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롬!!
경항공기지역 신우회 수요예배순서 (2024.05.08.)
본문말씀 : 눅 24:44-48, 새번역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기록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곧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이며,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 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보아라,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어라.”
말씀선포 : 성경의 증인이로다
온 교회는 주님의 증인입니다. 21세기 많은 주님의 몸된 공동체들이 이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피상적으로 기억할 때가 있지만, 나사렛 출신의 예수님이 구세주시며 동시에 만왕의 왕, 유일하신 주님이심을 증언하는 일은 교회에 주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이 증인으로 살 수 있도록 공생애 기간 동안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는 심지어 부활 이후에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이 온 세상에 자신이 죽고 아버지 하나님이 다시 살리심으로 개시된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증거할 수 있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몸된 공동체는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예수님이 제자들로 자신의 증인으로 준비시키실 때 성경을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누가는 자기의 복음서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성경을 알도록 가르치셨다고 하며 그 이유가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심이 성경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몸된 공동체는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을 바로 성경의 증인이 되도록 준비시켰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주님의 증인들은 바로 성경의 증인들입니다.
주님이 온 교회를 성경의 증인으로 삼았다는 것에 있어 많은 이들은 혼란을 느낍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복음의 결과로 나타난 유일하신 하나님의 단일 백성을 지키지 못하고 여러 다양한 종파와 교파로 나뉜 것이 바로 성경을 이해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어떤 교파는 성경에서 구원이 사회정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또 다른 교파는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한 영혼이 주님 백성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각기 다른 성경 이해를 가지고 있는 그 교파들이 자신을 유일한 참된 성경의 증인으로 생각하며 다른 성경 이해를 가진 이들을 성경의 증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교 역사를 살펴보면 교파들마다 각자 가진 다른 성경의 이해는 주님의 몸된 공동체가 서로를 멀리하고 싸우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성경을 바로 아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고, 누가 자신을 바른 성경의 증인으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자조 섞인 질문을 하며 한숨을 내쉽니다.
이들이 겪는 혼란은 자신들이 스스로 성경의 증인으로 살기 시작한다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여기는 무지에서 나옵니다. 온 교회는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아 성경의 증인이 됩니다. 주님의 제자 요한은 자기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유대인이 자신을 그리스도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지가 스스로 성경을 연구함으로 하나님 나라 증인으로 세워지기 때문이라고 비판하셨음을 밝힙니다. 그의 기록을 따르면 성경의 증인은 오직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일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른 뼈같은 죄인을 살리시는 분이 말씀으로 흙이 몸이 되게 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다시 사람이 살아나게 되는 것 아닙니까? 주님은 신바벨로니아 제국에 포로로 끌려가 있던 에스겔 예언자가 대언하게 하여 다시 살아나게 하셨던 이들은 모두 포로로 허무하게 삶을 마쳤던 남유다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허무한 삶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처럼 참된 주님의 증인이 되는 일은 오직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됩니다.
주님만이 온 교회를 성경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일의 가장 확실한 증인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년에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오직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회심한 이후 복음을 전하다 박해를 받았던 모든 사건 속에서 올바른 성경의 증인으로 살 수 있었음을 전하며 디모데가 자신처럼 성경을 올바로 아는 사람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전적인 주님 은혜로 성경을 바로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올바르고 유능한 증인으로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바울은 오직 주님만이 성도로 참된 그분의 증인, 즉 성경의 증인이 되게 하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온 교회가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시편 37편 저자가 노래했듯 자신의 삶에 주님이 오셔서 그 법도를 가르쳐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성도는 그의 노래처럼 주님만이 자신을 도우셔서 구원받고 성경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심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더 이상 내가 더 나은 주님 증인이라고 내세우며 다른 주님의 몸된 공동체와 싸우는 일을 내려놓게 됩니다. 주님의 몸이 서로 싸우고 상처 주는 일은 진정한 주님 증인들 사이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의사 누가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온 성경에 자신의 구세주며 만왕의 왕, 주님이 되는 것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제자들로 그 일을 온전히 알 수 있게 하는 존재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21세기 지구 상에 수많은 종파와 교파들이 다른 성경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가 가진 다른 성경 이해가 모두 전적인 주님 은혜로 각자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주님의 몸된 공동체는 서로 반목하지 않고 오직 복음의 결과로 나타난 유일하신 하나님의 단일 백성임을 끊임없이 찬양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오직 구세주시며 주님이심을 전하는 모든 주님의 몸된 공동체는 참된 성경의 공동체입니다.
첫댓글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오직 구세주시며 주님이심을 전하는 모든 주님의 몸된 공동체는 참된 성경의 공동체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예수님의 제자요 교회가 많습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갈라치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반목하고 질시하고 어렵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내가 예수님에 참 제자요 다른 모든 이들은 가짜라고 하기도 합니다
아니 그렇게 까지는 안할지라도 멀리하려고 하고 상대를 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미움도 갖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같이 하나님에 자녀요 진정한 이웃이며 형제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돕고 어울려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찬양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웃을 돕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이 다른사람보다 평균치보다 더 많다면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웃을 돕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몽땅주어서 하는 것은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은 아닙니다.