 사람소리와 차량소리 비슷한 소리들이 들리기에 뒤돌아보니 전동휠체어를 타신 어르신 여러 명이 넓은 주차장에 모여들었다. 놀랍게도 여성분도 있었다. 그분들은 아마도 얼마 전부터 야외 행사를 계획하여 드디어는 오늘 아침 일찍부터 집에서 나오신 후 도시철도에서 수차례 엘리베이터를 이용, 문양역에 내려 시골길을 여기까지 달려 드디어 경관이 좋고 높은 건물로 지어진 식당 앞에 모이게 된 것 같다
그분들은 즐거운 목소리들로 웃고 떠들면서 다소 소란스럽다고 생각되었는데 마침 식당 차 운전하는 분이 정차 후 차에서 내리자 휠체어 탄 한 분이 봉고 운전자 가까이 다가서서 문의하였다.
“사장님, 저기 식당에 엘리베이터가 있습니까?”
그 운전자는 약간 머뭇거리더니
“없습니다. 대신 1층에서 이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1층에는 주차된 차량과 휴게용으로 보이는 목탁자만 있을뿐이었다.
더군더나 건물은 꽤 높게 보이지만 2층 건물이라 구조상 있을리가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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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떠들썩하던 소리가 일시에 싹 가시고 잠사 적막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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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이 단호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돌아갑시다...............”
그분들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여러 대 전동휠체어는 아랫길로 사정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옆집 식당도 바라 보았다. 그 식당조차도 입구는 계단으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처음 초행길에 여러 식당을 헤매었을 것이며 눈물을 흘리신 분도 계셨으리라. 내 마음은 참으로 무거웠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후천성 하지 불편으로 세상을 악물고 살아오신 작은 거인들이 틀림없겠지만 어찌하여 세상은 이렇게 매마른고.............
우리들 대부분은 너무 태평스럽게 살아왔기에 종이 한 장 차이에 도사리고 있는 눈물 나는 또 다른 세상을 알지 못한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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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로소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나는 문양까지 그 분들이 뒤돌아간 길 2km를 혼자 걸어오면서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오늘같이 화창하고 좋은 가을 날이 몇 번 있겠나마는
한쪽으로는 무거운 돌덩이가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선생님의 정성 어린 글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아직 보듬지 못한
그늘을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이동권과 접근성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문턱 하나, 계단 몇 개에 발길을 돌려야 하는
이웃들의 눈물이 참 안타깝습니다.
"종이 한 장 차이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세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함께 아파하며
귀한 글로 기록해 주신 선생님 덕분에 많은 분들이
우리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깊은 울림을 주는 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좋은 글로 남겨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내가 여기까지 굴러오면서
"못살겠다" 하고 수없이 소리치며 덤벙거리던 지난 날들이
참으로 부끄럽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분들이 찾아온 문양리 그곳은 우리가 서울 가는 것보다도
몇 배 험하고 힘드셨을 것입니다.
그곳에 가면 낙원이 있으리라
그렇게도 꿈꾸던 낙동강과 산천들조차도
그 위대한 자연조차도 외면했습니다.
본인도 세 발, 네 발로 가야 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아무도 내 곁에서 손잡아주는 이 없을 것입니다.
저 위대한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고 하셨거늘
이렇게 작은 인간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차라리 서쪽 먼 문양리까지 휠체어로 달려오신 어르신들은
어쩌면 먼 곳에서 달려온 거인이라고 느껴집니다.
김교수님의 높은 혜안과 세상의 높은 눈은 언젠가는 새싹이 크게 자라
이 나라 이 세상에 더 큰 씨앗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